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에서 대학 다니는 친구들 둘이 우리 집에 놀러 왔다. 그 중 한 친구가 책장을 이리 저리 살피다 콘라드의 "암흑의 핵심"을 꺼낸다. "읽어보셨어요? 어떤 내용이예요?" 젠장, 읽어 보지 않았다. 콘라드나 그 책 주변 이야기는 무성하게 해줄 수 있으나 그 책 자체는 읽지 않았다. 그래서 안읽어 봤다고만 하고 말았다. 이번엔 쿤의 "과학 혁명의 구조"를 꺼내든다. 이 책에 대해서도 무성하게 할 이야기는 많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책을 읽어 봤느냐는 것이다. 안 읽어 봤다. 그런데 이번 것은 좀 심각하다. 당신이라면 이런 책 읽었어야 하는 것 아니예요? 라고 꾸지람 섞인 소리를 한다면, 이런 무게의 책이 한 둘이 아닌데 그걸 어떻게 다 읽냐, 하고 넘어갈 자신이 없다. 다행히 그 친구는 예의바른 친구라 나를 구석에 몰지는 않았다.
특정 주제의 독서나 사색에 몰두하다 보면, 여차하면 그 밖의 다른 영역들에 대해서는 바보가 되는 것 같다. 요즘 이런 문제들에 자주 부딪힌다. 하여 나의 주제에 꼭이 부합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책 하나를 리스트로 올려 놓고 읽어야 할 것들은 강제적으로라도 읽어 보려 한다. 첫 번째 책은 쿤의 저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