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골리 단편선
니콜라이 고골리 지음, 오정석 옮김 / 산호와진주 / 2004년 3월
평점 :
품절


 고골리가 그의 단편 「외투」에서 아카키예비치를 묘사할 때, “ 그가 언제 그 관청에 들어가게 되었으며, 누가 그를 그 자리에 앉혔는지 그것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국장이나 과장들은 수없이 갈렸지만, 그는 언제나 같은 자리, 같은 지위에서 여전히 서기라는 직책을 맡고 있었다. 그래서 나중에는 모두들 그가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관리 제복을 입고 이마가 벗어진 기성품 같은 인간이 되어 세상에 태어난 것이기라도 한 것 같이 생각하게끔 되었다”라고 말할 때, 고골리는 과장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지만 그 과장이 부자연스럽게 읽히지는 않는다. 쪼들리는 살림에 외투 하나를 샀다가 도적들에게 외투를 잃고 파란과 곡절을 겪은 끝에 마음의 병을 얻어 죽어간 아카키예비치에 대해 고골리는 장엄한, 그러나 윗트 있는 헌사를 바친다. (왜 그의 윗트가 가볍게 느껴지지 않는가는에 대해서는 고심해 볼 만하다.) “ 아카키 아카키예비치의 유해는 묘지로 실려 나가 매장되었다. 그리고 아카키 아카키예비치가 없어도 페테르스부르크는 그 모양 그대로였다. 마치 그런 인간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이리하여 누구의 흥미도 끌지 못하고, 누구에게도 소중히 여겨지지 못하고, 누구의 비호도 받지 못하고, 흔해 빠진 파리까지 핀으로 꽂아 현미경으로 관찰하는 박물학자의 주의조차 끌어보지 못한 존재 -관청에서의 온갖 조소를 온순히 참아내고 이렇다 할 사업 한 가지 이루지 못한 채 무덤으로 간 존재는 세상에서 영영 사라져 버린 것이다” 고골리는 이렇게 힘 조절의 명수다. 힘있게 정공법으로 밀어부쳐야 할 때와 끌어 당기거나 우회해야 할 때를 적절하게 감지해내는 분별력의 명수. 풍자든 묘사든 적절히 그쳐야 할 때를 아는 것은 말만큼 쉽지 않다.
 아카키예비치라는 러시아 하급 관리를 묘사하고 있는 고골리의 펜은 정확하고 따스하다. <고골리>의 펜은 나에게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 꼼꼼하게 세상을 들여다 보라구. 좋은 웃음은 항상 눈물과 등짝을 맞대고 있는 거라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앵티아 (Science) - 과학에 불어넣는 철학적 상상력
최종덕 지음 / 당대 / 200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연계는 변화무쌍하다. 언제 지진이 닥칠지, 언제 홍수가 닥칠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자연을 예측할 수만 있다면 인간은 자연의 불확실성에서 오는 폐해로부터 벗어날 수가 있을 것이다.

왜 장마가 들고, 왜 태풍이 불고, 왜 지진이 일어나는지, 자연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인간은 자연을 합리적으로 이해해야 했다. 자연현상을 합리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가 다름 아닌 과학이다. 자연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폭풍우나 지진과 같은 자연적 재앙을 예측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합리적인 사유를 통해 자연이 어떻게 변화하는지에 대한 예측 모델을 얻으려고 노력했다.

얼마 전 신문지상에는 생태계와 산불이 어떻게 바뀔 것인가를 시뮬레이션 할 수 있는 컴퓨터 모델이 최초로 개발됐다는 기사가 났다. 이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21세기 동안 미국 서부지역은 겨울철 동안 지금보다 더 습해질 것이며 여름에는 더 더워질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미국의 기후생물학자인 넬슨 박사가 이끈 연구팀이 개발한 대기-식물-토양 시스템 모델을 이용하면 세계 어디에서나 식물 종류에 따른 시뮬레이션이 가능하며 이에 따른 지구 기후변화에 의한 영향도 예측할 수 있다고 한다.

