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 (양장)
로버트 뉴튼 펙 지음, 김옥수 옮김, 고성원 그림 / 사계절 / 2005년 6월
평점 :
절판


서러움과 정겨움의 짬뽕밥 같은 소설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날/ 사계절/ 로버트 뉴턴 펙  


초등학교 6학년 때였던가. 막내이모부께서는 폐병으로 돌아가시기 전에 내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눈자위가 퀭하고 볼이 움푹 들어간 30대 후반의 이모부의 말씀을 나는 지금도 분명히 기억한다. "보일아, 너는 이 다음에 꼭 의사가 되어라......" 의사가 되어서 평생 병으로 고생한 사람들을 고쳐달라는 말씀이셨다.

의대에 갈 성적도 안 되었지만 정작 나는 의사가 싫었다. 두통, 치통, 복통, 요통, 생리통 관절통... 매일 같이 찡그린 사람들의 얼굴을 보아야만 한다는 것도 고역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툭하면 자리에 드러눕는 어머니 때문이었는지 나는 일단 고통의 표정 자체가 싫었다. 그런 표정들을 매일 보아야만 하는 의사라는 직업, 아무리 돈을 많이 번다고 해도 끌리지 않았다. 내가 보고 싶은 것은 환한 표정이었다. 자글자글 끓고 있는 떡볶이를 기다리는 아이들의 얼굴에서 읽을 수 있는 그런 표정.

학교는 환한 얼굴의 집합소다. 갖은 표정의 미소가 다 있는 곳이 학교다. 하루도 웃음이 그치질 않는다. 웃기는(?) 선생 때문이 아니다. 십대의 나이가 돌멩이만 굴러가도 까르르르 웃는 나이다. 물론 모든 아이들의 표정에서 밝음을 읽을 수는 없지만 대체적으로 아이들의 얼굴은 환하다. 일등이나 꼴등이나 웃음 앞에서는 평등하다. 툭하면 재미난 이야기를 해달라고 아이들은 성화다. 수업에 들어가 "책 덮어라, 오늘은 재미난 이야기해줄게."하면 아이들은 책상을 쿵쾅 치면서 난리를 친다. 그런 그들의 얼굴에 회색빛은 없다.

옛날에 어떤 왕에게 요술 거울이 생겼다. 무슨 소원이든 다 들어주는 거울이지. 그래서 평소에 자신의 물건(?)이 부실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왕은 거울에게 소원을 빌었다. 거울아, 거울아 나의 물건을 땅에 닿게 해다오. 왕은 대물을 원했던 거다. 그런데 왕의 소원을 비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왕의 다리가 줄어들면서 그의 물건이 땅에 닿은 것이다. 요술거울이 소원을 들어준 거지......이 대목에서 아이들은 자지러진다. 팝콘처럼 피어나는 아이들의 웃음! 부모가 이혼을 했는지, 아버지가 실직을 했는지, 할머니가 불치의 병에 걸렸는지 활짝 웃는 그들의 웃음엔 그늘이 없다.

그들이라 해서 왜 걱정이 없겠는가. 성적은 자꾸 떨어지고,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공부는 하기 싫고, 인터넷에만 손이 가고 마음이 쏠리고, 책 한 권 제대로 읽지 않는 자신이 한심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야한 사진과 야한 동영상으로 밤을 새우기도 하고, 부모님들은 아들이 수도권에 있는 대학에 반드시 갈 거라고 기대하시지만 지금 성적으로는 지방대학에 원서 내기도 힘들고...

