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창기의 중역본 

(구역, 옛번역) 성경전서 (대한성서공회, 1911) - E. Palmer의 Novum Testamentum Graece (1881)과 Eberhard Nestle의 Novum Testamentum Graece (1923, 14th Ed.)과 Ginsburg의 Torah, Nevi'im, Ketuvim (1908~1926), English Revised Version (1881~1885), American Standard Version (1901) 등을 바탕으로 하고, 한문(文理譯)이나 일본어본을 참조해가며 번역하였으니 이중 삼중의 번역본이라 할 수 있겠지만, 한편으로 근대 한국어의 성립에 큰 역할을 한 책.    

(개역) 성경전서 (대한성서공회, 1938) - 역사적 철자법

(개역한글판) 성경전서 (대한성서공회, 1961) - 한글맞춤법통일안

(개역개정판) 성경전서 (대한성서공회, 1998)  

 

 

 

 

 

 

 

 

개역판, 개역한글판 등 몇 차례 당대의 맞춤법 표기를 반영한 판본들이 있었고, 표준새번역의 등장과 함께 역사의 한 페이지로 사라졌어야 했으나 표준새번역이 널리 보급되지 못하면서 임시통변으로 등장한 것이 개역개정판.  

이런저런 사정과 논란은 각설하고, 개역판 계통은 구한말의 열악한 사정 속에서 번역된 고색창연한 판본임에도 불구하고, 소위 무오류설이니... 글이 어려우면 공부하면 되니...  하는 등의 얼척없는 구실까지 붙어가며 아직까지 개신교계에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고귀한" 라틴어 성경만 꼭꼭 움켜쥐고서 "속되고 천박한" 독일어, 영어 등으로 번역하지 못하게 막던 중세 시대와 별로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2. 원전번역, 개신교 

(새번역) 신약전서 (대한성서공회, 1967) - "우리말을 모국어로 하는 우리 학자들이 번역"

(표준새번역) 성경전서 (대한성서공회, 1993) 

Biblia Hebraica Stuttgartensia (1967/77) 

Biblia Graecea Sthephanus (1983)

히브리어 구약 마소라 텍스트, 헬라스어 신약을 저본으로 함. 

 

 (표준새번역 개정판, 새번역) 성경전서 (대한성서공회, 2001) 
 

 

 

 

 

지금쯤에는 이 책이 널리 읽혀져야 하는 것이 맞겠으나, 보수 교단의 반발과 심지어는 일부 교단의 독립적인 번역 움직임까지 불러일으킨 책. 

 

3. 원전번역, 공동번역본 

(공동번역) 성서 (대한성서공회, 1977) 

(공동번역) 성서 (조선기독교도연맹, 1984) - "평양 교정본"

(공동번역 개정판) 성서 (대한성서공회, 1999)   

 

 

 

 

Rudolph Kittel의 Biblia Hebraica (1937, 3rd Ed.) 와 The Greek New Testament (1966, 1st Ed) 등을 저본으로 했다.

당시의 교회일치운동(oecumenicalism)의 일환으로, 천주교와 개신교의 성서학자들이 모여 함께 번역한 성서. 세계 성서 번역사에 길이 남을 좋은 선례로 남았다. 선종완 신부, 문익환 목사, 이현주 목사 등이 참여. 하지만 일부 개신교계의 반발로, 천주교, 정교회 및 대한성공회 등의 일부 개신교 종단만 쓰게 되었고, 현재는 천주교에서도 자신들의 독자적인 번역본을 쓰고 있다.

 

4. 원전번역, 천주교 

200주년 신약성서 (번역위원회, 1991)

성경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5)  

 

 

 

 

주석성경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10) - La Traduction Oecuménique de la Bible = TOB

 

 

 

 

 

 

5. 쉬운 말로 풀어 쓴, 참고할 만한 책들  

현대인의 성경 (생명의말씀사, 1985) - Living Bible 번역.

 

 

 

 

 
현대역 성경 

 

우리말 성경 (두란노서원, 2004)

 

 

 

 

쉬운 성경 (쉬운성경편찬위원회)   

 

 

 

 

메시지 (유진 피터슨)

  

 

 

 

 

6. 소수 의견 

바른성경 (한국성경공회, 2008) - 대한성서공회의 표준새번역에 대한 일부 보수 개신교단의 반발로 만들어짐.  

