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을 버려라 - 잃어버린 삶의 복원을 위하여
제리 맨더 지음, 최창섭 옮김 / 우물이있는집 / 2002년 8월
평점 :
절판



『텔레비전을 버려라』의 저자 제리 멘더는 소위 ‘과학 만능주의자’에게 한 방을 먹인다. “과거의 모든 문화가 수용할 수 있었던 자연과의 균형이 이제는 과학과 기술이라는 차원에서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게끔 되었다. 이제 자연과의 조화로운 균형은 무시되고 있는 것이다. 또 무지하고 위험한 인간의 사고와 그들이 만든 인위적 환경 속에서 자연과 자연에 대한 지식은 경시되고 있을 뿐이다”라고 게리 멘더는 말한다. 게리 멘더의 이런 발언은 분명 텔레비전으로 상징되는 현대 문명에 대한 장탄식이다. 기술이 인간의 삶의 구석구석을 지배하지 않던 시절의 사람들은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일들을 알기 위해 주어진 모든 능력을 사용해야 했다고 그는 말한다. 그들은 자연을 그들과 동떨어진 외부 세계가 아니라 그들의 내부에 있는 세계라고 여겼던 것이다. 게리 멘더는 텔레비전 때문에 사람들이 세상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과 그를 통한 간접경험을 혼동하면서, 우리의 경험이 텔레비전 시청이라는 하나의 행동으로 획일화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미디어를 통한 지각의 간접화로 인해 텔레비전은 10만년 이상 자연 환경과 상호작용으로 발전해온 인간의 감각 능력을 퇴보시킨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게리 멘더는 “에스키모는 56개로 눈을 구별할 수 있으며, 세노이 인디언은 백여 가지의 방법으로 꿈을 꿀 수 있었음을 볼 수 있다. 또 캘리포니아 인디언처럼 고도의 상공에서 나는 수천 종의 날곤충을 잡을 수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모든 감각들이 현대 세계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대체 그런 능력을 희생하고 얻는 지식이란 다 무엇인가. 세계를 지배하고, 자연을 정복할 수 있는 과학적 감수성?


제리 멘더는 본래 잘 나가는 광고 회사의 임원이었다. 15년 동안 텔레비전 광고를 만들어오던 그가 생태주의자로 돌아선 데는 어느 날 여행길의 체험이 있었다."깎아지른 절벽, 파도치는 바다, 눈부신 하늘, 빛나는 모래알을 보았다. 그 장관이 매우 아름답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내 눈으로 경험할 수 없었다. 그 풍경과 나 사이를 미디어의 장면들이 가로막고 있는 것만 같았다."고 그는 당시를 회고했다. 이 책에서 그는 ‘죽은 행복의 이미지’를 조작해내는 사기행각을 벌여 왔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의 전력은 이 책으로 하여금 많은 부분을 광고의 폐해에 대해서 말하게 하고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광고는 인간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불만족 상태를 창출한다. 현재에 만족하지 말라는 것이 모든 광고의 테마가 아니던가. 필요는 한정되어 있으니 끊임없이 욕망을 확대재생산하라는 것이 미디어에 대한 광고주들의 요구가 아니던가. 욕망을 부풀리는 광고가 있고, 그 광고 위에 버팀목을 대고 있는 미디어가 있는 한 인간의 영일(寧日)은 요원하다.

‘텔레비전을 없애지 않고 개혁하자는 것은 총기를 없애지 않고 개혁하자는 것과 같다’라고 이 책은 말한다. 그러나 텔레비전을 버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먼저 아이들이 징징거릴 것이 뻔하다. ‘한국의 산사’와 같은 적막이 깃든 프로그램을 놓치는 것도 아쉽고, ‘지리산의 사계’와 같은 프로그램을 볼 수 없다는 것도 아쉽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실제와 직접 부딪히고 살갑게 느끼는 일일 터이다. 명절날 텔레비전과 컴퓨터 모니터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아이들을 불러다 윷이라도 떠들썩하게 놓아야 할 일이고, 미디어의 화려함에 무뎌질 대로 무뎌진 내 몸과 마음을 불러세워, 땅과 수목과 들꽃의 내음에 취해보게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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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아침에 듣는 이런 음악
스폰지처럼 탐욕스럽게 음을 빨아들이는 스산한 마음의 굴뚝과 창문들
 