그러나 지금 운동장에서 농구를 하는 녀석들의 얼굴에 그늘은 없다. 볼을 다투며 공중으로 솟아오르는 그들의 생동, 선생님에게 꾸지람을 듣고, 볼기를 맞은 뒷날, 화도 제대로 안 풀렸을 텐데 속도 없이 재잘거리는 그들의 발랄함, 바로 그런 생기로 학교는 언제나 요지경 속이다.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사계절, 로버트 뉴턴 펙)의 주인공 로버트는 돼지 한 마리를 이웃으로부터 얻게 된다. 로버트는 돼지(이름은 피기다)가 좋아서 죽을 지경이다. 피기에게 말을 걸기도 하고, 보듬어도 보고, 목욕을 시켜 피기와 뒹굴고 때로는 피기의 집에서 잠도 잔다. 소년이 주는 사랑뿐만 아니라 뭐든 잘 먹는 우리의 돼지, 피기는 무럭무럭 커간다. 그러나 어떤 절절한 사랑도 끝은 있는 법, 피기는 아기돼지를 가질 수 없다. 결국 도살을 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 가난한 처지에 새끼도 낳지 못하고 음식만 축내는 돼지를 계속 둘 수도 없고, 도살업을 하는 아버지는 피기를 죽일 수밖에 없다. 피기를 죽이지 말라고 울면서 매달리는 아들과의 갈등은 피할 수 없다.

아버지와 아들과의 갈등이 얼마나 화해로운 결말을 보여줄 수 있는가에 이 소설을 읽는 감동과 재미가 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어떤 존재이어야 하는가, 아들의 영혼에 스밀 수 있는 아버지는 어떤 아버지인가를 책은 오래 생각하게 한다.

소설의 투명하고 담담한 서술은 독서의 속도를 늦추지 않는다. 그러나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이나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 이상의 감동이 있다. 이런 소설에 눈물을 보이는 독자들이 있다면 부끄러워하지 일이다. 무감동은 강함과 의연함의 징표일 수도 있지만 둔감함의 지표일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세상은 웃음만으로는 부족하다. 돌멩이만 굴러도 까르르 웃는다는 십대이지만 인형이 아닌 바에야 웃음으로만 일관할 수는 없다. 때론 슬픔도 있어야겠고 한숨도 좀 있어야겠다. 웃음과 슬픔의 비빔밥, 서러움과 정겨움의 짬뽕밥을 먹으며 삶의 의미를 곰곰 되새기는 일은 쓸쓸하지만 참으로 값진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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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11-11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막 땡기네요.
리뷰 너무 재밌게 읽었습니다.
음악도 신나고요.^^

