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앵티아 (Science) - 과학에 불어넣는 철학적 상상력
최종덕 지음 / 당대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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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계는 변화무쌍하다. 언제 지진이 닥칠지, 언제 홍수가 닥칠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자연을 예측할 수만 있다면 인간은 자연의 불확실성에서 오는 폐해로부터 벗어날 수가 있을 것이다.

왜 장마가 들고, 왜 태풍이 불고, 왜 지진이 일어나는지, 자연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인간은 자연을 합리적으로 이해해야 했다. 자연현상을 합리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가 다름 아닌 과학이다. 자연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폭풍우나 지진과 같은 자연적 재앙을 예측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합리적인 사유를 통해 자연이 어떻게 변화하는지에 대한 예측 모델을 얻으려고 노력했다.

얼마 전 신문지상에는 생태계와 산불이 어떻게 바뀔 것인가를 시뮬레이션 할 수 있는 컴퓨터 모델이 최초로 개발됐다는 기사가 났다. 이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21세기 동안 미국 서부지역은 겨울철 동안 지금보다 더 습해질 것이며 여름에는 더 더워질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미국의 기후생물학자인 넬슨 박사가 이끈 연구팀이 개발한 대기-식물-토양 시스템 모델을 이용하면 세계 어디에서나 식물 종류에 따른 시뮬레이션이 가능하며 이에 따른 지구 기후변화에 의한 영향도 예측할 수 있다고 한다.

영화 <트위스터>에 나오는 과학자는 거대한 돌개바람인 '토네이도' 안에 '도로시'라고 하는 센서를 투입하여 이 센서가 보내오는 전파신호를 수신하고 분석하여 토네이도가 진행하는 방향을 예측한다. 그러나 분석결과로 얻어진 토네이도의 예측방향은 현실의 토네이도가 진행하는 방향과 100프로 일치한다고 볼 수는 없다.

현실은 매우 복잡한 변수를 가진다. 토네이도가 진행되고 있는 곳이 산림지형일 수도 있고, 도심지형일 수도 있고, 사막 지형일 수도 있으며 늪지형일 수도 있다. 지형 이외에도 토네이도의 진행방향에 영향을 끼치는 변수들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토네이도의 진행방향 예측시스템은 현실에 있는 모든 변수를 고려해서 만들어질 수는 없다.

우선 현실에 있는 모든 변수를 고려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다. 설령 그것이 가능한 일일지라도 현실의 모든 변수를 고려해서 예측시스템을 만들기까지는 너무도 많은 시간과 노동력이 투입되어야 한다. 이것이 문제다. 토네이도로 인한 피해자가 늘어나는데 정확한 예측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 한가하게 시간만 보낼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토네이도의 진행방향에 영향을 주는 현실의 모든 변수를 고려하지 않더라도, 대충의 진행방향이라도 알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급할 때, 선택되어지는 것이 이른바 '이상화(idealization)'의 방법이다.
『시앵티아』는 '과학에 불어넣는 철학적 상상력'이라는 부제(副題)를 달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과학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논리와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이야기하면서 과학은 절대적인 믿음의 체계가 될 수 없음을 강조한다. 그 강조의 핵심에 놓이는 개념이 '이상화'다. '이상화'를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만유인력의 법칙을 예로 든다. 그 대강을 정리해보자.

뉴턴은 두 개의 물체가 서로 끌어당기고 미는 힘의 관계를 제대로 기술하기 위하여 변수로 취해야 할 외부의 인과적 요인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구와 달의 관계방정식을 제대로 만들려면 지구와 달에 미치는 모든 별의 힘들을 상정해야만 했다. 그러나 그러한 상정은 신이라면 몰라도 인간의 이성으로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물체가 두 개 보다 많을 경우, 그들 상호간의 관계를 결정론적 방식으로는 결코 풀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뉴턴은 문제를 풀고자 하는 방정식에 관련된 두 개의 물체만을 고려하고 나머지 물체는 없는 것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었다. 이와 같은 가정을 물리학에서는 '고립화의 상정' 또는 '이상화'라고 말한다. 고립화의 상정 또는 이상화는 자연계의 원래의 모습에서 벗어나는 일이지만, 고립화가 있었기 때문에 근대 자연과학 혁명은 가능하였다.

19세기에 들어오면서 그동안 과학자들 사이에서 가장 큰 논란거리였던 온도의 실체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가 다시 제기되었다. 19세기 이전에도 당시에 이미 많은 이론이 등장했으나, 그 어느 것도 온도를 설명하는 충분한 해답이 되지 못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온도를 설명하기 위하여 분자의 충돌에 의한 압력이라는 새로운 생각이 대두하였다.

그러나 생각은 훌륭하지만 세 개 이상의 물체들 사이의 충돌 내지는 상관관계를 수학적으로 푼다는 것은 아예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당구대의 공이 두 개일 경우와 아홉 개일 경우는 그 예측도에 있어서 비교할 수 없는 차이가 있는 것과 같다. 하물며 23제곱승 개의 분자 수를 가진 분자간의 충동운동을 결정론적 방정식으로 예측한다는 것이 가당키나 하겠는가. 그래서 열열학이 등장했으며 열역학은 이들 사이의 운동을 결정론적 방정식이 아니라 통계적 방식으로 기술하였다.

