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보고 싶은 영화들이 잔뜩이다.
이미 본 <천상의 소녀>와 <메종 드 히미코>를 빼고, 볼 예정인 영화들.



 The Child

 감독 : 장-피에르 다르덴, 뤽 다르덴

 시놉시스
 좀도둑질과 구걸로 살고 있는 20세의 브뤼노와 18세의 소니아라는 젊은 연인의 러브 스토리이자 아버지 되기에 대한 이야기다.
 소니아의 임신으로 아들이 생겼지만, 아기의 소중함이나 그에 대한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철없는 브뤼노는 아기를 암시장에 팔아버리고 뒤늦게 그를 되찾으려 하면서 고난을 당하게 된다. 범죄의 가능성을 가진 미약한 인간의 고통을 묘사하면서도 그가 파멸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다르덴 형제의 연출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떠올리게 하며 진한 감동을 자아낸다.

 다르덴 형제의 작품으로는 <아들>을 본 적이 있다. (http://www.aladin.co.kr/blog/mypaper/529163) 그땐 물론 이들의 이름도 모른 채 본 거지만. 아무튼 상당히 독특한 작품이었고, 인상적이었다. <더 차일드> 소개글에 <아들>이 언급되어 있어서 알아봤다. 내용도 흥미롭고, 감독들도 믿을만하다는 생각. 이번 토요일 쯤 볼 예정.


 Me and You and Everyone

 감독 : 미란다 줄라이

 시놉시스
 엉뚱 명랑한 비디오 아티스트 크리스틴은 신발가게에서 일하는 리처드에게 호감을 느껴 적극적으로 접근하지만, 갓 이혼 당해 패닉 상태에 빠진 리처드는 그녀의 갑작스런 호의를 받아들일만한 여유가 없다. 크리스틴과 리처드가 어설프고 서투르게 새로운 사랑을 향해 조심조심 다가가는 동안 리처드의 십대 아들 피터는 성적 호기심이 가득한 동네 소녀 헤더와 레베카의 오럴섹스 경쟁에 실험 대상이 되기를 자처하고, 여섯 살 난 둘째 아들 로비는 인터넷 성인 채팅방에서 수위를 넘는 과감한 대화로 건너편 상대를 자극한다. 이에 로비의 채팅 상대인 외로움에 사무친 40대 커리어우먼 낸시는 로비를 완벽한 섹시가이로 착각하고 일회용 섹스를 제안해 기대에 부풀어 약속장소에 나가는데 과연 이들의 만남은 어떻게 될까..?

 지난 주말 친구와 영화를 고르면서 목록에 올렸었는데, 시간이 안 맞았다. 하이퍼텍 나다는...좀 멀다... 쩝. 미란다 줄라이의 인터뷰를 보니 보고 싶은 맘이 더 강해진다. (인터뷰는 요기  http://www.aladin.co.kr/blog/mypaper/813022)


 Time to Leave

 감독 : 프랑소와 오종

 개봉일 : 2월 9일

 시놉시스
 젊고 유능한 패션사진작가 로맹(멜빌 푸포)은 어느 날 갑자기 말기 암이라는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
 앞으로 그에게 남은 시간은 3개월. 가족과 애인에게도 자신의 죽음을 알리지 않은 채, 그들과의 마지막 만남을 사진으로 담는 로맹.
 그가 위안받을 수 있는 대상은 오직 한 사람, 자신과 마찬가지로 인생의 종착역을 향해 여행하고 있는 할머니(잔느 모로)뿐이다.
 그러던 어느날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자니(발레리아 브뤼니-떼데스키)를 만난 로맹은 그녀로부터 아이를 갖게 해달라는 제안을 받게 되는데…

 프랑소와 오종의 신작. 프랑소와 오종과는 어째 연이 잘 닿질 않는다. <8명의 여인들>이나 <스위밍 풀>도 보고 싶었는데 다 놓쳐버렸다. 이번에는 꼭!


 박치기

 감독 : 이즈츠 카즈유키

 개봉일 : 2월 14일

 시놉시스
 1968년 교토, 히가시고 학생들과 조선고 학생들 사이에는 바람 잘 날이 없다. 연일 치고받는 싸움이 계속 되는 가운데, 코우스케(시오야 슈운)는 선생님의 명령으로 조선고에 친선축구시합을 제안하러 가게 된다.
그곳에서 코우스케는 플룻을 부는 청순하고 예쁜 경자(사와지리 에리카)를 만나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경자에게 다가가기 위해 사카자키(오다기리 죠)로부터 금지곡 ‘임진강’을 배우고 한국어를 공부하는 코우스케.
 코우스케가 용기를 내어 경자에게 한발씩 다가서는 동안, 두 학교 학생들간의 싸움은 더욱 격렬해진다. 인근의 일본고등학교 학생들까지 가담하게 되면서 싸움은 극으로 치달아가는데, 그 와중에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이 터지고 만다.
 과연 조선 학생들과 일본 학생들 사이에 평화는 찾아올 수 있을까? 코우스케는 경자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까?

