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이 번역한 불경
법정스님의 ‘마지막 소유’를 만나다
서울신문 | 입력 2010.03.13 04:06
[서울신문]11일 세상과 인연을 다하고 열반에 든 법정 스님은 수필집 '무소유'에 수록돼 있는 '미리 쓰는 유서'라는 글에서 이런 유언을 남긴 적이 있다. "내 머리맡에 놓여 있는 책들을 매일 아침 신문을 배달하러 오는 사람에게 주어라."라고. 그말은 달리 생각해보면 "내가 죽는 순간까지 이 책들만은 내 머리맡에 두어라."는 의미와 같다.
불교계 최고의 문필가이자 '무소유'의 가르침을 설파한 시대의 스승 법정 스님도 마지막 순간까지 소유하고 있던 것이 있었으니, 바로 책이었다. 법회에서 빠지지 않은 주제 중 하나가 책이었고, '맑고 향기롭게' 회보를 통해서 매달 읽을 책을 선정해 주기도 했다. 스님은 깊은 사유를 가진 문필가이자 폭넓은 독서가였고, 무엇보다 지독한 애서가였다.
●현대문명 사고방식 비판 책 많아
그런 그가 강원도 오두막에서 밤을 새우며 읽었던 책들은 무엇이고,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었던 책은 어떤 것일까. 또 그토록 맑고 향기로웠던 스님의 사유를 키워낸 책들은 뭘까.
스님의 입적 직전에 나온 책 '법정 스님의 내가 사랑한 책들'(문학의숲 펴냄)은 그런 의문에서 출발한 책이다. 스님이 평소 법문이나 수필집을 통해서 언급했던 책 중 50권을 가려 뽑아 책의 주요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여기다 스님이 언급 또는 인용한 대목들도 자세하게 전하며, 이를 통해 법정 스님의 독서편력를 전하고, 그것이 그의 지성과 가치관을 어떻게 구성해 놓았는가에 대한 지도를 그려준다.
'무소유'를 통해 물질문명에 치우친 사람들의 가슴에 큰 파문을 일으켰던 스님은 배타적·공격적이며 경쟁적인 현대 문명의 사고방식을 비판하는 책을 많이 읽어왔다. 특히 격월간지인 '녹색평론'은 스님이 창간호부터 빠짐 없이 읽은 책이라고 한다. 소비적인 현대 사회를 비판적 시각으로 보고 사람과 자연의 공생적 문화 재건을 목표로 간행되는 이 책을 두고 스님은 "이런 잡지가 널리 읽힌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지금보다 훨씬 좋아질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이외에도 스님은 '성장을 멈춰라', '슬로 라이프', '농부 철학자 피에르 라비', '나무를 심은 사람', '육식의 종말' 등 문명 비판적인 책을 자주 언급했다.
이런 비판 정신은 자연스럽게 아름다운 세상, 새로운 삶의 방식을 다룬 책들로 스님의 손이 가게 했다. 대표적으로 자연주의 운동가 스콧 니어링 부부의 이야기를 다룬 헬렌 니어링의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가 그렇고, '아름다운 지구인 플래닛 위기' '나무를 안아 보았나요' '펀드혼 농장 이야기'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등도 모두 새로운 삶과 공동체의 가능성에 대해 다룬 것이다.
●병마와 싸우면서도 꼼꼼히 문장 수정
스님은 또 '월든' '여기에 사는 즐거움' '걷기 예찬' '그리스인 조르바' '죽음의 수용소에서' 등을 읽으며 본질적인 삶에 대해 고민했고, '꾸뻬 씨의 행복 여행' '행복의 정복' '풍요로운 가난' 등에서는 진정한 행복에 이르는 길이 무엇인가를 타진했다. 소유에 대한 개념은 '톨스토이 민화집'에서 배우고 정약용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읽고는 직접 현장까지 찾기도 했다고 한다.
책은 부록으로 스님이 언급한 책 300여권을 가나다 순으로 정리했다. 여기에는 스님이 한 법문에서 "늘 곁에 두고 읽으며 의지하는 스승"이라고 한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도 눈에 띄고, 스님이 직접 번역까지 했던 서산대사의 '선가귀감(禪家鑑)'이나 초기불교의 경전인 '숫타니파타', 수행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장로게' '정법안장' 등도 자리하고 있다.