영화 <트위스터>에 나오는 과학자는 거대한 돌개바람인 '토네이도' 안에 '도로시'라고 하는 센서를 투입하여 이 센서가 보내오는 전파신호를 수신하고 분석하여 토네이도가 진행하는 방향을 예측한다. 그러나 분석결과로 얻어진 토네이도의 예측방향은 현실의 토네이도가 진행하는 방향과 100프로 일치한다고 볼 수는 없다.

현실은 매우 복잡한 변수를 가진다. 토네이도가 진행되고 있는 곳이 산림지형일 수도 있고, 도심지형일 수도 있고, 사막 지형일 수도 있으며 늪지형일 수도 있다. 지형 이외에도 토네이도의 진행방향에 영향을 끼치는 변수들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토네이도의 진행방향 예측시스템은 현실에 있는 모든 변수를 고려해서 만들어질 수는 없다.

우선 현실에 있는 모든 변수를 고려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다. 설령 그것이 가능한 일일지라도 현실의 모든 변수를 고려해서 예측시스템을 만들기까지는 너무도 많은 시간과 노동력이 투입되어야 한다. 이것이 문제다. 토네이도로 인한 피해자가 늘어나는데 정확한 예측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 한가하게 시간만 보낼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토네이도의 진행방향에 영향을 주는 현실의 모든 변수를 고려하지 않더라도, 대충의 진행방향이라도 알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급할 때, 선택되어지는 것이 이른바 '이상화(idealization)'의 방법이다.
『시앵티아』는 '과학에 불어넣는 철학적 상상력'이라는 부제(副題)를 달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과학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논리와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이야기하면서 과학은 절대적인 믿음의 체계가 될 수 없음을 강조한다. 그 강조의 핵심에 놓이는 개념이 '이상화'다. '이상화'를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만유인력의 법칙을 예로 든다. 그 대강을 정리해보자.

뉴턴은 두 개의 물체가 서로 끌어당기고 미는 힘의 관계를 제대로 기술하기 위하여 변수로 취해야 할 외부의 인과적 요인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구와 달의 관계방정식을 제대로 만들려면 지구와 달에 미치는 모든 별의 힘들을 상정해야만 했다. 그러나 그러한 상정은 신이라면 몰라도 인간의 이성으로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물체가 두 개 보다 많을 경우, 그들 상호간의 관계를 결정론적 방식으로는 결코 풀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뉴턴은 문제를 풀고자 하는 방정식에 관련된 두 개의 물체만을 고려하고 나머지 물체는 없는 것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었다. 이와 같은 가정을 물리학에서는 '고립화의 상정' 또는 '이상화'라고 말한다. 고립화의 상정 또는 이상화는 자연계의 원래의 모습에서 벗어나는 일이지만, 고립화가 있었기 때문에 근대 자연과학 혁명은 가능하였다.

19세기에 들어오면서 그동안 과학자들 사이에서 가장 큰 논란거리였던 온도의 실체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가 다시 제기되었다. 19세기 이전에도 당시에 이미 많은 이론이 등장했으나, 그 어느 것도 온도를 설명하는 충분한 해답이 되지 못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온도를 설명하기 위하여 분자의 충돌에 의한 압력이라는 새로운 생각이 대두하였다.

그러나 생각은 훌륭하지만 세 개 이상의 물체들 사이의 충돌 내지는 상관관계를 수학적으로 푼다는 것은 아예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당구대의 공이 두 개일 경우와 아홉 개일 경우는 그 예측도에 있어서 비교할 수 없는 차이가 있는 것과 같다. 하물며 23제곱승 개의 분자 수를 가진 분자간의 충동운동을 결정론적 방정식으로 예측한다는 것이 가당키나 하겠는가. 그래서 열열학이 등장했으며 열역학은 이들 사이의 운동을 결정론적 방정식이 아니라 통계적 방식으로 기술하였다.

