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연히 읽어야 할 책으로 꼽아둔 것이다. <우화>라는 소개글조차 걸리지 않았다. 다른 누구도 아닌 마르코스가 쓴 것이므로. 마르코스와 사파티스타에 이미 반했고 감동했으므로.
재미있다. 쉽게 이야기하고, 깨우침을 준다. 그런데 슬금슬금 다른 생각이 고개를 들이민다. 어이, 좋은데 말이야, 이거 너무 직접적이지 않아?
"모든 것이 착 가라앉아 고요할 때, 산에선 폭풍우가 몰아닥친다네. 개울물은 불어나 세차게 흐르기 시작하고, 골짜기께로 물줄기를 틀기 시작한다네. 힘은 산에서 생겨난다네. 그러나 물이 아래에 이르기 전에는 그 힘이 보이지 않지. 이제야말로 강물의 색깔이 바뀔 시간이네. 자네들은 실개천이라네. 우리들은 강물이고……. 자, 이제 내려오게나! 그 실개천들은…… 한번 내려오면…… 이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네. 오직 땅 속으로…… 땅 속으로……"
"사람은 마음을 들여다볼 줄 알기 때문에 사자의 힘을 보지 않고, 자기 자신의 마음이 지닌 힘을 본다네. 그래서 사자를 똑바로 쳐다보지. 사자도 사람을 보지만, 사자는 사람이 자기를 보는 대로 보게 된다네. 즉, 사람의 시야 속에서 보게 된다네. 그리하여 사자는 자신이 한 마리 사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고, 사람이 보는 대로 자기를 생각하면서 공포에 사로잡혀 이내 도망치게 된다네."
누군가는 다른 누군가를 빛나게 하기 위해 스스로 꺼져야 한다. 그러나 사실은 빛나는 이들은 스스로 꺼진 이들로 인해 밝게 빛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 세상 그 누구도 빛날 수 없다.
"동물들 앞에선 칼처럼 싸워야 할 때가 있다. 폭풍우에 맞서선 나무처럼 싸워야 할 때가 있다. 시간에 맞서선 바위처럼 싸워야 할 때가 있다. 그러나 칼, 나무, 바위들과 맞서선 물처럼 싸워야 할 때가 있다. 지금은 우리가 물이 되어야 할 때이다. 지금은 우리가 우리 길을 계속 가야 할 때이다. 위대한 신들, 세상을 창조한, 최초의 신들이 자신들의 목마름을 해결하기 위해 만든 ‘큰 물’까지 우리를 데려다 줄 강을 향해서."
투쟁은 둥근 원과 같다. 어느 곳에서나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결코 끝나지 않는다.
"지금은 빈곤한 시절일세. 이 시절엔 시간이 사람을 굶주리게 해서 죽이려 한다네. 단지 희망만이 사람에게서 시간의 상처를 덜어준다네."
"내가 오직 알고 있었던 것은 우리가 함께 길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뿐이었네. 그렇게 우리가 길을 만들었다네. 그렇게 우리가 원하던 곳에 도착했다네. 길은 바로 우리가 만든 것이라네. 거기에 길은 없었다네."
이런 글들을 보면서 왜 나는 쉽게 감동하지 못할까. 마르코스의 성명서가, ‘투쟁하라! ‘라는 선동이 차라리 감동적이다. ‘우화’라는 건 어쩐지 낯간지럽다. 하고 싶은 말이 보이는데 이렇게 돌려서 얘기해야 하는 걸까 라고 생각해 버린다.
역시 나는 순수하지 못한 인간이다, 라는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