이들 경전 외에도 '어린 왕자' '꽃씨와 태양' '구멍가겟집 세 남매' 같은 동화들도 목록에 포함돼 있다. 스님은 '나의 과외 독서'라는 글에서 '어린 왕자'를 두고 "누워서 부담 없이 읽히는 동화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앞뒤가 툭 트이는 그런 책"이라면서 "내 나날의 생활에서 시들지 않은 싱싱한 초원"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책은 문장가로서의 스님의 손길이 묻어 있는 마지막 책이기도 하다. 출판사 측은 처음에 스님이 언급한 책 300권 목록을 뽑았고, 이를 다시 2년여에 걸친 스님과의 대화를 통해 50권으로 추렸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법정 스님은 병마와 싸우면서도 원고를 꼼꼼히 읽고 문장을 바로 잡아 주었다고 한다. 1만 8500원.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법정 스님의 입적 소식에, 스님의 행적과 말씀들이 다시금 회자되면서 가슴을 여미게 합니다. 한편으로는 평소 스님께서 유언 삼아 남기신 말씀들 몇 가지가 화제가 되었는데... 저 역시 서울신문 강 기자님처럼 머리맡에 남은 책을 신문 배달하시는 분께 드리라는 유언이 기억에 남더군요.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두고두고 보신 책들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하는 호사가로서의 생각도 들고...
나도 언젠가는 애지중지 모아놓았던 수많은 책들을 '버리고 떠나기' 해야 할텐데, 이것들을 과연 어떻게 잘 나눠주고 가야 할까 싶기도 하고요. (감히 법정 스님처럼 끊임없이 버리고 버리고 하는 무애행은 속세에 얽혀 사는 범부로서는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지요. 한때나마 법정 스님의 글들을 읽으며 그분같은 삶을 꿈꾸던 어린 소년은 대체 어디로 갔을까요?)
깜빡깜빡 하곤 합니다. 서고에 재어 놓은 저 책들의 물성이 결국 내 것은 아님을, 책을 다 읽어서 그 속의 사유를 내 것으로 만들었다 한들 그 사유조차 내 것이라 말할 수는 없음을, 내 것... 나...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어디에도 없음을. 어서 훌훌 다 버리고 떠나기 해야 할텐데...
그리고 또 한 가지, 그동안 펴내었던 책들은 다 절판시켜 버리라고도 하셨는데... 정말로 그리 될까요?
설마 그걸 실행에 옮길 출판사들이 아니지만... 행여나 만약에 하나(!) 예컨대 "법정대종사저작권관리위원회" 같은 곳이 꾸려져서 스님의 유지를 받들겠노라고 한다면?
진정 이런 사태가 벌어진다면 일단은 법정 스님의 맑고 향기로운 글들을 못 보게 된다는 점에서 한국 문화계의 큰 손실이 되겠지만, 한편으론 우리 문화계에 자그마한 파장을 불러일으킬 듯 합니다. 문자문명, 언어라는 현상에 던지는 또 하나의 화두가 되겠지요. '不立文字'를 외쳐온 선불교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이런 일은 종종 있어 왔습니다. [벽암록] 같은 화두집은 수행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물론 절에서!) 불태워지기도 했습니다.
왠 선불교? 왠 불립문자? 잊으면 안 될 것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종단이자 법정 스님이 속해 있던 조계종이 불교 중에서도 선불교, 혹은 선종의 한 종파였다, 아니 현재형으로 "라는" 사실입니다. 맨날 지들끼리 치고받고 싸워대고, 대웅전에 불상 모셔놓고 복전이나 받아먹는 퇴영된 기복신앙으로서의 모습과 얼른 들어맞지는 않습니다만, 일단 그 연원에 있어서는 "살불살조(殺佛殺祖-부처를 죽이고 할애비를 죽여라!)"를 외치고... 스승에게 호기롭게 팔뚝 하나쯤은 뚝 잘라 내던졌던 맹렬 수행자들의 혁명적 집단, 선종 말입니다. 그냥 그렇다고요...
선불교 종단 조계종에서는 과연, 불교를 가장 대중들에게 널리 알렸던 불세출의 베스트셀러 작가의 작품들의 운명을 어떻게 결정할까요.
(일단 당장은 현재 나와 있는 책들에 대한 사재기 열풍이 잠깐 불 수도 있을 것이고, 사재기를 통해 재고가 다 소진된 시점부터 사후 저작권이 종료되는 향후 오십 년 뒤까지 법정 스님 책은 헌책방 내지 인터넷 경매 사이트에서 높은 가격에 겨우겨우 구매해야 하는 사태가 올 수도 있겠군요. 물론 이런 정도는 '자그마한 파장' 축에도 못 끼는 소소한 에피소드이지요. ^^)
(벌써 법정 스님의 일부 도서들은 품절 상태로군요. 생각보다 아주 빠르네요. 위에 있는 책들 중에서 법정 스님이 직접 번역하신 [깨달음의 거울(선가귀감)], [숫타니파타] 등은 현재 구매가 불가능하고, 샘터에서 나온 [법정 스님 전집]의 모든 책들은 '판매 중단'이라는 듣도보도 못한 안내문구가 붙어 있습니다. 할!)
