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인간성 상실을 말하는 시대다. 자식이 부모에게 칼을 들이대고, 아비가 어린 딸을 폭행하고, 어미가 젖먹이를 목졸라 죽였다는 등의 뉴스가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세계의 한 쪽 끝에서는 강대국의 군인들이 경쾌한 음악에 맞춰 적이라고 주장되는 민간인들에게 총기를 난사하고, 그 옆에서는 무장세력이 역시 민간인을 잡아다 목을 벤다. 도처에서 많은 사람들이 굶고, 문명과는 거리가 먼, 그저 목숨을 연명하는 수준의 생활을 하고, 굶주림과 질병과 폭력으로 죽어간다.

 

자본이, 물질 문명이, 과학 기술이 인간을 소외시킨다고 말한다. 상당수의 범죄가 돈 때문에 일어난다. 물질 문명의 근간이 되는 석유는 전쟁을 일으킨다. 끝을 모르고 나아가는 과학 기술은 드디어는 인간의 체세포를 복제해낸다 하고, 조만간 당신과 똑같이 생긴 당신의 복제 인간이 등장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주제 사라마구는, 일반적인 경우에서처럼 물질 문명이나 고도의 과학기술, 혹은 전쟁과 같은, 인간성 상실을 부각할 만한 극한 상황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가 제시하는 가정은 단 하나, 전 세계의 모든 인류가 눈이 먼다는 것이다. 지금도 우리 곁에 눈먼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을 두고 인간성을 논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불편하고 힘들겠지만, 여전히 인간으로 살아간다. 우리와 똑같이 밥을 먹고, 옷을 입고, 비슷한 집에서 비슷한 삶을 영위한다. 그러나, 사라마구에 의하면, 이런 상황은 대다수의 사람이 눈멀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하다. 눈먼 사람은 대다수인 눈멀지 않은 사람들에 준하여 세상을 본다. 전에 우리가 볼 수 있었을 때도 눈이 먼 사람들이 있었잖아요. 지금과 비교하면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지, 일반적인 감정은 볼 수 있는 사람의 감정이었고, 따라서 눈먼 사람들의 감정이 아니라 성한 사람들의 감정을 가지고 있었어.

 

인간이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는 이유가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 호모 사피엔스 (Homo Sapiens) , 호모 에렉투스 (Homo Erectus), 호모 파베르 (Homo Faber), 호모 루덴스 (Homo Ludens), 호모 로퀜스 (Homo Loquens) 등 인간을 정의하는 말은 많지만 시력과 직접적으로 관계되는 것은 알지 못한다. 시력은 그저 기본 바탕일 뿐이다. 그러나 실제로 인간 이외의 동물들은 시각보다 청각, 후각 등 다른 감각에 훨씬 더 많이 의지한다고 한다. 만일 인간이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시력이 좋지 않았다면 인간은 다른 방식으로 살게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는 바로 이와 같은 상황을 상정하고 있다.

 

이것이 문명의 결점이다. 우리는 집 안에 들어오는 수도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급수 밸브를 열고 잠그는 사람들, 전기가 필요한 급수탑과 펌프, 부족분을 확인하고 여유분을 관리할 컴퓨터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잊곤 한다. 그리고 이런 모든 일을 하는 데는 사람의 눈이 필요하다는 것을.

 

어느 날 갑자기 인류를 찾아온 백색질병은 인간에게서 시력을 앗아간다. 처음 이 질병에 걸린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격리되어 수용소에 갇힌다. 이제 우리는 수용소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예상할 수 있다. 수도가 있고 화장실이 있으되, 눈먼 사람들은 이용할 수 없다. 잠자는 시간 외의 모든 시간은 텅 비어 버린다. 이들이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게다가 식량이 부족하다. 당연한 수순처럼 속임수와 폭력이, 온갖 종류의 야만이 찾아온다. 마침내 온 세계가 백색 질병에 감염되어 이들이 자유의 몸이 되었을 때조차 달라질 것은 없다. 그나마 수용소에서는 눈멀지 않은 정부가 식량을 공급했으나 이제 그것조차 기대할 수 없다. 모두가 눈먼 도시에서, 알아서 먹을 것을 구해야 하고 잠자리를 찾아야 한다. 거리에는 온갖 쓰레기와 배설물과 시체가 가득하다. 이런 상태에서 인간답게 사는 것은 불가능할 뿐더러 그 의미조차 모호해진다.

 

문장 부호가 사용되지 않아 여백이 거의 없는 이 두툼한 소설은 차라리 거대한 아포리즘으로 읽힌다. 나는 우리가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눈은 멀었지만 본다는 건가.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 본다는 것은 문명을 가능하게만 하는 것이 아니다. 내 이웃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세계 곳곳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관찰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다른 동물들로부터 구별되는 인간의 특징이 볼 수 있다는 점이라면, 우리는 우리가 사는 세계를, 눈감지 말고, 외면하지 말고, 똑바로 봐야 한다. 그 시선으로 인해 폭력과 야만이 세상에 자리잡지 못하도록, 그 시선에서 벗어난 인간이 소외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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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09-23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후아유를 봤는데 조승우에게 뿅 갔다우.
영화관에서 한번 더 봐도 괜찮겠다는 생각.
난 아직 젊구나, 하는 안도감.
왜 그리 가슴이 설레던지......

바람구두 2004-09-24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urblue님! 이 서평은 정말 좋군요. 주제 사라마구에 대해서... 이 정도 쓰기란 정말 어려울 겁니다. 추천하고 가요.

urblue 2004-09-24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__)

기다림으로 2004-09-25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에 이 책을 읽고, 마음 한 켠의 불편함을 안고 며칠을 살았었습니다.
음.. 그렇죠. 역시 제대로 볼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의 특징이고, 역시나 중요한 일이겠죠?
보고 싶고 봐야 할 것을 보고 살고 계시기를 희망합니다^^

깍두기 2004-09-26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이 책을 읽고, 바로 이런 리뷰를 쓰고 싶었습니다. 특히 마지막 문단.....
훌륭한 리뷰에 옛날 감동을 되살리고 갑니다.

urblue 2004-09-29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다림으로님, '보고 싶고 봐야할 것을 보고 살기'란 쉬운 일은 아니겠지요. 다만 그러려고 노력은 하겠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

깍두기님, 고맙습니다. 이 책 재미도 만만치 않더라구요. 이런 책이야말로 훌륭한 책이라고 할 수 있겠죠.

balmas 2004-10-27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참, 재미있네요.^^
서평을 보니까 이 소설을 읽고싶어졌습니다.
서양에서는 눈에 관해 예전부터 많은 이야기가 있었는데, 작가의 "시각"도 독특한 것
같군요.
추천 하나 하고 퍼 갑니다.^^

urblue 2004-10-27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balmas님이야말로 제대로 보려고 노력하시는 분 같습니다.

2004-11-22 16: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5-04-15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불편하게 읽은 책이었지요. 다시는 읽지 않겠다, 했는데 자주 생각나는 것으로 보니 아무래도 또 펼쳐봐야 할 것 같습니다.. 리뷰 잘 읽고 갑니다.^^

urblue 2005-04-15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갑습니다, 비숍님. ^^
불편하지만, 저한테는 평생 기억할만한 책 중 하나일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