KJV만이 완벽하고 오류 없는 번역이고, 나머지 번역본은 말씀을 왜곡하였고... 심지어는 사탄의 말이니 뭐니 하는 소리까지 해가면서 KJV를 조잡하게 번역한 일부 책들이 있나 보다. 헌데 자기들끼리 또 막 싸우고 그러면서 자그만치 4가지 번역본이 쏟아져 나왔다. 서로 자기들 책이 진짜고, 다른 책은 또 사탄의 말이라고 하고... 진짜 가관이다! KJV에 대한 중학생 수준의 직독직해를 원하는 독자를 제외하고는 그다지 보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라 사료되기에, 기록만 해놓는다.

KJV 완역한글판 (서달석, 한국킹제임스성서협회)   

킹제임스권위역 (박만수, 안티오크) 

한글킹제임스성경 (이송오, 말씀보존학회)  

킹제임스흠정역 (정동수, 그리스도예수안에)

 

 

 

 

 

7. 원전번역

히브리어-한글대조 구약성경 (허성갑, 2009)  

신약분해 대조성경 (김기수, 200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나스타시아, 요즘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기존에 나왔던 고대의 지혜를 간직한 이들의 관점에서 현대 과학문명을 비판하는 류의 주제와 연장선상에 있으면서... 뭐랄까 조금 독특한 면이 있습니다. 좋았던 과거에 대한 아련한 향수, 막연한 이상을 제시할 뿐, 현실의 변화라는 측면에서는 무기력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일정한 대안과 계획을 제시한다고 할까요? 

 

 

 

 

 

 

 



그래서 그런지, 러시아에서는 이 책을 읽고 수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고, 삶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읽어보니, 그럴만 하구나 싶네요. 에너지가 가득한 여인 아나스타시아에게 전염되는 기분도 들고, 소위 말하는 '내 인생의 책' 뭐 이런 느낌? 

지은이 블라지미르 메그레 라는 인물은 시베리아 깊숙이 유람선을 운행하던 중 우연히(물론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었음이 점점 드러나지만) 아나스타시아라는 신비한 여인을 만나서 감화를 받고, 생전 안해본 책쓰기라는 것을 하게 되는데... 주위의 도움으로 겨우 펴낸 그 책이 입소문을 타고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게 됩니다.  

아나스타시아의 깊은 통찰과 지혜가 담긴 내용들을 읽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네요. 여기서 구구절절 내용 요약을 해봐야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될 것이고, 한 번 사서 보세요!

러시아에서는 책을 읽고난 독자들이 영감에서 우러나온 시며 수필들을 보내와서 그것만으로 책 한 권은 거뜬히 만들었다고 합니다. 아나스타시아는 책의 글자 조합 속에 고대의 지혜랄까 힘이랄까 뭐 그런 것들을 숨겨두었다고 하니... 러시아어로 한 번 읽어보고 싶네요(물론 불가능하지만).   

 

 

 

 

 

 

 

 

 

 

 

 

 

 

 

 

 

그런데... 한국어판의 경우에 책의 만듦새나 편집의 수준이 약간 조악한 편입니다. 노문판도 저자가 책을 처음 만들게 된 과정을 서술한 내용을 보면 비슷한 상황이었겠지만, 굳이 한국어판도 아마츄어 번역가가 일인 출판(아마 그럴 것으로 추측됩니다)까지 해가며 힘겹게 펴내는 과정을 밟아야 하나 싶네요. 한국 출판계에는 탄탄한 규모의 러시아 문학 전문 출판사도 있고, 명상서적 전문 출판사를 표방하는 곳들도 수두룩한데...  

물론 번역자분께서도 책을 읽고 상당한 감화를 받으셔서 아나스타시아가 제시하는 삶의 방식을 따르려고 노력하시는 것으로 보이고, 한국의 독자들에게 어서 이 좋은 책을 소개하시고픈 충정에 번역 출판까지 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대단한 용기와 열정이 아니면 힘든 일이지요. 참 좋으신 분 같습니다. 하지만...  

할 말은 많지만 다 생략하고, 그냥... 시리즈들이 자주 품절 상태가 되던데 유통 배급에도 신경을 써 주시고, 후속편도 어서 나왔으면 합니다. ^^  

 

 

영문판 (개정판) : 너무 이쁜, 강렬한 인상을 주는 표지. 9권까지 나온 상태.  

더군다나, 한국어판과는 다르게 본문 중에 무슨 칼라 사진들도 막 있고 그렇네요.  

 

(영문판 누리집은 여기

  

 

 

 

 

 

 

  

 

 

 

 

 

 

 

 

 

 

 

 

 

 

 

 

 여기서부터는 아직 국내 소개 안 된 부분들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요즘 나온 10권이라고 합니다. 노문판 표지는 더 이상 소개하지 않겠습니다.   

