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에게 윤석열이 계엄령을 발표했다는 전화를 받고 바로 유튭을 켰다. 나는 이런 경우라면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매체를 주로 이용한다. YTN 라이브 채널로 들어갔다.


경찰이 국회를 에워싸고 있었고 계엄군이 국회 내로 진입해 있었다. 국회 의장은 착석해 있었으나 아직 성원은 되지 않은 상태였다. 김광삼(나는 이 이름을 잊지 않으려 노력했다)이라는 변호사가 해설을 하고 있었다. 경찰이 국회를 봉쇄하고 있기 때문에 성원 인원수를 채우지 못할 것이다, 곧 계엄군이 회장에 들이닥쳐 의원들을 체포할 것이다, 각 방송사도 계엄군이 접수할 것이다... 등등. 


김광삼 변호사가 쿠데타와 계엄의 차이를 모를 리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윤석열이 발표한 계엄은 그 성립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이므로 불법적이고, 1호 포고문도 헌법을 정면으로 위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았다. 앵커들도, "계엄군이 국회에 들어와서 의원들을 체포하는 건 불법이 아닌가요?" 같은 질문을 결코 하지 않았다. 


성원이 된 후에도 안건 상정이 늦어지며 상당한 시간이 지체되었다. 김광삼은 계엄군이 곧 들이닥칠 것이라 했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리고 김광삼의 어? 하는 당황스러움의 표현과 그 뒤를 잇는 침묵을 무시하며 계엄 해제 안건은 통과되었다. --- 어제 뉴스보니 계엄군 일선 지휘관이 회장 진입을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하더라...


어젠가, 그젠가 계엄 관련 뉴스를 찾아보다 얼핏 김광삼이 윤석열은 내란죄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핏 하며 헛웃음이 나왔다. 권력과 언론에 관한 고전적인 일화의 실제 버전을 이처럼 적나라하게 목격하게 될 줄이야... 엘바섬을 탈출한 나폴레옹에 대해, 프랑스의 한 신문사가, "악마, 엘바섬을 탈출하다!"로 첫 기사를 내었다가, "황제 폐하, 마침내 파리 입성!"으로 마무리했다는 그 유명한 일화 말이다. 어쨌든 살 사람은 살아야 할 터이다.


이번 사태를 보며 새삼 나는 오바마의, 민주주의란 정말 어려운 것이라는 진단에 100% 동의하게 된다. 민주주의란 균형의 문제이며, 이를 위해 온갖 장치들이 그것 위로 주렁 주렁 달리게 된다. 문제는 그 장치들이 지극히 인위적인 것들이라는 것이다. 왜 저 악마같은 성범죄 현행범에게도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인정해야 하는 것이지? 왜 저 법망을 요리 조리 빠져나가는 부패 정치인들을 처단할 수 없는 거지? (윤석열의 경우라면) 저 반국가세력들을 현행법으로 처단할 수 없다는 것이 말이 되나? (국회 경비대장의 경우라면) 어째서 나의 첫 번째 의무가 직속 상관의 명령이나 대통령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저 추상적인 헌법 구문을 따르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지? 등등. 이런 수 많은 의문과 그에 따른 유혹을 추종하는 순간 균형은 깨어진다. 균형을 유지하기란 이토록 어려울 수 밖에 없다. 균형은 직접성에서 추상성으로 일보 나아가야, 즉 자신에 대해 거리를 둘 수 있어야 비로소 가능해진다. 그러므로 그것은 성향이지만 동시에 기술이기도 할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기술의 체득은 직접적인 경험에서 가장 잘 이루어지는 것 같다. 생활과 유리된 이념으로, 교과서로 배우는 것은 별 의미가 없을 수 있다. 이번 경우라면, 국회 경비대가 국회 의장의 명령에 반하여 대통령의 명령을 따르는 것은 (국회의 권능을 제한하게 하는 대통령의 명령은 어떠한 경우에도 불법이므로) 불법이 된다는 것을, 국회 경비대장 등이 중형에 처해지는 사례를 통해 국회 경비대에 체득될 것이다. --- 아마 이런 것이 민주주의란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의 깊은 의미일 것이다. 민주주의란 기술은 경험을 통해, 공포와 혼란을 계기 삼아, 그것을 교과서 삼아 체득된다... 


한국에서 친위 쿠데타가 일어났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번의 전개는 40, 50년 전과는 분명히 달랐다. 한국의 현실(분단 현실, 식민지와 오랜 군정을 겪은 현실 등등)과 문화(좀 더 직접적인 관계를 선호하는 성향 등등)는 유럽 국가들보다 한국에서 쿠데타나 독재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조건을 형성한다. 그러나 어쨌든 이번 쿠데타 사태가 민주주의 기술의 집단적 체득을 위한 강력한 계기를 형성할 것임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공짜 점심은 없다는 것, 그리고 역사에 점프는 없다는 것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나는 이번 쿠데타 사태가 나쁘기만 할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잘만 하면 최소 비용으로 막대한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탄핵 당시에도 친위 쿠데타가 기획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번 사태로 이런 잠복적이고 항존적인 위험은 이제 좀 더 덜 현실적인 것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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