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히 읽어야 책으로 꼽아둔 것이다. <우화>라는 소개글조차 걸리지 않았다. 다른 누구도 아닌 마르코스가 것이므로. 마르코스와 사파티스타에 이미 반했고 감동했으므로.

 

재미있다. 쉽게 이야기하고, 깨우침을 준다. 그런데 슬금슬금 다른 생각이 고개를 들이민다. 어이, 좋은데 말이야, 이거 너무 직접적이지 않아?

 

"모든 것이 착 가라앉아 고요할 때, 산에선 폭풍우가 몰아닥친다네. 개울물은 불어나 세차게 흐르기 시작하고, 골짜기께로 물줄기를 틀기 시작한다네. 힘은 산에서 생겨난다네. 그러나 물이 아래에 이르기 전에는 그 힘이 보이지 않지. 이제야말로 강물의 색깔이 바뀔 시간이네. 자네들은 실개천이라네. 우리들은 강물이고……. 자, 이제 내려오게나! 그 실개천들은…… 한번 내려오면…… 이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네. 오직 땅 속으로…… 땅 속으로……"

 

"사람은 마음을 들여다볼 줄 알기 때문에 사자의 힘을 보지 않고, 자기 자신의 마음이 지닌 힘을 본다네. 그래서 사자를 똑바로 쳐다보지. 사자도 사람을 보지만, 사자는 사람이 자기를 보는 대로 보게 된다네. 즉, 사람의 시야 속에서 보게 된다네. 그리하여 사자는 자신이 한 마리 사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고, 사람이 보는 대로 자기를 생각하면서 공포에 사로잡혀 이내 도망치게 된다네."

 

누군가는 다른 누군가를 빛나게 하기 위해 스스로 꺼져야 한다. 그러나 사실은 빛나는 이들은 스스로 꺼진 이들로 인해 밝게 빛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 세상 그 누구도 빛날 수 없다.

 

"동물들 앞에선 칼처럼 싸워야 할 때가 있다. 폭풍우에 맞서선 나무처럼 싸워야 할 때가 있다. 시간에 맞서선 바위처럼 싸워야 할 때가 있다. 그러나 칼, 나무, 바위들과 맞서선 물처럼 싸워야 할 때가 있다. 지금은 우리가 물이 되어야 할 때이다. 지금은 우리가 우리 길을 계속 가야 할 때이다. 위대한 신들, 세상을 창조한, 최초의 신들이 자신들의 목마름을 해결하기 위해 만든 ‘큰 물’까지 우리를 데려다 줄 강을 향해서."

 

투쟁은 둥근 원과 같다. 어느 곳에서나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결코 끝나지 않는다.

 

"지금은 빈곤한 시절일세. 이 시절엔 시간이 사람을 굶주리게 해서 죽이려 한다네. 단지 희망만이 사람에게서 시간의 상처를 덜어준다네."

 

"내가 오직 알고 있었던 것은 우리가 함께 길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뿐이었네. 그렇게 우리가 길을 만들었다네. 그렇게 우리가 원하던 곳에 도착했다네. 길은 바로 우리가 만든 것이라네. 거기에 길은 없었다네."

 

이런 글들을 보면서 나는 쉽게 감동하지 못할까. 마르코스의 성명서가, ‘투쟁하라! ‘라는 선동이 차라리 감동적이다. ‘우화라는 어쩐지 낯간지럽다. 하고 싶은 말이 보이는데 이렇게 돌려서 얘기해야 하는 걸까 라고 생각해 버린다.

 

역시 나는 순수하지 못한 인간이다, 라는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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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냐 2004-10-01 0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책마다 그 당시의 감동이 있죠. 지금 보니, 정말 님의 말씀처럼 다소 낯간지럽기도 합니다. 몇년전엔 또 감동이었거늘...뭐, 여전히 좋습니다만...^^;;;
'세계화와 싸운다'를 한번 봐주시길...멋진 마르코스...또 나옵니다.

urblue 2004-10-01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좋긴 했습니다. ^^;
<세계화와 싸운다>는, 전에 님의 리뷰를 보고 보관함에 담아 두었는데, 언제나 읽게 되려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멋진 마르코스가 나오니까 일단 사기라도 할까봐요. ^^

2004-10-01 09: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4-10-01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나는 순수하지 못한 인간이다, 라는 결론이 몹시 마음에 드는구랴.^^

urblue 2004-10-01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가끔 보면 님 성격 참 특이합니다. 그거 아세요? ^^
속삭이신님, 저야 당연 좋죠. ^^

로드무비 2004-10-01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매력적이란 이야기겠지, 뭐.홍홍

urblue 2004-10-01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님을 좋아하죠. 재밌잖아요. ㅎㅎ
 

가을....배롱나무....평사리...happy 추석!  