(표지를 클릭하시면 저자의 공식 누리집으로 갑니다.)
 

 

 

 

영문판 초판  표지는 조금 난해하다고 할까... 이런 시절도 있었군요. 개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박영미 2021-04-14 07: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인출판이긴 하나 옮기는 언어가 중요한 만큼 실제로 가원을 꾸려 생활하고 있는 분이 번역하여 전 더 신뢰가 가더라고요. 영문판 1권도 읽어봤지만 한글판은 아나스타시아의 메시지를 접하는데 전혀 손색이 없다고 생각해요. 간혹 오탈자가 있긴 하나, 무시할만한 수준입니다. 10년이 흘러 10권도 현재 나온 상태입니다^^

비로자나 2021-04-17 09:06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10권까지 읽어보고 싶네요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법정스님이 번역한 불경

법정스님의 ‘마지막 소유’를 만나다

서울신문 | 입력 2010.03.13 04:06  

 

[서울신문]11일 세상과 인연을 다하고 열반에 든 법정 스님은 수필집 '무소유'에 수록돼 있는 '미리 쓰는 유서'라는 글에서 이런 유언을 남긴 적이 있다. "내 머리맡에 놓여 있는 책들을 매일 아침 신문을 배달하러 오는 사람에게 주어라."라고. 그말은 달리 생각해보면 "내가 죽는 순간까지 이 책들만은 내 머리맡에 두어라."는 의미와 같다.





 

불교계 최고의 문필가이자 '무소유'의 가르침을 설파한 시대의 스승 법정 스님도 마지막 순간까지 소유하고 있던 것이 있었으니, 바로 책이었다. 법회에서 빠지지 않은 주제 중 하나가 책이었고, '맑고 향기롭게' 회보를 통해서 매달 읽을 책을 선정해 주기도 했다. 스님은 깊은 사유를 가진 문필가이자 폭넓은 독서가였고, 무엇보다 지독한 애서가였다.  



 

 

 

 

●현대문명 사고방식 비판 책 많아

그런 그가 강원도 오두막에서 밤을 새우며 읽었던 책들은 무엇이고,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었던 책은 어떤 것일까. 또 그토록 맑고 향기로웠던 스님의 사유를 키워낸 책들은 뭘까.

스님의 입적 직전에 나온 책 '법정 스님의 내가 사랑한 책들'(문학의숲 펴냄)은 그런 의문에서 출발한 책이다. 스님이 평소 법문이나 수필집을 통해서 언급했던 책 중 50권을 가려 뽑아 책의 주요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여기다 스님이 언급 또는 인용한 대목들도 자세하게 전하며, 이를 통해 법정 스님의 독서편력를 전하고, 그것이 그의 지성과 가치관을 어떻게 구성해 놓았는가에 대한 지도를 그려준다.

'무소유'를 통해 물질문명에 치우친 사람들의 가슴에 큰 파문을 일으켰던 스님은 배타적·공격적이며 경쟁적인 현대 문명의 사고방식을 비판하는 책을 많이 읽어왔다. 특히 격월간지인 '녹색평론'은 스님이 창간호부터 빠짐 없이 읽은 책이라고 한다. 소비적인 현대 사회를 비판적 시각으로 보고 사람과 자연의 공생적 문화 재건을 목표로 간행되는 이 책을 두고 스님은 "이런 잡지가 널리 읽힌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지금보다 훨씬 좋아질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이외에도 스님은 '성장을 멈춰라', '슬로 라이프', '농부 철학자 피에르 라비', '나무를 심은 사람', '육식의 종말' 등 문명 비판적인 책을 자주 언급했다. 
 


 

 

 

이런 비판 정신은 자연스럽게 아름다운 세상, 새로운 삶의 방식을 다룬 책들로 스님의 손이 가게 했다. 대표적으로 자연주의 운동가 스콧 니어링 부부의 이야기를 다룬 헬렌 니어링의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가 그렇고, '아름다운 지구인 플래닛 위기' '나무를 안아 보았나요' '펀드혼 농장 이야기'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등도 모두 새로운 삶과 공동체의 가능성에 대해 다룬 것이다.  