Stationary Traveller
슬픔을 머금은 울적한 키보드와 기타의 인터플레이(연주를 주고 받는 것)로 시작된다. 거기에 팬플룻까지 가세하면, 그 울적함은 그만 슬픔을 토해 낸다. 디스토션(장비를 이용해 소리를 왜곡하는 것) 짙은 기타 연주에 슬픔은 한없는 절규로 바뀌지만 그 절규는 무엇을 어찌할 수 없는 이의 자조 섞인 것이지, 분노로 승화하진 못한다. 하지만 분노로 승화하지 못한 절규는 이내 풀이 꺾여, 그 답답함에 슬픔만 다시 가져다 줄 뿐이다.
 
 

신희숙의 사진
 
장만옥  -박정대
 
    멀리 가는 길 위에 네가 있다
    바람 불어 창문들 우연의 음악을 연주하는 그 골목길에
    꽃잎 진 복숭아나무 푸른 잎처럼 너는 있다
    어느 날은 잠에서 깨어나 오래도록 네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사랑은 나뭇잎에 적은 글처럼 바람 속에 오고 가는 것
    때로 생의 서랍 속에 켜켜이 묻혀 있다가
    구랍의 달처럼 참 많은 기억을 데불고 떠오르기도 하는 것
    멀리 가려다 쉬고 싶은 길 위에 문득 너는 있다
    꽃잎 진 복숭아나무들이 긴 목책을 이루어
    푸른 잎들이 오래도록 너를 읽고 있는 곳에
    꽃잎 진 내 청춘의 감옥,
    복숭아나무 그 긴 목책 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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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da78 2004-10-27 0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Camel *ㅂ*
롱 굿바이즈도 듣고 싶어요. ^^;;
감각의 박물학 리뷰 보고 방문했습니다. 리뷰들이 하나같이 멋져서 그냥 들렀다만 갈 수는 없었어요.
 
바람을 담는 집
김화영 지음 / 문학동네 / 1996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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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일 동안 나는 감각에 매달려 있다.
파스칼 키냐르의 『은밀한 생』에서 다음과 같은 문장이 감각에 대한 나의 집착을 촉발시켰는지도 모르겠다.

<사랑이란 무엇보다 타인의 냄새를 미친 듯이 사랑하는 것이다.>

나는 예전에 읽다 던져둔 쥐스킨트의 『향수』를 읽었다. 수불석권, 책을 내려놓기가 어려웠다. 한 문장 한 문장을 탐닉하면서, 격렬한 질투에 사로잡히면서.....

『아로마 냄새의 문화사』(현실문화연구)를 읽었고, 『감각의 박물학』(작가정신)을 읽었다. 앞의 것은 지나치게 디테일해서 독서의 재미가 덜했다, 뒤의 것은 박식하면서도 소프트했다. 그러나 감각을 다루고 있는 어떤 글들도 쥐스킨트의 『향수』에 필적할 만한 책은 없다. 프루스트의 소설들이라면 몰라도. 역시 프루스트의 학생(?)답게 김화영도 『바람을 담는 집』의 첫 번째 글에 <냄새와 기억>이란 제목을 붙였다. 

냄새와 향기는 왜 이처럼 언어로 형용할 수가 없는 것일까? 왜 냄새는 구체적인 경험 속에서 빌려온 은유로밖에는 묘사할 수가 없는 것일까? 우리 각자의 몸만이 알고 있는 냄새는 우리 각자의 극복할 길 없는 고독을 손가락질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그 냄새가 그토록 황홀하고 감미로운 것은 그 냄새의 실체가 눈으로 볼 수도 손으로 만질 수 없으며 어디엔가 간직해두기에는 더더욱 어렵다는 데 있었다. ......존재의 증발, 그 뒤에 남는 아쉬움과 그리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소리도 없이 홀연히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귤의 향기는 내게 최초로 '그리움'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었던 것 같다. ......향기란 무엇일까? 향기란 그 자체가 그리움이다. 덧없는 삶의 저너머 영원불변하는 그 어떤 '실체'에의 그리움. 향기는 존재보다 부재의 아름다움에 가깝다.(P.23)

김화영은 이 글의 끝부분에서 프루스트의 마들렌느 과자에 관한 글을 덧붙이고 있다.

