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 이
이영수(듀나) 지음 / 북스피어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용의 이

 

『용의 이』는 북스피어 출판사에서 출판된 듀나의 SF 작품집이다. 여기에는 3편의 단편과 1편의 장편이 실려 있다. 듀나는 1994년부터 PC 통신망에 여러 작품들을 발표해온 인지도 높은 장르 작가 중 한 명이다.(SF작가로는 국내에 몇 안 되는 인지도를 가진 작가라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듀나는 영화평론가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듀나의 영화낙서판(http://djuna.cine21.com/movies )이라는 사이트도 운영하고 있다. 그 동안 듀나는 『면세구역』(국민서관, 2000), 『태평양 횡단 특급』(문학과지성사, 2002), 『대리전』(이가서, 2006) 등의 작품집을 출간하였다. 그러나 그 동안은 전부 단편집이었는데 이번 『용의 이』에는 장편이 1편 실렸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과연 듀나가 쓴 장편은 어떠한 모습인지. 그리고 듀나가 최근에 발표한 단편들은 어떤 모습을 갖추고 있는지. 잠시 살펴보도록 하자.

 

너네 아빠 어딨니?

 

첫 번째 실려 있는 단편은 장르문학 월간지 『판타스틱』에 실렸던 「너네 아빠 어딨니?」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현재 영화화도 진행 중인 작품인데 그만큼 시각적으로 상상이 잘 가게 쓰여 있다. 또한, 이 단편은 문체가 대화체라서 읽기에 수월했다. 이 소설은 시종일관 화자가 누군가를 앞에 두고 ‘이랬어, 저랬어. 그랬는데…….’ 식으로 쓰여 있다. 이런 방식은 읽는 이에겐 상당히 친숙하게 받아들여지고 또 쉽게 읽힌다. 실제로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듣는 것 같기 때문이다. 이런 문체의 형식은 기존에 작품집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점인데 그만큼 작가가 변화한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었다.

「너네 아빠 어딨니?」는 소녀가 주인공인 좀비 이야기다. 주인공인 새별이는 아빠에게서 동생 새봄이를 지키기 위해서 아빠를 죽이게 된다. 그 다음에 간신히 아빠를 묻었지만 밤마다 좀비로 되살아나기 시작한다.

실제로 어린 여자애에게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무서운 공포만이 주로 강조되겠지만, 여기에 나오는 새별이는 굉장히 침착하고 똑똑하다. 또한 조숙하기 그지없다. 작가의 취향이 그대로 반영된 캐릭터라고 할까? 사건은 점점 파국으로 치닫는 것 같으면서도 주인공이나 읽는 독자 모두 위기의식을 느낄 새가 없다. 차분하게 사태를 관망하듯이 바라보면서 세상이 좀비화가 되는 것을 지켜본다. 작가의 어린 아바타 같은, 어린 새별이의 조숙한 점이나 주위 사람들이 좀비가 되어도 무심하게 대처하는 태도 같은 곳에서 재미와 희열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판타스틱』에 게재 되었을 때도 호평이 많았던 단편.

 

천국의 왕

 

일러스토리 소설 무크 『파우스트』에 실렸던 단편이다. 이 단편은 예전 대산문화재단에서 발간하는 대산문화에 실렸던 SF콩트를 확대해서 단편으로 만든 버전이다. 일단 영혼이라는 존재와 SF의 결합이 눈에 띄는 작품이다. 영혼이란 것은 죽음 뒤에 잠시 그림자처럼 남았다가 햇빛에 녹아 사라진다는 설정이 인상적이었고 그럴 듯하게 생각되었다. 아예 존재치 않는다는 것보다 잠시 있으나마나 한 상태로 있다가 사라지고 또한 그것을 붙잡아 유지시키는 장치는 꽤나 매력적인 소재였다.

 

거울 너머로 건너가다

 

이 작품은 청소년 문학 웹진 글틴에 기성작가 초대란에 실렸던 단편이다. 갑자기 세계를 전복시키는 결말이 인상적인 작품으로 당시 출간되었던 『대리전』 보다 이 단편 하나가 더 낫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만큼 흥미롭게 읽었고 인상에 깊게 남았던 작품이다. 이제는 왠지 그 때의 충격이 시들해진 감이 있지만, 그래도 읽어볼만한 단편임은 확실하다. 이 글은 한 소녀가 자신의 엄마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는 형식으로 시작된다. 「너네 아빠 어딨니?」처럼 문체 자체가 대화체인 것은 아니지만, 화자는 회고담처럼 과거부터 현재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차분하고 당돌하게 이야기한다.

 

용의 이

 

장편 「용의 이」는 이 작품집을 통해 처음 공개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받아보자마자 바로 잡고 읽은 소설이다. 그 동안 듀나가 발표한 작품들이 대부분 분량이 짧은 편이었기 때문에 금세 읽으리라 생각했지만 진도는 빨리 나가지 않았다. 그것은 이 작품이 장편이기 때문에 분량이 상당한 까닭도 있고 또 내용 전개가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은 부분도 있었기 때문이다. 초반에 이상한 행성에 불시착한 소녀를 바로 보여줌으로써 다른 배경은 독자가 스스로 추리해야 하는 점도 작품에 빠져들기 힘든 점이었다. 나중에 차근차근 사실을 알려주기 때문에 소녀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 뭐고, 소녀는 왜 이런 행성에 불시착 하게 되었는지 그 까닭을 상세히 알 수 있지만, 초반에는 어리둥절할 뿐이다. 소녀는 초염력을 가지고 있어서 상대방의 기억과 생각을 읽고 마음대로 세뇌할 수 있으며 회로를 구성해서 유령을 만들 수 있기도 하다. 이 기기묘묘한 능력은 이 소설을 더욱 복잡한 구성으로 인도하는 요소이다. 초반에 작품에 몰입하기 힘든 까닭은 이러한 능력에 대한 이해가 전반적으로 깔리지 않았음이 크다. 그러나 분량이 긴 만큼 읽어나가면서 점점 설정들을 받아들이고 읽는 속도가 빨라지게 된다.

이 작품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외래어가 전혀 사용되지 않은 작품이라는 점이다. 듀나는 자신의 사이트에서 이 작품을 쓰고 있는 과정에 대해 언급하곤 했는데(그 전에 발표했던 「대리전」과 마찬가지로), 그때 몇몇 물건들을 우리말 혹은 한자어로 어떻게 적당하게 바꿀지 고민하는 모습을 비추기도 했다. 그래서 이 작품을 볼 때 과연 그 작업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성공했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꽤 그럴 듯했다는 것이다. 어색하거나 혹은 오히려 잘 어울릴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보니 적당한 것 같다. 이상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근사하게 잘 어울리는 것도 아니었다. 외래어를 쓰지 않고 한글과 한자만으로 SF 장편이 완성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닌가 싶다. 이런 실험을 계속하는 한 앞으로 더 색다른 작품을 선보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보게 되었다.

이 작품은 듀나가 지금껏 쓴 작품 중에서 가장 긴 분량이다. 그렇다면, 듀나가 쓴 장편에 대한 평가는 어떻게 내려야 할까? 일단은 아쉬움이 먼저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읽고 나서 장편에 걸맞는 이야기였는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결말이 밝혀지는 부분이 갑작스럽기 때문인지 그 중간에 서사가 약했기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혹은 둘 다겠지만) 이렇게 굳이 긴 분량으로 빙 둘러서 말하기보다 깔끔하게 짧은 분량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냈어도 상관없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을 가져보게 된다. 물론 긴 이야기여서의 장점도 있지만 왠지 주인공 소녀가 벌이는 모험에서 긴박감이 너무 적기 때문에 소설에 몰입이 안 되고 이야기에 흥미가 덜 가지 않았나 싶은 것이다. 장편 정도의 분량이라면 순간순간 계속 몰입할 수 있어야 전체 분량을 읽어나가면서 지치지 않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데 소녀의 태도가 너무도 침착하고 반응이 재미가 없어서 독자 역시 무심하게 읽어나가게 된다. 그로 인해 긴박감이 떨어져 소설의 긴장감이 떨어지고 이는 이 긴 소설 분량의 회의가 들게 만드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망감이 든 정도는 아니었다. 긴 이야기를 시도해준 것만으로도 만족한 부분도 있었고 이토록 자유로운 설정을 마음껏 펼쳐 보인 이야기도 즐거운 면이 있었다. 회로를 연결해서 부서질 것 같은 유령들을 구축해 나가고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모습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새로운 이야기와 이미지였다. 작품 전체적으로 강렬한 인상과 이미지를 받아 읽고 나서도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고 아직까지 이미지가 머릿속에 남아있다. 어둡고 음울하면서도 유머가 섞여 있는 한 편의 강렬한 영화를 본 듯한 기분이다.

 

듀나의 다음

 

이번이 네 번째 읽는 듀나의 작품집이다. 그 중에서 무엇이 가장 좋았는가는 각자에 따라 다를 것이고 나 같이 각 작품마다 독특한 색깔과 재미가 있다고 느끼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이번 작품집 역시 기존에 나온 작품집과는 차별화된 이야기들이었다는 점에서 만족스러웠다.

인상적인 표지 때문에 또는 ‘세계 몰락 프로젝트 혹은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앨리스’라는 부제 때문에 일반 서점에서 작가를 모르고 구입하게 되는 독자도 많은 것 같다. 그럼에도 그들은 실망하기 보다는 오히려 만족하는 서평을 올리기까지 한다. 그만큼 이 작품집은 하드SF가 아니기 때문에 SF에 정통한 독자만 읽어야 하는 작품집은 아니다. 오히려 장르적이지만 장르의 관습을 벗어난 점도 많고 또 무엇보다도 읽기 쉽게 쓰인 작품들인지라 SF 장르와 많이 친하지 않은 독자도 쉽게 읽을 수 있고 공감하며 재미를 느낄 수 있다.(게다가 첫 번째 실린 단편 「너네 아빠 어딨니?」는 SF가 아닌 호러이기도 하고.)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듀나의 작품을 접해보지 않았던 독자라도 한 번쯤 읽어봐도 재미있을 작품집이다. 또한 이 작품집을 읽고 나서 과거에 나왔던 듀나의 작품들을 찾아보게 될 지도 모르고.