 

 

 

●병마와 싸우면서도 꼼꼼히 문장 수정

스님은 또 '월든' '여기에 사는 즐거움' '걷기 예찬' '그리스인 조르바' '죽음의 수용소에서' 등을 읽으며 본질적인 삶에 대해 고민했고, '꾸뻬 씨의 행복 여행' '행복의 정복' '풍요로운 가난' 등에서는 진정한 행복에 이르는 길이 무엇인가를 타진했다. 소유에 대한 개념은 '톨스토이 민화집'에서 배우고 정약용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읽고는 직접 현장까지 찾기도 했다고 한다.  



 

 

 

 

 

 

 

책은 부록으로 스님이 언급한 책 300여권을 가나다 순으로 정리했다. 여기에는 스님이 한 법문에서 "늘 곁에 두고 읽으며 의지하는 스승"이라고 한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도 눈에 띄고, 스님이 직접 번역까지 했던 서산대사의 '선가귀감(禪家鑑)'이나 초기불교의 경전인 '숫타니파타', 수행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장로게' '정법안장' 등도 자리하고 있다.  



 

 

 

이들 경전 외에도 '어린 왕자' '꽃씨와 태양' '구멍가겟집 세 남매' 같은 동화들도 목록에 포함돼 있다. 스님은 '나의 과외 독서'라는 글에서 '어린 왕자'를 두고 "누워서 부담 없이 읽히는 동화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앞뒤가 툭 트이는 그런 책"이라면서 "내 나날의 생활에서 시들지 않은 싱싱한 초원"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책은 문장가로서의 스님의 손길이 묻어 있는 마지막 책이기도 하다. 출판사 측은 처음에 스님이 언급한 책 300권 목록을 뽑았고, 이를 다시 2년여에 걸친 스님과의 대화를 통해 50권으로 추렸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법정 스님은 병마와 싸우면서도 원고를 꼼꼼히 읽고 문장을 바로 잡아 주었다고 한다. 1만 8500원.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법정 스님의 입적 소식에, 스님의 행적과 말씀들이 다시금 회자되면서 가슴을 여미게 합니다. 한편으로는 평소 스님께서 유언 삼아 남기신 말씀들 몇 가지가 화제가 되었는데... 저 역시 서울신문 강 기자님처럼 머리맡에 남은 책을 신문 배달하시는 분께 드리라는 유언이 기억에 남더군요.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두고두고 보신 책들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하는 호사가로서의 생각도 들고...  

나도 언젠가는 애지중지 모아놓았던 수많은 책들을 '버리고 떠나기' 해야 할텐데, 이것들을 과연 어떻게 잘 나눠주고 가야 할까 싶기도 하고요. (감히 법정 스님처럼 끊임없이 버리고 버리고 하는 무애행은 속세에 얽혀 사는 범부로서는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지요. 한때나마 법정 스님의 글들을 읽으며 그분같은 삶을 꿈꾸던 어린 소년은 대체 어디로 갔을까요?)

깜빡깜빡 하곤 합니다. 서고에 재어 놓은 저 책들의 물성이 결국 내 것은 아님을, 책을 다 읽어서 그 속의 사유를 내 것으로 만들었다 한들 그 사유조차 내 것이라 말할 수는 없음을, 내 것... 나...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어디에도 없음을. 어서 훌훌 다 버리고 떠나기 해야 할텐데... 
 

   

그리고 또 한 가지, 그동안 펴내었던 책들은 다 절판시켜 버리라고도 하셨는데... 정말로 그리 될까요? 

설마 그걸 실행에 옮길 출판사들이 아니지만... 행여나 만약에 하나(!) 예컨대 "법정대종사저작권관리위원회" 같은 곳이 꾸려져서 스님의 유지를 받들겠노라고 한다면?  

진정 이런 사태가 벌어진다면 일단은 법정 스님의 맑고 향기로운 글들을 못 보게 된다는 점에서 한국 문화계의 큰 손실이 되겠지만, 한편으론 우리 문화계에 자그마한 파장을 불러일으킬 듯 합니다. 문자문명, 언어라는 현상에 던지는 또 하나의 화두가 되겠지요. '不立文字'를 외쳐온 선불교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이런 일은 종종 있어 왔습니다. [벽암록] 같은 화두집은 수행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물론 절에서!) 불태워지기도 했습니다.  