아래는 이번 책에 언급된 책들입니다. 저랑은 취향이 거진 겹치는군요. ^^
새로운 형식의 삶에 대한 실험 _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월든>
인간과 땅의 아름다움에 바침 _ 장 피에르와 라셀 카르티에 <농부 철학자 피에르 라비>
모든 사람이 우리처럼 행복하지 않다는 건가요 _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오래된 미래>
그곳에선 나 혼자만 이상한 사람이었다 _ 말로 모건 <무탄트 메시지>
포기하는 즐거움을 누리라 _ 이반 일리히 <성장을 멈춰라>
모든 여행의 궁극적인 목적지는 행복 _ 프랑수아 를로르 <꾸뻬 씨의 행복 여행>
자신과 나무와 신을 만나게 해 준 고독 _ 장 지오노 <나무를 심은 사람>
한 걸음씩 천천히 소박하게 꿀을 모으듯 _ 사티쉬 쿠마르 <끝없는 여정>
행복이 당신 곁을 떠난 이유 _ 버트런드 러셀 <행복의 정복>
나무늘보에게서 배워야 할 몇 가지 것들 _ 쓰지 신이치 <슬로 라이프>
기억하라, 이 세상에 있는 신성한 것들을 _ 류시화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신은 인간을 가꾸고, 인간은 농장을 가꾼다 _ 핀드혼 공동체 <핀드혼 농장 이야기>
모든 사람은 베풀 것을 가지고 있다 _ 칼린디 <비노바 바베>
이대로 더 바랄 것이 없는 삶 _ 야마오 산세이 <여기에 사는 즐거움>
나는 걷고 싶다 _ 다비드 르 브르통 <걷기 예찬>
아프더라도 한데 어울려서 _ 윤구병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신에게로 가는 길 춤추며 가라 _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한쪽의 여유는 다른 한쪽의 궁핍을 채울 수 없는가 _ 장 지글러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마른 강에 그물을 던지지 마라 _ 장 프랑수아 르벨·마티유 리카르 <승려와 철학자>
당신은 내일로부터 몇 킬로미터인가? _ 이레이그루크 <내일로부터 80킬로미터>
가장 자연스러운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_ 후쿠오카 마사노부 <짚 한 오라기의 혁명>
큰의사 노먼 베쑨 _ 테드 알렌·시드니 고든 <닥터 노먼 베쑨>
풀 한 포기, 나락 한 알, 돌멩이 한 개의 우주 _ 장일순 <나락 한 알 속의 우주>
삶은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 _ 아베 피에르 <단순한 기쁨>
두 발에 자연을 담아, 침묵 속에 인간을 담아 _ 존 프란시스 <아름다운 지구인 플래닛 워커>
가을매의 눈으로 살아가라 _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생명의 문을 여는 열쇠, 식물의 비밀 _ 피터 톰킨스·크리스토퍼 버드 <식물의 정신세계>
우리 두 사람이 함께 _ 헬렌 니어링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축복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_ 레이첼 나오미 레멘 <할아버지의 기도>
인간의 얼굴을 가진 경제 _ E.F. 슈마허 <작은 것이 아름답다>
바람과 모래와 별 그리고 인간 _ 생텍쥐페리 <인간의 대지>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_ 레이첼 카슨 <침묵의 봄>
빼앗기지 않는 영혼의 자유 _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나무는 자연이 쓰는 시 _ 조안 말루프 <나무를 안아 보았나요>
용서는 가장 큰 수행 _ 달라이 라마·빅터 챈 <용서>
테제베와 단봉낙타 _ 무사 앗사리드 <사막별 여행자>
꽃에게서 들으라 _ 김태정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꽃 백 가지>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_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우리에게 주어진 이 행성은 유한하다 _ 개릿 하딘 <공유지의 비극>
세상을 등져 세상을 사랑하다 _ 허균 <숨어 사는 즐거움>
지구에서 가장 뜨거운 심장 _ 디완 챤드 아히르 <암베드카르>
바깥의 가난보다 안의 빈곤을 경계하라 _ 엠마뉘엘 수녀 <풍요로운 가난>
내 안에 잠든 부처를 깨우라 _ 와타나베 쇼코 <불타 석가모니>
자연으로 일구어 낸 상상력의 토피아 _ 앨런 와이즈먼 <가비오따쓰>
작은 행성을 위한 식사법 _ 제레미 리프킨 <육식의 종말>
결론을 내렸다, 나를 지배하는 열정에 따라 살기로 _ 빈센트 반 고흐 <반 고흐, 영혼의 편지>
성장이 멈췄다, 우리 모두 춤을 추자 _ 격월간지 <녹색평론>
내일의 세계를 구하는 것은 바로 당신과 나 _ 제인 구달 <희망의 이유>
내 안의 ‘인류’로부터의 자유 _ 에크하르트 톨레
어디를 펼쳐도 열정이 넘치는 책 _ 다치바나 다카시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