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주인공 사오리가 처음 등장할 때부터 웃겼다. 저 얼굴 좀 보시지. 잔뜩 심통난 어린애 같은 뚱한 표정. 심통이 날 만도 하다. 사오리가 아직 어릴 적 게이임을 선언하고 집을 나가버린 아버지가 암으로 곧 죽게되었다고, 아버지의 젊은 남자 애인이 찾아와 간병을 부탁하고 있으니 말이다. 혼자 몸으로 사오리를 키우느라 무리한 어머니도 암으로 죽었고, 어머니의 병원비와 수술비 등으로 빚까지 잔뜩 짊어진 스물 넷의 여자아이에게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일테다. 하지만 사오리는 매주 일요일, 아버지가 세운 게이 양로원 '메종 드 히미코'로 일하러 간다. 돈 때문에.

시작은 돈 때문이었고, 집나가 혼자 멋대로 산 아버지를 이해하고 용서할 마음도 전혀 없다. 메종 드 히미코에 살고 있는 게이 할아버지들 역시 이상해보인다. 일요일마다 꼬박꼬박 일하러 가면서도 부루퉁한 저 표정은 좀체 바뀌질 않는다.

그러나 역시 시간의 힘이랄까. 물론 사람의 마음이 변하게 되는 것은 시간의 힘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을테지만, 사오리의 마음이 조금씩 열려간다. 이 영화의 장점이라면 그런 사오리의 변화가, 아버지와의 화해가 뻔한 공식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작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서 조제와 츠네오의 감정이 변해가는 모습을 섬세하게 그려냈던 것처럼, 이번에도 무리하지 않고 매끄럽게 보여준다.  

사오리의 이미지 역시 조제에서 이어진다. 심통이 그득하고, 못생겼고, 사교성없고, 전혀 매력적이지 않은 여자. 그렇지만 그런 모습이 몹시도 귀엽다. <조제, 호랑이...>를 보고난 후 어쩐 일인지 츠네오는 전혀 기억나지 않고 조제의 얼굴과 마음껏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긁어대는 듯한 목소리만 강렬하게 남아있는데, 아무래도 이누도 잇신 감독이 그리는 여성의 이미지가 나는 좋은가보다.

 

그렇지만 이 영화의 남자인 하루히코를 잊을 리는 없을 것 같다. 하루히코 역의 오다기리 조. TV 드라마 <사토라레>를 꽤 여러번 봤는데, 이 사람이 그 사토라레인지 몰랐다. 사토라레에서는 어벙벙한 순둥이같더니만 이 영화에서는 제법 쓸쓸한 카리스마를 보여준다. 거기다 그의 몸은 어찌나 가는지. 넓은 어깨 아래로 좁고 길게 뻗은 허리와 엉덩이 다리까지, 그가 아니라면 아무도 소화할 수 없을 배바지까지 멋져 보이다니.

 



사유리의 아버지 히미코는 우아한 사람이다. 침대에 누워서도 저렇게 식사를 할 때도, 정말이지 멋진 클럽의 여주인같은 이미지를 제대로 풍긴다. 사오리가 "나를 사랑했던 적이 있어요? 내가 보고 싶어 울었던 적이 있어요?"라고 물을 때 "너를 좋아한단다."라고 대답하는,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마음껏 누렸던 사람.

메종 드 히미코가 이후로도 쭉 유지될 수 있을까. 사오리가 그곳의 사람들과 행복한 웃음을 나눌 때도 옆집 할머니는 매몰차게 문을 닫고 돌아선다. 언제쯤 할머니는 웃으며 인사할 수 있을까. 그게 궁금했다.

 


댓글(16)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이리스 2006-02-05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님도 이 영화 보셨군요. ^^;
오다기리 조의 그 끝내주는 몸매라인, 그가 아니었다면 배바지는 무리였을거에요.
저는 명절 음식을 해먹고 노래부르던 그들의 모습이 꽤 좋았어요. 슬프고 또 아름답고.. ^^;

urblue 2006-02-05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으로 오다기리 조를 쭈욱 좋아하려구요. ㅎㅎ
다 쓰지는 않았지만 좋은 장면들이 꽤 많았어요. 클럽에서의 춤 때문에 한참 웃었고, 루비랑 다른 사람들의 캐릭터도 잘 살아있었고, 말씀하신 그 명절 장면도 좋았구요.
좀 긴 듯한 감이 없진 않았지만, 이누도 잇신은 믿을만한 감독으로 올린 참입니다.

