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에게 윤석열이 계엄령을 발표했다는 전화를 받고 바로 유튭을 켰다. 나는 이런 경우라면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매체를 주로 이용한다. YTN 라이브 채널로 들어갔다.


경찰이 국회를 에워싸고 있었고 계엄군이 국회 내로 진입해 있었다. 국회 의장은 착석해 있었으나 아직 성원은 되지 않은 상태였다. 김광삼(나는 이 이름을 잊지 않으려 노력했다)이라는 변호사가 해설을 하고 있었다. 경찰이 국회를 봉쇄하고 있기 때문에 성원 인원수를 채우지 못할 것이다, 곧 계엄군이 회장에 들이닥쳐 의원들을 체포할 것이다, 각 방송사도 계엄군이 접수할 것이다... 등등. 


김광삼 변호사가 쿠데타와 계엄의 차이를 모를 리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윤석열이 발표한 계엄은 그 성립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이므로 불법적이고, 1호 포고문도 헌법을 정면으로 위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았다. 앵커들도, "계엄군이 국회에 들어와서 의원들을 체포하는 건 불법이 아닌가요?" 같은 질문을 결코 하지 않았다. 


성원이 된 후에도 안건 상정이 늦어지며 상당한 시간이 지체되었다. 김광삼은 계엄군이 곧 들이닥칠 것이라 했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리고 김광삼의 어? 하는 당황스러움의 표현과 그 뒤를 잇는 침묵을 무시하며 계엄 해제 안건은 통과되었다. --- 어제 뉴스보니 계엄군 일선 지휘관이 회장 진입을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하더라...


어젠가, 그젠가 계엄 관련 뉴스를 찾아보다 얼핏 김광삼이 윤석열은 내란죄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핏 하며 헛웃음이 나왔다. 권력과 언론에 관한 고전적인 일화의 실제 버전을 이처럼 적나라하게 목격하게 될 줄이야... 엘바섬을 탈출한 나폴레옹에 대해, 프랑스의 한 신문사가, "악마, 엘바섬을 탈출하다!"로 첫 기사를 내었다가, "황제 폐하, 마침내 파리 입성!"으로 마무리했다는 그 유명한 일화 말이다. 어쨌든 살 사람은 살아야 할 터이다.


이번 사태를 보며 새삼 나는 오바마의, 민주주의란 정말 어려운 것이라는 진단에 100% 동의하게 된다. 민주주의란 균형의 문제이며, 이를 위해 온갖 장치들이 그것 위로 주렁 주렁 달리게 된다. 문제는 그 장치들이 지극히 인위적인 것들이라는 것이다. 왜 저 악마같은 성범죄 현행범에게도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인정해야 하는 것이지? 왜 저 법망을 요리 조리 빠져나가는 부패 정치인들을 처단할 수 없는 거지? (윤석열의 경우라면) 저 반국가세력들을 현행법으로 처단할 수 없다는 것이 말이 되나? (국회 경비대장의 경우라면) 어째서 나의 첫 번째 의무가 직속 상관의 명령이나 대통령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저 추상적인 헌법 구문을 따르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지? 등등. 이런 수 많은 의문과 그에 따른 유혹을 추종하는 순간 균형은 깨어진다. 균형을 유지하기란 이토록 어려울 수 밖에 없다. 균형은 직접성에서 추상성으로 일보 나아가야, 즉 자신에 대해 거리를 둘 수 있어야 비로소 가능해진다. 그러므로 그것은 성향이지만 동시에 기술이기도 할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기술의 체득은 직접적인 경험에서 가장 잘 이루어지는 것 같다. 생활과 유리된 이념으로, 교과서로 배우는 것은 별 의미가 없을 수 있다. 이번 경우라면, 국회 경비대가 국회 의장의 명령에 반하여 대통령의 명령을 따르는 것은 (국회의 권능을 제한하게 하는 대통령의 명령은 어떠한 경우에도 불법이므로) 불법이 된다는 것을, 국회 경비대장 등이 중형에 처해지는 사례를 통해 국회 경비대에 체득될 것이다. --- 아마 이런 것이 민주주의란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의 깊은 의미일 것이다. 민주주의란 기술은 경험을 통해, 공포와 혼란을 계기 삼아, 그것을 교과서 삼아 체득된다... 


