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어디에도님의 서재에 캡쳐를 남겨놓고, 이벤트니 뭐니 무슨 선물을 주실거냐 어쩌고 했었는데, 진짜로 보내주실 줄은, 이리 좋은 선물을 받게될 줄은 모르고 있었다.

라벤더와 로즈마리 초와 김영하의 책 두 권.

행복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낯선 사람들, 글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서로 이것저것 베풀 수 있다는 게 놀랍다. 나 또한 무엇이든 주어도 아깝지 않을듯한 기분.

어디에도님, 행복한 마음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장 큰 선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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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09-03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포스터잇 한쪽 떼주실래요?^^

urblue 2004-09-03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 2004-09-03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쓴 것 말고...
우왕, 아무래도 빨리 사진 올리는 것 배워야겠다.
너무 재밌어요.^^

urblue 2004-09-03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깨끗한 걸 원하신다니 또 드려야죠. ^^ (제가 더 재밌어요. 혼자 신났습니다.)



어디에도 2004-09-03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이럴수가...
블루님, 이... 이... 걸 올리시면 어떻게 해요!!!
(사진으로 찍으니 웬지 더 좋아보이긴 하는군 흠흠흠)
잘 받으시고 좋아하시니 저도 덩실덩실 기쁩니다.

urblue 2004-09-03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랑하고 싶어 견딜수가 있어야죠!!!

▶◀소굼 2004-09-03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랑하는게 예의에요:)

stella.K 2004-09-03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격조와 품위가 느껴지는 선물이군요.^^

urblue 2004-09-03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굼님,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

스텔라님, 방문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님 서재에 들어가서 글만 보고 나오곤 했거든요. 앞으로는 아는 척 해도 되겠네요. ^^
 
 전출처 : 에레혼 > 이 길이 마음을 담았느냐?

 

어떠한 길도 하나의 길에 불과한 것이며,

너의 마음이 원치 않는다면 그 길을 버리는 것은

너에게나 다른 이에게 무례한 일이 아니다......

모든 길을 가까이, 세밀하게 보아라

네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몇 번이고 해보아라

그리고 오직 너 자신에게만 한 가지를 물어보아라

이 길이 마음을 담았느냐?

그렇다면 그 길은 좋은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그 길은 소용없는 것이다

 

카를로스 카스타네다, <Don Juan의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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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09-03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이 야단치셔서 가서 인사드리고 왔어요.
좋은 데 많네요.^^

urblue 2004-09-03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 로드무비님, 너무 착하시잖아요. 잘 하셨어요. ^^; (이거 분위기가...)

에레혼 2004-09-04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분 다 참 착하세요 ^^ ; (뽀뽀뽀 버전 같네요) 여기 부려놓으셨군요. 뒤늦게 와서 인사 드립니다.
알라딘의 파도타기, 요즘 저의 즐거움이랍니다. 좋은 님들이 기슭마다 아름다운 서재를 하나씩 열어놓고 계시더군요.
유어블루님 방도 천천히 둘러볼게요.
 
 전출처 : 에레혼 > 3월 24일 독서일기

오늘은 파도를 타고 가다가 이런 글을 하나 발견하고, 잠시 작은 감동에 젖었다

스페인어 용법 사전의 서문(스페인어 사전은, 다른 외국어의 경우도 이런 예가 있겠지만, '단어 정의를 학문적으로 설명하는 사전'과 '용법 사전'으로 크게 나뉜다고 한다. 후자는 낱말의 정의를 더 쉽게 설명하고 예문을 많이 싣는다. 외국인들이 공부하기에는 후자가 훨씬 좋을 듯)이라는데, 이 서문을 <백년 동안의 고독>의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썼다
'말의 창고'이자 '언어의 심해'인 사전의 머릿글을 국어학자가 아닌 작가가 쓰도록 하는 사회의 문화적 안목!(이래서 또 스페인은 매력적인 나라이다!)

마르케스가 쓴 이 서문은 사전의 서문으로서의 의례적인 품새보다 말에 관한 '한 편의 글'로서 아름답다

 



---------------

서 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내가 다섯 살 때 육군 중령이었던 할아버지는 아라까따를 지나고 있던 서커스로 나를 데려가 동물들을 구경시켜 주었다. 가장 내 관심을 끌었던 것은 몸이 뒤틀리고 쓸쓸해 보이던, 무서운 엄마 같은 표정을 하고 있던 말이었다. “그건 까멜요(낙타)야.” 할아버지가 말했다. 곁을 지나가던 누군가가 끼어들었다. “죄송합니다, 대령님.” 그는 말했다. “그건 드로메다리오(낙타)입니다.” 손주 앞에서 지적을 당한 할아버지의 기분이 어떠했을지 지금 나는 짐작할 수 있지만, 할아버지는 위엄있는 질문으로 이를 이겨냈다.

