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20 #시라는별 71
잎사귀 하나
- 까비르
잎사귀 하나, 바람에 날려
가지에서 떨어지며
나무에게 말하네.
‘숲의 왕이여, 이제 가을이 와
나는 떨어져
당신에게서 멀어지네.‘
나무가 대답하네
‘사랑하는 잎사귀여,
그것이 세상의 방식이라네.
왔다가 가는 것.‘
숨을 쉴 때마다
그대를 창조한 이의 이름을 기억하라.
그대 또한 언제 바람에 떨어질지 알 수 없으니,
모든 호흡마다 그 순간을 살라.
딸이 다니는 중학교 도서관에서 주관하는 학부모 독서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12월 선정도서는 지난해 출간된 류시화 씨의 『마음챙김의 시』다. 사실 나는 시 모음집을 그닥 선호하지 않는다. 너무 많은 시인들의 단편적인 시들은 깊이 잠수하기 좋아하는 내 독서 취향과 맞지 않아서다. 또한 ‘마음챙김‘으로 불리는 책들도 썩 선호하지 않는다. 내용이 거의 뻔해서다. 그래서 작년에 이 시집을 구매하지 않았다.
그런데 72편의 시를 엮은 류시화 씨의 글을 읽고 나니 시 모음집에 대한 삐딱한 마음이 조금 달라진다.
˝시 모음집을 영어로는 앤솔러지anthology 라고 한다. 그리스어에서 유래된 이 단어의 원래 의미는 ‘꽃 모음
flower-gathering‘이다. 의미 그대로 이 시집은 다양한 시들의 모음이다. 꽃은 심어진 그 자리에서만 피지 않는다. . . . . . . 꽃은 꽃이면서 꽃을 퍼트리는 주체이다.˝(163)
72명의 시인과 72편의 시들 중 내가 아는 시인은 고작 다섯, 읽어 본 시는 단 한 편이었다. 맙 소 사! 나는 꽃을 수집하는 마음으로 이 시집에 수록된 시들을 읽기로 한다. <잎사귀 하나>는 15세기 인도 시인 까비르가 쓴 시이다. 류시화 시인은 수피 가수이자 시타르 명연주자가 불러준 노래로 이 시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 까비르는
˝인도 민중문학의 시초이며 타고르에게 깊은 영향을 준 신비주의 시인이며 성자. 가난한 힌두교 과부의 사생아로 태어나 강보에 싸여 연못가에 버려졌으며, 이를 발견한 회교도 부부가 데려다 키웠다.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하고 부모의 직업에 따라 베 짜는 일을 하면서 가장 높은 영적 경지에 이르렀다.˝
위 소개에 따르면 까비르 시인은 출생이 비천했고 가난한 양부모 밑에서 정규 교육도 받지 못한 채 부모 일을 도우며 자랐다. 그런 이력이 세상의 이치를 깨달아 시를 쓰는 데는 전혀 지장을 주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런 삶을 살았기에 민중들에게 더 와닿는 시를 썼을지 모를 일이다. 시를 읽는 일도 다르지 않다. 아이 웨이웨이는 『누가 시를 읽는가』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시를 읽는 것은 현실 너머를 보는 것이다. 눈앞의 세계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찾는 것이며, 다른 삶과 다른 차원의 감정을 경험하는 것이다. 인간 본성을 이해하는 것이고, 가장 중요하게는 젊고 늙고 배우고 못 배우고를 떠나 타인과 나누는 것이다.˝(164)
류시화 시인은 웨이웨이의 이 문장을 더 압축적으로 줄여 말한다.
˝시는 문학적인 행위이면서 나눔이고 선물이다.˝(169)
시인이 될 만한 재목이 못 되기에 나를 시를 쓰는 대신 ‘시‘라는 꽃을 퍼뜨린다. 꽃이 별처럼 반짝거리도록.
˝당신이 누구이든 어디에 있든 한 편의 시를 읽는 것은 ‘속도에 대한 세상의 숭배에 저항하는 것‘이며, 숱한 마음놓침의 시간들을 마음챙김의 삶으로 회복하는 일이다. 꽃나무들은 현재의 순간에서 최선을 다해 꽃물을 길어올려 꽃을 피운다. 파블로 네루다가 ‘봄이 벗나무에게 하는 것을 나는 너에게 하고 싶어‘라고 썼듯이, 나는 이 시들로 당신을 온전히 당신의 삶에 꽃피어나게 하고 싶다.˝(1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