한국에서 친위 쿠데타가 일어났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번의 전개는 40, 50년 전과는 분명히 달랐다. 한국의 현실(분단 현실, 식민지와 오랜 군정을 겪은 현실 등등)과 문화(좀 더 직접적인 관계를 선호하는 성향 등등)는 유럽 국가들보다 한국에서 쿠데타나 독재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조건을 형성한다. 그러나 어쨌든 이번 쿠데타 사태가 민주주의 기술의 집단적 체득을 위한 강력한 계기를 형성할 것임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공짜 점심은 없다는 것, 그리고 역사에 점프는 없다는 것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나는 이번 쿠데타 사태가 나쁘기만 할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잘만 하면 최소 비용으로 막대한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탄핵 당시에도 친위 쿠데타가 기획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번 사태로 이런 잠복적이고 항존적인 위험은 이제 좀 더 덜 현실적인 것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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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현재 궁구하고 있는 부분은 지난 번 이 카테고리에서 말했던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스피노자는 내게 있어 무엇보다도 형이상학자이고, 그것은 그의 실체-양태 이론으로 구체화된다. 나는 지금 이 이론의 주변을 뒤집고 다니고 있다. 


럿셀은 그의 철학사에서 철학을 과학과 종교 사이의 어떤 것이라고 말한다. 이에 대한다면 나는 단순하게 철학 일반, 혹은 형이상학을 지식의 최전선, 혹은 주변부에서 이루어지는 지적 활동이라고 말할 것이다. 물론 여러 제약 조건들을 걸어야 하겠지만 여기서는 생략하기로 하자. 요점은 철학은 지식의 양태를 갖는다는 것이다. (너무 당연한가?) 그리고 지식의 양태들은 당연히 시간성을 갖는다. 


그러므로 17세기, 18세기 유럽, 특히 스피노자가 살았던 네덜란드라는 공간에 주목해야 한다. 나는 요즘 네덜란드 출신 저자들이 스피노자 등에 관해 쓴 문헌들을 주로 읽고 있는데 읽으면서 꽤나 놀라게 된다. 이 저자들은 자기네 옆 동네에서 이, 삼백 년 전에 살았던 어떤 인물의 흔적을 추적하듯이 스피노자를 연구한다. 그렇게 수집된 구체적인 자료들이 풍기는 생생함은 어느 방법론 따위에 비길 바가 아니다. 예컨대, 에티카 한 권을 책상 위에 놓고 그것의 내적, 논리적 구조를 치밀하게 추적하는 작업은, 때로는 정말로 허망한 짓일 수 있다는 것이다. (지적 게으름을 정당화해주는 방법론에서 오는 허망함.)


물론 네덜란드 출신 학자들의 연구들이 나의 애초 기획을 흔들 수도 있다. 예컨대, 나는 스피노자 사후 그의 철학은 아주 잊혀졌다가 독일에서의 스피노자 르네상스로 되살아날 수 있었다고, 기존의 설명을 따라갔었다. 그러나 사태가 꼭이 이렇게 진행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네덜란드 출신 학자들의 연구 결과로 나는 이제 안다. - 그러나 애초 내가 스피노자를 형이상학자로 다루고자 했을 때 내 머리 속에 있던 그 형이상학의 정체는, 근대 네덜란드라는 시간성을 고려하자 더 명석해지고 판명해졌다. 이대로 쭉 가도 될 것 같은데? 이런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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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4-11-15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에 그 느낌이 뭘까요? 저도 느껴보고 싶은 느낌입니다..ㅎㅎ

러셀-비트겐슈타인을 지나...이제는 스피노자인가욤?? 스피노자가 살았던 시대 동시대 사람들이 스피노자를 연구한 결과물은 어떤지...우리나라에서는 구경도 해 볼 수 없겠죠? 좋은 문헌들을 접하고 계시네요~ 유학의 장점이 이런 것이겠죠!^^

스피노자 전기를 보면 당시 스피노자가 파문당했을 시 동시대 플랑드르 지역 사람들은 스피노자를 매우 비난했다는데...당시 사람들이 스피노자를 어떻게 평가했는지 궁금하네요~

weekly 2024-11-16 02:29   좋아요 1 | URL
오랜만에 뵙네요. 잘 지내시죠?:)

그 ‘느낌‘이란 건 애초 생각대로 진행해도 되겠구나 하는 안도감, 확신감... 이런 거예요. - 전문용어로 ‘착각‘, ‘혹은 ‘환상‘, 이런 것일지도요...