“차이가 뭐요?”

“모릅니다.” 그는 말했다. “그렇지만 이건 드로메다리오입니다.”

할아버지는 유식하지도 않았고 유식해지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열 네 살 때 수업을 빠져나와서 카리브 해 연안에 셀 수 없이 많았던 시민전쟁 중 하나에 총을 쏘러 갔고, 그 뒤에 다시 학교로 돌아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생 동안 자신의 그런 약점을 느끼고 있었고, 이를 보충하고도 남는 날카롭고 재빠른 이해력을 지니고 있었다.

서커스에 갔던 날 오후에 할아버지는 맥이 빠진 채 집으로 돌아와 나를 사무실로 데려갔다. 할아버지의 소박한 사무실에는 커튼이 달린 책상, 선풍기, 거대한 책 딱 한 권이 꽂힌 책꽂이가 있었다. 할아버지는 어린애처럼 열심히 그 책을 뒤졌고, 설명을 곱씹어 보고 그림을 비교했으며, 그 때부터 할아버지와 나는 드로메다리오와 까멜요의 차이가 무엇인지 영원히 깨닫게 되었다. (역주: 드로메다리오-단봉낙타, 까멜요-쌍봉낙타) 결국 할아버지는 내 무릎에 책을 올려놓고는 말했다.

“이 책은 뭐든지 다 알고, 게다가 절대로 틀리지 않는 유일한 책이란다.”

그것은 국어사전이었다. 언제 어디서 나온 책인지는 신만이 아시리라. 아주 낡아 금방이라도 제본이 풀릴 듯했다. 책등에는 어깨에 우주의 천장을 올려 놓고 있는 아틀라스의 거상이 그려져 있었다. 할아버지는 말했다. “이 그림은 사전이 세계를 지탱하고 있다는 뜻이야.” 나는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지만, 첩첩이 쌓인 근 이천 페이지의 책장과 예쁜 그림들을 보고 할아버지가 얼마나 맞는 말을 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성당에서 나는 미사책의 크기에 감탄한 적이 있었지만 사전은 더 컸다. 그것은 마치 처음으로 전세계를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말이 몇 개나 들어 있을까?” 나는 물었다.

“다 있지.” 할아버지가 말했다.

사실 그 때 나에게는 말이 필요 없었다. 나를 놀라게 하는 모든 것을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네 살 때 나는 마술사 리샤르딘을 그렸다. 우리는 그 전날 밤에 극장에서 그가 자기 부인의 머리를 잘랐다가 다시 붙이는 것을 보았었다. 톱으로 목을 자르는 생생한 모습에서 시작하여 피투성이 머리를 자랑스럽게 보여주고, 결국은 머리가 다시 제 자리에 붙은 부인이 박수에 감사하면서 끝났다. 만화는 예전에 발명되어 있었지만, 나는 나중에 일요일 신문의 칼라 보충면에서 처음 만화를 보았다. 그 뒤로는 글을 몰랐기 때문에 대화 없이 그림으로만 된 만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전을 처음 본 날 밤에 말에 대한 큰 호기심이 내 안에서 깨어났고, 그래서 나는 나이보다 일찍 글을 배우기 시작했다. 작가로서의 내 운명에 초석이 된 책과 나의 첫 만남은 이러했다.

 