<메종 드 히미코>를 보러 갔을 때 예고편을 봤다. 어설픈 말투로 "이것이 박치기다!"라는 대사가 나왔다. 키네마 준보에서 2005년 베스트로 꼽았다는 작품. <메종 드 히미코>의 꽃미남 오다기리 죠가 전혀 안꽃미남스럽게 등장한다.


 Broceback Mountain

 감독 : 이안

 개봉일 : 3월 초

 시놉시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때문에 고통스러웠으나 그 사랑 때문에 또한 행복했던 두 사람, 그들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러브스토리.
 눈부신 만년설로 뒤덮인 봉우리와 맑고 깊은 계곡, 한없이 펼쳐진 푸른 초원 위에 노니는 수천 마리의 양떼가 장관을 이루고 있는 8월의 브로크백 마운틴. 
 이곳의 양떼 방목장에서 여름 한 철 함께 일하게 된 갓 스물의 두 청년 에니스(히스 레저 분)와 잭(제이크 질렌할 분)은 마치 오랜 친구처럼 서로에게 마음을 터놓는 사이가 된다. 대자연의 품에서 깊어져간 그들의 우정은 친구 사이의 친밀함 이상으로 발전해간다. 그들 앞에 놓인 낯선 감정의 실체가 무엇인지도 알지 못한 채 짧은 방목철이 끝나고 다시 만날 기약도 없이 두 사람은 각자의 삶으로 돌아간다.
 결혼해 아이를 낳고 평범한 생활을 하다가 4년 만에 다시 만난 두 사람은 단번에 브로크백에서 서로에게 가졌던 그 낯선 감정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입장은 달랐지만 서로를 향한 애틋한 마음만은 한결같았던 두 사람은 그 후로 일년에 한 두 번씩 브로크백에서 만난다. 20년간 짧은 만남과 긴 그리움을 반복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관계는 뜻밖의 사건으로 엄청난 변화를 맞이하게 되는데...

역시 <메종 드 히미코> 때 예고편을 본 작품. 이안이라면 두말할 것 없이. 헐리웃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온전한 서양 감독도 온전한 동양 감독도 낼 수 없는 자신만의 목소리를 꾸준히 내고 있는 감독. 장이모우가 심하게 질투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 시놉시스는 맥스무비에서 가져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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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스 2006-02-07 1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앗... 저는 <타임 투 리브>하고 <박치기>, <브로크백 마운틴> 꼭 볼거야요. 나머지는 이미 보았으니.. ^^

urblue 2006-02-07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영화 많이 보시는군요!

플레져 2006-02-07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음주에 유앤미앤... 보려구요. 이안 감독이 골든글로브에서 휩쓸었다는 작품인가보네요. 예전엔 신작 영화들을 절로 알게 되었는데 (아, 키노가 있었구나...ㅎㅎ) 요샌 안그래요. 슬포요...

urblue 2006-02-07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앤유앤... 저도 다음 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
슬포하지 마셔요. 이렇게도 알려드리는데요 뭐. ㅎㅎ

그림자 2006-02-07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메가박스유럽영화제때 매진되서 놓친 <더 차일드>와 <타임투리브>볼려구요^^
오종의 팬이라서 그의 작품은 빼놓치 않고 보는 편이라^^
그리고 이안감독의 작품도 궁금하네요

urblue 2006-02-07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일드는 인기가 좋은가봅니다. 지난 토요일 씨네큐브에서도 매진이었어요.

비로그인 2006-02-09 0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22322

Good morning..^^*


urblue 2006-02-09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Good morning! Your kindness makes me smile. Thanks a lot. ^^
 

에...캡쳐 숫자가 다가옵니다.

저 아래 <캡쳐의 시간이 왔습니다> 페이퍼에 캡쳐해주세요.

여기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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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blue 2006-02-07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여기서 기다리시는 거에요?

水巖 2006-02-07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522223
한 자리 늦었군요.  아니, 시작의 숫자이기도 하죠.

sudan 2006-02-07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622224

흑흑.


urblue 2006-02-07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구두님, 감사! (진짜루.)

수암님, 그렇군요, 시작이기도 하네요. 고맙습니다. ^^

수단님, 뭐 하시다가 이제야!

울보 2006-02-07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이런,,바람구두님이랑 수암님까지,,
저는 이제야 보았습니다,축하드려요,,

울보 2006-02-07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822226

아영엄마 2006-02-07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몰랐지만 유아블루님은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거의 날마다 핫케이크를 구워 먹고 있거든요...@@

파란여우 2006-02-07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나...제가 자주 안들어올 때 열리는 이벤트는 무횹니다.
(억울한 자의 한탄...흙흙..^^)

urblue 2006-02-07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란여우님, 여우님이 안 계시는 이벤트는 저도 무효로 하고 싶사옵니다. 허나.. 흑흑...

아영엄마님, 와플 메이커 잘 쓰고 계신가 봅니다. 언제 한 번 먹으러 가야한다고 생각은 하고 있는데 말이에요. ^^

울보님, 고맙습니다. ^^

반딧불,, 2006-02-07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엉엉~~~
깜빡했스요.

urblue 2006-02-07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ㅠ.ㅜ

2006-02-07 13: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쁜하루 2006-02-08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지났다..^^;;;;

2006-02-08 02: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urblue 2006-02-08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쁜하루님, 많이 지났네요. ^^

숨어계신 님! 늦게 오셔서 뭡니까! 그런 거 없어욧!
 