화학에서 말하는 이상기체(Ideal Gas)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관념에 존재하는 기체다. 현실에는 기체의 운동에 영향을 끼치는 무수한 변수가 존재한다. 그러한 변수들을 고려해서는 기체들의 운동을 예측하는 방정식을 만들어 낼 수가 없다. 이 때 현실에 존재하는 무수한 변수들을 없는 것으로 가정하여 만들어진 것이 이른바 '이상기체 상태방정식'이다. 이 방정식은 영화 <토네이도>에서의 토네이도 '예측방향 시스템'과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현실에 실제로 존재하는 무수한 변수들을 제거해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변수들을 제거해서 만들어진 토네이도 예측방향 시스템은 현실의 토네이도의 진행방향을 정확하게 가르쳐 주지는 않는다. 또한 이상기체 상태방정식도 현실에서의 실제적인 기체의 운동과 정확하게는 일치하지 않는다. 이상기체 상태방정식은 기체들의 운동을 확률적으로 설명해줄 뿐이다. 기체들의 운동을 확률적으로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은 기체의 운동에 관한 이론적인 설명에 오차가 존재할 수 있음을 뜻한다.

과학은 이렇게 오차의 가능성 안에 존재하는 것이지 현실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절대적 객관성 안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은 현실을 빈틈없이 설명해주는 객관적인 체계라고 하는 것이 과학에 대한 우리들의 편견이다.

그러나 세계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세계는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화한다. 과학적 연구가 지닌 특징은 움직이고 변화하는 세계를 고정시켜 움직이거나 변화하지 않는 죽어 있는 세계로 환원시켜야만 설명이 가능하다. 변화하는 세계를 고정시키는 작업이 바로 고립화 작업, 이상화(idealization) 작업이다. 철학에서는 이를 추상화 작업이라고 말하는데, 과학의 자연 관찰은 결국 이렇게 추상화의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신제품을 출시할 때, 앞으로 수요가 얼마나 될지, 신제품 예측수요에 대한 모델을 만들 수도 있고, 앞으로 주가가 어떻게 변할지에 대한 주가변동 예측 모델도 만들어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모델들은 언제 어떤 변수가 생성될지 모른다는 점에서 완벽하게 현실을 설명해줄 수 없다. 예를 들어 주가변동에 있어서도 정확한 예측모델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 주식 전문가들은 과거의 자료를 바탕으로 주가변동 예측모델을 만들겠지만, 누구도 어떤 일이 미래에 일어날지 장담할 수 없다.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르고, 천재지변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더구나 현대세계에 있어서 한 국가의 경제는 고립적으로 진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다른 나라의 정치적 상황이 한 국가에 끼치는 경제적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무슨 수로 다른 나라의 정치적 상황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는 말인가. 결국 인간이 만들어내는 예측모델이란 확률적으로 '한 번 믿어볼 수 있는 것'이지, 결코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과학을 무시할 수만도 없다. 100 퍼센트 정확한 예측력을 가지지 못한다 하더라도 과학은 미래가 어떠하리라는 대강의 밑그림을 만들어 준다. 이렇게 미래를 예측하는 과학 덕분에 우리는 기상예보를 듣고 외출 시에 우산을 준비하기도 한다.

『시앵티아』는 친절한 대중과학 교양도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인식의 대상을 어떤 고정된 실체로 생각하는 우리의 사유방식이 하나의 편견에 지나지 않음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이 소개하는 흥미로운 실험 보고서의 일부를 보자.

10만 마리의 개미무리가 하나의 개미집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면, 그 가운데 7만 마리는 일을 하고 나머지 3만 마리는 일하지 않고 논다. 그래서 일하는 개미 7만 마리와 노는 개미 3만 마리를 분리시켰다. 그러자 이와 동시에 일하는 개미 7만 마리의 소군집 안에서 자동적으로 다시 30퍼센트의 노는 개미가 형성되고, 노는 개미 3만 마리 소군집 안에서 자동적으로 70퍼센트는 다시 일하는 개미가 되었다.

숲 속에 일개미들이 모여 사는 흙더미 개미집이 있다고 할 때, 이 개미집 흙더미 안의 일개미들 사이에는 일을 하지 않고 노는 개미와 일을 하는 개미들이 일정한 비율로 존재한다고 한다. 그런데 그 비율이 고정적으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 실험을 통해 밝혀진 것이다. 이 실험은 놀랄 만한 의미를 던져준다. 어떤 대상의 본질은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상황'과 '관계'에 의해서 형성되는 가변적인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실험을 통해서 저자는 존재는 어떤 고정된 틀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 하에서 만들어진 과학에 대해서 회의적 시선을 던지고 있다.

