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현암사 동양고전
오강남 옮기고 해설 / 현암사 / 199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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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자(莊子)는 이미 오래 전에 편리만을 추구하는 물질문명의 위기를 예견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공자의 제자인 자공이 초나라를 지나다가 밭에 물을 주는 한 노인을 보았다. 땀을 뻘뻘 흘리며 물동이로 물을 길어 나르는 모습이 하도 안쓰러워 쉽게 물을 퍼 댈 수 있는 기계를 권하자 노인이 이렇게 대답했다. "기계가 있으면 반드시 꾀하는 일이 생기고, 꾀하는 일이 있으면 반드시 꾀하는 마음이 동하며, 꾀하는 마음이 발하면 순수한 마음이 사라지고, 순수한 마음이 없어지면 정신과 생명이 안정하지 못하고, 정신과 생명이 방황하면 끝내 진리를 지닐 수 없다."(<莊子> 天地편) 사람들이 기계를 쓰게 되면 기계에 얽매이는 마음이 생길 수 있으며, 그러한 마음이 생기게 되면 순박한 마음을 잃게 되어 정신이 안정되지 못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천지만물의 본체인 도에서 멀어지게 될 것이라고 장자는 지적하고 있다.

 편리가 능사는 아니다. 에베레스트산을 오른 알피니시트들은 많다. 그러나 최상의 찬사는 가장 험한 시즌에 가장 험한 코스를 통해 에베레스트를 오른 알피니스트에게 돌아가는 법이다. 최상의 찬사를 몸에 안을 알피니스트들이라면 그의 종교가 무엇이건 간에 성경의 이런 구절에도 흔쾌히 동의할 법하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거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그 길이 널찍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다.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너무나도 좁고, 그 길이 험해서, 그곳을 찾아오는 사람이 별로 없다.”(마태복음 7장 13-14절) 좁은 문은 편리의 문, 안락의 문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예수가 갔던, 또 알피니스트들이 갔던 형극의 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길을 우리 범인(凡人)에게 강요할 수만은 없다. 하지만 우리는 부(富)로 인해서 우리가 잃어버릴 수밖에 없었던 것들을 상기할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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