비바람이 폭풍으로 몰아치던 날
충남 보령..




한 빨치산 노인의 마지막을 지켜보았다.



서해안 고속도로를 따라 내려오던 길  만경 부근이었을까?
먼 산 위로 아릿한 무지개를 보았다.
가까이 가고 싶었지만 갈 수 없었다...



길가에 멈춰 한 참을 바라보았다.
잠시 시퍼런 하늘도 보여 주었다.
한 참 후에야 난
그 무지개와 시퍼런 하늘이 그 노인이 쫓았던
꿈과 세상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간밤에 세찬  바람과 함께 많은 비가 내렸다.



섬진강  모래톱들이 물에 잠겼다.

왜가리일까?

-외롭니?
-나도 외롭다.


안도현의 새 시집 <너에게 가려고 나는 강을 만들었다>을 보았다.
   
<강>

너에게 가려고
나는 강을 만들었다
강은 물소리를 들려주었고
물소리는 흰 새떼를 날려 보냈고
흰 새떼는 눈발을 몰고 왔고
눈발은 울음을 터뜨렸고
울음은 강을 만들었다
너에게로 가려고      






화개에서 구례로 가는 섬진강 길엔 붉은 배롱나무가 한창이다.
늘 이 길을 다니지만 한 번도 걸어 본적은 없었다.
가을 날..
이 길을 걸으며 배롱나무와 만났다.  





배롱나무는 여름 내내 장마와 무더위를 이겨내면서 꽃을 피워낸다.
꽃백일홍과 구분지어 목백일홍(木百日紅)이라고도 부른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하여 열흘 가는 꽃이 없다지만
배롱나무는 백일 동안이나 꽃을 피운다.




하지만 배롱나무의 꽃은 한 송이가 피어 오랫동안 버티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꽃들이 원추상의 꽃차례를 이루어 차례로 피어나는데 그 기간이 100일을 지난다.




사육신의 한 사람인 성삼문이 지은 배롱나무 한시가 있다.

   昨夕一花衰(작석일화쇠) 어제 저녁 꽃 한 송이 지고
   今朝一花開(금조일화개) 오늘 아침 꽃 한 송이 피어
   相看一百日(상간일백일) 서로 일 백일을 바라보니
   對爾好銜杯(대이호함배) 내 너를 대하며 좋이 한 잔 하리라






꽃잎은 꽃받침과 더불어 6개로 갈라지고 주름이 많다.
수술은 30∼40개로서 가장자리의 6개가 길고 암술은 1개이다.





매끄러운 줄기를 긁어주면 모든 나뭇가지가 흔들리면서 간지럼을 타기 때문에
충청도에서는 ‘간지럼나무’라 하고 제주도에서는 ‘저금 타는 낭’이라고 부른다.




배롱나무는 사람이 일부러 심지 않으면 스스로 번식할 수 없는 나무다.
흰꽃이 피는 배롱나무도 있는데 나무를 심은 사람이 죽으면 3년 동안 꽃이 하얗게 핀다는 속설이 있다.



꽃말은 ‘떠나간 벗을 그리워함’이다.




....

나무로 치면 고목이 되어버린 나도
이 8월의 폭염 아래 그처럼
열렬히 꽃을 피우고 불붙을 수는 없을까
                 
          -목백일홍 중에서

그래도 난 아직 고목은 아니다...



배롱나무 옆 철없는 장미 한 송이....




또 다른 비바람이 지나간 날 새벽
길을 나섰다.



보이는 모든 것들이 안개속이다.
비 온 뒤 일교차가 심한 지리산자락은 안개 속 섬처럼 보인다.




봄날을 자랑하던 화개십리 벚꽃 길에도
이젠 낙엽이 진다.




어느 봄날엔 이런 모습이었다...




한 친구에게서 오는 메일의 끝엔 항상 이런 구절이 붙어 있다.

“그는 이 사막에서 너무 외로워,

이따금 뒤로 걸었다.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기 위하여.“




이런 글을 보낸다. 그 친구에게..
 
