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 개정판 미쓰다 신조의 집 2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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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도서는 예스24 리뷰어클럽에 선정되어 북로드에서 제공받았습니다.>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은 ‘코타로‘는 할머니와 단둘이 낯선 마을로 이사를 오게 되고 생전 처음 와 본 마을에서 묘한 기시감을 느끼게 된다.
더군다나 이삿짐을 푸는 동안 마을을 둘러보는 사이 마주친 노인에게 의미를 알 수 없는 의문의 말을 듣게 된다.

“꼬마야, 다녀왔니……?” (p17)

이층 집에 들어선 순간 코타로는 예전부터 반복되던 악몽에 시달리게 되고 마을의 신령을 모시는 숲에 들어갔다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에 쫓기게 된다.
그리고 할머니가 일을 나간 동안 집에 혼자 남은 코타로에게 어둠과 함께 무서운 존재들이 찾아오기 시작한다.

코타로는 할머니 형편상 다소 무리일 것 같은 집을 얻었다는 것과 자신 앞에 나타나는 존재들이 할머니에게는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의문을 품고 새로 사귄 레나와 함께 집에 얽힌 비밀을 찾기 위해 조사에 나선다.
그리고 자신이 사는 집에서 10년 전 일어난 끔찍한 살인 사건에 대해 알게 되고 그 숨겨진 비밀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가장 안전하고 편안해야 할 공간인 집이 주무대인 ‘미쓰다 신조’의 집 시리즈 중 두 번째로 <화가>가 개정판으로 출간됐다.
뱀신과 빙의가 주 소재였던 <#흉가>를 재미있게 읽었던 지라 기대하며 책장을 넘기게 된다.

작가가 많이 쓰는 의성어가 주는 공포를 시작으로 주인공의 눈에만 보이는 존재들의 참혹한 모습은 코타로가 성인이 아니라 자신을 제대로 방어할 수 없는 어린 소년이라는 점에서 더 큰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
거기다 할머니를 걱정해 자신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쉽게 말하지 못하는 모습은 짠한 마음이 든다.

집에 얽힌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 느껴지는 악의와 사건이 해결되고도 새롭게 이어지는 공포는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음을 암시한다.
단순히 무섭게만 보이던 표지 그림 속 얼굴이 보이지 않는 일가족의 모습은 모든 수수께끼가 풀리고 난 뒤 다시 보면 공포보다는 애틋함이 느껴진다.

시리즈 마지막인 <#마가> 역시 “ ‘어린 주인공‘, ’이사’, ‘기괴한 체험’이라는 기존 콘셉트를 유지하면서도 앞서 나온 두 권과는 다른 파격적인 설정’(p335)이라니 기대가 크다.
개인적으로 ’흉가‘보다는 ‘화가’가 더 슬프고 공포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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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레이놀즈 시리즈 3
피터 레이놀즈 지음, 김지효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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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시간이 끝났지만, 하얀 도화지를 앞에 둔 체 꼼짝도 하지 않고 의자에 앉아 있는 아이를 본다면 선생님은 어떤 말을 가장 먼저 할까요?
베티의 선생님은 빙그레 웃으며 “어떤 것이라도 좋으니 한번 시작해 보렴. 그냥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봐.”라고 말합니다.

미술 시간에 아무것도 그리지 못한 베티를 나무라거나 윽박지르지 않고 스스로 생각을 확장해 갈 수 있도록 기다려줍니다.
교육이란 단순히 지식을 주입하는 게 아닌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고 묵묵히 기다려주며 아이 스스로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아이는 물론 부모와 선생님이 함께 읽었으면 하는 그림책입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너무나 획일적으로 무언가를 가르치려고만 하는 게 아닌지 반성해 보게 됩니다.
세상의 모든 아이는 미래 예술가의 자질을 타고났는데 그 자질을 어른의 잣대로 재단하여 그 싹을 자르지 않았나 반성하게 하는 그림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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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속의 검은 잎 문학과지성 시인선 80
기형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8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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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시인의 시를 읽는다.
어떤 시는 나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감정을 이야기하고 있어
이해하기 어렵기도 하고
또 다른 시는 어린 시절 어느 날이 떠오르게 한다.

시인의 이름만큼이나 유명한 시를 찾아있고
여러 날에 걸쳐 두서없이 아무 페이지나 펼쳐 읽었다.
영화의 제목과 같은 시를 읽어본다.

<질투는 나는 힘>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빈집>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젊은 시인이 사랑을 잃고 쓴 시를 여러 번 읽으며
시인이 느꼈을 절망에 다가가려 힘쓰다
어느 순간 시인은 자신의 마지막을 알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어지기도 한다.
시인의 시집을 오랫동안 곁에 두고 읽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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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 하다 앤솔러지 1
김유담 외 지음 / 열린책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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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도서는 열린책들에서 보내주셨습니다.>

이번에 열린책들에서 동사 <하다>를 주제로 우리가 하는 다섯 가지 행동 ’걷다, 묻다, 보다, 듣다, 안다‘에 관해 25명의 작가가 참여해 <하다 시리즈>를 선보인다.
그중 걷기에 좋은 계절인 가을에 맞춘 듯 다섯 명의 소설가의 걷기를 주제로 함께한 <걷다>가 시리즈의 첫 번째 책으로 출간되었다.