아마 철학도라면 저마다 가슴 속에 품고 있는 철학자들이 있을 텐데요... 저는 스피노자였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을 하지 않을 이유를 찾을 때 요긴한 철학자였다는 생각이 드네요.:)

네덜란드 사람들이 스피노자 연구하는 것은 한국 사람들이 이이, 이황 연구하는 것하고 비슷한 것 같아요. 예컨대, 직접 오죽헌을 가볼 수 있고, 그 건축물의 문화적 분위기가 어떤 것인지도 잘 알고 있잖아요? - 인터넷 시대이다보니 관련 문헌들은 검색해보면 웹에서 찾으실 수 있을 거예요~
 



영국 런던 바비칸 센터 극장에서 국립 창극단의 창극 리어를 보았다. 이번 런던 공연은 사나흘 정도로 짧은 일정이었고 우리는 마지막 날의 오후 공연을 보았다. 공연팀은 두 시간 남짓을 쉬고 다시 저녁 마지막 공연에 들어가야 했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기 빨리는 일정이다.) 여튼 우리가 본 공연은 성황리에 끝났고 기립 박수를 이끌어내었다. 


내 생각에도 무척 만족스러운 공연이었던 것 같다. 첫째로, 리어왕이라는 원작 자체가 문화적 경계를 타지 않는 것 같다. 다시 말해 창극으로 공연되는 리어왕에 전혀 위화감을 느낄 수 없었다. 더구나 창극이란 형식은 셰익스피어 비극 중에서도 가장 처참한 비극성을 가진 리어왕을 그 극한까지 몰아갈 수 있는 쟝르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둘째로, 나는 이번 창극을 리어왕에 대한 가장 참신한 해석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요컨대, 한국 사람이 리어왕이라는 작품을 접했을 때의 자연스러운 반응을 토대로 각색이 이루어졌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예컨대, 이 모든 사단의 시발에는, 리어왕의 고집스러운 성격 못지 않게, 코델리아의 고지식함도 한 몫 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리고 이에 대한 답의 하나로 노자의 첫 구절을 떠올릴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한국의 각색자도 분명 이런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나갔을 것이다. 젊고 아름답고 착한 코델이아의 이면은 늙고 고집스러운 리어이다. 밝고 투명하고 경쾌함의 이면은 깊고 어둡고 알 수 없음이다. 그리고 그것의 이미지가 바로 물이다(여기서 바슐라르를 인용해야 할 것이나 책을 뒤지기 귀찮다). 극이 시작하고, 무대의 바닥에서 조용히 출렁이고 있는 것을 나는 비단이거나 레이저 2D 이미지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진짜 물이었다. 배우들은 그 물에 발을 담그고, 첨벙대고, 고기를 잡고 등등... 했다. 어리석음과 어리석은 척 하는 것, 광기와 광기인 척 하는 것 등등의 이 처절한 변증법에서 물은 그 어느 캐릭터보다 더 강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아마 물의 배역을 말하라면 그것은 바로 '비극'이라고 대답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리어는 처형당한 코델리아를 안고 와서 그 물에 누인다. 코델리아는 잔잔한 물 위에 누워 있다. 나는 충격을 받았다. 아마 내 옆에 셰익스피어가 앉아 있었더라면 그는 충격을 받고, 눈물을 흘리고, 공연팀에 감사함을 느꼈을 것이다. 그 장면을 통해 한국에서 온 공연팀은 '햄릿(오필리어의 비극)'과 '리어왕'의 가장 비극적인 장면을 동시에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광기, 죽음 등등에 무엇을 첨가해야 그 광기는, 그 죽음은 궁극의 비극성을 성취할 수 있게 될까? 무지함, 고집스러움 등등으로는 아직 부족하다. 필요한 것은 바로 순진함, 나이브함, 어린 아이같음이다. 노자에 따르면, 천지는 인간을 어린 아이처럼 대한다. 그리고 동시에 노자는 천지는 결코 인자하지 아니하다고 말한다... (이 두 번째 구절은, 고전 그리스 비극의 합창의 형태로, 무대에서 직접 표현된다.)


