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담는 집
김화영 지음 / 문학동네 / 199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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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일 동안 나는 감각에 매달려 있다.
파스칼 키냐르의 『은밀한 생』에서 다음과 같은 문장이 감각에 대한 나의 집착을 촉발시켰는지도 모르겠다.

<사랑이란 무엇보다 타인의 냄새를 미친 듯이 사랑하는 것이다.>

나는 예전에 읽다 던져둔 쥐스킨트의 『향수』를 읽었다. 수불석권, 책을 내려놓기가 어려웠다. 한 문장 한 문장을 탐닉하면서, 격렬한 질투에 사로잡히면서.....

『아로마 냄새의 문화사』(현실문화연구)를 읽었고, 『감각의 박물학』(작가정신)을 읽었다. 앞의 것은 지나치게 디테일해서 독서의 재미가 덜했다, 뒤의 것은 박식하면서도 소프트했다. 그러나 감각을 다루고 있는 어떤 글들도 쥐스킨트의 『향수』에 필적할 만한 책은 없다. 프루스트의 소설들이라면 몰라도. 역시 프루스트의 학생(?)답게 김화영도 『바람을 담는 집』의 첫 번째 글에 <냄새와 기억>이란 제목을 붙였다. 

냄새와 향기는 왜 이처럼 언어로 형용할 수가 없는 것일까? 왜 냄새는 구체적인 경험 속에서 빌려온 은유로밖에는 묘사할 수가 없는 것일까? 우리 각자의 몸만이 알고 있는 냄새는 우리 각자의 극복할 길 없는 고독을 손가락질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그 냄새가 그토록 황홀하고 감미로운 것은 그 냄새의 실체가 눈으로 볼 수도 손으로 만질 수 없으며 어디엔가 간직해두기에는 더더욱 어렵다는 데 있었다. ......존재의 증발, 그 뒤에 남는 아쉬움과 그리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소리도 없이 홀연히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귤의 향기는 내게 최초로 '그리움'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었던 것 같다. ......향기란 무엇일까? 향기란 그 자체가 그리움이다. 덧없는 삶의 저너머 영원불변하는 그 어떤 '실체'에의 그리움. 향기는 존재보다 부재의 아름다움에 가깝다.(P.23)

김화영은 이 글의 끝부분에서 프루스트의 마들렌느 과자에 관한 글을 덧붙이고 있다.

아득한 과거로부터 어느 것 하나 살아남은 것이 없을 때, 사람들은 죽고 사물들은 파괴되고 난 다음에, 더욱 연약하지만 더욱 생생하고 더욱 비물질적이며 더욱 고집스럽고 더욱 충실하게 냄새와 맛만이 아직도 영혼처럼 오래도록 남아서 그 모든 것들의 폐허 위에서 기억을 되살리고 기다리고 희망을 가지며 거의 손으로 만져볼 수도 없는 그 작은 물방울 위에다가 추억의 거대한 건축물을 굽힐 줄 모른 채 떠받들고 있는 것이다."(P.25)

나를 살게 하는 힘은 저 부재의 증거인 '향기'가 아닐까. 보이는 것들 저 너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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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0-28 19: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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