감각의 박물학 2005-11-11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는 책이랍니다
 

가난한 사람들일수록 현실의 고통이 깊다. 아이들에게 과자 한번 못 사주는 부모의 마음, 병든 어머니를 제대로 치료해드리지 못하는 자식의 마음, 자식의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어버이의 마음을 생각해보라. 안분지족安分知足, 가난을 편하게 여기고 족함을 알라고 했지만 가난은 관념이 아니다. 그것은 쓰라린 현실이요 아픔이다. 현실의 가난은 결코 미화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더구나 의식주를 해결하지 못하는 절대의 빈곤 앞에서는 당장 한줌의 쌀이 시급한 것이지 성인들의 말씀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병이 깊을수록 회복에 대한 갈망도 커지듯 현실의 고통과 가난이 깊을수록 판타지의 공간에 대한 갈망도 커간다. 판타지는 가난이 꾸는 꿈이다. 없는 것(재물, 빵과 행복 등)을 있게 만들고, 있는 것(배고픔, 질병, 불행)을 없게 만드는 것, 바로 그것이 판타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판타지에는 가난한 자의 절실한 꿈이 없다. 이런 현실에서 가난을 음미해 볼 수 있는 책을 찾아보자. 괭이부리말 아이들은 인천의 한 빈민지역인 '괭이부리말'이라는 곳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소설화한 것이다. 부모없이 자라는 불쌍한 고아들, 남들로부터 소외된 이들에게서 진실한 삶을 배우게 된다. 부모님의 가출로 동생과 둘이 사는 동준과 동수, 쌍둥이자매 숙자와 숙희, 아버지의 매질에 못이겨 집을 나온 명환, 이들은 모두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 인천 만석동 달동네 아이들이다. 그들은 사람의 따듯한 정을 그리워하는 소외받은 인생을 살지만 그들 나름대로 꿈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완고한 마음을 녹여주는 영호와 명희. 그들을 통해서 사랑이 어떻게 희망을 만들 수 있는지를 배우게 된다. 프란시스코의 나비의 작가는 실제로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경력을 갖고 있다. 멕시코의 작은 마을에서 살던 꼬마 판치토의 가족은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국경을 몰래 넘어 캘리포니아로 간다. 판치토 가족은 미국에서 불법 체류자 신분으로 목화와 포도, 딸기수확을 하며 유랑생활을 한다. 텐트촌, 오두막, 창고 등지에서 생활하며 끊임없이 이동을 해야만 한다. 힘겨운 삶이다. 그럴수록 판치토와 그의 형제들은 서로돕고 사랑한다. 너무 작아 일하러 나갈 수 없어 혼자 남아 목화를 따던 판치토는 목화의 무게를 더 나가게 하기 위해 목화더미에 흙을 섞는다. 이런 판치토에게 양심을 속이는 일은 나쁜 짓이라며 꾸짖는 아버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동생이 죽을 고비에 처했을 때 간절히 기도하는 가족들의 모습, 삶이 각박해져도 유머를 잃지 않는 판치토의 가족들은 가난 속에서도 따뜻한 인간미와 유머를 보여준다. 돼지가 한마리도 죽지 않던 날은 가난하지만 선량하고 성실한 아버지의 삶이 아들의 인생에 얼마나 소중한 지침이 되는지를 말해주는 책이다. 가난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온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 주인공 로버트는 아버지가 많은 걸 가졌던 사람임을 깨닫는다. 따뜻한 이웃이 있었고, 성실한 삶이 있었고, 자기 몸을 뉘일 땅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소년은 아픔을 딛고 홀로 일어서 아버지가 감당해왔던 삶의 무게를 져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 가난했지만 아들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했던 아버지는 진정으로 아들에게 커다란 유산을 남긴 것이다. 과연 아버지가 아들에게 남겨야 할 것은 무엇인가를 이 책을 통하여 생각해보자. 고통이 없이는 얻는 것도 없다는 속담도 있다. 가난이 어떻게 인간성을 고양시켜주는지, 가난이 어째서 형제애를 꽃피울 수 있는 토양이 되는지, 소비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청소년들이 가난의 의미를 제대로 알 기회가 없다면 그들에게 가난의 의미를 알릴 의무는 문학에 있다. 궁핍을 소재로 한 문학은 한 시대의 유행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김보일/ 배문고등학교 교사, 출판인회의 이달의 책 선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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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재단사 졸리 벨랭이 실수로 테레빈유를 식탁에 쏟았는데, 그 부분의 얼룩이 말끔하게 씻겨나간 것을 보고 드라이클리닝을 발견했다는데 그의 식탁에서는 아무것도 쏟아진 것이 없다. 아무것도 발명하는 것 없이 그는 우걱우걱 하루의 식량을 목구멍 깊숙이 밀어 넣는다. 얼룩을 지울 만한 어떤 강력한 액체도 그의 식탁에는 없다. 촛불은 제 스스로의 격정에 몸을 섞으며 타오르고, 물고기들은 몇 시간 째 아무런 표정 없이 지느러미를 흔든다. 술을 마실까 하다가 물을 마시고 그는 컵 속에 자라나는 양파 뿌리를 본다. 그의 슬픔이 조금씩 자라나는 모습을 그는 오래 지켜본다. 물고기들의 지느러미에도 인기척이 사라진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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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친구가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스킨헤드에 가죽잠바를 입었다. 피어싱은 기본. 목걸이 팔찌 주렁주렁 문신은 더덕더덕. 그 모습이 가관이라고 생각한 길 가던 행인이 묻는다. 당신 복장이 뭐요? 그러자 이 친구 왈 <이건 다양성추구협회의 유니폼입니다> 크하, 유니폼이라, 제복이라. 촌철살인의 풍자다. 십수년 전에 문장사에서 펴낸 죠니 하트의 <원시인 BC>라는 애니매이션의 한 대목이다. (이 책을 구해주시는 분께는 당시 정가의 10배를 쳐드리겠습니다 *^--^*)

