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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미학산책
정민 지음 / 솔출판사 / 199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절대적 빈곤의 시대가 지나갔다고 하는 1990년대에 들어 문학은 더 이상 가난을 언급하지 않았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를 떨쳐버리려는 듯 열심히 ‘문화’를 말하기 시작했다. 가히 문화의 백화제방 시대였다. 뉴미디어 테크놀로지는 욕망이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현란한 이미지들을 구축했다. 1990년대는 가볍고, 빠르고, 현란하게 우리 곁을 스쳐갔다. IMF 시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한번 부풀려진 욕망은 2000년대에 들어서도 만족을 몰랐다. 호텔 연회장의 매출액은 꾸준히 늘고, 룸살롱과 호텔나이트클럽은 흥청대고, 해외여행객은 꾸준히 늘어갔다. 절대빈곤층으로 규정된 법정 영세민이 전인구의 10%에 육박한다는 신문기사를 애써 외면하고 부동산과 금융 섹션에 시선을 모았다. 빌게이츠, 젝 웰치, 성공의 영웅들의 발언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가 베스트셀러가 되고, 경영과 처세술에 관한 책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가난은 더 이상 발붙일 곳이 없어 보였다. 가난을 말하는 영화도, 가난을 말하는 소설도 없었다. 명품이 불티나듯 팔려나간다는 신문기사, 엄청난 규모의 대형 할인매장, 밤새 붉을 밝히는 24시간 편의점, 매일 아침 조간과 함께 배달되는 광고전단들, 해마다 늘어나는 외식사업… 그 어디에도 궁색함은 없었다. 엄청난 카드빚으로 개인파산자가 늘어나도 궁색함은 여간해선 찾아보기가 힘들다.
가난은 물질적으로는 떨쳐버릴 수 있는 성질의 것이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우리의 뇌리 속에 각인된 가난만은 떨칠 수 없는 것이었다.『괭이부리말 아이들』이 우리의 뇌리 속에 각인된 가난을 일깨웠다. 그 책은 적어도 386세대에게는 죄의식을 불러왔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들이 외면하려고 했던 과거가 아직도 끝나지 않았음을 이 책은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었다. 386세대, 그들의 아이들이 『괭이부리말 아이들』을 읽었다. 하지만 그들의 아이들은 가난을 추체험하기엔 지나치게 안락한 삶을 살아왔다. 「자전거 도둑」에 물큰한 감동을 느
낄 아이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부모님도 없이 천식으로 고생하는 할아버지와 청소를 하며 어렵게 생계를 꾸려가고 있는 할머니를 모시고 사는 남매의 이야기인 『종이밥』(낮은산)을 읽으면서 아이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할까. 농민들의 애환을 그렸던 「전원일기」도 이젠 TV에서 사라질 모양이다. 소재 고갈이 막을 내리는 이유라니 확실히 이 나라가 잘 사는 나라가 된 모양이다. 어쨌든 일용이, 응삼이 같이 촌스럽기에 정답던 이름들도 추억 속에서나 떠올려야 할 모양이다.
누가 뭐라든 가난은 좋은 게 아니다. 서정주는 ‘가난이야 한낱 남루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했지만 절대적 빈곤은 남루로 표현될 성질은 아닐 것이다. 이가 갈리는 지긋지긋한 가난이라는 것도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가난이 척결되어야 할 그 무엇이라고 해서 가난의 의미 자체가 무효화될 까닭은 없다. 가난에 의미가 없다면 저 프란시스코 아시씨의 탁발과 일체의 소유를 털어버린 원효나 경허의 무애행은 무엇이겠는가. 동병상련(同病相憐)이라 했다. 아픈 자만이 아픔의 자리를 알아보는 법. 가난을 잊는다는 것은 내 이웃으로의 시선을 거두는 것은 아닐지.
다음에 인용한 글은『한시미학산책』(정민, 솔)의 일부이다.
한나라 때 양옹은 「축빈부逐貧賦」를 지어, 자기를 지긋지긋하게 따라다니는 '가난'이란 놈의 축출을 시도한 적이 있다. 글을 보면, 먼저 '가난'을 불러내어 내 인생을 이렇듯 고달프게 만드는 연유를 따져 묻고, 이어 잠시도 나를 가만 두지 않고 따라다니는 까닭이 무엇이냐고 물은 뒤, 지체치 말고 썩 물러가라고 호통을 친다. 자못 등등한 기세다. 그러자 ‘가난’이란 녀석이 나타나 물러가는 것은 좋으나 나도 할 말이 있다며 반발한다. 추위를 견디고 더위를 참아내는 법을 어려서부터 가르쳐 주었고, 걸桀이나 도척盜跖 같은 탐학의 무리를 거들떠보지 않는 기상을 길러주었으며, 사람들은 모두 겹겹이 둘러싸인 곳에서 지내나 그대는 홀로 툭 터진 곳에서 살게 하였고, 사람들은 근심에 싸여 지내나 그대는 홀로 근심이 없게 하였다. 이것이 모두 나의 공로이다. 이렇게 말을 마친 ‘가난’은 눈을 부릅드고 벌떡 일어나 계단을 내려가며 ‘내 맹세코 너를 떠나 저 수양산에 가서 백이 숙제와 더불어 함께 지내리라“하는 것이었다. 이에 다급해진 양웅이 자리를 피해 잘못을 정중히 사과하며, 다시는 원망치 않을 터이나 내 곁을 떠나지 말아달라고 만류하는 것으로 끌은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