어떤 음악의 거장의 말에 따르면, 매일매일 피아노 연습을 시키는 것은 비인간적인 일이고, 집에 피아노를 놓아서 아이들이 가지고 놀도록 하는 것이 맞다고 한다. 내가 국어사전을 만난 것이 이런 식이었다. 나에게 이 책은 절대로 공부할 때 쓰는 것, 부담스럽고 박식한 것이 아니라 평생 갖고 노는 장난감이었다. 특히나 한번은 ‘노랑’이라는 단어를 찾아보자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말은 이렇게 간단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레몬의 색’. 나는 안개에 휘말렸다. 남미에서 레몬은 초록색이기 때문이다. 가르시아 로르까의 <집시 민요집>에서 잊지 못할 다음 구절을 읽었을 때 혼란은 더욱 커졌다. ‘길 한가운데서 둥근 레몬을 잘라 물속으로 던지면서 갔다, 물이 금으로 변할 때까지’. 세월이 흐르고 한림원 사전이 -아직 레몬을 언급하고 있기는 했지만- 이런 뜻을 덧대어 수정했다. ‘금의 색깔.’ 스물 몇 살이 되어 유럽에 갔을 때에야, 비로소 그곳에서, 실제로 레몬이 노랗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 때 나는 이미 옛날 사전들과 요즘 사전들을 뒤져 가며 태양 광선의 세 번째 빛깔을 인양해 내는 매혹적인 작업을 마친 참이었다. ‘라로스 사전’과 ‘복스 사전’은 ?1780년에 나온 한림원 사전과 마찬가지로- 역시 레몬과 금을 언급하고 있었고, ‘마리아 몰리네르 사전’만이 1976년에 노랑은 레몬 전체가 아니라 그 껍질만의 색임을 정확히 암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몰리네르 부인도 ‘모범 사전’의 시적 정취를 무시했다. 이 책은 1726년에 한림원에서 초판이 발행되었고, 서정적이고 소박하게 노랑색을 묘사하고 있었다. ‘이 색은 강렬할 때는 금을, 완화되면 금작화를 모방한다.’ 그러나 물론 이 모든 사전을 다 합쳐도, 1611년에 세바스띠안 데 꼬바루비아스 경이 쓴 가장 오래된 사전의 발목에도 이르지 못한다. 이 책은 노랑색을 정의하기 위해 정확성과 영감이라는 측면에서 어떤 사전보다도 멀리 나아갔다. ‘색깔들 중에 가장 불행한 색, 죽음과 긴 중병의 색깔이기에. 또한 사랑에 빠진 이들의 색.’

 

이렇게 무분별한 조사를 통해 나는, 무거운 의미를 나르는 이 사전들이 글을 잘 쓰기 위해 가장 중요한 말의 한 차원을 붙들려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것은 말의 주관적 의미이다. 아무도 이것을 5세 이하의 아이들이나 100세 이하의 작가들만큼 잘 알지 못한다. 맛과 소리와 냄새가 가장 쉬운 예이다. 아주 여러 해 전에 나는 한밤중에 뜰에 묶인 새끼양 때문에 잠을 깼다. 새끼양은 잔인할 정도로 규칙적인 쇠소리로 울고 있었다. 내 동생들 중 하나가 그 탄식이 지닌 균형에 매료되어 어둠 속에서 말했다. “꼭 등대 같아.” 오래된 약초로 끓인 탕약의 맛은 뚜렷이 성 금요일 행렬의 맛이었다. 예전에 쿠바에서 ‘쿠바 리브레’를 대신할 목적으로 만든 탄산음료를 체 게바라가 시음했을 때, 그는 티브이 카메라 앞에서 망설임 없이 말했다. “바퀴벌레 맛입니다.” 나중에 사석에서 한 말은 더욱 명백했다. “똥 맛이야.” 우리는 얼마나 많이 창문 맛 커피, 궤짝 맛 빵, 옷깃 맛 쌀, 재봉틀 맛 국을 먹었던가? 한 친구는 식당에서 셰리주로 요리한 굉장한 콩팥 요리를 맛보고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여자 맛이 나.” 타는 듯한 여름 로마에서 나는 의심할 여지 없이 모차르트 맛이 나는 아이스크림을 먹었었다.

이런 종류의 연상은 좋은 소설가와 그렇지 않은 소설가 사이의 차이와 깊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모든 말과 모든 구절에서, 대답 하나에 대한 단순한 강조 안에는 작가만이 알고 있는 은밀한 의도가 숨어 있을 수도 있다. 이는 읽는 시간과 장소, 누가 그것을 읽는가에 따라 달라질 것임에 틀림없다. 모든 작가는 자신에게 가능한 만큼 글을 쓰기에, 이 우연으로 가득찬 작업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작가가 가진 도구를 잘 다루는 것뿐이 아니다. 또 다른 큰 어려움은, 지금까지 글을 쓰기 위해 발명된 유일한 방법인 한 글자 뒤에 다른 글자를 붙인다는 방법 안에 얼마나 많은 마음을 집어넣는가이다.