듀나는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 더 이상 어두운 지구 멸망 이야기가 아니라 순수한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발랄깜찍한 글을 쓰겠다고, 하지만 어떻게 그런 글을 쓸 수 있을까, 라며 농담 섞인 이야기로 끝냈다. 다음 작품집이 그렇다고 밝고 화창하게 나올리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이 작품집과는 또 다른 색깔을 가진 발전한 모습의 작품집을 보게 될 거란 생각이 든다. 새 책이 나온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다음 책이 기대가 되는 건지. 그만큼 이 작품집이 충분히 흡족했다는 뜻인지도 모르겠다. 나온다면 곧바로 구입하게 만드는 몇 안 되는 작가 듀나. 듀나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며 짧은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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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나무 숲 Nobless Club 1
하지은 지음 / 로크미디어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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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얼음나무 숲

한국 환상문학의 한 획을 그은 신작 환상 소설!

판타지 소설과 무협 소설을 전문으로 출간하던 로크미디어에서 이번에 새로운 출판 브랜드를 선보였다. 노블레스 클럽. 뛰어난 작품성을 가진 작품들을 선별하여 대여점이 아닌 서점을 공략하겠다는 것이다. 더 이상 대여점 시장은 안정적이지 못하고 오히려 축소되고 있다. 또한, 수많은 출판사들이 비슷비슷한 수준의 작품들만 쏟아내고 있어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좋은 작품들을 본격적으로 발굴해 선보이겠다는 출판사의 의지는 무척이나 반갑다. 독자의 입장에서 숨겨져 있던 보물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블레스 클럽은 서점에서 독자들이 직접 구매하는 책으로, 그에 걸맞는 질과 엔터테인먼트성을 갖춘 작품을 지향한다고 한다. 경계문학의 특성을 반영해 추리, 미스터리, 스릴러, 판타지, SF, 호러, 본격문학, 무협, 역사적 요소들을 두루 포괄함으로써 새로운 소재를 적극적으로 개발해 나간다고 한다. 폭 넓은 일반 독자층으로부터 지지를 얻어 내고 확산할 수 있는 작품을 지속적으로 발굴할 계획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그런 취지에 따라 노블레스 클럽의 첫 번째 작품이 독자들 앞에 나타났다. 『얼음나무 숲』. 인터넷 장르 소설 사이트인 문피아에서 높은 조회수와 인기를 기록한 작품. 책이 출간되고 사람들의 평이 워낙 좋아 무심코 주문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구입을 전혀 후회하지 않았다.

1. 참신한 소재, 어려운 소재

여전히 겨울인 이곳, 에단에서

수많은 잔가지들이 현처럼 늘어져 있고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지휘자가 침묵으로 지휘봉을 대신하며

차갑고 흰 바람이 노래하는 곳

 

그곳은 얼음나무 숲

 
『얼음나무 숲』을 처음에 받아볼 때 가장 인상적인 점은 음악을 소재로 했다는 것이다. 물론 노블레스 클럽의 취지에 걸맞게 편집도 깔끔하고 표지도 매력적이다. 400페이지가 넘는 두툼한 분량은 만 원이라는 책값이 아깝지 않게 해주고, ‘얼음나무 숲’을 그대로 표현한 듯한 인상적인 일러스트, 고급스런 재질의 표지 등등 역시 신경 쓴 티가 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소설은 그 동안 국내 환상소설에서 다루지 않았던 ‘음악’을 본격적으로 다룬 소설이다. 글자로 음악을 표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귀로 들어야 하는 음악을 글자로 읽어서 느낄 수 있을 것인가? 이 소설은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 그것만으로도 이 소설의 가치는 인정받기 충분하다.

이 소설에서 나오는 음악은 우리 세계에 클래식과 흡사하다. 작가 역시 영화 《아마데우스》에 영향을 받았고 자료 수집 역시 클래식의 역사와 음악가들의 전기를 중심으로 했다고 한다.
  혹시 클래식이라고 어렵게 느껴지기만 하는가? 나 같은 경우는 만화 『피아노의 숲』이나 『노다메 칸타빌레』 덕분에 친숙해진 클래식이라는 소재 때문에 오히려 반가웠다. 국내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끈 『노다메 칸타빌레』의 원작 만화 혹은 드라마 판을 본 사람이라면 이 소설에 흥미를 가지고 재미있게 읽을 것이다. 또한, 제목도 비슷한 만화 『피아노의 숲』을 무척이나 재미있게 본 사람이라면 이 소설 역시 흥미롭게 읽을 것이다.(‘숲’이라는 공통점이 들어가는 것은 피아노의 선율이 쉽게 ‘숲’으로 상상될 수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만화 『피아노의 숲』에서는 ‘숲’이 밝고 긍정적인 마음에 안정과 평화를 주는 따뜻한 공간으로 설정되어 있고, 소설 『얼음나무 숲』속에 나오는 ‘숲’의 이미지는 환상적이고 음울하고 어두운, 비극이 깔려있는 공간으로 설정되어 있다.)

한 명의 뛰어난 천재와 그를 동경하며 질투하는 또 다른 천재라는 설정은 지금 언급한 영화나 만화들에서 공통적으로 보여 지는 설정들이다. 그러나 『얼음나무 숲』은 동일하지는 않다. 한 명의 뛰어난 천재와 또 다른 천재지만. 또 다른 천재는 오로지 한 명의 뛰어난 천재의 유일한 청중이 되고자 한다. 이 독특한 설정이 이 소설의 핵심 중 하나이며, 다른 작품들과 다른 감동을 전해주는 요소이다.

 

2. 유려한 문체

 

순식간에 조성이 바뀌고 격렬한 연주가 시작된다. 피아노의 건반 끝에서 끝까지 훑어 내려가며 나는 폭발적으로 휘몰아치는 감정을 쏟아 내었다. 어둡고 광적인 그러나 찬란한 음들이 튀고, 어지러이 흩어지는가 싶으면 끝내 다시 모여 완주를 이뤄 낸다. 이제 음만이 가득한 세계에서 흡족한 얼굴로 끝을 향해 치달았다.

― 『얼음나무 숲』, 하지은 지음, 로크미디어, 248쪽

 

현이 요동친다. 왼손이 움직이는 것은 거의 보이지도 않았다. 그는 여명을 든 두 팔뿐이 아니라 온몸으로, 그리고 영혼을 떨며 연주하고 있었다. 하나의 현을 그을 뿐인데도 그것은 매끄럽게 한 가지 음인가 하면 동시에 여러 갈래로 갈라지듯 몹시 풍부하고 깊었다.

세상에…… 그것은 뭐라 말할 수 없이 현란했다.

단 하나의 악기와 단 한 명의 바이올리니스트가 정말로 이러한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단 말인가? 진정 그 자신 외에는 누구도 따라할 수 없을 것 같은 보잉, 기교, 정확성…… 관객들은 모두 입을 벌리고 있었으나 아무도 소리를 낼 수 있는 자는 없었다.

정신이 저 세계 어딘가로 가 버린 것처럼, 그것을 듣는 것조차 벅찼다.

― 『얼음나무 숲』, 하지은 지음, 로크미디어, 250쪽

 

『얼음나무 숲』은 일단 문장력이 안정적이다. 1인칭 시점으로 쓰인 글은 단아하고 유려하다. 강렬한 음악을 묘사할 때는 격정적인 묘사를 풀어낸다. 암시와 복선도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문체는 아름답다. 읽으면서 걸리는 부분 없이 이야기에 자연스레 빠져든다. 처음 책을 펼치면 끝까지 읽게 된다. 도중에 지루해져서 다른 것을 하고 싶거나 그런 마음은 생기지 않는다. 오로지 이 이야기가 어떻게 끝나게 될지 흥미롭다. 그리고 더 듣고 싶은 것이다. 읽는 것이 아니라 듣고 싶다. 그 아름다운 연주들을 나는 어느새 읽고 있는 게 아니라 듣고 있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그만큼 정성들여 쓴 묘사들로 인해 글자 속에서 음들이 살아나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3. 환상, 몽환

 

천재와 초현실은 기묘하게 맞물린다.

그가 얼음나무 숲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을 때,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이 소설은 에단이라는 가상의 도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아니 세계 자체도 우리가 익히 알지 못한 새로운 세계관이다. 음악의 도시 에단. 그곳에는 카논 홀이 있고, 얼음나무 숲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인공인 고요와 바옐이 있다.

이 소설은 처음 도입부만 해도 가상의 음악 도시에서 고요와 바옐이라는 두 인물을 중심으로 한 소설로만 생각되었다.

 

“여행 도중 이상한 이야길 들었네.”

“이상한 이야기라니?”

“태어나면서부터 에단에서 자란 내가 모르는 어떤 곳이, 에단에 있다는 이야기.”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바옐은 그답지 않게 궁금함이 가득한 어린아이 같은 얼굴로 물었다.

“자넨 혹시 들어 봤는가? 얼음나무 숲에 대해서 말이야.”

― 『얼음나무 숲』, 하지은 지음, 로크미디어, 65쪽

 

그러나 바옐이 ‘얼음나무 숲’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이야기는 환상을 띠게 된다. 이 소설은 결국 음악 소설일 뿐만 아니라 환상 소설인 것이다. 그에 앞서 ‘여명’이라는 악기로 복선이 깔리기도 한 이 ‘얼음나무 숲’이라는 공간은 몽화적이면서도 섬뜩한 공간이다. 그러나 매혹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아직 자신의 진정한 청중을 발견하지 못한, 깨닫지 못한 바옐로서는 ‘얼음나무 숲’ 이야기에 빠져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이 그토록 큰 비극을 불러올 줄도 모른 채. 자신이 어떠한 괴물을 깨운 건지도 알지 못한 채. 그러나 그곳에는 그만큼 처연하고 아름다운 선율이 숨겨져 있다. 환상과 마법, 마술사, 순례자 등 전설과 신화가 뒤섞여 나오면서 이 소설은 그럴듯한 환상소설의 매력을 어김없이 보여준다. 살인자를 찾는 추리적인 요소도 엿볼 수 있겠지만, 그보다 클라이막스에서 보여지는 환상적이고 잔혹한 결말은 독자의 뒷통수를 내리치며 강렬한 인상을 전해준다. 이 소설에 나오는 환상은 유치한 클리셰가 사용되지 않고 환상이 그야말로 몽환적으로 사용되어 더욱 감탄을 자아낸다. 또한, 장르 독자가 아닌 일반 독자들도 얼마든지 허용할 수 있는 범위 내의 것으로 보다 폭 넓은 독자층을 공략하려는 노블레스 클럽에도 걸맞는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음악과 환상의 결합. 페이지를 펼치는 순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음악이 귓가에 들려오면서 이야기로 빨려드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4. 천재, 단 한 명의 청중

 

“난 자네 같은 사람 모르네.”