 전출처 : 김남시 > 모스크바에서 돌아온 벤야민 1

1927 2 1 "무릎 위에 큰 가방을 올려놓은 채 울면서 어두워져 가는 거리를 지나 역으로 향했다"라는 문장으로 끝나는 벤야민의 <모스크바 일기>를 읽은 독자들은, 그렇게 모스크바에서 베를린으로 돌아온 벤야민의 이후의 삶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궁금해 할 지도 모른다. 근 석달간의 일기를 통해 모스크바에서의 벤야민의 하루 하루를 쫓고, 그의 생각과 감정과 생활을 들여다 볼 수 있었던 우리들에게, 저 2월 1일 이후 벤야민의 삶은, 여전히 저 모든 숫자와 사실과 연표 속에서 추상적이고, 어두우며, 지리한 익명적 기간으로만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선, 시간과 능력이 허락한다면 다음 글에서도, 나는 모스크바에서 보낸 석달 이후의 벤야민의 삶을 저 어둡고 지리한 숫자와 연표들로부터 발굴해내어, 그를 우리의 하루 하루의 삶처럼, 그리고 <모스크바 일기>에서의 그것처럼, 살아있고, 느끼며, 생각하는 인간의 삶으로 만들어 보려고 시도하려 한다. 

 

모스크바에서 돌아온 벤야민이 한동안 독감에 걸려 앓았어야 했다는 것을, <모스크바 일기>를 읽은 독자들이라면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그건, 벤야민이 스스로 말했던 것처럼, 모스크바를 떠나기 전날 추위에 떨며 구경했던 수도원에서 얻은 것이었다.  그 사이에 그는 베를린에 도착한,  모스크바에서 떠나기 전 부쳤던 짐을 받았을 것이다. 거기엔 그가 모스크바 시내를, 떠듬 떠듬, 실수와 추위와 슬픔에 차서 돌아다니다가 구입했던 장난감, 우편엽서, 그리고 검은 칠을 한 상자,  그리고 어쩌면 아샤의 친구, 벤야민이 호의적으로 보았던 그녀 - 이름이 뭐였더라? - 에게 받았던 작은 칼도 들어 있었을 것이다.  이 모두가 저 먼 러시아 대륙을 거쳐 다 제대로 도착했을까. 어쨋든 수집가 벤야민은, 소포로 도착한 저 물건들을 하나 하나 열어보며, 다시 그 물건들과 결합되어 있었을 모스크바에서의 추억들을 떠올렸을 것이다.  

 

두 달 정도의 기간을 쉬면서, 독감에서 어느정도 몸을 회복한 벤야민은 모스크바로 떠나기 전부터 시작하고 있었던 프르스트 번역 작업을 계속 진행해야 했다. 그를 위해 그는 4월 1일 파리로 떠난다.  파리시  Avenue du Parc Montsouris 4 번지에 있는 호텔 Hotel du Midi에서 벤야민은 '창가 방'에 장기 투숙하면서  모스크바로 떠나기 전부터 번역 작업을 해왔고, 이제 글쓰는 작업을 위해 늘 '장소와 도구들'을 까다롭게 가리는 벤야민은 이전에 자신이 작업을 해왔던 바로 그 방을 고집한다.  그리고 그 방에서 그는 그해 10월 20일까지 투숙하며 번역일을 계속했다.  

 

물론, 그 사이 저 "여행 중독자" 벤야민이 계속 파리에만 머물렀던 것은 아니다.  그해 6월 5일은 프랑스 투롱 근처에 있는 Pardigon을, 같은 달 15일엔 Nizza를, 그리고 저 '행운의 도시' 니짜에서 룰렛 게임을 통해 딴 돈으로 6월 21일엔 비행기를 타고 코르시카로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이해 12월 18일 벤야민은, 첫번째 하시시 프로토콜을 쓴다.  이미 이전부터 프로이드의 무의식 이론에 관심을 갖고 있었던 그는 몇몇 친구들과 함께, 스스로 하시시를 투약하고 나서 그를통해 저 초자아의 억압으로 부터 풀려난 무의식이 어떤 언어를 말하는지를 기록하는, 약물 실험을 시작한 것이다. 벤야민의 이하시시 프로토콜은 이로부터 1934년 5월까지 계속 이어진다.  1940년 스페인 국경에서 벤야민이 극약을 먹고 자살하는 방법을 택한 것도 이런 계속적인 하시시 프로토콜을 통해 익숙해진 약물 복용과도 깊은 연관이 있을 것이다. 그는 이미 몇년 전부터 자살을 위한 약물을 몸에 지니고 다녔다.  