 

시의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전은 물론 없지만 아마 존재해야만 할 것이다. 정녕 잊을 수 없는 마리아 몰리네르 부인은 이를 염두에 두고서 거의 전례 없는 일을 자기 자신에게 약속했다. 그녀는 스페인어 용법 사전을 혼자서, 자기 집에서 자기 손으로 직접 쓴 것이다. 도서관 사서 일, 그리고 그녀가 자신의 진짜 일이라고 생각하던 양말 깁기가 끝나고 남는 시간에 그녀는 글을 썼다. 그녀가 정말로 원하던 것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날아가 버리기 시작하는 단어들을 붙잡는 것이었다. 한 인터뷰에서 그녀는 말했다. “무엇보다도 신문에서 보이는 단어들이 중요해요. 거기서 살아 있는 언어, 사용되고 있는 말, 현재에 발맞춰 만들어져야 하는 말들이 나오니까요.” 사실, 이 신화적인 사람이 착수한 일은 삶과의 경주이자 삶에 대한 저항이었다. 이는 영원히 계속되는 작업이다. 왜냐하면 말은 학교에서 학자들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거리에서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전의 저자들은 말들을 거의 언제나 너무 늦게 채집해서 알파벳 순서에 맞춰 박제로 만들고, 이 순간 종종 말들은 그 말이 생겨났을 때와는 의미가 달라져 있다.

실제로 모든 사전은 출판되기 이전에 이미 효력을 잃기 시작하고, 저자들의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망각을 향해 가는 그들의 작업 속에서 말들을 살려내지 못한다. 그러나 마리아 몰리네르는 최소한 이 작업이 용법 사전에 있어서만큼은, 아니면 사무실에 앉아 말들이 자신을 찾아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거리로 이들을 찾아나서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덜 실망스러운 것임을 보여주었다. 지금 막 내 손 안에 도착한, 아직도 소나무와 신선한 잉크 냄새가 나는 이 사전이 그렇듯이 말이다.

그리고 이 사전의 수명은 수많은 다른 사전들보다 조금 더 길어질 수도 있으리라. 다섯 살 이후의 아이들이 갖고 놀도록 만들어진, 또한 좋은 작가들이 -운이 좀 좋다면- 100살까지 갖고 놀 사전보다 쓸모있고 고귀한 것은 없다는 사실이 제때 알려지기만 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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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09-03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너무 재밌게 읽었어요.
생전 처음 구경한 책이 사전이었다니...
마르께스다워서 좋네요.
시적 정취가 물씬한 사전...인디언식 표현...
참, 이외수가 언제 자기식의 사전을 만들지 않았나?^^
자료로 퍼가요.

mira95 2004-09-03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좋은 글이네요.. 사전이라.. 사전찾기를 귀찮아 하는 사람이 많으니(저를 포함해서) 말들이 자꾸 잊혀져 가는 것 같아요..

urblue 2004-09-03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그런데 퍼온글에 추천을 누르시면 어떡하십니까...--;

로드무비 2004-09-03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게 퍼온 글인가요?
아무렴 어떻습네까!

비로그인 2004-09-04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이런 서문이 담긴 사전이라니.. 너무나 황홀하군요. 여기저기 밑줄 긋고 외우고 씹어먹어버리고 싶어요. 아니 마르께스의 머리통을 통째로라도...
 

어느 분 페이퍼에 인사 잘 하는 것에 관한 글이 올라왔다. 인사 얘기 하니 갑자기 생각나는 게 있는데, 댓글로 달자하니, 처음 간 서재에, 것두 밝고 즐거운 내용에 어두운 흔적을 남기기 뭐하여 그냥 돌아섰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내가 산 곳은 온 동네 사람들이 서로 모르는 게 없을 정도로 가깝게 지내는 곳이다. 엄마들은 동네 한 구석에 의자를 내 놓고 모여 앉아 왁자하게 웃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몰려다니며 딱지치기, 구슬치기, 고무줄, 시장놀이 등에 열중하고, 런닝셔츠 바람의 아버지들은 동네 구멍가게 앞의 평상에서 소주 한잔 걸치는, 작은 동네.

모르는 사람이 없으니 당연히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를 해야 한다. 하루에 몇 번씩도 마주치지만 어쨌거나 하루 중 처음 보았을 때는 '안녕하세요?' '식사 하셨어요?'로 시작하는 것이다.