기립 박수가 터지는 와중에도 나는 조용히 앉아서 박수를 쳤다. 나는 원래 기립 박수같은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장담할 수 있다. 한국에서 온 공연팀의 자기 확신을 그 순간 나는 누구보다 강하게 긍정하고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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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정도 일정으로 한국에 갔다가 어제 영국에 돌아왔다. 간단히 빠르게 인상만 적어보자.


한국의 인천 공항을 나서는 순간 두텁고 습한 공기 덩어리에 당황했다. (가보지는 않았지만) 동남아 날씨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나마 한풀 꺽인 것이 그 정도라는 것이다. 다음날 일을 보느라 강남 거리를 쏘다녀야 했는데 사람들 복장에 의아함을 느꼈다. 날은 더운데 올-블랙 패션인 사람들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열에 두 엇은 남녀노소를 가릴 것 없이 올 블랙이었던 것 같다. 어떤 가게에 갔다가 그 얘기를 했다. "사람들이 상하복 전부 까만 옷을 입고 있는 게 너무 신기하네요." 그러자 가게 여주인이 당황해했다. 나는 그제서야 카운터 밑으로 그 분의 하의도, 그러므로 상하의 모두가 까만색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한국 사람들이 까만 옷을 좋아해서 그런 것 같아요. 이 유행이 시작된지 10년도 더 된 것 같긴한데..." - 아, 10년도 더 전에 시작된 유행이라고... 현상은 그렇게 거기 있었는데 그동안 내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을 가능성은 미처 챙겨보지 못했다. 그리고 몇 칠 후 뉴욕 타임스의 구독 메일로 한 기사가 배달되어 왔다. 전세계적으로 올 블랙 패션이 유행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그리고 나는 어떤 현상에 대해 그것을 지역적으로 고유한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무반성적인 태도를 반성하게 되었다. 세계는 너무나 복잡해졌다. 복잡성을 연결성으로 정의한다면 현대가 인류 역사상 가장 복잡한 시대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이 복잡성 때문에 비롯된 일군의 태도는, 역설적이게도 원자적 태도이다. 그러므로 나는 확신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오히려 필요한 것은 총체화의 태도라는 것을.  


예외는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말 빠릿빠릿하고 열심히 살고 있었다. 어떤 금융사에 갔다. "이런 저런 일 때문에 왔는데요..." "그건 3층에서 해요. 한 층 더 올라가셔야 해요." 그러나 2층 그 직원은 자기가 할 수 있는 한에서 최선을 다해 그 건에 관해 설명해 주며 도와주었다. 3층에 올라가자 담당자가 없었다. 그러자 옆에 직원이 자기가 할 수 있는 한에서 최선을 다해 일을 도와주었다. 유니클로에서 바지를 샀다. 바지를 사고 피팅을 하고 기장을 줄이고 하는 과정에서 직원들이 손님의 동선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말 열심히 움직였다. 신발을 사러갔다. 남직원은 땀을 뻘뻘 흘려가며 손님을 응대하고 창고를 뒤지고 있었고 여직원은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신발끈을 매어주었다. 피팅을 마치고 나서 더 이상 응대할 손님이 없자 목청을 높여 "세일이요, 세일~"을 외쳤다. 나는 저렇게 몸이 부서져라 일해 본 경험이 없다. 그럴 자신도 없다. 예외? 어떤 편의점에 갔는데 모자를 내려쓰고 마스크를 눈밑까지 끌어올린 직원이 계산이 끝나자마자 바로 시선을 핸드폰으로 향하며 응대의 종료를 선언하는 모습. 유튭같은 데서 종종 희화화되는 장면의 실사 버전.