 

1928년은 벤야민에겐 사실상 아주 생산적인 해였다.  모스크바에서 돌아온 그는 이해에 저 유명한 <파사지 베르크>의 계획을 세우고 그에 "파리의 파사지"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리고 이 해 1월엔 또한 벤야민의 대표적인 두 저서 <독일 비가극의 기원>과 <일방 통행로>가 출간되기도 했다.  (모스크바에서 벤야민은 아샤에게 아직 출간되지 않았던 '일방 통행로'의 구절들을 읽어주고, 그 표지 그림을 아샤에게 선물하기도 했다는 걸 우린 <모스크바 일기>를 통해 알고있다. )

  

알려져있다시피, 거의 동시에 출판된 책은, 표지와 내용, 문체와 작업 방식에 있어서 크게 상반된 성격을 지니고 있었지만, 단 한가지 점에선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두 책 모두 벤야민이 사랑하던 여인들에게 헌정되었다는 것이다. 첫번째 책은 자신의 부인이자, 이후 이혼하게 되는 도라 벤야민에게, 두번째 책, 일방통행로는 <모스크바 일기>의 또 다른 주인공 아샤에게다.  이 책을 출판하는 것과 동시에 벤야민은 자신이 계획한 <파리의 파사지> <일방 통행로> 후속편이 것을 예고한다.

 

이해 2 17 벤야민은 앙드레 지드와의 두 시간에 걸친 인터뷰를 하고 이를 <문학세계> 싣는다. 그는 이후에도 앙드레 지드와의 이 인터뷰를 스스로 자랑스러워했었다. 이해 3월엔 베를린의 서점 Potsdamer Bruecke에서 벤야민이 출판한 책들을 주제로 전시회가 개최되는데, 바로 여기에 벤야민의 친구 여동생이었던 조각가 Jula Cohn 벤야민의 두상을 제작해 선물한다. 그녀는 도라 벤야민, 아샤 라시스와 더불어 벤야민의 삶에 영향을 미쳤던 세번째 여인이기도 했다.

 

5 31일, 결국은 거절당하고 말았던 자신의 교수 자격취득 논문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주던 삼촌 Arthur Schoenflies가 사망했다. 그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프랑크프르트를 방문한 벤야민은 6 2 그곳에서 아도르노를 만난다. 이후 아도르노와의 오랜, 복잡하고도 긴 관계가 바로 이날 시작한다. 벤야민은 아도르노에게 자신이 번역한  헌정했다. 프랑크프르트에서 베를린까지는 독일에서 제일 빠른고속전차  ICE로도 근 8시간이 걸린다. 당연히 당시에는 이보다 더 걸렸을 것이다. 벤야민은 저 먼 여행을 한꺼번에 기차안에서 보내기 보다는 오는 길, 베를린에서 가까운 다른 도시를 방문하는데 본낸다. 이때 방문했던 바이마르에 대해 그는 자신의 <도시의 상들>에서 기록하고 있다. 

 

9 20 벤야민은  저 조각가 여인 Jula Cohn을 만나기 위해 Lugano 여행을 떠나고, 거기서 다시 Genua Marseille를 방문한다.  모스크바에서 도시에 대한 글들에서 이후의 작업의 가능성을 발견한 그는 이 두 도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인상을 기록한 글을 남긴다. 9월 29일 마르세이유에서 벤야민은 하시시 복용실험을 계속한다.

 

10 7 벤야민은 다시 베를린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이달, 모스크바에서 약속한대로 아샤가 베를린을 방문한다.  <모스크바 일기>를 읽었던 독자는, 베를린을 방문한 아샤에 대해 벤야민이 느꼈을 저 복잡한 감정 상태를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벤야민은 그녀를 원하고 있었지만, 또 한편으론 그녀의 공격성과 히스테리적 짜증, 혁명적 낭만주의 뒤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던 속물성을 감지하고 있었다.  모스크바에서 '혁명활동'을 하면서도, 유럽 사회에 대한 동경을 버리지 못했던 그녀는, 이제 벤야민이 있는 베를린을 방문했고, 그리하여 모스크바에서 헤어진 이 두 사람은 근 1년 반 후에 베를린에서 다시 만난다.

 

모스크바에서 약속했던 것처럼, 벤야민은 그녀를 위해 새로 방을 얻는다.  이들이 11중순 부터 다음해 1월말까지 함께 살았던 곳은 베를린 Duesseldorf 거리 42번지다. 이곳은 벤야민이 이전에 살고있었던 곳과도 그렇게 멀리 떨어져있지 않다. 베를린 출신의 벤야민이 태어났던곳, 그리고 몇 차례의 이사를 통해 옮겨 살았던 곳들은 모두 한 구역 Chrarlottenburg 에 속해있었다. 

 

 

 

 

 

 

 

 

 

 

 

 벤야민과 아샤가 석달 동안 함께 살았던 이 집은 여전히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이들이 함께 살았던 방은 이 건물 3층, 한국식으로는 4층에 있었다. 아래 사진에서 발콘 창가에 꽃들을 가져다 놓은 곳이 그곳이다.