어릴 적의 나는 그다지 인사성 밝은 아이는 아니었다. 새침하고 여우같은, 한편 영악한 아이였고, 동네 어른들을 만나도, 매일 보는 사람들인데 뭐, 하며 고개만 까딱하는 정도였다.

우리 집에서 버스를 타러 나가는 길에, 그래봤자 예닐곱집 건너지만, 야채 가게가 하나 있었다. 안쪽에 살림집이 있었고, 그 집 오빠와 친했던 까닭에 자주 드나들던 곳이다. 오빠의 어머니는 걸걸한 성격에 몸집도 크고 목소리도 큰 분이었다. 물론 우리 엄마와도 친하셨다.

중학교 1학년의 어느 날, 등교길에 야채 가게 앞에서 부산스레 움직이시던 아주머니를 보았다. 잠깐 눈이 마주쳤는데, 아마 손님이 있었던지 아주머니는 곧 내게서 눈을 거두셨고, 난 인사를 하지 않은 채로 그냥 지나쳤다. 그런데 등 뒤로 '잘 다녀와라' 하는 소리가 날아왔다. 그 때 고개를 돌리고 '네'라는 대답이라도 했으면 좋았으련만, 난 총총히 발걸음을 옮기는데만 열중했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할 때 쯤에야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인사를 했어야 하는 건데, 이렇게 못된 애라니. 집에 돌아갈 때는 '다녀왔습니다.'라고 꼭 인사해야지,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 인사는, 영영 못하게 되었다.

하교길에 보니 가게는 문이 닫혀 있었다. 집에 돌아오니 엄마는 안 계셨고, 아버지가 그 아주머니가 낮에 돌아가셨다는 말씀을 하셨다. 동네에 결혼하는 언니가 있어서 그 집 잔치 준비 하느라 온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였는데, 음식 만들면서 웃고 떠드는 와중에 갑자기 아주머니가 쓰러지셨다는 것이다. 급히 응급실로 실려갔지만, 의사들이 손 쓸 겨를도 없이 그냥 그렇게 세상을 뜨셨다 한다.

아는 사람의 죽음이라는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지만, 슬픔이나 놀라움보다는, 그 날 아침 아주머니께 인사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가 컸다. 왜 그랬을까, 왜 아주머니 얼굴 보면서 웃지않은 걸까, 왜 이렇게 못된 아이인 걸까...

그렇다고 이후에 내가 갑자기 인사를 잘 하게 된 것은 아니다. 그건 훨씬 뒤의 일이다. 좀 더 나이를 먹게 되자 제법 사근사근하고 밝게 인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안녕하세요'라고 말하는 거,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 세상에 어려운 일 널리고 널렸다. 삶이 팍팍하다면, 그나마 오고가는 밝은 인사는, 설사 도움이 되지는 못한다할지라도 잠깐의 위로는 될 수 있다. 다들, 서로 위로하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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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마녀 2004-09-02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치 단편 소설을 한편 읽은 느낌입니다. 이걸로 베스트 극장 하나 만들어도 되겠는데요.

미완성 2004-09-02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입술은 벌리라고 있는 거구,
볼때기는 이쁘게 패이라고 있는 거구,
허리는 가끔 좀 숙이라고 있는 거구,
웃음은 처음부터 있었던 거니까.....
맞아요. 위로는 공짜부터 무시무시하게 비싼 것까지 가격대가 참 다양하고 멋지게..많아요.
세상은 위로의 백화점같애요.
그르치만 가끔은 위로보다 밥이 더 좋지요-*

urblue 2004-09-03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녀님, 이 참에 시놉 하나 써서 보내볼까요? (...아침부터 웬 헛소리냐...)

사과님, 댓글이 예술입니다. 가끔은 위로보다 밥이 더 좋다는 말, 100% 공감이구요. (그나저나 요즘 개강 준비로 바쁘셨다구요?)

chika 2004-09-03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인사성 없다고 욕먹는..생각해보니, 지금까지도 욕먹고 지내는 녀석이란게 막 떠올랐습니다. ㅡㅡ;
게다가 가끔보다는 더 자주 전 위로보다 밥을 더 좋아하는거 같다는 생각에 또... ㅡㅡ;

헉, 아침부터 쓰는 글이 또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으하하~
신나게 삽시다~!!! 행복한 오늘을 사시길~!!! ^^

로드무비 2004-09-03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요, 그러니까 블루님은 저에게 더 잘해주셔야 돼요.
(으잉? 이게 무슨 소리댜?)
추천 꾹.