“그렇다면 자넨 트리스탄 벨제가 아닌 모양이군. 내가 사람을 잘못 봤나.”

“난 트리스탄 벨제가 맞지만 자네야말로 아나토제 바옐이란 걸 믿을 수 없군. 트리스탄 벨제의 친구 아나토제 바옐이라면 3년 동안 편지에 답장 한번 하지 않았을 리 없어. 트리스탄 벨제의 친구 아나토제 바옐이라면 돌아오자마자 인사부터 했을 것이고, 트라스탄 벨제의 친구 아나토제 바옐이라면…….”

바옐은 피식 웃으며 바이올린을 들어 올렸다.

“사죄의 뜻으로 자네에게 이 곡을 바치겠네.”

말을 마치자마자 바옐은 연주를 시작했다.

― 『얼음나무 숲』, 하지은 지음, 로크미디어, 59쪽

 

음악이라는 참신한 소재, 안정적이면서도 화려하고 아름다운 문체, 그리고 암시와 복선을 적절히 사용한 완결성 있는 플롯, 매력적인 환상 등등. 이 소설의 장점은 충분히 많이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의 감동과 재미는 무엇보다도 이 소설에 나오는 캐릭터들이 마음에 들고 감정이입이 되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작가는 가상의 음악 도시 에단을 만들었고 그 속에서 실제로 살아 움직이는 바옐, 고요, 트리스탄 등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그들의 우정과 질투, 동경, 시기, 좌절 등은 독자들의 가슴에 그대로 전달되었다. 그래서 이야기가 살아나고 독자들은 이 캐릭터들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기 때문에 끝까지 이야기를 안 읽을 수가 없다.

그야 말로 천재의 표본인 것 같은 괴팍하면서 오만한 아나토제 바옐. 그는 이 소설의 실적인 핵심이다. 음악의 신의 아들이라 불릴 정도로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경지의 음악을 하는 존재. 모든 사건의 중심에 서 있는 존재. 읽으면서 그의 카리스마를 느끼고 그의 천재성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인 것마냥.

그리고 이 소설의 화자인 고요 드 모르페. 피아니스트로서 바옐과 맞먹는 재능을 갖고 태어났지만 그의 진정한 목적은 바옐의 유일한 청중이 되고자 한 것이었다.

고요의 성격은 유순하고 욕심이 없다. 울음도 많은 여린 청년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가진 재능 이상을 끌어내지 못한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바옐을 만난 탓도 있으리라. 바옐의 그 놀라운 실력 때문에 고요는 그의 유일한 청중이 되고자 갈망한다. 그러나 끝내 그는 그 꿈을 이루지 못한다. 하지만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나는 그가 그 꿈을 어느 정도는 이룬 거라고도 생각했다. 그래서 더욱 감동이 남았다. 그가 왜 마지막에 그런 직업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고 나서 더 아련한 감정을 느꼈다.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은 독자라면 ‘단 한 명의 청중’이라는 말에서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할 것이다. 나도 처음에 저 문장에서 아무런 느낌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이야기를 읽을수록, 저 문장의 의미를 알게 될수록 고요를 응원하게 되고 마침내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묵직한 감동을 느끼게 된 것이다.



5. 한국 환상문학의 미래를 엿보다

 

숲의 모든 것들이 하나하나 고결하며 완성에 닿은 마에스트로였다.

나는 영원함을 들었다. 끝없는 찬란함을 들었다. 음의 절대적인 아름다움과 무한으로 뻗어 가는 화음을 들었다.

― 『얼음나무 숲』, 하지은 지음, 로크미디어, 102쪽

 장르문학으로 봐도, 또 장르문학의 기준으로 보지 않아도 여러모로 이 소설은 뛰어난 재미를 가진 완결성 높은 한 권의 작품이다. 그렇기 때문에 평소에 장르 문학을 보던 독자들에게도 또 보지 않던 독자들에게도 누구나 부담 없이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즉, 일반 시장에서도 충분히 성공할만한 책이라는 것이다.(특히 음악이라는 소재에 흥미가 있는 사람은 더욱 좋지 않을까.)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리뷰를 쓰면서 아직 접하지 않은 독자들도 더 많이 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초기에 대여점 시장은 판타지 소설의 성장과 함께 발전했다. 그러나 이제는 과도한 경쟁과 물가 상승, 스캔의 범람 등으로 인해 대여점 시장은 사멸의 길을 걷고 있다. 이런 와중에서 출판사 측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는 것은 긍정적인 방안으로 본다. 대여점 시장은 작품의 퀄리티를 낮추는 악순환을 계속했다. 실력 있는 작가들은 대여점에 들여놓기 위해 일부러 비슷한 유행의 작품을 써야 했다. 독자들은 더 이상 소위 말하는 1세대 판타지 소설들 같은 작품들을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그 사이를 비집고 안정적인 퀄리티를 가진 일본의 라이트노벨이 수입되어 국내 서점 시장을 장악했다. 이에 국내 출판사에서도 각종 브랜드를 런칭하며 한국 라이트노벨을 선보이고 있다. 각 출판사에서 팔리는 책들, 새로운 소재를 가진 개성 넘치고 재미있는 작품을 선보이려고 노력한다는 것은 독자들에게 기쁜 일이다. 독자들은 일정한 재미만 가지고 있다면 얼마든지 돈을 내고 직접 구매할 의사가 있는 것이다. 이런 변화하는 시장 가운데서 노블레스 클럽은 어떠한 위치를 차지하게 될까? 앞으로 어떤 식으로 시장에 자리를 잡을 지는 아직 확신할 수 없다. 지금 알 수 있는 것은 첫 발걸음을 정말 경쾌하게 잘 내딛었다는 것뿐이다.
  『얼음나무 숲』은 기존에 편향된 스타일에서 벗어나 정형화 되지 않은 환상을 선보였다는 점에서 주목할만 하다.(『양말 줍는 소년』과 함께 『얼음나무 숲』이 나온 이 시점은 안정적인 문체와 작품성 있고 감동을 주는 퀄리티 높은 다양한 작품들이 나올 분기점으로 보인다. 앞으로 나올 다른 작가들의 노블레스 클럽 작품들 ― 『양말 줍는 소년』의 작가 콜린의 신작인 『오후 다섯 시에 만난 외계인』도 포함되어 있다 ― 은 더 많은 독자들의 재미를 책임져 줄 것이고 한국 장르문학의 새로운 도약의 발판이 될 것이다. 또한, 구매층을 공략한 디앤씨미디어의 시드노벨, 대원씨아이의 아키타입과 일리어드, 넥스비전, 서울문화사 등에서는 각기 색다른 소재와 책의 고급화를 통해 양질의 작품을 내놓고 있다. 이제 외국 장르문학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우수한 작가진과 작품들을 만나게 될 지도 모른다.) 이로 인해 노블레스 클럽 자체의 신의도 올라갔다. 이 정도의 퀄리티와 재미를 가진 작품들이 앞으로도 계속 나와 준다면 노블레스 클럽의 책들은 믿고 주저 없이 구입하게 될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물론 하지은이라는 작가의 이름 역시 기억에 확실히 새겨졌다. 앞으로 기대되는 작가이고 책이 나오면 곧바로 구입하게 될 것이다.
  차디찬 바람이 불고, 온통 흰 빛깔 밖에 없는 세계에서 처연하고도 아름다운 선율이 귓가에 들린다. 마치 환상 같은 음악. 책을 읽은 지 몇 주가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감동과 여운. 당신에게도 이 감동을, 이 전율을 느끼게 하고 싶다. 얼음나무 숲으로 오라. 그곳에 고요한 침묵의 연주가, 욕망과 저주를 둘러싼 비극을 위한 선율의 음악회가 열리고 있다. 그리고 책을 덮고도 한 동안 아련한 음이 귓가에 떠나지 않고 맴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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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말 줍는 소년 1 - 세상의 모든 마법을 너에게
김이환 지음 / 황금가지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양말 줍는 소년

 

그 신비로운 세계를 만나는 것만으로 『양말 줍는 소년』은 가치가 있다.

새로운 상상력이라는 점에서 이 소설은 확고한 성취를 이루어냈다.

 

― 문화평론가 김봉석

 

한국 독자들에게 건네는 인사. 태평양 건너에서 따뜻한 인사를 건넵니다! 한국에는 매혹적인 이야기와 문학적 전통이 있다고 알고 있어요. 한국 작가들이 상상력을 끌어내는 한국만의 방식을 찾아내길 기대합니다. 남미 작가들이 했던 것처럼요.

 

― 장르문학 월간지 『판타스틱』 2008년 2월호, 어슐러 크로버 르 귄 인터뷰 中

 

나는 르귄 여사의 저 글을 읽고 한 가지 소설을 떠올렸다. 『양말 줍는 소년』. 비록 한국의 전통 설화를 소재로 한 소설도 아니고 한국적인 소재를 녹여낸 소설도 아니다. 그러나 이 소설은 특별하다. 기존에 중세 시대 전형적인 에픽 판타지에 영향을 받은 판타지 소설들과도 다르고 일본에서 시작된 각종 라이트노벨의 영향에서도 벗어나 있다. 그만큼 독자적인 환상이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이다.

한국 판타지 소설 시장을 연 출판사 황금가지에서 3년 만에 국내 작가의 환상 소설을 출간했다. 황금가지는 초기를 제외하곤 이영도 작가의 작품과 황금드래곤문학상 수상작들을 출간하는데 그쳤었다. 그만큼 출판사 기준에 만족스러운 국내 작품을 찾기 힘들었으리라. 그런 황금가지가 오랜만에 국내 작가의 작품을 선택했다고 하니, 당연 기대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작품 이름을 접하고 나서는 당연하다는 생각을 했다. 뜻밖이라거나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황금가지에서 출판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대형 출판사인 만큼 책은 깔끔하게 잘 만들어 줄 테고 언론 홍보 영향력도 클 테니까.

 

『양말 줍는 소년』은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독특한 환상소설이다. 대여점에 주로 판매되는 양산형 판타지 소설들과도 다르고 일본에서 수입해온 라이트 노벨과도 다르다. 그야말로 세계 어디를 가도 보기 힘든 낯선 환상 세계를 경험하게 해주는 소설이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소설의 주인공은 환상의 나라에서 양말을 줍는 일을 하게 된 소년이다. 왜 갑자기 양말을 줍느냐고? 그보다 환상의 나라에는 왜 갔으며, 거기는 어떠한 곳인지 궁금하지 않은가?