아득한 과거로부터 어느 것 하나 살아남은 것이 없을 때, 사람들은 죽고 사물들은 파괴되고 난 다음에, 더욱 연약하지만 더욱 생생하고 더욱 비물질적이며 더욱 고집스럽고 더욱 충실하게 냄새와 맛만이 아직도 영혼처럼 오래도록 남아서 그 모든 것들의 폐허 위에서 기억을 되살리고 기다리고 희망을 가지며 거의 손으로 만져볼 수도 없는 그 작은 물방울 위에다가 추억의 거대한 건축물을 굽힐 줄 모른 채 떠받들고 있는 것이다."(P.25)

나를 살게 하는 힘은 저 부재의 증거인 '향기'가 아닐까. 보이는 것들 저 너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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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0-28 19: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김화영은 『바람은 담는 집』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연두색이란 무엇일까? 이 질문은 그것 자체로서는 매우 어려운 질문이다. '단순한 것은 무엇이나 우리의 이해력을 초월한다.' 연두색의 싹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어느새 그 싹은 조금 더 자라고 있고 그 연두색은 어느새 조금 더 녹색으로 변해가고 있다. 연두색은 수직의 솟아오름의 시작의 색깔이다. 이 수직의 말 없는, 그러나 생명에 찬 솟아오름이 '구슬을 꿰는(통사적인)' 저 수평적이고 산문적인 수고의 가치와 대립하고 있는 것이다. 연두색이지표를 떠밀고 솟아오는 그 순간의 주위에는 투명한 침묵이 가득하다. 지혜의 침묵이다.(P.49)

 

나는 그의 산문집 <행복의 충격>의 겉표지를 떠올렸다. 모네의 <수련>이 파스텔빛 연초록에 녹아있는 아름다운 표지다. 15년 전에 나온(1989) 책이지만 겉표지만은 항상 싱그럽다. 아마도 연초록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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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림의 산문은 몰라도
어떤 시들은 잘 읽힌다
시인의 자의식은 시로서 드러날 때 읽을 만한다
 
 
  기차는 8시에 떠나네- 아그네스 발차
 
 
그래도 살아야 할 이유
      -신현림

슬퍼하지 마세요
세상은 슬퍼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니까
자살한 장국영을 기억하고 싶어
영화 「아비정전」을 돌려 보니
다들 마네킹처럼 쓸쓸해 보이네요
다들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어 해요
 
외롭지 않기 위해 외로워하고
아프지 않기 위해 아픈 사람들
따뜻한 밥 한 끼 먹지 못하고
전쟁으로 사스로 죽어가더니
우수수 머리 위로 떨어지는 자살자들
살기엔 너무 지치고, 휴식이 그리웠을 거예요
되는 일 없으면 고래들도 자살하는데
이해해 볼게요 가끔 저도 죽고 싶으니까요
그러나 죽지는 못해요 엄마는 아파서도 죽어서도 안 되죠
이 세상에 무얼 찾으러 왔는지는 아직 모르잖아요
마음을 주려 하면 사랑이 떠나듯
삶을 다시 시작하려 하면 절벽이 달려옵니다
시를 쓰려는데 두 살배기 딸이
함께 있자며 제 다릴 붙잡고 사이렌처럼 울어댑니다
당신도 매일 내리는 비를 맞으며 헤매는군요
저도, 홀로 어둠 속에 있습니다
 
   자화상
       -신현림
 
울음 끝에서 슬픔은 무너지고 길이 보인다
울음은 사람이 만드는 아주 작은 창문인 것
창문 밖에서
한 여자가 삶의 극락을 꿈꾸며
잊을 수 없는 저녁 바다를 닦는다
 