화학에서 말하는 이상기체(Ideal Gas)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관념에 존재하는 기체다. 현실에는 기체의 운동에 영향을 끼치는 무수한 변수가 존재한다. 그러한 변수들을 고려해서는 기체들의 운동을 예측하는 방정식을 만들어 낼 수가 없다. 이 때 현실에 존재하는 무수한 변수들을 없는 것으로 가정하여 만들어진 것이 이른바 '이상기체 상태방정식'이다. 이 방정식은 영화 <토네이도>에서의 토네이도 '예측방향 시스템'과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현실에 실제로 존재하는 무수한 변수들을 제거해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변수들을 제거해서 만들어진 토네이도 예측방향 시스템은 현실의 토네이도의 진행방향을 정확하게 가르쳐 주지는 않는다. 또한 이상기체 상태방정식도 현실에서의 실제적인 기체의 운동과 정확하게는 일치하지 않는다. 이상기체 상태방정식은 기체들의 운동을 확률적으로 설명해줄 뿐이다. 기체들의 운동을 확률적으로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은 기체의 운동에 관한 이론적인 설명에 오차가 존재할 수 있음을 뜻한다.

과학은 이렇게 오차의 가능성 안에 존재하는 것이지 현실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절대적 객관성 안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은 현실을 빈틈없이 설명해주는 객관적인 체계라고 하는 것이 과학에 대한 우리들의 편견이다.

그러나 세계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세계는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화한다. 과학적 연구가 지닌 특징은 움직이고 변화하는 세계를 고정시켜 움직이거나 변화하지 않는 죽어 있는 세계로 환원시켜야만 설명이 가능하다. 변화하는 세계를 고정시키는 작업이 바로 고립화 작업, 이상화(idealization) 작업이다. 철학에서는 이를 추상화 작업이라고 말하는데, 과학의 자연 관찰은 결국 이렇게 추상화의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신제품을 출시할 때, 앞으로 수요가 얼마나 될지, 신제품 예측수요에 대한 모델을 만들 수도 있고, 앞으로 주가가 어떻게 변할지에 대한 주가변동 예측 모델도 만들어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모델들은 언제 어떤 변수가 생성될지 모른다는 점에서 완벽하게 현실을 설명해줄 수 없다. 예를 들어 주가변동에 있어서도 정확한 예측모델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 주식 전문가들은 과거의 자료를 바탕으로 주가변동 예측모델을 만들겠지만, 누구도 어떤 일이 미래에 일어날지 장담할 수 없다.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르고, 천재지변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더구나 현대세계에 있어서 한 국가의 경제는 고립적으로 진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다른 나라의 정치적 상황이 한 국가에 끼치는 경제적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무슨 수로 다른 나라의 정치적 상황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는 말인가. 결국 인간이 만들어내는 예측모델이란 확률적으로 '한 번 믿어볼 수 있는 것'이지, 결코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과학을 무시할 수만도 없다. 100 퍼센트 정확한 예측력을 가지지 못한다 하더라도 과학은 미래가 어떠하리라는 대강의 밑그림을 만들어 준다. 이렇게 미래를 예측하는 과학 덕분에 우리는 기상예보를 듣고 외출 시에 우산을 준비하기도 한다.

『시앵티아』는 친절한 대중과학 교양도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인식의 대상을 어떤 고정된 실체로 생각하는 우리의 사유방식이 하나의 편견에 지나지 않음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이 소개하는 흥미로운 실험 보고서의 일부를 보자.

10만 마리의 개미무리가 하나의 개미집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면, 그 가운데 7만 마리는 일을 하고 나머지 3만 마리는 일하지 않고 논다. 그래서 일하는 개미 7만 마리와 노는 개미 3만 마리를 분리시켰다. 그러자 이와 동시에 일하는 개미 7만 마리의 소군집 안에서 자동적으로 다시 30퍼센트의 노는 개미가 형성되고, 노는 개미 3만 마리 소군집 안에서 자동적으로 70퍼센트는 다시 일하는 개미가 되었다.

숲 속에 일개미들이 모여 사는 흙더미 개미집이 있다고 할 때, 이 개미집 흙더미 안의 일개미들 사이에는 일을 하지 않고 노는 개미와 일을 하는 개미들이 일정한 비율로 존재한다고 한다. 그런데 그 비율이 고정적으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 실험을 통해 밝혀진 것이다. 이 실험은 놀랄 만한 의미를 던져준다. 어떤 대상의 본질은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상황'과 '관계'에 의해서 형성되는 가변적인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실험을 통해서 저자는 존재는 어떤 고정된 틀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 하에서 만들어진 과학에 대해서 회의적 시선을 던지고 있다.

어쨌든 시시각각 변화를 거듭하고 있는 현실은 매우 다양한 변수를 고려하여 만들어지지 않고, 고립화와 이상화의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과학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지식의 체계라고 할 수는 없다. 과학기술이 우리의 생활에 가져다준 이점들을 향유하되 과학의 논리에 전적으로 끌려가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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