김유담 작가의 <없는 셈 치고> 속 ’나’는 부모 이혼 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고아나 마찬가지인 처지가 되자 고모 집에서 친딸인 민아와 차별 없이 자란다.
하지만 민아는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아버지 때문에 가족과 연을 끊고 고모부마저 돌아가시자 암에 걸린 고모는 많은 것을 나에게 의지한다.

성해나 작가의 <후보後步> 는 오랜 세월 철물점을 운영하고 있는 안드레아의 이야기로 의사는 퇴행성 관절염이 있는 그에게 관절에 무리가 덜 가는 뒤로 걷기를 권한다.
퇴근 후 익숙한 거리를 뒤로 걸으며 젊은 시절부터 드나들던 재즈 클럽 상수시와 그곳에서 함께 하던 이들과의 추억을 되새긴다.

이주혜 작가의 <유월이니까>는 함께 살던 이와 헤어져 직장을 옮긴 주인공이 동네 공원의 운동장 트랙을 돌며 만나는 사람들과의 이야기다.
트랙을 걷는 주인공과 다른 트랙에서 일정한 속도로 혼자 달리는 여자와 화장실이 급하다며 자기 아내를 부탁하는 남자는 그의 걷는 일상에 어떤 변화를 줄지 궁금해하며 읽게 된다.

가장 말랑한 이야기인 임선우 작가의 <유령 개 산책하기>는 늘 무슨 일인가를 벌이는 언니가 키우던 개 ’하지‘가 언니가 벌인 일을 해결하는 ’나‘ 앞에 유령 개가 되어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키운 지 3개월 만에 노견 하지가 갑자기 죽은 후 무료한 나날을 보내던 나에게 하지가 유령이 돼 나타나면서 나는 유령 개 산책을 시키게 되고 주위 사람들과 가까워지게 된다.

임현 작가의 <느리게 흩어지기> 속 명길은 남편도 자식도 없이 혼자 사는 여자로 도통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한다.
새로 등록한 글쓰기 강좌에서 친근하게 다가오는 성희와도 일정한 거리를 둔 명길은 글감을 찾기 위해 산책을 시작한다.

달리는 것보다 느린 ‘걷다’라는 동사에서는 서두르지 않는 느긋함과 평화로움이 느껴진다.
소설 속 인물들은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 걷고 무작정 걷고 누군가를 따라 걷기도 하지만 그들 모두 평화롭거나 느긋하지만은 않다.
어떤 이는 어릴 적 자신의 보호자였던 이에 대한 의무로 함께 걷고 또 어떤 이는 걷기를 통해 옛 시절을 회상하기도 한다.

‘다. 살려고. 기를 쓰고. 걷고. 뛰는 거예요. 죽으려고. 아니고. 살려고. 죽겠으니까. 살려고.“(p111이주혜, 「유월이니까」)
모두 다른 목적으로 걷는 주인공들은 살기 위해서 걷고, 걷다 보니 살아지기도 하는 이들이다.
유령이 돼 나타난 개와의 산책을 통해 다른 이들을 만나고 죽은 이의 무덤을 찍어 보내던 여자는 2년 만에 핀 치자꽃을 찍어 보내기도 한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고개를 들고 느긋한 걸음으로 걷다 보면 세상이 보이고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걷기는 시간의 여유보다 마음에 여유가 있을 때만 가능한 행동이다.
라인업만으로 설레는 시리즈의 다음 행동의 이야기를 기다리며 매일 마주한 시끄러운 세상에서 그래도 걷다 보면 살아질 것이라는 주인공들을 보며 가을 산책을 재촉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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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복희씨
박완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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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면지에 2007년 11월에 구입했다는 메모가 있다.
읽기도 그즈음에 읽었을 것인데 18년 만에 재독한 소설은 내용이 전혀 생각나지 않아 새로 읽은 소설이나 매한가지다.

칠십대의 노작가가 2001년부터 2006년까지 여러 지면에 발표한 소설을 한데 묶은 소설집은 9편의 소설이 실려있다.
소설집 속 인물들은 ‘촛불 밝힌 식탁’을 제외하고 모두 중년과 노년의 여성들이 소설의 중심이 돼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나는 작가가 살았던 시절을 살지도 않았고 소설 속 인물들과 동년배가 아닌데도 그 시절의 정서를 고스란히 느끼며 읽었다.
특히나 ’후남아, 밥 먹어라’를 읽으며 주인공의 엄마와 같은 처지에 있는 엄마 생각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촛불 밝힌 식탁’은 젊었을 때의 나라면 아마도 숨소리도 내지않는 며느리에 공감하며 읽었을 것이다.
지금은 자식을 ’불빛을 확인할 수 있는 거리‘쯤에 두고 싶은 노부부의 마음을 이해하는 나이가 돼 버렸다.
작가의 눅진하고 연륜이 느껴지는 글을 읽으며 아무리 좋은 글 솜씨를 가졌더라도 어떤 이야기는 그 나이가 돼야 쓸 수 있고 독자 역시 어떤 나이가 돼야 작가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오래된 책 냄새와 누렇게 변한 책장을 넘기다보면 소설 속 노년의 풍족함이 현재의 노인 빈곤과 겹쳐 다소 이질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작가의 글을 읽다보면 우리 부모의 이야기고 머지않은 내 이야기일 것 같아 재미를 넘어 공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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