 세상을 믿고 싶을 땐
 뒤로 걸어본다
 등 뒤로, 보이지 않는 세상 쪽으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면
 두근거리는 뒤꿈치마다
 두려움과 기쁨이 밟힌다
 이렇게 세상을 등지고 걷는 것은
 등 뒤에 있는 세상을
 끝끝내 믿고 싶기 때문이다.

                   손나희...




강둑을 지나 악양으로...
평사리 들판



















10월 9일 인가?....평사리 들판과 최참판댁에서 토지문학제가 열린다고 한다.
박경리선생님도 오시려나..
멋진 허수아비도 그래서 서 있는 거란다.
농약땜에 참새가 없단다...참새가 보고 싶어...ㅠㅠㅠ.



이 노인과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하며 저렇게 바라만 보고 있을까?
누굴 기다리나?
아름답고 풍요로운 평사리에서
이들은 행복할까?

지리산에 온지 일 년 반이 지났다.
요즘 이런 생각을 한다.

사랑 하나만은 느끼며 살자
분노 하나만은 지니고 살자
거침없이 살자.
FOR REVOLUTION!

happy 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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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a95 2004-09-30 2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이 예술이네요... 퍼가고 싶은데..출처에서 퍼가야겠죠...

urblue 2004-09-30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게 좋겠죠? ^^
 

어제, 9시간의 귀경길.

동생 부부를 청평의 처가에 내려주고 2시간여를 혼자 운전해 집에 돌아오니 완전히 늘어져버렸다. 엄마가 싸 준 송편 몇 개와 오렌지 주스로 간신히 허기를 달래고 바로 침대에 쓰러졌는데, 새벽에 속이 불편해 잠에서 깼다. 얼마 먹지도 않은 거 다 토해내고, 속을 달래려고 마신 매실 원액마저 도로 변기에 쏟아붓고서야 겨우 다시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도 여전히 편치 않다. 미역국을 남비로 가득 끓여서 하루 종일 먹었다. 밥없이 국만 먹으니 영 기운이 없고 어지럽다. 빨래도 청소도 모두 미뤄놓고, 책도 읽히지 않고, 하루종일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케이블 TV로 이미 본 영화를 다시 보았다. 명절이라고 TV에서는 무슨무슨 특집만 잔뜩 해대는데 역시나 볼만한 게 없다.

벌써 12시가 다 되어 간다.

여전히 속이 좋지 않은데 배는 고프다. 방금 식은 미역국을 또 한 그릇 먹었다. 그래도 배고프다.

연휴의 마지막날, 이게 뭐냐. 좀 슬퍼지려한다. 배고픔은 슬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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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두기 2004-09-29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런. 기운 내세요. 제가 그 슬픔 좀 가져갈게요.
책은 내일 부칠게요^^

chika 2004-09-29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 제가 그 슬픔을 나눠드리겠사옵니다~
기쁨은 배부름이당~!!!
음... 뭐로 기쁘게 해 드리나? ㅡㅡ;;

음... 99년도에 있었던 실화인데요,,, 그당시 수녀원에서 살아서 컴퓨터를 잘 모르는 수녀님이 컴퓨터를 배우게 되었어요. 그때는 한글 97버전을 쓸 때였고, 도스가 아닌 윈도우즈 98을 쓸 때였쟎아요. 수녀님이 컴을 조금씩 배우게 되자, 새 컴퓨터를 구입하게 되었지요. 그래서 파견나온 직원이 컴을 설치하고 프로그램 설치 하고 부팅이 잘 되는가 수녀님께 함 켜보라고 했지요.
파워키를 누르고... 부팅되는 모니터 화면을 가만히 지켜보시던 수녀님께서 화들짝 놀라셔서는 저를 부르셨어요. '어머~ 이거 잘못됐다~'
설치 해주신 분은 다른곳에 일이 있다고 바삐 나가셨거든요. 그래서 제가 그분 멀리 가시기 전에 불러야 된다고 빨리 뛰어가서 뭐가 문제예요? 라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수녀님께서 하시는 말씀...ㅠ.ㅠ
"어머~ 올해는 99년도인데 여기 봐. window 98이라 되어 있쟎아. 작년거 설치하면 어떡해?"
히~ 글로쓰니까 별로 재미없다.
그래도 재밌다고 해 주세요~ 배고픔은 덜할꺼고.... 음... 배고픔을 느끼기 시작하니 속은 많이 괜찮아진듯하네요? 아프지 마시고... 내일은 기운찬 하루 되시길~ ^^

mira95 2004-09-29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슬퍼하지 마세요~~ 배부르게 먹으면 좀 괜찮아질라나~~ 전 방금 체리마루 아이스크림 왕창 먹었답니다 .... 눈물나네요.. 내 다이어트는 어데로 가버렸을까나~~~

urblue 2004-09-29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깍두기님, 고맙습니다. 님의 격려를 들으니 그래도 기운나네요. ^^