 

자, 이제 잠시 환상의 나라 속을 들여다보자.

 

1. 한국판 어린 왕자, 양말 줍는 소년

 

엄마는 내가 크면 훌륭한 일을 하는 훌륭한 사람이 될 거라고 하셨다.

나는 환상의 나라에서 낡은 양말 줍는 일을 하고 있다.

 

첫 연재부터 매 연재분마다 시작을 장식하는 두 개의 문장. 이 문장이 이 소설을 나타내는 핵심 문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두 문장을 읽는 것만으로도 소설의 분위기가 어느 정도 파악이 되고 기대가 됐다.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주인공의 엄마는 어렸을 때부터 주인공에게 훌륭한 사람이 될 거라고 했지만, 주인공이 막상 환상의 나라에 가서 하게 된 일은 낡은 양말 줍는 일이었다. 나는 이 소설이 책으로 나올 때까지, 이 궁금증을 묵혀 둘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 소년은 양말을 줍게 된 것일까?

그러나 여기서 바로 정답을 얘기하면 재미가 없어진다. 이 소설의 시작도 바로 환상의 나라 이야기부터 하지 않는다.

 

내가 어쩌다가 환상의 나라에서 낡은 양말 줍는 일을 하게 됐는지를 이야기하려면 무척이나 말할 게 많다.

뭐부터 말할까? 흔히 그러듯 내 소개부터 시작할까? 몇 살이고 이름이 뭐고, 어디 살고 하는 소개부터 말이다.

그런 건 싫다. 너무 어른들 방식 같다. 어린 왕자에도 나오잖아. 어른들은 “창가에 제라늄 화분이 있는 분홍 벽돌집이에요.”라고 말하면 모르고, “10만 프랑짜리 집이에요.”라고 말해야 “참 좋은 집이구나.”라고 한다고.

 

― 『양말 줍는 소년』 1권, 김이환 지음, 황금가지, 11쪽

 

주인공은 고등학교 1학년이다. 이 소설의 매력 중 하나는 화자의 목소리가 일관성 있게 변함없다는 것이다. 즉 소설이 끝날 때까지 소설의 주인공은 정말 고등학생 1학년 같다. 갑자기 어른처럼 똑똑해져서 장광설을 늘어놓거나 사건을 확 뒤집어엎지도 않는다. 숨겨진 능력이 있어서 각성을 하는 것도 아니다. 처음 모습 그대로 항상 어린 말투로 이야기를 차분하게 이끌어 간다. 이점이 가장 인상 깊은 부분 중 하나였다. 그렇다고 단면적인 캐릭터로 그려진 것도 아니다. 가끔은 그 또래 아이들처럼 성질도 부리고 혼나기도 하고 때로는 슬퍼서 울기도 한다. 지혜롭게 생각할 때도 있고 어리석은 짓을 벌일 때도 있다. 그런 점들 때문에 캐릭터는 살아있게 되고 이야기는 매끄럽게 진행된다.

그리고 그런 캐릭터 때문일까? 본문에서도 언급되듯이 어린왕자가 떠오르기도 한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이 두 소설은 같은 위치에 서 있다. 그만큼 어른이 아닌 어린이, 혹은 청소년의 시점으로 세상을 바라본 이야기다.

이야기의 전개 방식은 주인공이 하고 싶은 이야기부터 하는 식이기 때문에 깔끔하면서도 흥미롭게 진행된다. 즉, 재미없는 부분은 넘어간다. 뒤에 이야기해야 할 것은 뒤로 넘긴다. 시간의 순서대로 스토리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인과 관계에 따라 플롯을 짰다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을 화자가 직접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이라 사실성까지 띤다. 능청스럽게 이 모든 게 전부 다 진짜라는 식으로 이야기하기 때문에 이야기에 몰입이 더욱 잘 되는 것이다. 주인공이 때론 이야기를 건너뛰고 뒤로 미루는 부분에서는 미하엘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가 생각나기도 했다. 이 이야기는 다른 곳에서 다른 식으로 이야기 될 거라면서 이야기를 전환하는 부분 등에서 말이다. 소년이 다른 세계에 가게 되고 그곳에는 다양한 사람들과 신기한 나라들이 있다는 점, 목숨을 건 모험을 하고 시험도 당하고 좋은 사람도 만나는 점에서 비슷한 부분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간에 그건 다음에 따로 이야기 할 자리를 마련하고 일단 이 소설의 다른 점들을 살펴보자.

 

2. 우리가 바란 환상의 체험

 

언제까지고 중세를 배경으로 싸우는 이야기는 질렸다. 비록 그 배경이 가상현실로 바뀐다 하더라도 그건 작가가 좀 더 이야기를 편하게 전개시켜 나가기 위한 방편일 뿐이다. 친숙한 소재라 독자들에게 다가가기 쉽고 사실성을 높여 진입장벽을 낮출 뿐이었지 소설의 환상이 달라지진 않았다.

그렇다. 환상! 환상 소설에서 보여줄 수 있는 환상은 다른 소설들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환상 소설 고유의 매력이다. 이 장르가 왜 존재하는가? 그 근원에는 우리가 꿈꾸는 환상이 숨겨져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국내 장르 소설에서는 판에 박힌 듯 똑같은 환상의 일면만 보여주는 작품이 많았다. 차별화 된, 그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어 경이롭기까지 한 환상을 보여주는 작품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와 맞닿아 있으면서도 전혀 다른, 한번쯤 가보고 싶은, 살아보고 싶은 환상 세계가 그려진 작품은 없었다. 어쩌면 해리 포터가 그토록 전세계 어린이들에게 환영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그것을 해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매일 똑같은 하루와 재미없는 학교가 아닌 마법이 존재하고 모든 게 신기한 아이템들로 가득 찬 마법의 나라. 그곳이 우리 근처에 있다는 것. 단지 개찰구 하나만 통과하면 된다는 사실이 해리포터의 인기 요인 중 하나가 됐을 것이다. 그리고 이 『양말 줍는 소년』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마법의 분필과 번호만 알고 있으면 얼마든지 이 세계와 맞닿아 있는 환상 세계에 갈 수 있다는 것)

지루한 일상에서 탈출해 또 다른 세계를 경험한다. 다른 세계를 통해 많은 것을 경험하고 느낄 수 있다. 이 소설에서 다른 세계는 그야말로 다른 세계다. 어디서도 본 적이 없는 세계. 화폐는 황금 동전. 우편으로 책을 빌리기도 하고, 소화전에 물을 주기도 하고, 기린이 구름을 몰고 다니고, 청소를 안 하면 풀이 자라고, 비밀요원과 중계자와 균열과 무질서가 있는 세계.

이 환상의 나라에는 처음 온 사람들을 위한 십계명이 있다.

 

1. 계산기 없이 나이를 묻지 말 것.

2. 시계를 폼으로 차고 다니지 말 것.

3. 완성되지 않은 소화전을 발로 차지 말 것.

4. 맨홀 그리는 사람을 바라보지 말 것.

5. 허락 없이 마법을 사용하지 말 것.

6. 화분에 물주는 걸 잊지 말 것.

7. 『세상의 모든 마법을 너에게』를 끝까지 읽을 것.

8. 쓰레기통에 쓰레기를 쑤셔 넣지 말 것.

9. 우산을 가지고 다니지 말 것.

10. 특이한 외모의 사람을 낯설게 생각하지 말 것.

 

처음 읽었을 때는 이게 다 뭔 소린가 싶었다.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다. 작가가 아무렇게나 지어낸 거 아냐?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나 읽으면 읽을수록 주인공은 몸으로 부딪쳐가며 이 십계명의 의미를 하나 둘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읽는 독자 역시 이 십계명의 의미들을 하나씩 깨달으면서 자연스럽게 이 환상 세계에 적응하게 된다.

강제로 세계관 설정을 주입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익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겪는 사건들은 황당하면서도 재미있다. 사건의 전환 속도가 상당히 빨라서 미국 드라마 《프리즌 브레이크》처럼 계속 연달아 스릴 넘치는 사건들이 터진다. 책을 잡은 손을 뗄 수 없는 것이다.

모든 것들이 다 논리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은 신기하기까지 하다. 작가는 완전히 다른 세계 하나를 창조해냈다. 그리고 그 세계가 말이 되도록 능숙하게 부연 설명을 달았다. 소설은 지루하지 않게 이 설명을 해내고 있다. 우리는 어느새 이 세계를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주인공은 환상의 나라에 적응하면서 시민권을 따기 위한 공부를 하고 시험을 보는데 독자 역시 주인공과 한 몸이 되어서 시민권을 따는 시험을 보는 기분이다.

낯선 세계가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되었을 때. 당신은 어느새 환상의 나라의 주민이 되어 있을 것이다. 이제는 얼마든지 아직 환상의 나라를 접하지 않은 사람에게 가이드를 해줄 수 있을 것이다. 나처럼.

 

3. 소설의 재미, 이야기의 재미

 

“글세 자기가 송혜교 흉내 내서 ‘너의 죄를 사하노라.’ 한 번만 해볼 테니 나보고 송승헌 대사를 해 보래. 그래서…….”

급기야 엄마는 애원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세금 내가 낼게. 제발 그 이야기 좀 하지 마.”

“그 정도로는 어림없죠, 사모님. 그래서 어떻게 됐냐면…….”

엄마는 아빠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기까지 했다.

“알았어, 알았다고. 일주일에 두 번씩 청소하는 아주머니 보낼 테니 하지 마. 내 돈으로 할게, 내 돈으로.”

아빠는 팔짱을 낀 채 짐짓 거만하게 말했다.

“그 정도와 바꾸긴 아까운 이야기지만 당신이 정 원한다면 뜻대로 하는 수밖에.”

의기양양한 아빠와 침울해진 엄마를 번갈아 보고 있자니, 나도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 이야기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나는 말했다.

“아빠는 채연을 너무 좋아해서 이런 일도 있었어요. 화장실에서…….”