신해철이 다양성추구협회의 유니폼은 아니고 그보다는 훨씬 더 온건한 복장, 후드티를 입고 <100분토론>에 나온 걸 두고 이죽거리는 양반들이 있나보다. 딴따라에게 정장을 바라는 이 문화적 후진성을 웃어냐 하나 말아야 하나. 한 국가에는 다양한 문화층이 있고 각개의 문화층에는 제 집단을 대표하는 상징이나 표지가 있게 마련이다. 민노당의 노타이, 연예인의 턱수염이 그것이다. 장동건이 공식석상에 턱수염을 깎지 않았다고 해서 이 따샤 너는 공석에서 턱수염도 안 깎느냐고 따지면 되겠나. 딴따라에게는 폼이 밥줄이고 생명 아닌가. 윤도현의 문신은 나도 락커이고 싶다는 그의 간절한 소망의 표현은 아닌가. 락커라면 물론 좀더 위악적인 포즈가 필요하다. 자본에 대한 어떤 저항의 난폭한 제스쳐 말이다. 그런데 윤도현에게는 폼은 있어도 저항의 불온함은 없다. 사실 그는 노래 잘하는 엔터테이너로 족하다. 라커는 희망사항이겠지. 그러니까 의상은 정체성 그 자체가 아니라 한 사람이 '희망하는 정체성'일 뿐이다. 지금은 그렇지 않더라도 장차 이러이러하고 싶다는 희망사항이 나를 만들어 가듯 옷도 사람을 만든다는 거다. 김기덕은 야구모자를 쓰고 칸느의 시상식에 올랐다. 김기덕은 야구모자 그 자체다. 폼이건 뭐건 상관없다. 벗으면 자연인 김기덕이요, 쓰면 영화감독 김기덕이다. 앙드레김은 국회의 청문회에 예의 그 화이트럭셔리자켓을 입고 나왔다. 멋진 김복남씨. 그런 문화적 배짱이 있어 대한민국은 그런 대로 살만한 나라다. 앙드레김의 정장, 생각만 해도 우습다. 국회를 코미디장으로 만들지 않은 앙드레김에게 더블클릭!!!! 사자머리 선글라스 전인권에게도 더블클릭(그래도 당신 이은주 발언은 너무 한 거야. 침묵하면 어디가 덧나?) EX는 노래한다. ..예쁘게 봐주세요......그래 예쁘게 봐주려면 무엇을 못 봐주나. 애정이 문제지.

강아지하품이란 말속에는 세상 평화가 다 들어있다. 하품이란 단어의 저 무방비성, 강아지란 단어의 저 천진난만함, 그 둘의 절묘한 배합이 이루어내는 고즈넉함. 강아지하품! 내가 말해놓고도 참으로 그럴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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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11-08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장이 어쩌고들좀 그만 했으면 좋겠어요
박정희가 장발이나 미니스커트 단속하지 않고
복지문제나 환경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면 지금 훨 괜찮은 나라가 되었을지도
모를텐데. 삼십년전이나 지금이나 꼴통들 머릿통은 안바뀌는군요

감각의 박물학 2005-11-09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 말입니다.....<슬픔이여 안녕>을 쓴 사강은 마약으로 구속되었을 때 기자들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이렇게 이야기했죠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그 쯤 되어야 할 터인데......
 
칭기스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
잭 웨더포드 지음, 정영목 옮김 / 사계절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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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과 화해의 지혜를 말하는 칭기스 칸
칭기스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잭 웨더포드/사계절 2005

자신이 발 딛고 서 있는 곳을 중심축으로 해서 우주가 돈다는 천동설적 사고방식의 연장선상에 오리엔탈리즘이 있었다. 서양을 중심축으로 해서 세계가 운행된다는 오리엔탈리즘에 있어서 중국은 항상 타자였고 변방이었다. 세계의 가운데[中]가 '중국'이라는 중화주의에 있어서도 오랑캐는 또 하나의 타자였고 변방이었던 셈이다. 세계사의 펜대를 쥔 자들에게 몽골과 한국, 베트남과 태국은 안중에도 없었다.