립스틱과 매니큐어
   -신현림

가을에 슬픔으로 충만했으니
겨울엔 기쁨이 너를 원하므로
비누처럼 거품을 물고 즐거워하라
립스틱과 매니큐어를 바꾸고
'사랑을 할 거야'를 부르며
사람들에게 열심히 꽃 바치고
해 지고 술 고프면
한번쯤은 치사량에 가까운
술을 마셔도 좋을 것이다
웬만하면 좌석버스로 시내나 돌며
정신 차리고 돌아와 밝은 방에서
책 읽는 게 최고의 희열이라
올 겨울엔 나도
빨랫줄에 간신히 매달린 흰 치마 같은
금욕의 처절함을 해제하고
이글이글한 정사를 치뤄볼 것이다
   어떻게-슬픔의 체위를 바꾸면서
   어디서-헤어지지 않을 곳에서
   누구랑-헤어지지 않을 사내랑
   왜-해실해실 웃는 아기를 가질까 해서
 

사랑이 올 때
         - 신현림 -
 
달은 찻잔 속에 떠 있고
그리운 손길은
가랑비같이 다가오리
황혼이 밤을 두려워 않듯
흐드러지게 장미가 필 땐
시드는 걸 생각지 않으리
술 마실 때
취하는 걸 염려않듯
사랑이 올 때
떠남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봄바람이 온몸 부풀려갈 때
세월가는 걸 아파하지 않으리
오늘같이 젊은 날은 더 이상 없네
아무런 기대없이 맞이하고
아무런 기약 없이 헤어진대도
봉숭아 꽃물처럼 기뻐
서로가 서로를 물들여가리
 
 
내 혀의 타올로
  -신현림

당신의 눈은 얼굴은
슬픔의 피빠는 노을
눈보라치는 정거장이야
당신을 삶는 상처의 휘발유
내 혀의 타올로 닦아줄게
나도 함께 흐느낄게
 

키스, 키스, 키스
   -신현림

떠드는 말이 부딪쳐
상처와 이별을 만들고
따뜻한 수증기로 스미면
마음의 키스가 되지
키스, 키스, 키스!
번역해서 뽀뽀는 얼마나 이쁜 말이니
삶이 아프지 않게 시원하게
말은 사려 깊은 타월이 돼야지
매순간 모든 이로부터 버려질 쓰레기까지
뽀뽀하는 마음으로
"네 일은 잘 될 거야 네 가슴은 봄 바다니까!"
인사하는 바로 그것,
삶이 꽃다발처럼 환한 시작이야
 

가질 수 없는 건 상처랬죠
   -신현림

가질 수 없는 건 다 상처랬죠?
닿지 않는 하늘 닿지 않는 바다
돈이 없어 닿지 않는 외투
벌릴 수 없는 방 두 칸짜리 집
닿지 않는 사랑
절망의 아들인 포기가 가장 편하겠죠
아니, 그냥 흘러가는 거죠
뼈처럼 흰구름이 되는 거죠
가다보면 흰구름이 진흙더미가 되기도 하고
흰구름이 배가 되어 풍랑을 만나고
흰구름 외투를 입고
길가에 쓰러진 나를 발견하겠죠
나는 나를 깨워 이렇게 말하겠죠
<내가 나를 가질 수 없는데
내 것이 아닌것을 가져서 뭐하냐>구요
 
 
너에게로 가는 손
     - 신현림

나날은
떠나는 새처럼 떠나지 못하고
흐르는 물처럼 흐르지 않고
거친 파도처럼 고동치지 않았다
아무 위안도 없고
아무도 없고
아무 소리도 없는 슬픔에 갇혀
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너와 함께 하는 희망이
수레바퀴처럼 구르지 않아도
먼 마을의 개가 짖듯이
백일홍이 울부짖듯이
나의 손은 너에게로 간다
 
 
창 1
- 신현림

이상하지요 비통하도록 아름다운 것을 보면
온몸이 대책없이 부풀어올라요
터질 것 같은 애드벌룬처럼 말이죠
적요한 방과 흰 에나멜로 칠한 문, 가구의 나무냄새
오후 여섯 시 회사복도에서 본 창 밖의 세계
이미 없는 푸른 물의 기억이라든가
장례식 행렬 더럽혀진 작업복
겸손히 흐느끼는 굽은 등과 빵 같은 아가
아, 은밀한 침묵에 쌓인 책장 그리고
몸서리치는 은사시나무 나뭇잎
상실에 저항하는 것들....
모두 말아먹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갖고 난 후의
무서운 허탈감을 상상하면 견딜 수가 없어요
끌어안은 사람이나 사물이 갑자기 서류뭉치처럼
구겨져버리거나 내 자신이 고드름처럼 녹아버리거나
삼십센티만 떨어져 앉지요
저는 이 거리를 집착해요 안전하고 자유롭지요
닭갈비를 뜯다보면 제가 닭이 되는 기분입니다
털이 몽땅 뽑힌 비밀이 없는 슬픔
생계의 짐, 추억과 죽음의 짐, 정욕의 짐
운명의 갈빗대가 휘지 않도록 개갈비 돼지 쇠갈비로
영양보충한다는 슬픔
오늘 밤하늘이 서럽도록 작렬하네요
 
