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친구가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스킨헤드에 가죽잠바를 입었다. 피어싱은 기본. 목걸이 팔찌 주렁주렁 문신은 더덕더덕. 그 모습이 가관이라고 생각한 길 가던 행인이 묻는다. 당신 복장이 뭐요? 그러자 이 친구 왈 <이건 다양성추구협회의 유니폼입니다> 크하, 유니폼이라, 제복이라. 촌철살인의 풍자다. 십수년 전에 문장사에서 펴낸 죠니 하트의 <원시인 BC>라는 애니매이션의 한 대목이다. (이 책을 구해주시는 분께는 당시 정가의 10배를 쳐드리겠습니다 *^--^*)

신해철이 다양성추구협회의 유니폼은 아니고 그보다는 훨씬 더 온건한 복장, 후드티를 입고 <100분토론>에 나온 걸 두고 이죽거리는 양반들이 있나보다. 딴따라에게 정장을 바라는 이 문화적 후진성을 웃어냐 하나 말아야 하나. 한 국가에는 다양한 문화층이 있고 각개의 문화층에는 제 집단을 대표하는 상징이나 표지가 있게 마련이다. 민노당의 노타이, 연예인의 턱수염이 그것이다. 장동건이 공식석상에 턱수염을 깎지 않았다고 해서 이 따샤 너는 공석에서 턱수염도 안 깎느냐고 따지면 되겠나. 딴따라에게는 폼이 밥줄이고 생명 아닌가. 윤도현의 문신은 나도 락커이고 싶다는 그의 간절한 소망의 표현은 아닌가. 락커라면 물론 좀더 위악적인 포즈가 필요하다. 자본에 대한 어떤 저항의 난폭한 제스쳐 말이다. 그런데 윤도현에게는 폼은 있어도 저항의 불온함은 없다. 사실 그는 노래 잘하는 엔터테이너로 족하다. 라커는 희망사항이겠지. 그러니까 의상은 정체성 그 자체가 아니라 한 사람이 '희망하는 정체성'일 뿐이다. 지금은 그렇지 않더라도 장차 이러이러하고 싶다는 희망사항이 나를 만들어 가듯 옷도 사람을 만든다는 거다. 김기덕은 야구모자를 쓰고 칸느의 시상식에 올랐다. 김기덕은 야구모자 그 자체다. 폼이건 뭐건 상관없다. 벗으면 자연인 김기덕이요, 쓰면 영화감독 김기덕이다. 앙드레김은 국회의 청문회에 예의 그 화이트럭셔리자켓을 입고 나왔다. 멋진 김복남씨. 그런 문화적 배짱이 있어 대한민국은 그런 대로 살만한 나라다. 앙드레김의 정장, 생각만 해도 우습다. 국회를 코미디장으로 만들지 않은 앙드레김에게 더블클릭!!!! 사자머리 선글라스 전인권에게도 더블클릭(그래도 당신 이은주 발언은 너무 한 거야. 침묵하면 어디가 덧나?) EX는 노래한다. ..예쁘게 봐주세요......그래 예쁘게 봐주려면 무엇을 못 봐주나. 애정이 문제지.

강아지하품이란 말속에는 세상 평화가 다 들어있다. 하품이란 단어의 저 무방비성, 강아지란 단어의 저 천진난만함, 그 둘의 절묘한 배합이 이루어내는 고즈넉함. 강아지하품! 내가 말해놓고도 참으로 그럴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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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11-08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장이 어쩌고들좀 그만 했으면 좋겠어요
박정희가 장발이나 미니스커트 단속하지 않고
복지문제나 환경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면 지금 훨 괜찮은 나라가 되었을지도
모를텐데. 삼십년전이나 지금이나 꼴통들 머릿통은 안바뀌는군요

감각의 박물학 2005-11-09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 말입니다.....<슬픔이여 안녕>을 쓴 사강은 마약으로 구속되었을 때 기자들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이렇게 이야기했죠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그 쯤 되어야 할 터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