2004-09-03 1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urblue 2004-09-03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카님, 님 이미지의 환하게 웃는 얼굴 보는 것만으로도 신나는 아침이에요. ^^

로드무비님, 그러니까, 그게, 에..., 무슨 말씀이시온지? (님한테 인사 잘 하잖아요~ 아직 만족하지 못하시는 건가요?)

속삭이신님, 제가 페이퍼 쓰면서 젤루 귀찮은 게 제목 다는 거랍니다. 그래서 대개 제가 쓴 글 중 일부를 제목으로 삼지요. 뭐 머리가 안되니까...흑... 앞으로는 조금 고민해 보지요. ^^

로드무비 2004-09-03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루님, 제가 항상 한 박자 늦게 나타나죠? 두 박잔가?
호호 이제야 즐찾했어요.
잘했죠?^^

urblue 2004-09-03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찾 안 하고도 찾아오신게 더 신기한걸요. 그럼 다른 서재들도 즐찾 안 한채로 그렇게 열심히 다니시는 건가요? 흠...너무 부지런하셔... 전 즐찾 안 한 서재들은 찾아가기가 귀찮아서 다 즐찾하는데요. ^^;

로드무비 2004-09-03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찾 안하고(한 줄 알고) 부지런히 간 곳은 님밖에 없다는 말씀.
믿거나 말거나.흥=3=3=3(이거 너무 재밌지 않아요?)

urblue 2004-09-03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거 해 보고 싶었는데 어디 쓸 데가 없더라구요. (담에 님 서재에서 써 봐야지~~)

urblue 2004-09-03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따우님 글에 댓글 달고 싶었는데 제가 좀 소심하여 이리 따로 글을 썼습니다.

비로그인 2004-09-04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셔.요! 안.녕.하.셔.요!
그게 내내 마음에 남으셨군요. 인사를 퍼뜨리는 분이 되셨으니 아주머니가 하늘나라에서 기뻐하실 거 같아요. 저도 인사를 좀 더 잘 하겠습니다.
 

 

 

 

 

 

 

스티븐 킹의 작품 중 영화로 만들어진 것들을 꽤 흥미롭게 봤음에도 어쩐 일인지 원작을 봐야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아마 영화 자체로 만족스러웠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지난 번 베스트셀러 작가 할인전 때 스티븐 킹을 시작해 볼까 잠시 생각했으나, 대부분의 평이 이 사람에게 빠지면 헤어날 수 없다는 식이어서, 시작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안 그래도 잔뜩 쌓여있는 책을 어쩌고 또 다른 작가란 말이냐.

지난 주 옥션에 이 네권의 책이 한꺼번에 올라왔다. 괜히 반가운 마음에, 읽을까 말까했던 고민은 싹 잊어버리고 덜컥 입찰했다. 내가 입찰한 가격이 23,000원이고 결국 낙찰받았다. 낙찰받고나서 알라딘을 검색해보니, 사실 그다지 싸게 산게 아니다. ─ ─^ 알라딘에서 구입했다면 35,000원이지만 적립금이 7,000원 쯤 되니까 결국 5,000원 이익이다. 평소에 책값보다 서비스 때문에 알라딘을 애용하는 나로서는 괜한 짓 했다, 는 생각이 들 정도.

막 책을 받았는데, 무지 깨끗하다. 새 책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래서 괜스레 기분이 좋고 흐뭇하다.

사람 마음이란 참 간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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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구두 2004-09-01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구입하셨습니다.

아영엄마 2004-09-01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옥션에서 낙찰을!! 축하드립니다. 저도 스티븐 킹의 팬의 한사람인데 아직 못 읽어본 책이 많아요. 위의 책들도 다 못 읽어본 것들이네요..

urblue 2004-09-01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구두님, 첫 코멘트치고는 상당히 썰렁합니다. ^^;

아영엄마님, 님이 그렇게 축하해주시니까 굉장히 장한(?) 일 한 듯한 기분이 드네요. ^^

하얀마녀 2004-09-01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결국은 기분이 좋았다니 얼마나 좋아요. ^^

2004-09-01 18: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4-09-02 00: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4-09-02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님의 옥션 아이디가? ㅎㅎㅎ
전 요즘은 아주 가끔 들어가본답니다.
좋으시겠어요.^^

바람구두 2004-09-03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 더 뭐라고 그래요? 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