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뉴스를 잘 안보기 때문에 얼마 전에야 조국이 신당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놀랐다. 조국이 재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고 조국의 신당이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윤석열 정권이 조국에게 한 일을 국가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한국이 젊은 인턴 의사들에게 하고 있는 것도 똑같이 국가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동시에 당시 한국의 언론들, 국민들이 조국 일가에 대해 벌인 행위, 즉 인격 살인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상황은 이해한다. 문제는 조국 등이 파렴치범인가 아닌가 하는 것이 아니라 검찰 개혁을 두고 온 나라가 두 편으로 쪼개져 대결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었으니까. 문재인 정권의 검찰 무력화를 막아야 한다는 테제는 조국이 파렴치범이어야 한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여야 했다. 잘 아는 것처럼 그 싸움에서 한국의 진보 세력은 패배했다. 


이미 이심에서 유죄를 받은 조국이 신당을 차리고 정치를 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 두 가지 원론적 관점이 있다. 첫째, 그것은 한 명의 시민으로서의 조국의 권리다. 누가 거기에 뭐라 할 수 있는가? 그러나 우리는 이런 원론적 관점에 입각해 있지는 않다. 두 번째, 그러나, 이심에서 유죄를 받은 사람이 창당 등을 통해 정치 활동을 하는 것은 정치를 퇴행으로 이끄는 것 아닌가? 왜 하필 정치인가? 정치를 일종의 방패로 삼는 것 아닌가? 앞으로 이런 일이 계속 일어난다면 정치가 얼마나 우스운 일이 되겠는가? 수많은 비판이 가능할 것이다. 조국의 선택은 분명 퇴행적이다. 그러나 그 퇴행적 선택에 대해 조국에게만 그 책임을 물어야 하는가? 나는 그 퇴행의 거의 대부분의 책임은 윤석열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조국은 단지 꿈틀거렸을 뿐이다. 


여론 조사 분석 기사 등을 보니 이번 총선도 민주당 계열의 승리로 끝날 것으로 예상들 한다. 지방이 소멸되고 있고, 인구가 몰려드는 수도권은 민주당의 텃밭이기 때문에 앞으로의 총선들에서도 이변이 없으면 민주당이 승리할 것으로 예측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동훈이 다음 대통령이 되어 검찰 정권을 연장하지 않는다면) 윤석열 정권은 한국 민주주의 퇴행의 마지막 커다란 에피소드로 기록될 것이라고 낙관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윤석열 정권은 한국의 민주 진보 세력에게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 패배의 댓가는 무엇인지를 뼈져리게 가르쳐 주었다고 본다.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가? 한 마디로 문재인처럼 나이브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검찰을 함부로 믿지 말고, 기재부를 함부로 믿지 말고, 감사원을 함부로 믿지 말고 등등... 


결론적으로 이번 총선을 한국 민주주의의 복원에의 여정의 시작점이라 한다면 조국 신당의 등장은 이미 그 퇴행을 넘어서는 충분한 의의를 갖고 있는 셈일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나는 조국 사태 이전의 조국을 싫어했다. 나이브하고 샌님같고 중2병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에 인터뷰 등등을 보건대 그는 벼려졌고 강건해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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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문제를 한국의 민주주의에 관한 문제로 바라본다. 아주 고전적인 예가 되겠다.


윤석열은 박근혜 탄핵 사태때 과잉 수사와 기소로 사람들을 때려잡았다. 그리고 똑같은 과잉 수사 방식으로 조국을 때려잡았고 이재명을 때려 잡았다. 그리고 지금 인턴 의사들을 때려 잡고 있다. 다 똑같은 방식이다. 


어디서 잘못된 것일까? 박근혜 사태때부터 잘못 되었다. 그러나 그때는 일종의 혁명기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었다고 하자. 그때는 조금만 문제가 있어 보이면 구속부터 시켜 놓고 보았다. 그러면 국민들은 박수를 보냈다. 한국에서 구속이란 죄를 지은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사법부 판결에 앞서 벌주는 것을 뜻한다. 좌와 우를 가리지 않고 국민들은 이러 저러한 사람을 구속 수사하라고 피켓팅을 한다. 윤석열은 전공의의 단체 행동을 주도하거나 사주한 사람을 구속 수사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는다. 이런 판국이다. 윤석열과 국민 사이의 간격은 그다지 크지 않다. 


그러면 탄핵 이후 들어선 문재인 정권은 무엇을 해야 했나? 탄핵 국면에서 헝클어진 법치 체계를 수리해야 했다. 그런데 실제로는 어떻게 했나? 합법적으로 집권했고 단임 정권에 불과한 박근혜 정권의 적폐를 수사한다며 윤석열은 자기 조직을 대폭 확대해 달라고 요청했고 문재인은 그에 아낌없이 도장을 찍어 주었다. 윤석열은 아낌없이 과잉 수사와 기소를 했고 문재인은 거기서 일말의 문제 의식도 느끼지 못했다. 민주주의 정부의 지도자로서 문재인은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백낙청 교수는 문재인은 정치 지도자가 되어서는 안될 사람이었다고 했는데, 나는 그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의 혼란스러운 사태들은 단지 그 결과들일 뿐이다. 어쨌든 역사는 소수의 의도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또 한번 결정적 순간이 올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단지 그것을 기다릴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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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아담슨의 철학사 시리즈(a history of philosophy without any gaps) 중 이슬람 철학사와 인도 철학사를 읽었다. 처음엔 이슬람 철학사만 읽으려 했는데 인도 철학사까지 읽게 되었고, 이제는 고전 그리스 철학부터 죽 읽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분량이 적지 않으므로 여기서 멈추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있다. (알라딘을 검색해 보니 철학사 첫 권이 분권으로 한국어 출간되어 있다. 그런데 품절이란다.)


저자는 아마도 중세 이전 서양 철학사와 이슬람 철학사가 전문 영역인 것 같다. 그렇다는 것은 서양 중세 철학도 그의 영역 안에 이미 들어와 있다는 뜻일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또 인도 철학까지 섭렵할 수 있었을까? 그의 철학사를 읽으면서 내내 경이감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면서 혹 중국 철학사까지 가능할까 하는 기대감도 가져보게 된다. 빈틈 없는 철학사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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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일요일 점심 때 동네 근처 오데온 극장에서 듄 파트 투를 봤다. 몇 년 전에 같은 곳에서 파트 원을 봤었다.


파트 투가 더 좋다는 사람이 많지만 나는 파트 원을 더 좋게 보는 소수파에 속하는 것 같다. 나는 캐릭터에 대한 탐구를 더 좋아한다. 그래서 빌드업에 아낌없이 시간을 투자하는 작품들을 좋아한다. 듄 파트 원이 그런 영화였고, 드라마 시리즈로 보자면 와이어, 마인드헌터, 베터 콜 사울 등이 그런 작품이었던 것 같다.


소설을 아직 읽지 않았지만 여기 저기 귀동냥으로 대충 내용은 알고 있다. 내 생각에 지금은 21세기이기 때문에 원작을 준용하는 방식으로 3부가 마무리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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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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