이리스 2006-02-05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저두요 ^^. 영화를 보고 나자 <조제..> 디비디를 구입하고 싶어졌다는.. --;
어쩐지 이 감독 영화들은 두고두고 보아도 새로운 맛이 느껴질 것 같아요.

sudan 2006-02-05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대한 물고기-나중에 알았는데. 이름이 산갈치에요. 진짜 멋대가리 없는 이름이지 않나요?-나오는 모텔방에서 조제가 옛날엔 바닷속에서 나 혼자 '뒹굴뒹굴'했다고 말하는 발음이 제 귀엔 이상하게 '또로로로 또로로로'하는 것 처럼 들리지 뭐에요. 그 장면이랑 조제의 그 말투가 계속 기억에 남아요.
그리고, 츠네오가 기억에 안 남는다뇨. 구김살 하나 없는 얼굴로 웃던 츠네오. 헤어진 애인과 이제 다시는 못 만날 것 같다면서 길바닥에 주저앉아 우는 츠네오를 어찌!
메종 드 히미코. 꼭 봐야겠어요. 디비디로 나올려나?

urblue 2006-02-05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요, 츠네오가 나오던 장면들은 떠오르는데, 얼굴이 생각 안 나요. 구김살없는 얼굴로 웃었던가, 어떻게 울었던가하는 것들. -_-
메종 드 히미코는 조제와 마찬가지로 극장에서 반응이 좋은 편이라네요. 아마 제법 오래 상영하지 싶어요. 디비디말고, 극장에서 보세요, 꼭!

히피드림~ 2006-02-06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보셨군요~
관심있던 영화라 님의 글 재밌게 읽었어요.
빨리 비디오로 나왔으면...^^;

urblue 2006-02-06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극장에서 보실 수 있으면 좋을텐데 제가 다 아쉬워요. ^^;

로드무비 2006-02-06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갈등 생기네.
둘 중 어떤 영활 보아야 하나?!
에브리원이랑 히미코랑.
우짜까요?ㅎㅎ

urblue 2006-02-06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둘 다 보시면 안되나요? ㅎㅎ
전 다음주에 에브리원이랑 차일드랑 볼거여요.
아, 님은 차일드도 보고 싶어하실 줄 알았는데요.

로드무비 2006-02-06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론 차일드도 보고 싶지요.
하지만 찜한 순서에서......

merced 2006-02-06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시여, 이 영화 하는 극장은 왜 몇 개 되지도 않고, 왜 우리집에선 다들 멀기만 한겨.

urblue 2006-02-06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그렇지? 그치만 회사 끝나고 씨네코아나 명동 씨네콰논 같은 덴 갈만하지 않나? 명동 씨네콰논에 첨 가 봤는데 아담하고 깔끔하니 괜찮더군. 단, 앞자리에 키 큰 사람 앉으면 끝장이다.

merced 2006-02-19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국, 봤어요. 클럽에서 그 춤 배우고 시포. 함께 본 친구(남자)는 하루히코가 매력적이다 "마성의 게이"다, 캐릭터 영화-게이 판타지다, 는 이야기를 했고, 루비를 아들에게 보냈을 때 사오리가 모두를 질타하던 말 동감, 하지만 그들은 "관계"에 있어서 훨씬 자유롭고 솔직하게 사는구나 생각했어요.
편견 하나: "여자들도 못 입는 옷이 있다구요" 있잖아요, 그거에요. 예쁜 게이들은 여장 환영, 하지만 안 어울리는 사람은 여장 안하고 다녔으면 좋겠다.

urblue 2006-02-20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클럽 장면은 좀 뜬금없긴 하지만 나름대로 유쾌하지. 특히 그 춤, 보면서 한참 웃었다니까. 근데, 그걸 배우고 싶어? ㅋㅋㅋㅋ
그치만 (예를 들면) 뚱뚱하고 못생겼으니까 이쁜 옷은 입지마, 라고 하면 너무하잖아. 자기한테 안 어울리는 거 알지만 그래도 입고 싶은 옷, 하고 싶은 거 등등 있지 않나. 그럼 해야지 뭐.

merced 2006-02-20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니까 그걸 여럿이 같이 추면, 뜬금없이 유쾌해질 것 같아서요.
그니까 "편견"이라잖아요. 누구라도 하고 싶은 거 하는 게 맞지만, 언니가 레게머리를 한다, 면 사실 말리고 싶단 말이죠.

urblue 2006-02-20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야~ (레게머리 하고 싶지 않은 게 다행인가. 삭발은 해 보고 싶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