 이곳에서 이들의 삶은 행복했을까.  유감스럽게도 그러지 못했다. 그리고 그건 이 집의 위치에서부터 예상할 수 있다. 산책을 좋아하는 벤야민에게 아샤와 함께 살았던 이 곳은 그렇게 쾌적한 곳은 아니었다. 뒤셀도르프 거리 42번지는 그 자체로도,  베를린의 다른 거리들에 비하면 무척이나 긴 거리였고, 그가 살던 집에서 나와 왼쪽으로 약 30미터 정도만 나가면 그보다 더 큰 자동차 도로가 나온다. 그곳을 지나다니던 차들이 만들어내는 소음은, 그렇지 않아도 예민한 벤야민과 아샤의 베를린 생활을 그리 행복하게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벤야민이 살았던 젤렌도르프의 빌라에서와는 달리 여기선, 산책을 즐길만한 숲이나 공원이 그렇게 가까이 있지도 않다.

모스크바에서 벌어졌던 이 두 명의 복잡한 연인 이의 긴장감은 이들이 이 곳에서 함께 사는 동안에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고, 이는 이들 재회한 연인들이 이 곳에서 그렇게 다감하고 아기자기하게만 살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걸 짐작케 한다.  이 시기 벤야민은 숄렘에게 보낸  편지에서 "우린 여기서 개와 고양이처럼 살고있다" 고 전한다.  그렇지 않아도 이 둘의 관계를 못마땅해하던 숄렘이 <모스크바 일기>에서 이들의 관계에 대해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불평하는 것도 이유가 없지 않았다. 

이곳 42번가 건물의 출입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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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dan 2006-02-07 0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22192

혹시나 해서 또 긴장하고 들어와봤는데, 30이 모자라요.

함 해볼려했더니만, 결코 쉽지 않아요. -_-


urblue 2006-02-07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브리핑보고 님인줄 알았어요. 이제 글 보면 누군지 딱 알겠는 사람이 두 명이 되었군요. ^^
캡쳐는 저 밑에 페이퍼에 해 주셔야 해요. 알았죠?

sudan 2006-02-07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곰곰. 그 한분은 어떤 분인데요?

urblue 2006-02-07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분이겠어요. 로드무비님이시지. ㅋㅋ
 



우리의 주인공 사오리가 처음 등장할 때부터 웃겼다. 저 얼굴 좀 보시지. 잔뜩 심통난 어린애 같은 뚱한 표정. 심통이 날 만도 하다. 사오리가 아직 어릴 적 게이임을 선언하고 집을 나가버린 아버지가 암으로 곧 죽게되었다고, 아버지의 젊은 남자 애인이 찾아와 간병을 부탁하고 있으니 말이다. 혼자 몸으로 사오리를 키우느라 무리한 어머니도 암으로 죽었고, 어머니의 병원비와 수술비 등으로 빚까지 잔뜩 짊어진 스물 넷의 여자아이에게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일테다. 하지만 사오리는 매주 일요일, 아버지가 세운 게이 양로원 '메종 드 히미코'로 일하러 간다. 돈 때문에.

시작은 돈 때문이었고, 집나가 혼자 멋대로 산 아버지를 이해하고 용서할 마음도 전혀 없다. 메종 드 히미코에 살고 있는 게이 할아버지들 역시 이상해보인다. 일요일마다 꼬박꼬박 일하러 가면서도 부루퉁한 저 표정은 좀체 바뀌질 않는다.

그러나 역시 시간의 힘이랄까. 물론 사람의 마음이 변하게 되는 것은 시간의 힘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을테지만, 사오리의 마음이 조금씩 열려간다. 이 영화의 장점이라면 그런 사오리의 변화가, 아버지와의 화해가 뻔한 공식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작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서 조제와 츠네오의 감정이 변해가는 모습을 섬세하게 그려냈던 것처럼, 이번에도 무리하지 않고 매끄럽게 보여준다.  

사오리의 이미지 역시 조제에서 이어진다. 심통이 그득하고, 못생겼고, 사교성없고, 전혀 매력적이지 않은 여자. 그렇지만 그런 모습이 몹시도 귀엽다. <조제, 호랑이...>를 보고난 후 어쩐 일인지 츠네오는 전혀 기억나지 않고 조제의 얼굴과 마음껏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긁어대는 듯한 목소리만 강렬하게 남아있는데, 아무래도 이누도 잇신 감독이 그리는 여성의 이미지가 나는 좋은가보다.

 

그렇지만 이 영화의 남자인 하루히코를 잊을 리는 없을 것 같다. 하루히코 역의 오다기리 조. TV 드라마 <사토라레>를 꽤 여러번 봤는데, 이 사람이 그 사토라레인지 몰랐다. 사토라레에서는 어벙벙한 순둥이같더니만 이 영화에서는 제법 쓸쓸한 카리스마를 보여준다. 거기다 그의 몸은 어찌나 가는지. 넓은 어깨 아래로 좁고 길게 뻗은 허리와 엉덩이 다리까지, 그가 아니라면 아무도 소화할 수 없을 배바지까지 멋져 보이다니.

 



사유리의 아버지 히미코는 우아한 사람이다. 침대에 누워서도 저렇게 식사를 할 때도, 정말이지 멋진 클럽의 여주인같은 이미지를 제대로 풍긴다. 사오리가 "나를 사랑했던 적이 있어요? 내가 보고 싶어 울었던 적이 있어요?"라고 물을 때 "너를 좋아한단다."라고 대답하는,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마음껏 누렸던 사람.

