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 와서 처음으로 가든 파티에 가서 놀았다. 옆 집에서 하는 거였다. 한 두어 집 부르는 건 줄 알았는데, 어른만 세서 20명 정도 온 것 같다. 주인장 부부가 독실한 기독교인이어서 교회 사람들, 그리고 남편 쪽이 흑인이어서 흑인 친구들도 많이 왔다. 동네에서 40년 이상 산 백인 노부부, 나이지리아 출신, 이탈리아 출신, 아일랜드 출신, 러시아 출신, 그리고 우리 같은 한국 출신 등, 평범한 시골 동네지만 한국에서라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람들이 모여 담소를 즐겼다. 우리는 쿠키랑 포도주를 들고 갔는데, 한쪽 테이블에 사람들이 가져온 먹을 거리를 쌓아 두고 알아서 먹게끔 하더라. 주인장 친구들이 구워주는 소세지와 치킨이 특히 맛났다. 두 세 명, 혹은 서너 명씩 무리를 지어 담소를 하는데, 나는 처음 보는 사람들과 뭔 이야기를 해야 하나 하고 걱정을 했었다. 그런데 교회 사람들이 많이 와서 그런지, 적어도 나는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게 되더라. 내게 전도를 하려는 것이었을까? 브렉싯이나 이민자 문제 같은 예민한 이야기들도 하게 되었고, 특히 나는 철학하는 사람으로 통했기 때문에 철학적 논쟁을 걸어오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 니 철학적 입장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어떤 거지?” 첫 질문으로 이런 게 막 들어온다. 물론, 축구 이야기도 했다. 그런데 나는 축구에 무지한 지라… 내가 한국인이니까 손흥민에 대해 물어 주던데, 난 손흥민이 토트넘에서 뛴다는 것 밖에 모른다… 같이 이야기를 나누던 아일랜드 친구가 웨스트햄 응원한다기에 나는 풀햄 응원한다고 했다.
나: 풀햄 경기 세 번 갔었는데 한번도 이기지를 못하더라고. 풀햄은 지금 2부 리그에서 경기하고 있어.
그: 어? 풀햄 이번에 승격했는데? 가까스로 올라왔어. 이 주 후에 홈 경기 있을 건데?
나: 어, 그래? 대단하네! (대참사-.-)
가든 파티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느라 런던 셰익스피어스 글로브라는 극장에서 하는 “As You Like It” 연극에 조금 늦었다. 1막을 놓쳤다. 그동안 셰익스피어 극을 몇 개 봤었는데 알아듣기도 힘들고 크게 감흥이 없었다. 그래서 이번엔 조금 공부를 했다. 그랬더니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As You Like It을 출발점 삼아 셰익스피어를 제대로 공부해 보자고 마음 먹고 예전 무대 버전의 DVD도 샀다. 그런데 이번 공연 자체는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다. 혹은, 내가 상상했던 식으로 공연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번 공연에서는 여자 주인공을 남자 배우가 하고, 남자 주인공을 여자가 하는 등 주요 캐릭터의 성별을 바꾸어 놓았다. 이런게 요즘 유행이긴 한가 보다. 그런데 원작에서 이미 여자 주인공이 남장을 하고 극 흐름을 주도한다. 결국 여자 주인공을 남자 배우가 하니 원작과는 거꾸로 남자가 극의 흐름을 주도하는, 말하자면 메일 워싱 현상이 일어나고 만 것이다. 나는 이걸 어느 정도는 참사라고 생각한다. 영국의 관객들은 웃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 배우가 조금이라도 웃음을 유발할 만한 행동이나 대사를 하면 죄다들 까르르 웃어제낀다. 도대체 왜들 그렇게 웃는 걸까? 그래서인지 배우들도 온 힘을 다해 과장을 하고 슬랩스틱을 한다. 난 이런 과장스런 연기가 극을 즐기는데 방해가 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사실 나만 해도 고전 극을 쫒아다니고 있기는 한다. 최근 한 달 안에 본 연극들, 그러니까 트랜스레이션, 노 엑싯, 그리고 As You Like It 까지 모두 영국의 고등 학교 교육 과정 안에 포함되어 있는 작품들이다. 고전 극은 잘 팔리고 현대 창작 극은 잘 팔리지 않는다(현대 극은 비싼 것이 많기도 하다). 그래서 고전 극을 이렇게 저렇게 새롭게 해석하는 식으로, 그 틀 안에서 뭔가를 해보려고 하는 시도들이 있다. 그런데 여차하면 이도 저도 아니게 될 위험이 큰 것 같다. 적어도 나는 고전 극에 대해서라면 정통적인 해석을 하는 연극을 보려고 할 것 같다. 어쨌든 박수는 크게 쳐주고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