어쨌든 시시각각 변화를 거듭하고 있는 현실은 매우 다양한 변수를 고려하여 만들어지지 않고, 고립화와 이상화의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과학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지식의 체계라고 할 수는 없다. 과학기술이 우리의 생활에 가져다준 이점들을 향유하되 과학의 논리에 전적으로 끌려가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폴로 13 - [할인행사]
론 하워드 감독, 톰 행크스 외 출연 / 유니버설픽쳐스 / 2000년 1월
평점 :
품절


거대기술이 낳은 비극
  -영화<아폴로 13>에 대한 단상
 
 

1970년 달 탐사선인 아폴로 13호가 발사된다. 그런데 우주선이 발사된 지 3일째 되는 날 문제가 생긴다. 우주선의 산소가 유출되어 이산화탄소가 급증하고 동력이 끊어지는 긴급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지구로부터의 거리는 무려 32만 Km. 이 절체절명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는가에 영화 <아폴로 13>의 초점이 모아진다.
 
달에는 계수나무가 있고 떡방아를 찧는 토기가 있다고 생각한 시절, 농부가 낫질 한 번 잘못했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지 않았다. 파종을 하고 제초를 해야 하는 시기에 게으름을 좀 부렸다고 해도 한해의 농사를 망치지도 않았다. 한 사람의 작은 실수 하나 수용하지 못할 만큼 자연이 속이 좁아터진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원자력발전소의 기술자가 범하는 작은 실수는 예의 언급한 농부의 실수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 파장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이다.
 
20세기 들어 비약적인 성장을 거둔 거대 기술시스템은 우리의 삶의 지형을 몰라보도록 바꾸어 놓고 있다. 전기시스템은 발전 설비를 갖추고 선로망을 통해 전기를 공급하는 전력회사, 공급된 전기를 다양한 형태로 소비할 수 있도록 전자제품들을 생산해내는 가전업체, 발전소에 필요한 화석연료를 공급하는 유조선과 선박회사, 화석연료를 채굴하는 시추선과 이를 정제하는 정유공장 등 소규모 시스템들을 그 속에 포괄하는 거대시스템이다. 호미나 낫을 만드는 대장간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거대한 스케일과 복잡한 체계를 갖춘 것이 이 거대 기술시스템이다. 자정이 훨씬 넘은 시각까지 사람들이 대낮처럼 활동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런 거대시스템의 덕이고, 서울에서 토쿄까지 1시간에 닿을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거대 기술시스템 덕이고, 서울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이와 채팅을 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거대 기술시스템 덕이다.
 
대형기술사고들은 기술시스템의 구성요소에 내재한 '사소한' 문제가 기술시스템 전체의 붕괴로 이어지는 대형사고로 이어지기도 한다. 독일의 사회학자이며 <<위험사회>>의 저자, 울리히 벡은 이러한 상황에 주목하여 현대사회를 위험사회로 명명하기도 하였다. 낫의 자루가 헐거우면 간단히 손보면 그만이지만 원자력 발전설비의 구성요소를 이어주는 이음쇠의 헐거움은 어떤 끔찍한 결과를 야기할지 아무도 모른다.
 
21세기인들에게는 그다지 신통하지 않은 농기구로 보일지는 몰라도 낫과 호미와 같은 농기구의 발명은 인간의 농업생산력의 증진에 분명 지대한 공헌을 했다. 이러한 간단한 농기구가 인류의 생산력에 미친 영향이 지대하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거대 기술시스템이 인간의 생산력에 주는 영향은 상상을 초월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던가. 좋은 일에도 탈이 끼어들 수 있는 법이다. 인간의 기술과 지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하더라도 몇 만분의 일, 몇 억분의 일의 오차마저도 배제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런데 거대 기술시스템을 운영하는 데에서의 인간의 오차는 엄청난 참사를 야기할 수도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그 효용성의 관점에서 거대 기술시스템을 일방적으로 환영하기보다는 그것의 안정성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감독:론 하워드. 주연:톰 행크스. 에드 해리스. 제작:1995년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폰부스 - 할인행사
조엘 슈마허 감독, 콜린 파렐 외 출연 / 20세기폭스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나의 프라이버시는 안전한가
 -영화<폰부스>에 대한 짧은 생각
 
더 이상 핸드폰은 특별한 물건이 아니다. 핸드폰이 만인의 필수품이 된 지는 이미 오래다.  한 조사에 의하면 전 국민 10명 가운데 약 7명이 휴대폰을 갖고 있다고 한다. 핸드폰의 대수는 일반전화의 대수를 이미 초월했다. 일인인(一人一) 핸드폰의 시대도 그다지 멀지 않은 듯싶다.
 