메종 드 히미코가 이후로도 쭉 유지될 수 있을까. 사오리가 그곳의 사람들과 행복한 웃음을 나눌 때도 옆집 할머니는 매몰차게 문을 닫고 돌아선다. 언제쯤 할머니는 웃으며 인사할 수 있을까. 그게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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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스 2006-02-05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님도 이 영화 보셨군요. ^^;
오다기리 조의 그 끝내주는 몸매라인, 그가 아니었다면 배바지는 무리였을거에요.
저는 명절 음식을 해먹고 노래부르던 그들의 모습이 꽤 좋았어요. 슬프고 또 아름답고.. ^^;

urblue 2006-02-05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으로 오다기리 조를 쭈욱 좋아하려구요. ㅎㅎ
다 쓰지는 않았지만 좋은 장면들이 꽤 많았어요. 클럽에서의 춤 때문에 한참 웃었고, 루비랑 다른 사람들의 캐릭터도 잘 살아있었고, 말씀하신 그 명절 장면도 좋았구요.
좀 긴 듯한 감이 없진 않았지만, 이누도 잇신은 믿을만한 감독으로 올린 참입니다.

이리스 2006-02-05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저두요 ^^. 영화를 보고 나자 <조제..> 디비디를 구입하고 싶어졌다는.. --;
어쩐지 이 감독 영화들은 두고두고 보아도 새로운 맛이 느껴질 것 같아요.

sudan 2006-02-05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대한 물고기-나중에 알았는데. 이름이 산갈치에요. 진짜 멋대가리 없는 이름이지 않나요?-나오는 모텔방에서 조제가 옛날엔 바닷속에서 나 혼자 '뒹굴뒹굴'했다고 말하는 발음이 제 귀엔 이상하게 '또로로로 또로로로'하는 것 처럼 들리지 뭐에요. 그 장면이랑 조제의 그 말투가 계속 기억에 남아요.
그리고, 츠네오가 기억에 안 남는다뇨. 구김살 하나 없는 얼굴로 웃던 츠네오. 헤어진 애인과 이제 다시는 못 만날 것 같다면서 길바닥에 주저앉아 우는 츠네오를 어찌!
메종 드 히미코. 꼭 봐야겠어요. 디비디로 나올려나?

urblue 2006-02-05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요, 츠네오가 나오던 장면들은 떠오르는데, 얼굴이 생각 안 나요. 구김살없는 얼굴로 웃었던가, 어떻게 울었던가하는 것들. -_-
메종 드 히미코는 조제와 마찬가지로 극장에서 반응이 좋은 편이라네요. 아마 제법 오래 상영하지 싶어요. 디비디말고, 극장에서 보세요, 꼭!

히피드림~ 2006-02-06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보셨군요~
관심있던 영화라 님의 글 재밌게 읽었어요.
빨리 비디오로 나왔으면...^^;

urblue 2006-02-06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극장에서 보실 수 있으면 좋을텐데 제가 다 아쉬워요. ^^;

로드무비 2006-02-06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갈등 생기네.
둘 중 어떤 영활 보아야 하나?!
에브리원이랑 히미코랑.
우짜까요?ㅎㅎ

urblue 2006-02-06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둘 다 보시면 안되나요? ㅎㅎ
전 다음주에 에브리원이랑 차일드랑 볼거여요.
아, 님은 차일드도 보고 싶어하실 줄 알았는데요.

로드무비 2006-02-06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론 차일드도 보고 싶지요.
하지만 찜한 순서에서......

merced 2006-02-06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시여, 이 영화 하는 극장은 왜 몇 개 되지도 않고, 왜 우리집에선 다들 멀기만 한겨.

urblue 2006-02-06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그렇지? 그치만 회사 끝나고 씨네코아나 명동 씨네콰논 같은 덴 갈만하지 않나? 명동 씨네콰논에 첨 가 봤는데 아담하고 깔끔하니 괜찮더군. 단, 앞자리에 키 큰 사람 앉으면 끝장이다.

merced 2006-02-19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국, 봤어요. 클럽에서 그 춤 배우고 시포. 함께 본 친구(남자)는 하루히코가 매력적이다 "마성의 게이"다, 캐릭터 영화-게이 판타지다, 는 이야기를 했고, 루비를 아들에게 보냈을 때 사오리가 모두를 질타하던 말 동감, 하지만 그들은 "관계"에 있어서 훨씬 자유롭고 솔직하게 사는구나 생각했어요.
편견 하나: "여자들도 못 입는 옷이 있다구요" 있잖아요, 그거에요. 예쁜 게이들은 여장 환영, 하지만 안 어울리는 사람은 여장 안하고 다녔으면 좋겠다.

urblue 2006-02-20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클럽 장면은 좀 뜬금없긴 하지만 나름대로 유쾌하지. 특히 그 춤, 보면서 한참 웃었다니까. 근데, 그걸 배우고 싶어? ㅋㅋㅋㅋ
그치만 (예를 들면) 뚱뚱하고 못생겼으니까 이쁜 옷은 입지마, 라고 하면 너무하잖아. 자기한테 안 어울리는 거 알지만 그래도 입고 싶은 옷, 하고 싶은 거 등등 있지 않나. 그럼 해야지 뭐.

merced 2006-02-20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니까 그걸 여럿이 같이 추면, 뜬금없이 유쾌해질 것 같아서요.
그니까 "편견"이라잖아요. 누구라도 하고 싶은 거 하는 게 맞지만, 언니가 레게머리를 한다, 면 사실 말리고 싶단 말이죠.

urblue 2006-02-20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야~ (레게머리 하고 싶지 않은 게 다행인가. 삭발은 해 보고 싶다만.)
 