인류학자이자 부족민 연구 전문가인 젝 웨더포드는 옛 몽골제국의 영토를 15년 간 현지답사한 내용과 19세기에 발견된 뒤 1982년 영어로 처음 번역된 몽골왕가의 비밀 서책인 ‘몽골비사’의 기록을 토대로 칭기스칸과 후손들의 일대기를 복원했다. 『칭기스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가 그것이다. 딱딱한 이론서가 아니라 흥미진진한 역사소설로 읽히는 이 책은 칭기스칸에 대한 저간의 오해를 말끔하게 풀어준다.

호전적이고 잔인하다, 미개하고 야만적이다라는 것이 칭기스칸과 몽골에 대한 선입견이었다. 그러나 책이 전하는 칭기스칸은 이런 기록들을 무색하게 한다. 몽골군은 적을 고문하거나, 신체를 절단하거나, 불구로 만들지는 않았다. 이에 비해 동로마제국의 황제 바실리우스는 1014년 불가리아인을 물리쳤을 때, 1만 5천명의 불가리아인 전쟁포로를 장님으로 만들었다. 또 기독교 십자군은 1098년 안티오크, 1099년 예루살렘을 점령했을 때 단지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두 죽였다. 몽골은 잔인하다는 세간의 평가가 터무니없는 억측에 지나지 않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나는 당신이 말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당신의 의견을 말할 권리를 위해서는 죽도록 싸울 것이다."라고 했던 계몽주의자 볼테르조차 이쪽은 문명이요, 저쪽은 야만이라는 유럽중심적 사고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는 희곡 「중국의 고아」에서 "오만하게 왕들의 목을 짓밟은, 파괴적인 압제자"라고 칭기스칸을 묘사했다. 그가 말하는 관용의 정신, 이른바 '똘레랑스'도 몽골에 와서는 온 데 간 데 없다. 이성의 빛으로 무지몽매함을 타파해야 한다는 계몽주의는 야만족들을 문명화시켜야 한다는 명분을 내거는 제국주의와 짝이었음을 상기할 때 계몽주의자 볼테르의 눈에는 몽골은 계도되고 훈육되어야 할 야만스러운 타자에 불과했다.

그러나 몽골인은 문명을 교류시키고 융합시켰다. 오랜 세월 단절됐던 실크로드는 완벽히 복원돼 풍요로운 '자유무역지대'가 됐다. 칭기스칸의 군대는 암흑 속에 잠들어 있던 유럽을 근세의 밝은 빛으로 이끌어냈다. 몽매 속에 잠자던 유럽이 몽골의 말발굽 아래 깨어났던 것이다.

책이 말하는 칭기스칸은 보편주의자요 근대주의자였다. 혈연주의를 타파하고 사람을 능력과 재능에 의해 평가한 것을 책은 칭기스칸의 핵심적 업적으로 꼽는다.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할 때는 칸의 독단이 아닌 합의와 절차에 따라 결정했다. 일종의 제국의회인 '코릴타'가 이를 잘 말해준다. 국가의 중요 정책, 특히 지도자를 뽑는 것과 전쟁의 결정은 몇 달이고 모여서 회의를 했다. 칭기스칸은 대내적으로 각종 차별을 철폐하고 거의 균등한 분배체계를 갖추게 했다. 그는 점령한 부족민들을 노예가 아니라 완전한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정책을 시행했다.

그는 최초로 국제법을 만들었으며, 법의 지배 국가 원리로 삼았다. 칭기스칸은 특히 인치가 아닌 법치의 원리를 <대자사크:현재 알려진 몽골 최고(最古)의 성문법전>라는 법으로 명문화한다. 통치자를 법에 복속시킨 것은 그때까지 어떤 문명도 이루지 못했던 업적이었다. 선거와 공립학교와 우편제도와 대포 따위의 근대적 문물도 몽골 제국 안에서 태어났다.