― 『양말 줍는 소년』 1권, 김이환 지음, 황금가지, 276쪽

 

앞에서 이 소설이 보여준 놀랍고 신기하고 재미있는 세계관을 장황하게 이야기했다. 한 마디로 하자면 멋진 세계관이라는 것이겠지만. 세계의 중심에는 등대가 있고, 등대는 이 세계를 유지시키는 존재. 그리고 그 등대와 환상의 나라 사람들 사이에서 연결해주는 등대지기가 존재하는 세계. 이런 다양한 설정들은 많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소설의 재미를 더해준다. 예를 들자면 대원에서 NT노벨로 출간된 『마술사 오펜』처럼 독특한 세계관의 설정이 궁금하여 소설을 더욱 읽게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이 놀라운 세계관만이 이 소설의 전부는 아니다. 이 소설에 나오는 다양한 인물들도 전부 매력 있고 소설의 매력을 배로 만들고 있다. 주인공을 제외하고도 성격 있고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기린을 좋아하는 여자친구 연두. 어떤 일에도 쉽게 놀라지 않고 대범하게 툭툭 일을 처리하는 엄마와 게임을 좋아하는 아빠. 그 외에 양말관리국의 하균씨, 나영이. 비밀요원 동건이 형. 가끔씩 나타나서 도움이 되기도 하는 실적 1위 빨간 앵무새까지.

항상 착한 사람들만 나오지 않는다. 소설에서도 이야기하지만 환상 세계에서도 고통은 있었다. 주인공은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기고 심하게 맞는 경우도 많았다. 그렇지만 정이 가는 인물들이 더 많다.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은 현실 세계와 환상 세계에서 전부 살고 싶은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만약, 금세 두려움 때문에 환상 세계를 포기했다면 이렇게 재미있는 소설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무튼 주인공은 끝까지 앞으로 향해 나아갔고 결국 멋진 엔딩을 맞는다.

환상적인 세계관, 개성 있는 캐릭터, 놀라울 정도로 일관성 있는 주인공까지 다양한 장점들로 가득 찬 이 소설은 무엇보다도 소설 본연의 재미가 있다. 아무리 많은 것이 갖춰졌더라도 이야기 자체가 재미없다면 결국 책을 덮게 된다. 그러나 이 소설은 아니다. 한 번 펼치면 끝을 볼 때까지 멈출 수 없다. 삶의 의미를 깨닫게 만드는 잠언이 곳곳에 박혀 있는 것도 아니고, 미소녀들이 잔뜩 쏟아져 나오는 것도 아니지만 이 소설은 정말 재미있다. 이야기란 이런 것이라고 말해주는 것만 같다. 이야기가 이렇게 재미있다고. 소설이란 이렇게 재미있는 것이라고 말해주는 것만 같다.

항상 똑같은 상상력에 질린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이야기의 재미를 품은 새로운 상상력이 여기에 나타났으므로.

 

4. 가족 모두가 읽을 수 있는

 

장르 판타지 소설을 부모님과 함께 읽기는 어렵다. 장르에 익숙한 독자들에게는 마법사가 “파이어볼!”이라고 외치는 장면에서 모두 동일한 연산 작용을 거친다. 마법사가 주문을 외워 마나의 힘으로 허공에 불덩어리를 생성하는 이미지를 떠올린다. 그러나 판타지를 읽지 않는 독자들에게는 저게 무슨 소리인지 의문일 뿐이다. 결국 대여점 위주의 소설은 대부분 관습적으로 읽는 매니아층만이 소화할 수 있는 소설이었다. 장르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깔려 있지 않는 한 접근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양말 줍는 소년』은 어른들을 위한 동화 같은 글이다. 『어린 왕자』를 남녀노소 누구나 읽을 수 있듯이 『양말 줍는 소년』 역시 누구나 거부감 없이 쉽게 읽을 수 있다. 그리고 또 누구에게나 똑같은 재미를 줄 것이다.

그야말로 아버지나 어머니, 또는 누나, 동생, 친구에게도 아무 부담 없이 권할 수 있는 재미있는 소설이다.(실제로 나 역시 설에 시골에 가져갔더니 아버지가 읽기도 하셨다. 지금은 기숙사에서 같은 방 쓰는 후배에게도 읽게 권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김이환 판타지 장편 소설이란 타이틀을 달지 않고 김이환 장편 소설이라는 타이틀을 달았을 것이다.

 

엄마 : 너라면 상대편이 하자는 대로 하겠니? 그러면 일단 네 검으로 왕자 검을 쳐낸 다음에 주먹으로 싸워.

나 : 그게 말이 돼요?

엄마 : 그 방법 밖에 없잖아.

나 : 어떡해요? 지면 나 죽잖아요. 엄마는 내가 죽을지도 모르는데 걱정도 안 돼요?

엄마 : 죽진 않을 거야. 칼에 찔려도 빨리 치료하면 살 수 있어. 환상의 나라에서 쓰는 치료 마법이 의외로 잘 들어. 바깥 세상 응급처치보다도 훨씬 낫다고.

나 : 엄마, 진짜 짜증 나!

엄마 : 네가 말실수해 놓고 왜 나한테 그러니?

나 : 오늘 내가 죽으면 다 엄마 책임이야!

 

― 『양말 줍는 소년』 3권, 김이환 지음, 황금가지, 86쪽

 

아이들이 읽어도 무방할 정도로 동화적인 상상력도 많이 보이는 소설이다.(주의할 점은 주인공이 갓 고등학교에 진학한 소년이라 욕설이 그대로 나오는 경우도 있긴 하다.) 어렵지 않다는 게 역시 가장 큰 장점이다. 그리고 정감어린 시쳇말로 무심한 듯 시크한 대사들도 매력이다. 특히 주인공 엄마가 이런 대사를 잘 치는데 소설의 매력 중 하나이다. 1인칭 시점이라 주인공의 생각도 그대로 전달되는데 간결하면서도 피식피식 웃게 되는 해학이 살아있는 문체가 인상적이다. 또한 상황도 마찬가지다. 첫 도입부는 주인공의 부모님이 이혼을 결심하는 데서 시작하는데 법원에서 엄마와 아빠 중 한 분을 선택해야 한다고 말하자, 주인공은 둘이 가위바위보를 해서 결정하라고 한다. 그리고 실제로 엄마, 아빠는 가위바위보를 바로 한다. 이런 황당무계한 상황과 유머가 곳곳에 존재한다. 앞에서 미처 말하지 못했지만 이 책은 이런 유치찬란하면서도 따뜻한 웃음이 가득 찬 소설이다.

숨 가쁘게 끊임없이 터지는 사건들도 책의 흡인력을 높여준다. 주인공이 계속 곤경에 처하는 사건들은 꾸준히 흥미를 일으킨다. 주인공이 과연 어떻게 될지 궁금해서 뒷장을 안 넘길 수가 없다. 예쁜 동화 같은 상상력이라고 무시했다가는 이 놀라운 재미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퍼즐처럼 논리적으로 딱딱 맞는 세계관은 정교하기까지 하다.

아직 이 책을 접하지 않은 장르 독자가 있다면 이 책을 권하고 싶다. 국내에도 이런 독특한 상상력을 가진 환상 소설이 있다고. 무엇보다도 재미있는 소설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장르 독자가 아닌 일반 독자에게 역시 마찬가지로 권하고 싶다. 환상의 나라에 가보는 것은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경험일 테니까. 가는 방법도 전혀 어렵지 않다. 그저 눈앞에 있는 벽에 분필로 번호를 적고 이렇게만 외치면 된다. 당신을 환상의 나라로 초대합니다, 라고. 분필도 없고 번호를 모른다면, 환상의 나라 가이드북을 구입하면 된다. 국내판 제목은 『양말 줍는 소년』이다. 한 소년의 환상의 나라 체험기가 여러 분을 어느새 환상의 나라로 데려다 놓을 것이다. 거기엔 등대가 있고, 마법이 버젓이 존재하고, 연예인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밝고 활기차게 살아가고 있다. 바깥 세상에서 온 사람을 만나면 뽀뽀를 요청하고 집에 가서 콩을 심을 것이다. 왜 그런지는 소설을 읽으면 알 수 있다. 세상의 모든 마법을 너에게, 혹은 세상의 모든 재미를 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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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드 6 - 끝의 시작 밀리언셀러 클럽 78
스티븐 킹 지음, 조재형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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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드

 

종말, 그리고 끝의 시작





△ 스티븐 킹의 역작 중 하나인 『스탠드』. 황금가지 전 6권으로 출간되었다.

 

모든 이야기는 하나의 사건에서부터 시작한다. 한 남자가 가족들을 데리고 차를 몰고 있었다. 그 남자의 안색은 안 좋아 보이고 끊임없이 기침을 해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침이 인류 종말의 서막이었다.

이번에 황금가지에서 출간한 스티븐 킹의 역작 『스탠드』(황금가지 출판, 스티븐 킹 지음, 조재형 옮김, 전 6권)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1권 바이러스’ 편 앞표지에는 책 본문에 이 부분을 인용하고 있다.

 

샐리는 남편을 따라 15년 된 자가용 시보레가 서 있는 차도로 나섰다. 동 틀 무렵 그들은 네바다 주를 가로질러 동쪽으로 달리고 있었고, 찰리는 연방 기침을 해 대고 있었다.

 

그것은 인류 멸망을 알리는 기침이었다. 모든 사람을 죽음으로 이끌고 인류가 이륙한 문명을 모조리 파괴하는 병의 시작. 그 병의 이름은 캡틴 트립스였다. 결국 종말은 인류가 자행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악마가 나타나서 병을 퍼트린 것도 아니고, 신이 나타나서 홍수를 퍼부은 것도 아니니까. 전염병인 세균 무기를 만든 것은 미군이었고 그것이 불의의 사고로 퍼져나가게 된 것이다.

 

홀을 더 내려가니 한 남자가 닫힌 문에 등을 대고 기대고 앉아 있었고, 표지판이 그의 목둘레에 신발끈으로 묶여 있었다. 그의 턱이 앞으로 숙여져 표지판에 적힌 글을 가렸다. 스타키는 손가락을 남자의 턱 밑에 대고 머리를 뒤로 밀어올렸다. 그러자 그 남자의 눈알들이 고깃덩어리인 양 자그맣게 철퍽 소리를 내며 머리통 속으로 떨어져 들어갔다. 표지판에는 빨간 매직펜으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그것이 ‘효과 만점이라는 건 다들 아셨겠지. 더 질문하실 분?’ ― 스탠드 1권, 372쪽

 

네바다 사막의 생화학전 연구소에서 만들어진 프로젝트 블루가 명명된 세균. 그것의 증상은 독감과 비슷하지만 치명적인 살상력은 99.4%에 이른다. 또한, 백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독감과 유사하기 때문에 처음에 걸린 사람들은 자신들이 위험에 처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게다가 모두 독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세균이 퍼져나가는 것도 눈치 채지 못한다. 이토록 섬뜩하리만치 무섭게 묘사된 종말을 본 적이 있는가? 그야말로 모두가 감기에 걸려 죽어버리고 마는 세상이라니.