글 : 김현정
출처 : 씨네 21 (http://www.cine21.com/Movies/Mov_Rev/review_view.php?mm=002001001&mag_id=36243)

아래로, 아래로, 한없이 굴러떨어지는 삶, <천상의 소녀>

하늘색 부르카를 뒤집어쓴 여인 수십명이 카불 거리를 행진한다. 모두 과부인 그들은 “우리는 정치는 모른다”면서 다만 일을 하고 싶다고, 배가 고프다고 소리치지만, 최루탄과 물대포에 쫓겨 철망 안에 갇히고 만다. 눈동자조차 드러내지 못하는, 맨손의 여인들.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이 시위 장면은 탈레반 정권 치하 아프가니스탄이 문자 그대로 지옥일 수밖에 없었던 여인들의 처지를 직설적으로 보여주고, 그 지옥을 짊어진 한 소녀의 삶으로 넘어간다. <천상의 소녀>는 픽션이라 해도 픽션일 수가 없는 영화다. 여자는 일을 해서는 안 되고 혼자서는 밖에 나갈 수도 없는 탈레반의 규율. 그것은 자유라는 말조차 사치스러운,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였다.

열두살 소녀 레일라(마리나 골바하리)는 어머니(주바이다 사하르), 할머니와 살고 있다. 아버지는 카불 전쟁에서 죽었고 외삼촌은 러시아 전쟁에서 죽었기 때문에 집안엔 남자가 한명도 없다. 어머니가 몰래 일하던 병원이 넉달 밀린 월급도 주지 않고 문을 닫던 날, 할머니는 레일라의 머리카락을 자르며 “네가 일을 하지 않으면 우리는 굶어죽게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남자아이처럼 가슴이 판판한 어린 레일라는 일자리 구하기도 쉽지 않다. 아버지의 전우가 운영하는 가게에서 돈 대신 먹을 것을 받고 일하던 레일라는 아이들을 탈레반 전사로 키우려는 이들에게 붙들려가 강제로 코란을 외우고 군사훈련을 받는 학교에 다니게 된다.

이 영화의 원제는 <오사마>다. 이름을 지어야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레일라가 성별을 의심하는 학교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곤란에 처하자 그녀를 좋아하는 듯한 고아소년 에스판디가 “그애 이름은 오사마”라며 감싸준 데서 나온 제목이다. 그러므로 <천상의 소녀>는 아버지 옷을 줄여 입은 소녀가 씩씩하게 세상을 헤쳐나가는 모험담과는 거리가 먼 영화일 것이다. 높고 가는 여자아이의 목소리 그대로 남자아이들 한복판에 던져진 레일라는 언제나 겁에 질려 있다. 남자아이인 척 올라간 둥치에서 내려오지 못해 울먹이고 우물 속에 매달려 엄마 어디 있느냐고 애처롭게 통곡을 한다. 이 아이의 삶은 한발만 잘못 디뎌도 저승으로 떨어지는 지뢰밭과 같다.

감독 세디그 바르막은 애초 남자아이를 찾고 있었지만 거리에서 구걸하던 어린 소녀 마리나 골바하리를 보고 그 눈동자에 끌려 캐스팅하게 됐다. 폭격으로 언니를 잃었다는 마리나는 가난과 공포를 눈동자뿐만 아니라 존재 그 자체에 담고 있다. 탈레반이 자신을 쫓아오지 않을까, 자신이 여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에스판디가 빵을 빼앗아가지 않을까. 마리나는 조급한 발걸음과 흠칫 뒤를 돌아보는 어깨선으로 걸음걸음이 함정이고 덫이 되는 위태로운 일상을 드러낸다. 탈레반 정권 붕괴 이후 첫 번째 장편 극영화인 <천상의 소녀>는 당연하게도 픽션이고 드라마틱한 사건들의 연쇄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그 극적인 긴장은, 아마추어 배우인 마리나의 연기에서 확인할 수 있듯, 현실을 수집한 데서 나온 것이다. 알라가 탈레반을 지옥에 떨어뜨리기를 기원하는 여인들의 노래와 춤, 빗장을 지른 대문 안에 갇혀 족쇄를 차고 남편이 죽을 날만 기다리며 살아가는 아내들, 증인이나 판사도 없이 즉결재판에 처해져 생매장당하거나 총살당하는 죄수들. 그 지독한 풍경은 먼지처럼 건조하지만 피바다보다도 참혹하다.