'몽골은 상인을 강도보다 겨우 한 단계 높은 지위에 놓는 중국의 문화적 편견을 정면으로 공격하여 상인의 지위를 모든 종교와 직업보다 높은 자리로 격상했으며 중국 전통사회에서 가장 높은 지위를 차지했던 유교학자들을 아홉 번째 지위로 낮추었는데 이는 거지보다는 높지만 매춘부보다는 하나 낮은 등급이었다'는 책의 구절은 몽골인이 얼마나 실용성을 중시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실용성을 중시한 몽골은 문화를 휴대가능한 형태로 바꾸었다. 단순히 물자를 교환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새로운 생산물을 사용하려면 지식체계 전체를 옮겨와야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몽골인은 의학지식의 교류를 장려하기 위해 중국의 병원이나 훈련기관에 중국의사만이 아니라 인도와 중동의사도 고용했다.

속도를 중시했던 이 유목민족들은 군사장비를 경량화하고, 군대식량의 무게를 줄였다. 당시 유럽 기사단의 갑옷 및 무기의 무게는 70㎏이지만 유목민들의 것은 7㎏밖에 나가지 않았다. 가벼운 갑옷, 가벼운 화살 등 여러 신소재들을 개발했다. 소 한 마리를 말려 만든 육포는 양의 방광에 모두 들어가 병사 1인의 1년 식량이 되었다. 바로 이러한 기동성이 칭기스 칸으로 하여금 불과 25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에 로마군이 400년 동안 정복한 것보다 더 많은 땅을 정복하게 했다.

역참제와 지폐의 보급은 속도와 실용성을 중시하는 유목민의 의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지폐는 당시에 사용되던 주화에 비해 월등하게 가벼워 이동에 편리했다. 이 지폐가 교역을 활성화시킨 것은 물론이다. 역참제는 지금으로 치면 정보 인프라이자 물류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역참의 형태는 촘촘한 거미줄 모양 그물을 연상하면 된다. 수도를 중심으로 각 지방으로 뻗어나가는 주요 도로에 40~50킬로미터마다 역참이 설치됐다. 일종의 말 정거장이다. 그리고 그 사이 5킬로미터마다 칸의 소식을 전달하는 파발이 살았다. 파발들은 전속력으로 질주하며 5킬로미터만 내달려 만반의 채비를 갖추고 기다리는 다른 파발에게 메시지를 건넸다. 

칭기스칸의 제국경영에서 가장 마음을 끄는 대목은 당시 몽골제국이 혼혈 잡종 사회, 완벽하게 열린 사회였다는 점이다. 칭기스칸은 이슬람교도, 그리스도교도, 불교도 등 수많은 이질적 민족과 종교,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의 사람들을 끌어안았다. 기독교와 이슬람교와 불교의 원탁회의가 세계 최초로 열린 것도 몽골의 초원에서였다. 거기엔 어떤 차별도 없었다. 몽골은 정복당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언어나 종교를 강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몽골인이 아닌 사람들은 몽골어를 배우는 것을 금지했으며, 외래작물의 경작을 강요하지도 않았고 주민의 집단적인 생활방식을 바꾸라고 요구하지도 않았다.

혹자들은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인터넷, 디지털, 벤처, 세계 경영, 지구공동체, 연방제, 지방자치, 다국적기업 등의 개념들이 유목민족의 특성에서 기인한다고 호들갑을 떤다. 칭기스칸의 경제 정책은 오늘날 세계무역협약인 GATT의 원본이고 그의 통신수단인 역참제는 오늘날 세계를 하나로 잇는 인터넷 네트워크의 원형이었다는 것이다. 칭기스칸에 대한 지나친 신화화가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자기방어적·국수주의적 이데올로기가 아닌가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 이곳이다. 칭기스칸, 그를 본받아서 세계로 뻗어가자고 외치지 말고 그를 본받아 타자를 끌어안자고 말하는 상생과 화해의 지혜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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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2-06 1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각의 박물학 2006-10-23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