『스탠드』 1권은 전염병이 어떻게 퍼지게 되었고, 각각의 주인공은 그전에 어떤 식으로 살아왔는지를 비쳐준다. 어쩌면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기도 전이라 할 수 있으므로 지루하고 재미가 없어야 하는 부분인데 오히려 이 부분이 재미있다. 전염병이 퍼져나가는 묘사가 시원하면서도 자연스럽고 또 그게 오히려 설득력을 가져서 무섭기까지 하다. 인간의 목숨이 순식간에 죽어나가는 모습을 그럴싸하게 잘 그려냈다. 스티븐 킹의 역량이 최고조에 달할 시점에서 쓴 초기 장편 중 하나이므로 그의 왕성한 필력도 잘 느낄 수 있다. 캐릭터들의 내면 묘사나 주위 묘사 그리고 상황 들을 효과적으로 그리고 있어서 세세한 부분까지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다. 갑작스런 전염에 의해 인류가 종말을 맞는 모습은 그동안 상상해 왔던 핵폭발의 위험이나, 환경 위기, 혜성 충돌, 외계인 침공과는 전혀 다른 양상인데 어떤 면에서는 주제 사라마구의 『눈 먼 자들의 도시』가 떠오르는 풍경이기도 하다. 갑자기 눈이 머는 현상이 일어나고 전염성으로 의심되자 군대가 출동해서 사람들을 가두고 나중에는 군인은 물론이고 도시 전부가 눈이 멀어 모든 행정이 무너지고 인간들이 원시적으로 변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스탠드』에서도 처음에는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기 위해 군인들이 강제로 도시를 격리시킨다. 그러나 결국에는 99.4%라는 치명적인 전염률 때문에 군인들은 물론이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죽어버린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정말 극소수다.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종말 이후의 세상을 살아가게 된다. 남은 것은 희망일까? 절망일까?

 

스티븐 킹이 그린 종말의 풍경은 어떻게 보면 굉장히 사실적이다. 만약, 터무니없이 허황되었다면 그토록 긴장감 있고 흡인력 있는 초반 전개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이 리얼리티를 지향하고 다큐멘터리적 요소를 가진 소설은 아니다. 이 소설은 작가 스스로도 밝혔듯이 자신이 즐겁고 또 독자가 즐거워 할 수 있는 소설이다. 그리고 지은이의 말에서 밝힌 바와 같이 이 소설은 암울한 기독교적 세계관에 관한 긴 이야기이다. 그러므로 종말 이후에 살아남은 소수의 사람들이 벌이는 현실적인 이야기가 이 소설의 주요 주제는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양상은 훨씬 복잡해졌고 이야기는 지리멸렬해졌으며 재미없었을 것이다. 또한, 소설이 될 수 없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스티븐 킹은 노골적으로 기독교적 세계관을 가진 종말의 풍경을 그리고자 했다. 선과 악의 맞대결이라는 간결하고 선명한 이야기를 말이다.

 

그가 걸음을 멈추었다.

무엇인가가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것을 느낄 수 있을뿐더러, 밤공기 속에서 거의 맛볼 수 있을 정도였다. 그는 그것을 맛볼 수 있었으니, 사방에서 몰려오는 그을음투성이 뜨거운 맛이었고, 마치 신께서 야외 파티를 준비 중이신 관계로 모든 문명이 바비큐가 돼 버릴 것 같았다. 이미 숯의 바깥쪽이 뜨겁게, 하얗게 쩍쩍 갈라졌고, 숯의 안쪽은 악마의 눈처럼 시뻘겠다. 거대한 것, 장엄한 것이었다.

그가 모습을 바꿀 시기가 가까워졌다. 그는 두 번째로 다시 태어나려 하고 있었고, 어느 장엄한 모래 빛 야수의 출산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자궁으로부터 밀려 나오려 하고 있었다. 그 야수는 벌써 자궁 수축의 진통 속에 드러누운 채, 분만을 예고하는 피가 세차게 뿜어져 나올 때마다 천천히 다리를 움직이며, 태양같이 뜨거운 눈으로 텅 빈 공간을 노려보고 있었다. ― 스탠드 1권, 383-384쪽

 

그 암시는 1권 말미에서 나타난다. 복잡하게 쓸 것도 없이 간단한 그 이름 다크맨. 수많은 이름을 가져왔지만 이 시대에는 랜들 플랙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내. 1권 마지막 장인 23장에 등장하는 그 자는 앞으로의 이야기가 선한 무리와 악한 무리가 종말 이후의 세상에서 벌이는 대립 구도임을 암시하고 있다. 또한, 이것이 성경의 요한계시록에서 보여 지는 종말 이후의 모습들을 소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는 사실까지. 작가가 어떻게 이 소설을 기획하게 되었는지는 『죽음의 춤』이라는 책을 아직 번역되지 않아 모르겠지만,(작가는 서문에서 공포문화비평서인 『죽음의 춤』이란 책에 『스탠드』의 탄생 비화가 언급되어 있다고 밝혔다.) 분명 성경에 나오는 종말에 관한 이야기들이 소설의 뼈대를 이루고 있음은 분명하다. 성경에 묘사된 종말의 이야기들을 읽고 나도 한번쯤은 소설로 나만의 방식으로 쓰고 싶다는 욕구를 느꼈는데 작가도 같은 욕구를 느꼈던 것이 아닐까. 그리고 스티븐 킹은 그것을 멋지게 성공해냈다. 1, 2권에서 보이는 종말의 모습은 오히려 지나치게 사실적이기까지 해서 후반부에 나오는 선악의 대결 구도가 어색해지고 종교적인 언급이 이상해 보일 정도로 말이다. 이 때문에 앞에 1, 2권만 읽고 끝까지 영적이거나 신비로운 이야기가 아니라 사실적인 이야기들로만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후반부에 들어가서 종교적 이야기에 불일치를 느끼고 실망하는 경우까지 생겨난다.

 





△ 호러의 제왕, 스티븐 킹. 올해로 61세를 맞이한다. 아니, 작가는 작년에 60세를 맞이한 소감 글에서 60세부터 거꾸로 나이를 먹겠다고 밝혔으니 59세인 것일까?

 

애틀랜타에 있는 제일 침례교회의 정면에 빨간 스프레이 페인트로 적힌 낙서.

‘사랑하는 주님께. 제가 머지않아 주님을 만나 뵐 것 같습니다. 주님의 친구 미국 올림. 추신. 이번 주말쯤에 빈방을 넉넉히 준비해 두시면 좋겠어요.’ ― 스탠드 2권, 95쪽

 





『스탠드』 2권 ‘학살’은 전염병이 어느 정도 퍼진 상태의 세상을 보여준다. 잔인하고 섬뜩한 인간의 내면이 그대로 보여 지면서, 실제로도 저런 상황들이 일어날 것이라는 공감이 든다. 사람들은 종말이 일어나면 서로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죽이게 될 것이라는 섬뜩한 진실을 스티븐 킹은 소설에서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그것도 적절한 유머를 섞어가면서 속도감 있게.

 

1권과 마찬가지로 2권도 볼륨이 상당하다. 그만큼 분량이 많지만 금세 읽어 내릴 수 있다. 이야기의 속도는 아주 빠르고 문체 역시 간결하고 리듬감이 있어서 탁탁 치고 나갈 수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이야기가 2권에 걸쳐 펼쳐지지만 눈을 돌리게 만들기 보다는 오히려 빠져들게 만든다. 이야기가 이토록 재미있다는 사실을, 소설이 이렇게 재미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오랜만에 깨닫게 만들어주는 책이다.

2권에서는 각기 다른 상황에 처한 주인공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또, 새롭게 길을 떠나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아직까지 그들이 전부 만나지 않았기 때문에 독자는 언제 이들이 모두 모이게 될까, 라는 기대감을 가지게 된다. 또한, 1권 말미에서 등장했던 다크맨은 또다시 2권 말미에 그 모습을 잠깐 드러낸다. 신비로운 모습을 가진 그의 모습은 앞으로의 대결을 암시하고 있어서 흥미롭다.





 

둘째, 나 자신의 꿈들. 토론을 마치고 나서 어젯밤 전까진 아무 꿈도 꾸지 않았어. 아기처럼 곤히 잠들었고 하나도 기억나는 게 없었다고. 어젯밤 처음으로 그 늙은 할머니 꿈을 꿨어. 이미 일기에 적어 놓았던 것 이외에 더 추가할 말은 없어. 다만 할머니가 근사하고 온화한 기운을 발산하는 듯 보였단 말은 해 둬야겠어. 해럴드가 빈정댔는데도 스튜 씨가 왜 그리도 네브래스카에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는지 이해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어. 오늘 아침 난 완벽하게 상쾌한 기분으로 잠에서 깨어나면서 만약 우리가 늙은 할머니, 마더 애버게일을 제대로 찾아갈 수 있다면, 만사 오케이일 거란 생각을 했어. 그분이 정말로 그곳에 계시다면 좋겠어.(그런데 말이지, 난 그 마을 이름이 헤밍포드홈이라고 굳게 확신해.)

기억해 둘 것 : 마더 애버게일! ― 스탠드 3권, 310-311쪽

 

『스탠드』 3권의 부제는 ‘애버게일의 노래’이다. 3권에서는 다크맨에 반대되는 선한 무리의 대표 애버게일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 전까지는 꿈에서만 등장했던 애버게일이 어떤 인간인지 자세한 내력이 드러나는 것이다. 이는 지루하기보다는 흥미로웠고 이렇게 한 캐릭터마다 각각의 사연과 개성, 그리고 사고관, 내면을 완벽하게 그려내는 스티븐 킹의 능력을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점이 이 『스탠드』의 매력이자 재미의 한 축이며 이야기를 좀 더 흥미롭게 만드는 요소였다. 또한, 주인공 중 한 명인 닉이 드디어 애버게일과 조우한다. 닉은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독자들에게 가장 호감을 많이 사는 캐릭터 중 하나일 것이라 짐작되는데 착하고 침착하며 영리한 캐릭터임은 물론이고 귀가 들리지 않고 말을 하지 못한다는 장애를 안고 있음에도 종말의 세상에서 다른 사람들을 이끌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이런 멋진 캐릭터 때문에 소설에 재미를 느낀다. 그리고 이들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여 이야기를 끝까지 보게 된다. 꼭 이야기의 결말이 궁금한 게 아니라 이들의 삶을 그저 지켜보고 싶은 마음. 또는 소설 속 캐릭터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은 심정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캐릭터들을 매력적으로 창조되었고 친해지고 싶은 유명 스타와도 같이 보인다. 현명하면서 때론 감정적이 되기도 하고 실수도 하고 자책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영락없이 실제 우리 세계 속에 살아 숨 쉬는 인물들 같기 때문이다. 추가로 3권에서 기억해 둘 것은 프래니의 일기장이다.