영화제작을 금지한 탈레반 정권을 피해 파키스탄으로 망명했던 바르막은 어린 여자아이가 학교에 가고 싶어 남장을 했다는 신문기사를 읽고 <천상의 소녀>를 떠올렸다. 그러나 레일라는 남장을 하고 싶지 않다. 들키면 죽기 때문이다. 땋은 채로 자른 머리 타래를 화분에 심고, 다 쓰고난 링거 호스를 기울여 몸에 좋다는 약물을 방울방울 떨어뜨리는 레일라. 그리고 과부들의 시위 현장과 죄없는 여인들이 갇힌 감옥에서 줄넘기를 하는 환상을 보는 레일라. <천상의 소녀>는 다시는 엄마와 할머니를 만나지 못할 이 어린아이에게 차라리 죽음이 나을지도 모르는 형벌을 부과하고 끝나버린다. 조금의 틈새라도 보인다면 희망이 있다고 우겨볼 만도 하다. <천상의 소녀>가 희망의 단서라도 구겨넣지 못하는 까닭은 무력한 소녀에게 기적이라도 일어나지 않는 한, 현실적이고 논리적인 탈출구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어느 길로 가더라도 그 끝은 봉쇄된 비극이다.

<천상의 소녀>는 제작을 도운 모흐센 마흐말바프의 영화들처럼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어도 그 무게를 가늠하기 어려운 비극을 찾아내곤 한다. 돈이 없어 문을 닫게 된 병원. 짧고 뒤틀린 다리를 가진 어린아이가 모두들 서둘러 떠나버리는 병원 복도를 홀로 뒤뚱거리며 걸어간다. 소음은 사라지고 아이는 걷는다. 바르막은 뷰파인더로 그 장면을 바라보며 오래 울었다고 한다. 누구도 돌봐주지 않을 그 아이의 다리는 분장이 아닌 진짜고,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천상의 소녀>를 보는 관객은 모두 그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아래로, 아래로, 한없이 굴러떨어지는 삶. <천상의 소녀>는 단지 기록하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을 먼 땅의 현실을, 담담하나 분명하게 세상에 알리지만, 또한 무력하기도 하다. 그것이 탈레반 정권 치하의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바르막은 탈레반 정권이 몰락한 뒤에도 아프가니스탄은 참혹하다고 말했다. 2005년 <천상의 소녀>에 골든 글로브 외국어상을 건넨 이들은 오사마 빈 라덴을 비호한 탈레반 정권의 만행에 분노했을 테지만, 그 주체가 탈레반 정권이었기 때문에, 환호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탈레반 지도자를 찾겠다며 민간인들이 사는 마을에 정교한 폭격을 퍼붓는 국가가 수여한 트로피는, 영화 자체를 뒤흔들지는 않는다 해도, 고맙게 받아들일 선물은 아닌 듯하다. <천상의 소녀>는 “잊을 수는 없다. 그러나 용서할 수는 있다”는 넬슨 만델라의 경구를 자막에 새기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러나 그 경구를 고스란히 잊고, 빈대잡자고 초가삼간 불태우는 이들 앞에서, <천상의 소녀>가 조금 더 가엾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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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면서, 그 참혹함에 분노하다 마지막에 이르러 살의를 느꼈다. 권력에 빌붙어 제 욕심 채우기에 급급한 인간들은 어디나 있고, 그들이 모든 고통의 원인은 아닐지라도, 그 순간만큼은 죽어 마땅한 인물이었다. 사다리를 거꾸러뜨릴까, 뜨거운 물에 처박아 버릴까, 그렇게도 좋아하는 자물쇠가 주렁주렁 매달린 쇠사슬로 목을 졸라버릴까, 그렇게 화면 속의 남자를 죽이고 또 죽였다.

탈레반이 여자들의 모든 활동을 금지시켰을 때, 그들은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수십년간 이어진 전쟁으로 많은 여자들이 과부가 되었고, 여자들이 일을 하지 못하면 굶어죽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그들이 입에 달고 있는 알라의 뜻이 자신들의 뜻과 같지 않다는 사실을. 이건 종교가 아니라 권력의 문제일 뿐이다.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의도적인 만행일 뿐이다. 

극장을 나서면서 내 분노의 대상은 다시 미국으로 옮아간다. "역시 미국이 나쁜 놈이야. 탈레반을 그렇게 키운게 누군데." 물론 구 소련도 한몫했다. 제기랄. 

오랜 전쟁으로 피폐해진 땅에서 탈레반의 폭정으로 고생하고, 다시 미국의 폭격으로 고통당하는 건 고스란히 레일라같은 보통 사람들이다. 제기랄, 제기랄.

어찌되었든 탈레반은 쫓겨났다. 미국이 잘한거라고 말할 수 없지만, 레일라나 다른 여자들에게는 다행인걸까. 화분에 심어놓은 레일라의 머리가 다시 자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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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2-04 23: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6-02-05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분 속 소녀의 머리 사진 너무 인상적이네요.^^

urblue 2006-02-05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지요? 그치만 저 장면은 영화에는 나오지 않았어요.

sudan 2006-02-05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 그럼 어디에 나오는 장면인거에요?
22222 맞죠? 혹시나 해서 좀 긴장하고 와봤는데, 오늘은 아닌가봐요.

urblue 2006-02-06 0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씨네21 스틸컷에 저 사진이 있더라구요.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그냥 찍은건지, 나중에 삭제된건지.
내일 쯤 되지 않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