어디를 가든 그랬다. 이번에 한국에 가기 직전에 영국에서 치주 질환 치료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마침 한국에 간 김에 한국에서도 치과를 찾아가보았다. 영국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저렴하게, 비교도 할 수 없이 짧은 대기 시간에 (그리고 내 생각에 훨씬 나은)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물론 이것만을 가지고 한국의 시스템이 영국의 시스템보다 더 낫다는 결론이 나오지는 않는다. 한층 위에서 바라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이 한국의 시스템을 가능하게 하는가? 그것은 아마도 한 마디로 말해서 경쟁일 것이다. 그러나 경쟁만을 말해서도 안될 것이다. 더 적절하게 말하면 아마도 그것은 그러한 경쟁을 허용하는, 혹은 복돋우는 사회 문화적 환경일 것이다. 그러한 환경에서 고객들이 응당 기대하는 서비스의 수준은 높을 것이고, 서비스 제공자들은 고객의 그러한 기대를 충족시켜주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교보 문고에 갔더니 사람들로 바글 바글했다. 그러다 다음과 같은 거친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 "글쎄, 재고 있는지 확인하고 매장이 왔더니 재고가 없다더라구요. 재고가 없을 수는 있지요. 근데 직원이 "검색해서 확인하셨어요?" 라고 하는데 그 말투가~"   


나는 번 아웃이라는 말을 비로소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는 젊은 세대에 있어 번 아웃의 역치가 지나치게 낮은 것이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그러나 한국에서 경험한 바로는 그것은 아닌 것 같았다.


친척 중에 병특 중인 20대 후반의 젊은 친구가 있다. 실패를 경험해보지 않은, 뛰어난 인재다. 병특 1년 반이 되어 이직을 고민하고 있었다. 이유는 자신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없기, 혹은 인정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젊은 세대 친구들과 대화하다보면 종종 놀랄 때가 있다. 거의 판에 박은 듯한 표현을 반복적으로 듣게 될 때가 그렇다. 그 중 백미는 어떤 친척이 아들에게 들었다는 다음과 같은 말이다. "내가 자립적인 사람이 못된 건 아버지가 나를 자립적인 사람으로 키우지 않아서 그런 것 아니예요?") 그 친구의 아버지는 현재의 직장에서 병특을 마쳤으면 하는 바램이지만 그 친구는 이직할 마음이 강한 것 같다. 자신의 역량이 제대로 평가받고 있는지, 자신이 공정하게 대우받고 있는지 등에 대해 빠르게 계산해보고 그렇지 않다고 판단되면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젊은 세대에게 뉴-노멀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성 세대의 의견이 옳은지 젊은 세대의 의견이 옳은지가 문제가 아니라 젊은 세대의 의견이 그냥 현재의 상식일 것이라는 뜻이다. 현 젊은 세대의 선택 성향이 전반적으로 옳았음이 경험적으로 증명된다면 그 성향은 다음 세대에도 이어질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그 다음 세대의 선택 성향은 좀 더 보수적이 될 것이다. 그 친구의 여자 친구는 현재 고연봉의 전문직이다. 그런데도 투 잡을 하고 있고, 거기다 더해 CPA 공부를 준비하고 있다. 노후 준비까지 병행하는, 우리 늙은 세대의 사람들은 상상도 못할 완벽주의! - 나는 이런 완벽주의에 젊은 세대의 일부도 숨막혀 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      


젊은 세대의 이러한 경향성은 그러한 경향성을 산출하는 이러 저러한 조건으로 설명되어야 한다. (한국의 낮은 출산률은 이러한 조건들의 결과의 결과의 결과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물론 지금 이 자리에서 그러한 조건들에 대해 논할 수는 없다. 단, 두가지는 분명하다. 첫째, 이 조건들은 어설픈 세대론으로 설명될 수 없다는 것이다. 둘째, 이 조건들과 그 산출물들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즉 윤리적 평가의 대상이 아니다. 이러한 두 가지 자명한 점을 인정한다면 소모적인 논쟁은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소모적 논쟁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론은 별도로 하고 소모적 논쟁을 여전히 즐기게 될 것이기는 하다.