치카님, ㅋㅋㅋ 재밌어요. 큭큭거리며 웃고 있습니다. 네, 배고픈 거 보니까 이제 다 낫긴 한 모양이에요. 내일은 맛있는 걸로 잔뜩 먹으렵니다. 그러다 또 배탈나면, 에라, 또 좀 슬퍼하죠 뭐. ^^

urblue 2004-09-29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라님, 체리마루 아이스크림요? 잉, 저도 먹고 싶잖아요. 흑. 염장성 코멘트, 나빠요~~ ㅠ.ㅜ

숨은아이 2004-09-30 0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 막히는 길 운전하기 정말 힘들지요? 밥해서 꼭꼭 씹어드시는 게 최고인데.

로드무비 2004-09-30 0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근 준비중이겠네요.
아침에야 봤어요. 아니 그래 집에 햇반 하나 없었단 말요?
하루죙일 미역국만 퍼먹었다니 거참.
오늘 점심때 아주 맛나고 영양가 있는 걸로 먹어줘야겠다.
블루님 아셨죠?(집 냉장고 좀 채워 놓고 사셔요. 비상식량...)

urblue 2004-09-30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숨은아이님, 명절마다 대개 막히니까 그냥 그러려니 하려고 해도, 흑, 힘들어요. 아마 피곤해서 먹은 게 체했던 모양이에요.

로드무비님, 쌀도 있고 밥이야 할 수 있었죠. 겁나서 못 먹겠더라구요. 작년에 먹은 거 잘못되서 한 2주 고생하고 몸무게가 4kg이나 줄어버린 적 있거든요. 그래서 요즘엔 탈나면 그냥 굶어요. 이제 다 나은 것 같습니다. 오늘 맛있는거 먹을거에요. ^^

바람구두 2004-09-30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은 맛있는 거 드시길...
저는 두통이 심해졌네요.

urblue 2004-09-30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맛있는 거 먹고 들어왔습니다. ^^
두통 심한 것도 죽음인데... 약이라도 드세요. 참는 게 약 먹는거 보다 더 안 좋다네요.

바람구두 2004-09-30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그런가요? 저는 약을 잘 안 먹고 버틴 편인데... 이런.....이런
 

 

마치 꿈꾸는 것처럼

 

너의 마음 곁에 나의 마음이 눕는다
만일 병가를 낼 수 있다면
인생이 아무려나 병가를 낼 수 있으려고……,

그러나 바퀴마저 그러나 너에게 나를
그러나 어리숙함이여

햇살은 술이었는가
대마잎을 말아 피던 기억이 왠지 봄햇살 속엔 있어

내 마음 곁에 누운 너의 마음도 내게 묻는다
무엇 때문에 넌 내 곁에 누웠지? 네가 좋으니까, 믿겠니?

내 마음아 이제 갈 때가 되었다네
마음끼리 살 섞는 방법은 없을까

조사는 쌀 구하러 저자로 내려오고 루핑집 낮잠자는 여자여 마침 봄이라서 화월지풍에 여자는 아픈데
조사야 쌀 한줌 줄테니 내게 그 몸을 내줄라우

네 마음은 이미 떠났니?
내 마음아, 너도 진정 가는 거니?

돌아가 밥을 한솥 해놓고 솥을 허벅지에 끼고 먹고 싶다 마치 꿈처럼
잠드는 것처럼
죽는다는 것처럼

                                                                                                                                            ─  허 수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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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blue 2004-09-24 0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혼자 가는 먼 집>이 사라졌다. 불현듯 생각난 이 시, '돌아가 밥을 한솥 해놓고 솥을 허벅지에 끼고 먹고 싶다'를 확인하고 싶은데, 아무리 뒤져도 그 시집만 보이지 않는다. 제목이 기억나지 않아 한참 인터넷을 뒤졌다. 결국 찾아냈다. 좋은 세상이라는 걸 실감하는 순간이다.