왠 선불교? 왠 불립문자? 잊으면 안 될 것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종단이자 법정 스님이 속해 있던 조계종이 불교 중에서도 선불교, 혹은 선종의 한 종파였다, 아니 현재형으로 "라는" 사실입니다. 맨날 지들끼리 치고받고 싸워대고, 대웅전에 불상 모셔놓고 복전이나 받아먹는 퇴영된 기복신앙으로서의 모습과 얼른 들어맞지는 않습니다만, 일단 그 연원에 있어서는 "살불살조(殺佛殺祖-부처를 죽이고 할애비를 죽여라!)"를 외치고... 스승에게 호기롭게 팔뚝 하나쯤은 뚝 잘라 내던졌던 맹렬 수행자들의 혁명적 집단, 선종 말입니다. 그냥 그렇다고요...  

선불교 종단 조계종에서는 과연, 불교를 가장 대중들에게 널리 알렸던 불세출의 베스트셀러 작가의 작품들의 운명을 어떻게 결정할까요.  

 

(일단 당장은 현재 나와 있는 책들에 대한 사재기 열풍이 잠깐 불 수도 있을 것이고, 사재기를 통해 재고가 다 소진된 시점부터 사후 저작권이 종료되는 향후 오십 년 뒤까지 법정 스님 책은 헌책방 내지 인터넷 경매 사이트에서 높은 가격에 겨우겨우 구매해야 하는 사태가 올 수도 있겠군요. 물론 이런 정도는 '자그마한 파장' 축에도 못 끼는 소소한 에피소드이지요. ^^) 

(벌써 법정 스님의 일부 도서들은 품절 상태로군요. 생각보다 아주 빠르네요. 위에 있는 책들 중에서 법정 스님이 직접 번역하신 [깨달음의 거울(선가귀감)], [숫타니파타] 등은 현재 구매가 불가능하고, 샘터에서 나온 [법정 스님 전집]의 모든 책들은 '판매 중단'이라는 듣도보도 못한 안내문구가 붙어 있습니다. 할!) 

  

 

 

아래는 이번 책에 언급된 책들입니다. 저랑은 취향이 거진 겹치는군요. ^^ 

새로운 형식의 삶에 대한 실험 _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월든>
인간과 땅의 아름다움에 바침 _ 장 피에르와 라셀 카르티에 <농부 철학자 피에르 라비>
모든 사람이 우리처럼 행복하지 않다는 건가요 _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오래된 미래>
그곳에선 나 혼자만 이상한 사람이었다 _ 말로 모건 <무탄트 메시지>
포기하는 즐거움을 누리라 _ 이반 일리히 <성장을 멈춰라>
모든 여행의 궁극적인 목적지는 행복 _ 프랑수아 를로르 <꾸뻬 씨의 행복 여행>
자신과 나무와 신을 만나게 해 준 고독 _ 장 지오노 <나무를 심은 사람>
한 걸음씩 천천히 소박하게 꿀을 모으듯 _ 사티쉬 쿠마르 <끝없는 여정>
행복이 당신 곁을 떠난 이유 _ 버트런드 러셀 <행복의 정복>
나무늘보에게서 배워야 할 몇 가지 것들 _ 쓰지 신이치 <슬로 라이프>
기억하라, 이 세상에 있는 신성한 것들을 _ 류시화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신은 인간을 가꾸고, 인간은 농장을 가꾼다 _ 핀드혼 공동체 <핀드혼 농장 이야기>
모든 사람은 베풀 것을 가지고 있다 _ 칼린디 <비노바 바베>
이대로 더 바랄 것이 없는 삶 _ 야마오 산세이 <여기에 사는 즐거움>
나는 걷고 싶다 _ 다비드 르 브르통 <걷기 예찬>
아프더라도 한데 어울려서 _ 윤구병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신에게로 가는 길 춤추며 가라 _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한쪽의 여유는 다른 한쪽의 궁핍을 채울 수 없는가 _ 장 지글러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마른 강에 그물을 던지지 마라 _ 장 프랑수아 르벨·마티유 리카르 <승려와 철학자>
당신은 내일로부터 몇 킬로미터인가? _ 이레이그루크 <내일로부터 80킬로미터>
가장 자연스러운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_ 후쿠오카 마사노부 <짚 한 오라기의 혁명>
큰의사 노먼 베쑨 _ 테드 알렌·시드니 고든 <닥터 노먼 베쑨>
풀 한 포기, 나락 한 알, 돌멩이 한 개의 우주 _ 장일순 <나락 한 알 속의 우주>
삶은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 _ 아베 피에르 <단순한 기쁨>
두 발에 자연을 담아, 침묵 속에 인간을 담아 _ 존 프란시스 <아름다운 지구인 플래닛 워커>
가을매의 눈으로 살아가라 _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생명의 문을 여는 열쇠, 식물의 비밀 _ 피터 톰킨스·크리스토퍼 버드 <식물의 정신세계>
우리 두 사람이 함께 _ 헬렌 니어링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축복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_ 레이첼 나오미 레멘 <할아버지의 기도>
인간의 얼굴을 가진 경제 _ E.F. 슈마허 <작은 것이 아름답다>
바람과 모래와 별 그리고 인간 _ 생텍쥐페리 <인간의 대지>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_ 레이첼 카슨 <침묵의 봄>
빼앗기지 않는 영혼의 자유 _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나무는 자연이 쓰는 시 _ 조안 말루프 <나무를 안아 보았나요>
용서는 가장 큰 수행 _ 달라이 라마·빅터 챈 <용서>
테제베와 단봉낙타 _ 무사 앗사리드 <사막별 여행자>
꽃에게서 들으라 _ 김태정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꽃 백 가지>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_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우리에게 주어진 이 행성은 유한하다 _ 개릿 하딘 <공유지의 비극>
세상을 등져 세상을 사랑하다 _ 허균 <숨어 사는 즐거움>
지구에서 가장 뜨거운 심장 _ 디완 챤드 아히르 <암베드카르>
바깥의 가난보다 안의 빈곤을 경계하라 _ 엠마뉘엘 수녀 <풍요로운 가난>
내 안에 잠든 부처를 깨우라 _ 와타나베 쇼코 <불타 석가모니>
자연으로 일구어 낸 상상력의 토피아 _ 앨런 와이즈먼 <가비오따쓰>
작은 행성을 위한 식사법 _ 제레미 리프킨 <육식의 종말>
결론을 내렸다, 나를 지배하는 열정에 따라 살기로 _ 빈센트 반 고흐 <반 고흐, 영혼의 편지>
성장이 멈췄다, 우리 모두 춤을 추자 _ 격월간지 <녹색평론>
내일의 세계를 구하는 것은 바로 당신과 나 _ 제인 구달 <희망의 이유>
내 안의 ‘인류’로부터의 자유 _ 에크하르트 톨레
어디를 펼쳐도 열정이 넘치는 책 _ 다치바나 다카시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4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종이달 2021-10-13 12: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연합] 국내 最古 한글성서본 발견