보고 느낀 것이 아직 많은데 여기서 대충 줄이도록 하자. 광화문, 창덕궁, 종로3가 갈매기살 집, 신당동 중앙 시장 등등 할 얘기가 너무 많다. 아마 몇 칠 뒤면 모두 잊어먹어 버릴 것일 테지만...


(추. 이제 슬슬 한국에 사는 것과 영국에 사는 것의 장단점에 대해 말할 때인가? 분명한 사실은 이제 영국 등의 이른바 선진국 국가에 이주해 산다는 것의 분명한 장점은 없다는 것이다. 한국이 이미 선진국이므로. 포르투갈로 이주한 어떤 영국 할머니는 이런 질문에 대해, 영국을 떠나 아쉬운 점은 런던에서 매일 열리는 콘서트들을 더 이상 즐길 수 없다는 것이고, 포르투갈로 이주하여 얻는 가장 큰 이득은 이방인으로서의 자유라고 했다. 예를 들면 포르투갈에 사는 영국인은 굳이 포루투갈의 정치 뉴스에, 그리고 영국의 지긋지긋한 정치 뉴스에 스트레스받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나도 이 할머니와 같은 의견이다. 나라마다 이러 저러한 장단점이 있지만 그것들은 상대적인 것이다. 그러나 다른 나라에 떨어져 살게 되면 거의 100% 확률로 그 사회의 이방인이 된다. 한국의 살인적인 경쟁에서 빠져나오고 싶은가? 그러나 빛의 속도로 제공되는 한국의 서비스들을 싫어할 사람이 누가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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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4-11-15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빛의 속도로 제공되는 한국의 서비스들을 싫어할 사람이 누가 있을 것인가?..격하게 동감하는 바입니다!!

그나저나 한국 다녀가셨군요! 위클리 님의 영국에서의 삶은 나름 괜찮으신가 봅니다.^^

weekly 2024-11-16 04:26   좋아요 0 | URL
저는 제 사는 곳에 만족하고 삽니다:)
 

(오늘 3주 일정으로 한국에 다녀온다.)


스피노자에 대한 나의 책이 완성을 볼 수 있다면, 그것은 올덴부르크의 첫 번째 편지 전문을 인용하는 것으로 시작할 것이다. 영국 왕립 협회의 서기 올덴부르크는 유럽 업무 여행 중 29살의, 아직 아무 것도 출간하지 않은 유태인 사상가에 대한 소문을 듣고 그의 집을 직접 방문한다. 그렇게 스피노자를 인터뷰하고 스피노자와 지속적인 연락 관계를 가져야 겠다고 결정한다. 이 결정의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스피노자의 인품.

둘째, 스피노자가 추구하는 방향에서의 지식. 즉, 제일원리에서 모든 것을 연역해내는 방법론. 다시 말하면 형이상학.


올덴부르크는 영국 과학계의 경험론적이고 실험적인 방법론에 대해 스피노자적인(혹은 데카르트적인) 방법이 어떤 시사를 줄 수 있을 것인지를 궁금해 했다. 그러나 후속하는 편지들에서 스피노자는 올덴부르크를 만족시키는데, 더 적절하게 말한다면, 이해시키는데 실패한다. --- 이는 당연하다. 올덴부르크는 스피노자의 방법론에 대해 알고 싶어했는데 스피노자는 방법론을 아직 완성시키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인즉 스피노자는 죽을 때까지 방법론을 완성하지 못한다. (스피노자가 방법론을 완성시키지 못한 것은 전혀 안타까운 일이 아니라, 스피노자의 철학에 다행스러운 일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스피노자의 철학이 열려져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과거의 철학자를 현대에 이야기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 철학자로 하여금 현대의 문제에 직접 개입하게, 현대의 문제에 대해 직접 말하게 하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나의 경우는 스피노자가 그의 형이상학을 가지고, 그의 방법론을 가지고 현대의 문제에 대해 직접 말하게 하고 싶다. 나는 스피노자의 정치학 등등보다는 형이상학을 가지고 현대에 개입시키고 싶다. 그것이 나의 기획의 핵심이다. 나의 야심을 달리 표현하자면 이렇다. 나는 스피노자에게 스피노자의 방법론을 완성시켜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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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1 18: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9-21 21:1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