솥째 밥을 먹고 싶을 때가 있다, 이 시인처럼, 죽는다는 것처럼.

비로그인 2004-09-24 0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가요? 전 요즘 먹는다는 게 여간 힘들지 않은데...우울증이 조금씩 깊어갈수록 속에 무얼 넣는다는 것이 거북합니다. 제 몸이 이렇게 혐오스러울 때가 없었는데...다이어트는 생각할 필요도 없이 가냘픈 몸이라 거식증은 아닌 듯 한데, 흠흠. 이번 추석에 집에 내려가 엄마가 해주는 나물밥이라도 먹으면 입맛이 조금은 나아질려나 모르겠군요. ^^

로드무비 2004-09-24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매일 솥을 허벅지에 끼고 밥을 먹는다우.^^

urblue 2004-09-24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nowave님, 우울증을 앓고 계신가요. 우울이란 놈, 툭툭 털어내 버리세요. 집에 가셔서 맛난 것도 많이 드시고, 기운도 차리시고, 건강해지세요. ^^

로드무비님, 흠흠...님은 충분히 그러실 것 같다는...( ") 건 아니고... 저도 님처럼 솥 끼고 많이 많이 먹고 싶네요.

2004-09-24 13: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4-09-24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해 바다에 안부 전해 주세요.^^

바람구두 2004-09-24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수경이 그새 도통했군요. 왜 그럴까?

urblue 2004-09-24 1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구두님이 도통하셨나 보죠.
 
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인간성 상실을 말하는 시대다. 자식이 부모에게 칼을 들이대고, 아비가 어린 딸을 폭행하고, 어미가 젖먹이를 목졸라 죽였다는 등의 뉴스가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세계의 한 쪽 끝에서는 강대국의 군인들이 경쾌한 음악에 맞춰 적이라고 주장되는 민간인들에게 총기를 난사하고, 그 옆에서는 무장세력이 역시 민간인을 잡아다 목을 벤다. 도처에서 많은 사람들이 굶고, 문명과는 거리가 먼, 그저 목숨을 연명하는 수준의 생활을 하고, 굶주림과 질병과 폭력으로 죽어간다.

 

자본이, 물질 문명이, 과학 기술이 인간을 소외시킨다고 말한다. 상당수의 범죄가 돈 때문에 일어난다. 물질 문명의 근간이 되는 석유는 전쟁을 일으킨다. 끝을 모르고 나아가는 과학 기술은 드디어는 인간의 체세포를 복제해낸다 하고, 조만간 당신과 똑같이 생긴 당신의 복제 인간이 등장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주제 사라마구는, 일반적인 경우에서처럼 물질 문명이나 고도의 과학기술, 혹은 전쟁과 같은, 인간성 상실을 부각할 만한 극한 상황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가 제시하는 가정은 단 하나, 전 세계의 모든 인류가 눈이 먼다는 것이다. 지금도 우리 곁에 눈먼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을 두고 인간성을 논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불편하고 힘들겠지만, 여전히 인간으로 살아간다. 우리와 똑같이 밥을 먹고, 옷을 입고, 비슷한 집에서 비슷한 삶을 영위한다. 그러나, 사라마구에 의하면, 이런 상황은 대다수의 사람이 눈멀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하다. 눈먼 사람은 대다수인 눈멀지 않은 사람들에 준하여 세상을 본다. 전에 우리가 볼 수 있었을 때도 눈이 먼 사람들이 있었잖아요. 지금과 비교하면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지, 일반적인 감정은 볼 수 있는 사람의 감정이었고, 따라서 눈먼 사람들의 감정이 아니라 성한 사람들의 감정을 가지고 있었어.

 

인간이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는 이유가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 호모 사피엔스 (Homo Sapiens) , 호모 에렉투스 (Homo Erectus), 호모 파베르 (Homo Faber), 호모 루덴스 (Homo Ludens), 호모 로퀜스 (Homo Loquens) 등 인간을 정의하는 말은 많지만 시력과 직접적으로 관계되는 것은 알지 못한다. 시력은 그저 기본 바탕일 뿐이다. 그러나 실제로 인간 이외의 동물들은 시각보다 청각, 후각 등 다른 감각에 훨씬 더 많이 의지한다고 한다. 만일 인간이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시력이 좋지 않았다면 인간은 다른 방식으로 살게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는 바로 이와 같은 상황을 상정하고 있다.