손톱을 정리하고 머리에 염색을 하고 귀를 뚫어 귀걸이를 걸 듯 젊은이들은 요란한 장식으로 핸드폰을 치장한다. 젊은이들이 모이는 곳에는 핸드폰 장식을 파는 장사치들이 즐비하다. 핸드폰과 관련한 제품들은 팬시점의 매출규모를 좌우할 정도다. 
 
<청소년 핸드폰 사용 실태 및 사회학적 고찰〉이라는 거창한 제목이 붙은 논문은 외출 시 휴대폰을 소지하지 않았을 경우, '매우 불안하다' 29%, '대체로 불안하다' 46%로 휴대폰이 없으면 불안하다는 결과가 75.0%로 조사되었다는 내용을 싣고 있다.
 
더 이상 핸드폰은 통화기기가 아니다. 핸드폰으로 음악을 듣고 핸드폰으로 게임을 한다. 뿐인가 핸드폰으로 TV와 동영상을 본다. 위치추적시스템을 이용하면 핸드폰을 소지한 사람이 현재 어디에 있는지 그 장소를 정확히 추적해낼 수 있다. 대체 저 사람이 어떤 일로 그렇게 바쁜지, 어떤 사람들과 사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지가 궁금하다면 휴대폰의 통화내역을 추적해보면 궁금증의 대부분은 해소된다.
 
영화 <폰부스>의 감독 조엘 슈마허는 영화의 첫 장면에서 길거리를 오고가는 사람들의 길거리 통화장면을 보여준다. 길거리는 공적인 장소다. 그러나 그 공적인 장소에 핸드폰이 개입되면 길거리는 공적인 장소로서의 의미가 상실된다. 핸드폰을 든 사람들은 공적인 장소를 걸어가면서도 여전히 사적인 개인으로서 존재한다. 그러나 그들이 사적인 개인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착각이다. 핸드폰을 든 개인은 언제든지 추적당할 수 있으며 그의 통화내역은 언제든지 노출될 위험성을 안고 있다.
 
방송연예 관련잡지 편집장인인 영화 <폰부스>의 주인공 스튜는 이 사실을 명민하게 눈치채고 있다. 그는 은밀하게(?) 사귀는 여배우와 폰부스에서 공중전화로 통화한다. 사적인 통신수단인 핸드폰보다 오히려 공적인 통신수단인 공중전화가 자신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해줄 수 있다는 스튜의 영리한 판단이 그로 하여금 공중전화를 들게 한 것이다. 최첨단 통신기기의 시대에 구시대의 통신수단인 폰부스 속의 공중전화가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더 잘 보호해준다는 이 웃지 못할 역설을 영화는 천연덕스럽게 말해준다.
 
그러나 자신의 은밀한 연인과 폰부스에서 전화를 걸고 나오는 스튜에게 공중전화로 전화가 걸려온다. 여기에서부터 악몽은 시작된다. 전화를 끊으면, 쏴 죽인다는 킬러의 협박, 스튜의 사생활을 훤히 꿰뚫고 있는 킬러는 폰부스에서 나오라며 시비 거는 사람을 쏘아 죽인다. 살인자로 몰리는 스튜, 그리고 대중에게 공개되는 그의 사생활. 영화는 긴박하게 전개된다.
 
첨단문명의 시대에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어떤 위험 속에 놓여있는지를 <폰부스>는 말한다. 문명의 이기(利器)를 사용하는 혹독한 대가를 영화의 주인공 스튜는 고스란히 치러내는 셈이다. 관객들은 남의 일이려니 생각하며 영화를 본다. 과연 그것이 남의 일일까.
 
