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09 책 읽는 즐거움을 누릴 수 없다면. . .
보름전 안과에 갔다.
눈에 모래가 잔뜩 낀 듯한 서걱거림과 통증을 더는 그냥 두면 안 되겠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의사의 진단은 세 가지였다.
건조증. 검은자 스크래치. 백내장.
ㅡ 백내장이요? 제가요?
ㅡ 네. 도수를 아무리 올려도 시력 교정이 안 되시는데요. 백내장이 시작됐다고 보시면 됩니다.
헐. 의사들은 대개 좋게 말하면 쿨하게 말하고, 나쁘게 말하면 참 싸가지 없이 말한다. 툭 던지듯 내뱉는다. 뭐 별일 아니라는 듯이. 그래 놓고는 엄포를 놓는다.
ㅡ 건강 검진 받듯 눈 검사도 정기적으로 받으셔야 합니다. 점점 더 나빠지다 안 보이십니다.
의사는 백내장이 시작되었을 뿐 수술 단계는 아니고 지금은 건조증으로 인한 검은자 스크래치 치료가 급선무라며 약을 처방해 주었다. 안약을 넣고 나니 모래알이 굴러다니는 서걱거림은 가셨는데, 안압이, 안압이 날마다 높아졌다. 밤에 눈을 감는 것도, 아침에 눈을 뜨는 것도 조금씩 무서워졌다. 눈알이 빠질 것 같은 통증이라니. 기어이 정수리 두통까지 수반되었다. 결국 다시 안과를 찾았다. 의사는 여전히 쿨하게, 혹은 무신경하게 말한다.
ㅡ 흠. 검은자 스크래치가 그다지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이게 좋아져야 시력을 맞출 수 있어요. 약을 좀 바꿔 보죠.
바꾼 약은 젤 타입이다. 나는 지금 안약을 넣은 생태에서 희뿌연 화면을 보며 타자를 치고 있다. 대체 왜 이러는 거임. ㅋ
어슐러 K. 르 귄 언니(나는 이 작가를 언니로 부르기로 했다. 애트우드 언니처럼. 완전 걸크러쉬다)의 <<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읽을 겁니다>>를 삼분의 일 정도 읽었다. 잘 이해 안 되는 대목이 간혹 등장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아주 좋다. 특히 어제 읽은 집, 책, 잠에 대한 에세이는 푹 빠져들어 읽었다.
나에게 독서는 유희다. 내게도 분명 지적 허영이 있지만 내가 책을 읽는 건 대체로 좋아서다. 즐거워서다. 잘난 척하고 싶어 어려운 책을 골라 읽더라도 그 책이 즐거움을 주지 않으면 나는 내려놓는 편이다. 나는 물도 싫어하고 수영도 못하지만 책을 읽고 있으면 책이라는 바다에서 깊이 잠수하는 듯하다. 아무도 나를 건드릴 수 없는 책바다를 유영하노라면 고요와 자유와 희열이 찾아든다. 행복감이 몸속 깊이, 깊이 스며든다. 대체 그 어떤 것에서 이런 환희를 맛볼 수 있단 말인가. 가성비 끝내주는 유희가 아닌가. 르 귄 언니의 말대로 "첨단기술을 뽐내지는 않지만 복합적이고 극도로 효율적"이며 "빛과 사람의 눈, 그리고 사람의 머리만 있으면"(133쪽)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덜커덩, 내 유희를 굴러가게 해주는 바퀴에 제동이 걸렸다. 저 세 바퀴, 빛과 눈과 머리 중 눈에 펑크가 난 것이다. 바람이 쉭쉭 샌다. 바퀴가 쪼그라든다. 데굴데굴 구르지 못하고 픽픽 주저앉는다. 이것은 슬픔이 아니다. 이것은 악몽이 아니다. 이것은 저주다. 책을 읽을 수 없는 세계는 암흑의 세계다. 사람은 어리석어 어둠을 예측하지 못하거나 예측하고도 밀어내려 한다. 나는 전자였다. 내 눈은 오랫동안 말짱할 거야. 노안도 빨리 안 왔잖아 라면서 좀 기고만장했다. 그 거만함에 귀싸대기를 얻어맞은 기분이다. 그것도 엄청 얼얼하게.
나는 책과 오래오래 놀고 싶다. 그러니 눈 관리를 잘하자!!!
어떤 집의 아름다움은 ‘거주‘를 통해서 활성화하고 채워진다. - P102
이 글을 쓰다 보니 소설이 어때야 하는지에 대한 나의 생각 중 많은 부분이 결국 그 집에 살았던 경험으로 배운 게 아닌가 싶어진다. 만약 그렇다면, 나는 평생 단어로 그 집을 다시 지으려 애써 왔는지도 모른다. - P122
독서는 능동적이며,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행동이고, 내내 깨어 있어야 한다. 사실상 사냥이나 채집과도 그리 다르지 않다. 스스로 말하지 않기에, 책은 도전이 된다. 책은 물결치는 음악으로 마음을 달래 줄 수도, 요란한 웃음소리나 거실에 울리는 총소리로 귀를 먹먹하게 만들 수도 없다. 책은 머릿속으로 귀 기울여야 한다. 책은 영상이나 화면처럼 눈을 움직여주지 않는다. 스스로 정신을 쏟지 않는 한 정신을 움직이지도 않고, 마음을 두지 않는 한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다. 대신 해 주지 않는다. 단편 소설 하나를 잘 읽으려면 그 글을 따라가고, 행동하고, 느끼고, 하나가 되어야 한다. 사실상 그 글을 쓰는 것만 빼고 다 해야 한다. 읽기는 게임처럼 규칙이나 선택지로 "상호작용"하지 않는다. 읽기는 작가의 정신과 능동적으로 협력하는 작업이다. 모두가 빠져들지 않는 것도 당연하다. - 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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