 

 

스튜: “랠프 형님?”

랠프: “글세. 나도 그다지 맘에 들진 않지만, 닉이 지지한다면, 따르겠어. 찬성.”

스튜: “래리?”

래리: “솔직한 답변을 원하십니까? 저는 그 아이디어가 끔찍하게도 역겹다고 생각하고, 꼭 공중변소에 와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이런 게 바로 높은 자리에 있으면 감당해야 하는 종류의 고민인 것 같군요. 높은 자리란 지독하게도 산뜻한 곳이네요. 저는 찬성에 투표합니다.”

스튜: “발의가 통과되었습니다. 5대 2.”

프랜: “스튜?”

스튜: “응?”

프랜: “제 투표 결과를 바꾸고 싶어요. 만약 우리가 정말로 톰 컬런 씨를 그곳에 보낼 거라면, 뜻을 한데 모으는 편이 낫겠습니다. 제가 너무 설쳐서 미안해요, 닉. 당신의 감정을 상하게 한 거 알아요. 당신 얼굴 표정으로 알 수 있어요. 정말 미치겠어요! 왜 이런 의견이 나와야 하는 걸까요? 여학생 클럽의 댄스파티 위원회처럼 편한 자리는 분명 아니로군요. 그건 확실하네요. 프래니는 찬성에 투표합니다.”

수전: “그렇다면 나도 동감. 공동 전선을 이뤄야지. 닉슨 대통령이나 혼자서 독불장군 행세를 하는 법이니까. 자기는 나쁜 놈 아니라고 말하면서. 찬성합니다.”

스튜: “수정 투표로 7대 0이 됐습니다. 손수건 여기 있어, 프랜. 그리고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을 의사록에 남기고 싶소.”

래리: “그런 꼴사나운 기록을 남기려 하다니, 회의를 폐회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수전: “나도 그 심정에 동의합니다.”

스튜: “폐회해야 한다고 투덜이와 투덜이 엄마가 발의를 하고 동의했습니다. 찬성하시는 분들, 손 드세요. 반대하시는 분들, 캔 맥주가 머리로 날아가는 거 각오하시고.”

폐회 투표는 7대 0으로 찬성. ― 스탠드 4권, 288-289쪽

 

『스탠드』 4권의 부제는 ‘다크맨’이다. 이 4권에서는 소설 속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인 쓰레기통맨의 여정이 첫 부분에 담겨 있다. 원래 처음에 출간되었던 삭제본에서 특히나 많이 삭제되었던 부분이다. 그만큼 실제로 다른 부분들에 비해 지루하고 재미없는 부분이었으나, 쓰레기통맨의 캐릭터를 이해하기 위해서 또 다크맨의 영향력을 알 수 있는 부분 등에서 중요한 파트 중 하나일 것이다. 없어도 무방한 부분이지만, 있다고 해서 크게 문제 있는 것도 아니고 작품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부분으로 보였다.

4권에서는 다크맨을 중심으로 모인 도시의 모습도 일부 비쳐주고 있다. 그 다음은 볼더에 모인 애버게일을 중심으로 한 자유지대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다크맨을 중심으로 악한 무리가 모인 도시와 반대되는 이곳에는 드디어 주인공들이 전부 만나게 된다. 1권부터 3권까지 각기 다른 곳에서 출발했던 주인공들이 마침내 한 자리에 다 모인 것을 보면 독자로서 왠지 감격스럽기까지 하다. 이들은 생각보다 잘 어울리는 것은 물론이고 임시위원회까지 만들어 볼더 자유지대를 위해 다양한 사안을 의논한다. 4권에서 가장 재미있고 인상적인 부분은 바로 이 부분이었다. 서기가 쓴 것을 발췌한 형식으로 묘사 없이 각 캐릭터들의 발언만을 담고 있는데 그래서 더욱 쉽게 읽히고 또한 토론의 내용 또한 재미있었다. 각 캐릭터의 성격대로 적절하게 나오는 대사들과 주인공들이 여러 대사를 주고받는 것 자체가 참 재미있었던 것이다. 또한, 그동안 어리게만 혹은 어리석게만 보였던 캐릭터들이 어느새 성장한 모습을 지켜볼 수 있어서 좋았다. 항상 방황하고 남에게 휘둘리기만 하던 찌질하던 래리가 어느새 임시위원회에서 인정 받을만한 무리의 리더가 되다니. 처음부터 책을 읽어온 독자는 정말 뿌듯한 감정마저 느낄 수 있다. 이렇듯 캐릭터가 가만히 있지 않고 끊임없이 변하고 성장하는 입체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더 정이 갈 수밖에 없다.





10시경 스튜 레드먼, 글렌 베이트먼, 랠프 브렌트너가 그들 무리에 조용히 찾아와 전단을 나눠 주면서, 오늘 밤 여기에 없는 사람들한테 전단의 내용을 전해 달라고 당부했다. 글렌은 약간 절뚝거리고 있었는데 폭발로 날아든 가스레인지 손잡이가 오른쪽 종아리 살점을 한 덩어리 도려냈기 때문이었다. 등사한 포스터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자유 지대 집회 * 문칭거 회관 * 9월 4일 * 오후 8시.’

그것이 그 자리를 떠나는 신호인 듯했다. 사람들은 조용히 어둠 속으로 흩어져 갔다. 대개는 전단을 손에 들었지만, 꽤 많은 이들이 구겨서 내버렸다. 그들은 모두 잠을 이루려고 집으로 돌아갔다.

또는 꿈을 꾸려고. ― 스탠드 5권, 313쪽

 

『스탠드』 5권의 부제는 ‘배신자들’이다. 부제만 보고는 큰 반전이나 중요한 내용이 있을 것 같지만, 사실 소설을 차례대로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으므로 부제가 스포일러가 되거나 그렇지는 않다. 배신이라는 행위를 벌이는 인물들의 심리묘사는 타당하게 잘 그려졌던가? 한 명은 1권부터 차분하게 그려왔기에 자연스럽다. 그리고 마지막에 와서도 자신이 잘못된 길에 들어선 것 같다는 방황을 하기 때문에 더욱 이해할 수 있는 캐릭터로 자리 잡는다. 그러나 다른 캐릭터는 후반부에 등장했고 내면 묘사도 혼란스럽기만 했으며 이번 권에서 나오는 과거 이야기도 그리 와 닿지는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앞선 캐릭터는 어디까지나 사실적인 이유와 묘사가 있었다면 후자의 캐릭터는 영적인 요소가 결합된 배신이었기 때문에 더욱 자연스럽게 느끼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는 이 소설의 전체 구조와도 맞닿아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사실적인 종말의 묘사와 신비롭고 암울한 기독교적 세계관의 종말 이후의 모습을 동시에 갖고 있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프래니.“

스튜가 몸을 돌려 프랜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무슨 일인데, 스튜어트?”

“너는…… 너는 사람들이 과거의 잘못에서 조금이라도 배우는 게 있다고 생각하니?”

프랜은 말하려고 입을 열었다가, 머뭇거리더니 침묵에 빠졌다. 등유 램프의 불빛이 깜빡거렸다. 프랜의 눈빛이 매우 우울하게 보였다.

“나는 모르겠어.” ― 스탠드 6권, 445쪽

 

그리고 대마의 마지막 권. 6권은 다른 5권보다 훨씬 많은 분량을 가지고 있다. 분명 5권에 걸쳐 진행된 이야기를 끝내기 위해서는 그 정도의 분량이 필요하리라. 그러나 사실 분량이 모자른 감도 있다. 이야기의 결말 방식이 만약 달랐다면 몇 권에 달하는 분량이 더 필요했으리라. 그러나 이 소설은 종말 이후 살아남은 사람들의 장황한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가까스로 살아남은 사람들의 풍경을 묘사하고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선과 악의 최후의 대결이 어떻게 끝맺음을 내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종말을 맞는 것도, 선악의 대결 속에서 선택을 하는 것도 결국 모두 인간의 몫이다. 우리는 또 다른 자신인 혹은 친구 같은 캐릭터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 내면의 모습들을 지켜본다.

모든 소설은 결국 인간을 이야기 한다. 이 소설은 그런 인간을 묘사하기 위해 종말 이후의 세상에서 선악의 대결이라는 배경 속에 인간을 던져놓았다. 어떤 작가는 소설이란 인간을 어떤 시뮬레이션에 돌려보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이 소설은 기독교적 말세 속에 인간들을 던져 놓은 것이다.

결말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면 어느 정도는 예상한대로 흘러갔다. 그리고 마음에 들었다. 사실 소설 속에서 톨킨의 작품인 『반지의 제왕』을 언급하는 부분이 두 세 차례 있었고 그 영향 때문인지 비슷한 느낌을 받는 상황 등도 존재한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가 만약 종말을 맞는다면?’ 이라는 아이디어에 시작한 이 소설은 그런 상황에 처한 인간들의 모습을 사실적이고도 세심하게 그려내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거기에 이 소설의 진짜 재미가 들어있다고 느꼈다. 끝이 결코 장엄하거나 대단하게 끝나지는 않다. 오래 전에 쓰인 소설이고, 독특한 결말이 나올만한 장르의 소설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운이 남는 엔딩이었다. 마지막에 주인공들이 끝내 인간들이 과연 잘못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읊조리는 부분이 더욱 그러했다. 그들은 결국 살아남았다. 앞으로도 살아남아 다시 세상을 재건할 것이다. 또다시 혼란이 찾아오고 전쟁이 일어나겠지만, 어쩌면 인간들은 과거를 통해 무언가를 배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소설 속 캐릭터인 해럴드가 중반부에 지적했듯이 일단 그들 중에 누군가가 역사서를 써야하겠지만.