감독:조엘 슈마허. 출연:콜린 파렐. 포레스트 휘태커, 키퍼 서덜랜드. 제작:2002년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다가스카 - 숫자 색칠 스티커북
예림당 편집부 엮음 / 예림당 / 2005년 6월
평점 :
절판


노예가 되느냐 자유인이 되느냐

   -영화 <마다가스카>에 댜한 단상

영국의 동물행동학자 데즈먼드 모리스는 『인간 동물원(The Human Zoo)』이라는 책에서 비좁은 공간에 갇혀 지내는 동물도 인간처럼 폭력적인 행동을 한다고 지적한다. 야생에서는 멀쩡하던 동물들이 동물원이라고 하는 폐쇄적인 공간에 갇히면 비정상적인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동물원에서는 사육사들이 먹이를 던져주니 애써 사냥을 할 필요도 없으니 그만큼 운동량은 줄어들고, 하품의 횟수만큼 복부에 기름기가 쌓인다. 낮잠도 하품도 하루 이틀이지 따분하고 말 못하는 짐승이지만 지루할 게 분명하다.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바로 이 스트레스가 동물로 하여금 비정상적인 행동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사람도 동물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데즈먼드 모리스의 주장이다. 야생 동물이 갑자기 동물원의 좁은 우리에 갇히면 스트레스를 받아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처럼 인간도 자연 상태를 떠나 사람들이 북적대는 도시라고 하는 '인간동물원'에 갇히면 낙태와 살인이나 자살 등의 비정상적인 행동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런 데즈먼드 모리슨의 주장이 먹히지 않는 공간이 있다. 바로 영화 <마다가스카>의 배경인 뉴욕의 동물원이다. 사자 알렉, 얼룩말 마티, 기린 멜먼, 하마 글로리아는 동물원의 생활이 만족스럽기 그지없다. 그러던 어느 날, 호기심 많은 마티가 그들의 고향 남극으로 탈출기회만을 노리는 정체불명 펭귄 특공대의 꾐에 빠져 야생에 대한 동경을 안고 외출을 시도한다. 알렉스와 친구들은 사라진 마티를 찾기 위해 동물원 밖으로 나가게 되고, 사람들에게 발견된 동물 ‘4총사’는 갑갑한 동물원 탈출을 모의했다는 오해 아닌 오해를 받은 채 아프리카로 향하는 배에 오르게 된다. 아프리카의 ‘마다가스카’가 그들이 도착한 곳이다.
 
그들에게 마다가스카는 자유의 낙원이 아니었다. 그곳은 냉혹한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먹고 먹히는 약육강식’의 세계였다. ‘4총사’는 동물원의 울타리를 벗어나 자유를 얻었지만, 그 자유의 공간은 불안하기 짝이 없는 공간이었다. 시키는 명령에 고분고분 따랐던 동물원의 시절이 더 행복했는지도 모른다. 자기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이 결여된 존재, 설령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그 결정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능력이 결여된 존재들은 오히려 노예의 시절을 그리워하게 된다. 그들을 감금했던 뉴욕의 동물원이 오히려 그리워지는 것이다.
 
에리히 프롬은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통해 나치즘이라고 하는 전체주의가 대두하게 된 원인을 사회 심리학적 측면에서 분석하여 주목을 받았다. 프롬은 자유를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로 구분했다. 소극적 자유는 어떤 속박으로부터의 탈출을 의미하는 것으로 일찍이 중세 이후 서구 사회에서 개인이 획득한 종교적, 정치적, 경제적 자유가 이런 소극적 자유에 해당한다. 외적인 억압이 없는 상황에서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고 실천해갈 수 있는 자유가 적극적 자유다. 소극적 자유를 적극적 자유로 전환해갈 수 없는 인간들은 영화 <마다가스카>의 ‘4총사’들처럼 불안감과 무력감에 휩싸이게 된다. 바로 이런 상황이 나치즘을 낳는 배경이라고 에리히 프롬은 설명한다. 독일의 민중들이 자유에 따르는 불안을 이기지 못하고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는 권력자에게 자신의 자유를 반납하는 데서 나치즘이 대두하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영화 <마다가스카>는 우리에게 말한다. 노예가 되느냐 자유인이 되느냐는 당신에게 달렸다. 진정한 자유를 원한다면 스스로 판단하고 실천할 수 있는 힘을 길러라.
 
감독 : 에릭 다넬, 톰 맥그래츠. 제작 : 미국 DreamWorks , 2005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