"성서 최초 작성시기는 B.C 10세기?"


연합뉴스 | 입력 2010.01.16 09:37 | 수정 2010.01.16 13:54



(서울=연합뉴스) 신삼호기자 = 학자들이 이스라엘 다윗왕 시절인 기원전(B.C) 10세기까지로 거슬러 올라가는, 지금까지 알려진 것으로는 가장 오래된 히브리어 문서를 발견했다.

최초의 구약성서는 고대 히브리어로 쓰여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발견은 성경의 일부가 과거에 추정됐던 것보다 몇 세기 이전에 작성됐을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고 msbc가 인터넷 판이 15일 보도했다.

학자들은 지금까지 히브리어 문자가 B.C 6세기 이전에는 없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성경도 B.C 6세기에 처음 작성된 것으로 간주해왔다.




그러나 이번에 이보다 4세기 이전에 쓰여진 히브리어 문서가 발견됨으로써 이런 생각을 고쳐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이 문서를 해독한 이스라엘 하이파 대학의 성서학 교수인 거숀 갈릴 교수는 "이번 발견은 이스라엘 왕국이 B.C 10세기에 이미 존재했으며 성서의 일부가 지금까지 연구를 통해 추정된 것보다 몇 백년 빨리 쓰여졌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도자기 파편에 잉크로 쓰여진 이 고대 히브리어 문서는 약 1년전 이스라엘 엘라 계곡 부근의 키르베트 퀘이야파에서 발굴작업을 벌이던 하던 이스라엘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견됐다.

처음에는 문서에 사용된 글자가 히브리어 문자인자 아니면 다른 지역 문자인지를 판별하지 못했으나 마침내 이번에 갈릴 교수가 해독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도자기 파편에 쓰여진 글에서 히브리어 고유의 낱말들과 히브리 문화의 특징적인 내용을 찾아내 이 문자가 히브리어 문자라는 점을 증명했다.

문서의 내용은 노예, 과부, 고아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관한 사회적 규범으로 보인다.
이를 번역하면 `당신은 (그것을) 해서는 안되고, (주인)을 공경해야 한다, 가난한 사람과 노예를 보호하고 낯선 사람을 지원하라' 등의 내용이며 이런 내용은 이사야서, 출애굽기 등 구약성격의 일부 내용과 유사하다고 msnbc는 덧붙였다.

(끝)

<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