 

이것이 문명의 결점이다. 우리는 집 안에 들어오는 수도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급수 밸브를 열고 잠그는 사람들, 전기가 필요한 급수탑과 펌프, 부족분을 확인하고 여유분을 관리할 컴퓨터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잊곤 한다. 그리고 이런 모든 일을 하는 데는 사람의 눈이 필요하다는 것을.

 

어느 날 갑자기 인류를 찾아온 백색질병은 인간에게서 시력을 앗아간다. 처음 이 질병에 걸린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격리되어 수용소에 갇힌다. 이제 우리는 수용소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예상할 수 있다. 수도가 있고 화장실이 있으되, 눈먼 사람들은 이용할 수 없다. 잠자는 시간 외의 모든 시간은 텅 비어 버린다. 이들이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게다가 식량이 부족하다. 당연한 수순처럼 속임수와 폭력이, 온갖 종류의 야만이 찾아온다. 마침내 온 세계가 백색 질병에 감염되어 이들이 자유의 몸이 되었을 때조차 달라질 것은 없다. 그나마 수용소에서는 눈멀지 않은 정부가 식량을 공급했으나 이제 그것조차 기대할 수 없다. 모두가 눈먼 도시에서, 알아서 먹을 것을 구해야 하고 잠자리를 찾아야 한다. 거리에는 온갖 쓰레기와 배설물과 시체가 가득하다. 이런 상태에서 인간답게 사는 것은 불가능할 뿐더러 그 의미조차 모호해진다.

 

문장 부호가 사용되지 않아 여백이 거의 없는 이 두툼한 소설은 차라리 거대한 아포리즘으로 읽힌다. 나는 우리가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눈은 멀었지만 본다는 건가.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 본다는 것은 문명을 가능하게만 하는 것이 아니다. 내 이웃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세계 곳곳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관찰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다른 동물들로부터 구별되는 인간의 특징이 볼 수 있다는 점이라면, 우리는 우리가 사는 세계를, 눈감지 말고, 외면하지 말고, 똑바로 봐야 한다. 그 시선으로 인해 폭력과 야만이 세상에 자리잡지 못하도록, 그 시선에서 벗어난 인간이 소외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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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09-23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후아유를 봤는데 조승우에게 뿅 갔다우.
영화관에서 한번 더 봐도 괜찮겠다는 생각.
난 아직 젊구나, 하는 안도감.
왜 그리 가슴이 설레던지......

바람구두 2004-09-24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urblue님! 이 서평은 정말 좋군요. 주제 사라마구에 대해서... 이 정도 쓰기란 정말 어려울 겁니다. 추천하고 가요.

urblue 2004-09-24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__)

기다림으로 2004-09-25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에 이 책을 읽고, 마음 한 켠의 불편함을 안고 며칠을 살았었습니다.
음.. 그렇죠. 역시 제대로 볼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의 특징이고, 역시나 중요한 일이겠죠?
보고 싶고 봐야 할 것을 보고 살고 계시기를 희망합니다^^

깍두기 2004-09-26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이 책을 읽고, 바로 이런 리뷰를 쓰고 싶었습니다. 특히 마지막 문단.....
훌륭한 리뷰에 옛날 감동을 되살리고 갑니다.

urblue 2004-09-29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다림으로님, '보고 싶고 봐야할 것을 보고 살기'란 쉬운 일은 아니겠지요. 다만 그러려고 노력은 하겠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

깍두기님, 고맙습니다. 이 책 재미도 만만치 않더라구요. 이런 책이야말로 훌륭한 책이라고 할 수 있겠죠.

balmas 2004-10-27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참, 재미있네요.^^
서평을 보니까 이 소설을 읽고싶어졌습니다.
서양에서는 눈에 관해 예전부터 많은 이야기가 있었는데, 작가의 "시각"도 독특한 것
같군요.
추천 하나 하고 퍼 갑니다.^^

urblue 2004-10-27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balmas님이야말로 제대로 보려고 노력하시는 분 같습니다.

2004-11-22 16: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5-04-15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불편하게 읽은 책이었지요. 다시는 읽지 않겠다, 했는데 자주 생각나는 것으로 보니 아무래도 또 펼쳐봐야 할 것 같습니다.. 리뷰 잘 읽고 갑니다.^^

urblue 2005-04-15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갑습니다, 비숍님. ^^
불편하지만, 저한테는 평생 기억할만한 책 중 하나일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