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풍요로운 가난
엠마뉘엘 수녀 지음, 백선희 옮김 / 마음산책 / 2001년 12월
평점 :
품절
『풍요로운 가난 』(마음산책)의 저자이며, ‘카이로의 넝마주이’로 알려진 엠마뉘엘 수녀는 말한다. “가난은 하느님, 자기 자신,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훨씬 더 주의 깊게 귀 기울이게 해주죠.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우리를 받아들이도록, 최상의 우리를 되찾도록, 본질로 되돌아가도록 이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가난에 바쳐진 최대의 헌사(獻辭)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한마디로 가난이 우리를 최고로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석가세존이나 보리달마가 아닌 바에야 이런 유혹에 혹할 사람은 많지 않다. 여전히 우린 가난이 불편할 수밖에 없다.
이해인 수녀는 『풍요로운 가난 』을 온 국민의 필독서로 추천하고 싶다고 했다. 이해인 수녀의 욕심은 얼마든 권장받아야 한다. 에리히 프롬의 저서 『소유냐 존재냐』도 가난이 존재의 풍요로움의 토대가 됨을 알려준다. 그러나 읽기가 녹록치가 않다. 법정의 『무소유』 또한 소유에의 집착이 고뇌의 싹임을 알려준다. 하지만 가난에 대한 풍요로운 질감까지를 보여주지는 못한다. 정확히 말하면 법정의 가난은 속세의 가난이 아니다. 속세 저편 산문(山門)에서의 가난이다. 거기엔 탁발승의 깨달음은 있지만 가난한 이들의 아픔은 없다.
이집트, 수단, 터키 등 빈한한 국가의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삶을 바쳤던 엠마뉘엘 수녀는 “교회는 재산을 팔고 가난해져야 한다”는 청원서를 교황에게 냈을 만큼 직선적인 언행과 정열을 가졌던 사람. 아흔을 넘겼지만 부당함을 보면 아직도 화가 부글부글 끓어오른다는 그녀의 이런 말은 두고두고 음미해볼 만하다. “나는 패러독스 한가운데에 놓여 있다. 가난이라는 불의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뿌리뽑고 싶을 만큼 나를 분노하게 만드는 이 악이 어떻게 풍요로움의 원천일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그런 음미는 우리 의식과 생활 속에 깃들어 있는 거품을 걷어내는 일과 함께 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가볍게 속삭이는 책이 아니라 존재를 흔들어대는 책, 으르렁거리고 포효하는 책이다. 그러나 그 으르렁거림과 포효는 한없이 고요해 보인다. 그것이 성자(聖者)들의 어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