 창 2
- 신현림
마음이 다 드러나는 옷을 입고 걷는다
숨어 있던 오래된 허물이 벗겨진다
내 허물은 얼마나 돼지처럼 뚱뚱했던가
난 그걸 인정한다
내 청춘 꿈과 죄밖에 걸칠 게 없었음을
어리석음과 성급함의 격정과 내 생애를
낡은 구두처럼 까맣게 마르게 한 결점들을
오래도록 괴로워했다
나의 등잔이 타인을 못 비춘 한시절을
백수일 때 서점에서 책을 그냥 들고 나온 일이나
남의 애인 넘본 일이나
어머니께 대들고 싸워 울게 한 일이나
실컷 매맞고 화난 주먹으로 유리창을 부순 일이나
내게 잘못한 세 명 따귀 때린 일과 나를 아프게 한 자
마음으로라도 수십번 처형한 일들을
나는 돌이켜본다 TV 볼륨을 크게 틀던
아래층에 폭탄을 던지고 싶던 때와
돈 때문에 조바심치며 은행을 털고 싶던 때를
정욕에 불타는 내 안의 여자가
거리의 슬프고 멋진 사내를 데려와 잠자는 상상과
징그러운 세상에 불지르고 싶던 마음을 부끄러워한다
거미줄 치듯 얽어온 허물과 욕망을 생각한다
예전만큼 반성의 사냥개에 쫓기지도 않고
가슴은 죄의식의 투견장도 못 된다
인간은 원래 그런 것이라며 변명의 한숨을 토하고
욕망의 흔적을 버린 옷가지처럼 바라볼 뿐이다
고해함으로써 허물이 씻긴다 믿고 싶다
고해함으로써 괴로움을 가볍게 하고 싶다
사랑으로 뜨거운 그 분의 발자국이
내 진창길과 자주 무감각해지는 가슴을 쾅쾅 치도록
나는 좀더 희망한다
그 발자국이 들꽃으로 흐드러지게 피어나
나를 깨워 울게 하도록.
 

바다를 보면 바다를 닮고
  -신현림

  바다를 보면 바다를 닮고
  나무를 보면 나무를 닮고
  모두 자신이 바라보는 걸 닮아간다
 
  멀어져서 아득하고 아름다운
  너는 흰 셔츠처럼 펄럭이지
  바람에 펄럭이는 것들을 보면 가슴이 아파서
  내 눈 속의 새들이 아우성친다
  너도 나를 그리워할까
  분홍빛 부드러운 네 손이 다가와 돌려가는
  추억의 영사기
  이토록 함께 보낸 시간이 많았구나
  사라진 시간 사라진 사람
 
  바다를 보면 바다를 닮고
  해를 보면 해를 닮고
  너를 보면 쓸쓸한 바다를 닮는다 
 

아무것도 아니었지
    -신현림

너는 아무것도 아니었지
순식간에 불타는 장작이 되고
네 몸은 흰 연기로 흩어지리라
나도 아무것도 아니었지
일회용 건전지 버려지듯 쉽게 버려지고
마음만 지상에 남아 돌멩이로 구르리라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도 괜찮아
옷에서 떨어진 단추라도 괜찮고
아파트 풀밭에 피어난 도라지라도 괜찮지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의 힘을 알아
그 얇은 한지의 아름다움을
그 가는 거미의 힘을
그 가벼운 눈물의 무거움을
아무것도 아닌 것의 의미를 찾아가면
아무것도 아닌 슬픔이 더 깊은 의미를 만들고
더 깊게 지상에 뿌리를 박으리라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낄 때
비로소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무엇이든 다시 시작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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