닥터스. 비비씨에서 하는 드라마다. 요즘 이스트엔더스 대신 이걸 보고 있다. 이스트엔더스를 더 안보기로 한 이유는, 이거 보지 말라고 만류하는 사람이 있었고, 감내하기 싫을 정도로 찌질했고, 등장 인물들의 사투리가 너무 심해서 "~ya" 같은 촌스런 어미가 내 혀에 달라 붙을까 걱정스러웠기 때문이다.
닥터스는 잔잔하고 따뜻한 드라마다. 얼굴만 봐도 기분이 좋아지는 등장 인물이 벌써 셋이나 된다. 사회적 이슈들을 소재로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은데 심각할 정도로 깊게 다루지도, 소재주의식으로 피상적으로 다루지도 않는다. 어제 에피소드를 보면서는 그 균형 감각에 감탄했다.
닥터스에는 당장 써먹을 수 있는 표현들이 많이 나온다. 노트 갖다 놓고 공부하면서 보고 있다.
내 생각에 영어 공부하기에는 다운톤 애비가 가장 좋은 것 같다. 20세기 초반의 영국 귀족 사회를 배경으로 하는 시대극인데 아주 깨끗한 발음의 영어를 들을 수 있다. 심지어 하인들도 깨끗한 발음을 구사한다.
나는 다운톤 애비를 본 후 영어 낭독 연습을 하곤 하는데, 오늘 문득 내 발음이 재수없다고 느껴졌다. 다운톤 애비에서 들은 억양이 내 혀에 묻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깨달은 것 하나.
나이가 들면 새로운 언어를 익히기 쉽지 않다고들 한다. 이유야 여러 가지를 댈 수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말하자면 "재수없어서" 때문인 것 같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내 억양이 영국 사람을 닮아간다고 치자. 그런데 앞에 한국 사람이 딱 서 있다면? 그 앞에서 영어를 말할라 치면, 간단한 단어 하나를 말할 때라 해도 나의 발음은 이전의 딱딱한 발음으로 돌아가 버리고 만다. 네이티브들의 억양을 흉내내는 자신이 창피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나의 발음은 또 무너져 버린다.
영어를 집중적으로 익히다 보면 리듬이 들리는 때가 오는 것 같다. 리듬이 들리면 그걸 흉내낼 수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래서 이제 문제는 이렇다. 이걸 흉내내야 할까, 말아야 할까? 아이들은 이런 고민을 하지 않는다. 흉내내는 게 당연한 것이니까. 어른들은 이런 문제 앞에서 고민을 한다. 이런 것 흉내내기가 남사스러운데... 이런 표현 한번 써먹어 보고 싶긴 한데 좀 창피해서리... 이렇게 머뭇 머뭇하는 한국 아저씨를 딴 나라 사람들은 "샤이"하다고 표현하는 것 같다. (음... 방년 18세 브라질 아가씨가 오늘 나더러 샤이하다고 한 것 때문에 이런 말 하는 건 아니다...-.-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