책 뒷표지에서 말하고 있는 대로 전 세계 3억 독자를 사로잡은 ‘이야기의 제왕’ 스티븐 킹. 이 작품을 보노라면 공포의 제왕이라는 말보다 이야기의 제왕이라는 말이 더욱 어울리는 작가다. 물론 그는 공포 소설에 뛰어난 작가지만, 이 작품은 공포보다도 다른 느낌을 많이 받는다. 이토록 자연스러운 종말의 묘사와 매력적이고 사랑스런 캐릭터들을 만들어낸 작가의 능력이 경이롭기까지 함은 물론이다. 6권이나 되는 엄청난 분량에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읽어낼 수 있는 소설은 아마 세상에 흔치 않을 것이다. 어째서 『스탠드』가 스티븐 킹의 초기 대작 중에 하나인지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야기는 재미있다. 사람은 누구나 죽을 때까지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본성이 있고, 또 이야기를 듣고자 한다. 예전에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매체가 소설 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영화나 드라마, 뮤지컬 등 너무나 많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이 아직 소설로 존재할 수 있는 까닭은, 이런 스티븐 킹이라는 작가가 우리 곁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61세가 된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꾸준하게 자기 생일도 빠짐없이 한 자, 한 자 글을 적어 마침내 소설을 완성하는 작가. 30년 동안 꾸준하게 수많은 작품을 발표한 작가. 지금 시대에 태어나 이런 작가와 동시대에 호흡하고 있고 또 그의 작품들을 이렇게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이 행복하기까지 하다. 앞으로 또 얼마나 멋지고 환상적인 이야기를 풀어낼 것인가.





△ 스티븐 킹의 신작 『DUMA KEY』의 표지. 미국에서 1월 22일 출간 예정.



 

『스탠드』 6권의 마무리는 평을 살펴보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나 역시 무난하다고 느꼈지만 100% 만족했다는 것은 아니다. 1권부터 다크맨이 공중 부양 등 영적인 능력을 선보였고 2권에 들어서면서 마더 애버게일과 다크맨은 각자 사람들에게 똑같은 꿈을 꾸게 만들기도 하지만, 마지막에는 그런 영적이고 신비한 요소들이 나오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던 것이다. 물론 이 소설에서 신비한 능력과 영적인 것이 이야기를 크게 좌우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너무 허무하기만 할 테니까. 어디까지나 인간들의 이야기이고 인간이 스스로 선택한 길에 따라 결말이 결정된다. 그러나 마지막에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하나님의 손’ 같은 부분은 개인적인 취향 문제에서 조금 아쉬웠던 부분이다. 그런 것이 없이 넘어갔어도 그냥 보이지 않는 섭리 등으로 은근히 나타내는 게 더욱 매력적이고 소설을 풍부하게 만들어주지 않았을까 싶다.

내용이 아닌 다른 얘기를 해보자면 일단 표지는 깔끔해서 마음에 들었다. 각 권마다 표지가 바뀌는 점도 좋았고 디자인이나 편집도 괜찮았다. 6권으로 분책은 전부 구입하기에 책값이 만만치 않게 만드는 요소이긴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을 정도로 분량이 정말 많기도 했다. 전체적으로 오타도 적은 편이었다.

번역은 일단 깔끔하고 맛깔났다. 스티븐 킹의 문체를 그대로 옮기기 위해서 역자가 많이 노력한 티가 났다. 특히 욕설이 많은 소설이었는데 그것을 날것 그대로 잘 번역한 것 같았다.(사실 처음에는 낯설어서 붕 떠 보이고 어색해 보이기도 했지만 읽어나갈수록 익숙해지고 마음에 들었다. 자연스러워졌고.) 역자의 인터뷰를 보니 절대 완화 하거나 표현의 수위를 낮춘 것이 없다고 하니 더욱 마음에 들었다. 확실히 독자 입장에서 왜곡된 글을 읽고 싶지는 않다. 스스로 원서를 볼 수 없을망정, 원서의 내용 그대로를 읽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에 이어 올해까지 전체 6권이 마침내 전부 번역된 무삭제본 『스탠드』.(예전에 『미래의 묵시록』이란 제목으로 출간되었던 책은 삭제본이었다고 한다.) 왜 독자들이 최고로 꼽는 작품 중에 하나로 손꼽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정말 애정이 가는 캐릭터들이 많았다. 다 읽고 나서 책을 쭉 꽂아놓으니 그 분량이 장난이 아니다.(다크 타워 시리즈를 논외로 치면 스티븐 킹의 단행본 중에 가장 많은 분량을 가진 소설이다.) 그런데 이토록 정말 긴 여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루 만에 다 읽은 기분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작가의 놀라운 필력, 엄청난 흡인력, 개성 넘치는 캐릭터, 사실적인 묘사 등 다양한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읽고 싶어 하던 이야기라는 점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당대 최고의 이야기꾼 중 한 명인 스티븐 킹이 이야기하는 종말의 이야기.





△ 스티븐킹이 뽑은 2007 최고의 미국 드라마 1위. 『로스트』.

 

  영상으로 봐도 재미있을 것 같다. 예전에 MBC TV에서 <미래의 묵시록>이라는 제목을 방영한 적이 있다고 하나 못 보았고, 현재 DVD로 발매 계획도 없다. 새로운 드라마로 기획되어도 현재의 기술력과 자본이면 엄청난 드라마 시리즈가 한 편 나오지 않을까 싶다. 물론 스티븐 킹의 『스탠드』에 많은 영향을 받은 『로스트』 같은 드라마도 있지만 말이다. 로스트 제작진은 실제로 스티븐 킹과 친하고 스티븐 킹의 열렬한 팬이라고 한다. 실제 드라마가 많은 영향을 받았고(상황 배경은 다르지만, 유사점들도 상당히 많다.) 또 스티븐 킹이 최고로 선정한 드라마 역시 『로스트』라고 한다.(현재 『로스트』는 시즌2까지 보고 안 봤는데 이 소리를 듣고 당장 시즌3까지 보겠다고 결심했다. 스티븐 킹이 최고로 꼽는 드라마라고 하니 왠지 꼭 봐야할 것만 같은 느낌이다. 또한 『스탠드』를 다 읽고 나서 허탈한 감정을 어느 정도 무마해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다 읽고 나서 아쉬운 감정도 많이 든다. 이제 어느새 정든 캐릭터들과 이별이라니 말이다. 끝은 또 다른 시작을 암시한다. 작품의 끝이 그런 암시를 보여주듯이, 이제 아직 읽지 못한 스티븐 킹의 다른 작품들이 많이 남아 있다. 게다가 스티븐 킹은 꾸준히 지금도 쓰고 있지 않은가? 끝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말해준다.

  종말 이후에도 사람들은 끝까지 살아남듯이, 새로운 매체가 난무하는 이 시대에서도 소설은 끝까지 살아남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계속 재미있는 이야기를 속삭여 줄 것이다. 자, 들어봐. 어떤 남자가 고속도로에서 차를 몰고 있었어. 그런데 그 남자의 안색은 좋지 않았고 기침을 하고 있었지. 그 남자가 감기에 걸린 것일까? 독감? 아니야. 그건 바로…….
  이야기를 듣고 싶은가. 지루한 일상 속 다른 세계를 체험하고 누군가와 소통하고 싶은가. 과연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궁금한가. 종말 이후의 모습이 궁금한가. 인간은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여기, 그 모든 이야기가 있다.
   

 △ 가장 최근에 개봉한 스티븐킹 원작의 영화. 『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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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 2008-01-21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관함 밖으로 뺐던 책을 슬그머니 다시 주워담고 있습니다....너무 재밌을 것 같잖아요!

twinpix 2008-01-21 21:37   좋아요 0 | URL
분량이 많은데도 재미있게 읽었어요.^^ 이런 작가가 있다는 게 정말 행운이라는 기분이 들 정도로요.^^ 다 마음에 드실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꽤 괜찮은 재미를 드릴 거라 생각합니다.^^~~

루니앤 2008-06-02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저렇게 꽃미남스럽게 나온 킹의 사진은 처음 봅니다
스탠드는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근사치의 소설의 느낌이 오네요
미스트도 좋았고요 [극장에서 두번봤다는.. 본의아니게.. ㅋㅋ]

twinpix 2008-06-02 12:37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처음에는 구체적이고 현실근사치의 소설인데 3권 넘어가면서 판타지나 오컬트적인 종교적인 내용으로 넘어가더군요. 처음 1, 2권에서 인상깊었던 독자들은 실망할 수도 있겠더라고요.^^;; 리플 감사합니다.
 

  2008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2008이라는 숫자가 참 좋게 느껴집니다. 아무튼 6월이 되면 소집 해제니까요. 물론 아직 반년이나 남은 셈입니다만.
  올해 들어 읽은 책은 스티븐 킹의 스탠드 3, 4권 입니다. 전체 6권 중에 분량상 중반에 해당하지만 내용상으로는 아직도 많이 진전된 기미가 없군요. 모든 인물들이 많이 만나지만 실제적인 대립은 시작도 되지 않았으니 말압니다. 5,6권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읽고 나서 가장 크게 남은 느낌이었습니다.
  구입한 책은 듀나의 『용의 이』와 콜린님의 『양말 줍는 소년』 등입니다. 일단 스티븐 킹의 스탠드를 읽고 나서는 듀나의 『용의 이』를 읽고 있습니다. 책에 실린 단편들은 다 개제되었던 잡지들에서 읽었기 때문에 장편인 「용의 이」만 읽고 있습니다. 듀나가 지금까지 쓴 소설 중 가장 긴 분량에다가 영어가 전혀 들어가지 않은 SF라는 점은 눈여겨 볼만 하겠죠. 책의 인쇄 상태는 조금 불만입니다. 폰트도 가늘고 인쇄상태도 많이 흐릿하네요.
  『양말 줍는 소년』은 황금가지에서 정말 오랜만에 내놓은 한국 작가의 판타지 소설이라는 점 때문에 크게 기대가 됩니다. 또한, 문피아에 연재되었을 때 기존의 양산형 판타지 소설들과는 다른 동화 같은 독특한 환상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높은 조회수를 기록한 연재물이었다는 점도 기대되는 부분이죠. 연재할 때 안 읽고 책으로 나올 때까지 기다렸는데 기다린 보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직 읽지는 않았지만, 일단 책은 깔끔하고 예쁘게 출판된 것 같네요.
  일단은 그래도 『용의 이』 다음에 읽어볼 책은 『전투요정 유키카제』입니다. 라이트노벨 브랜드인 NT노벨로 국내에 출간됐지만, SF소설이라고 들었고 평도 좋은 것 같으니 기대중입니다. 보고 나서는 애니도 찾아볼 생각이고요. 얼마전에 케이블에서도 방영해주었다는데 말이지요.
  올해는 또 기대되는 책들도 많이 쏟아지는 것 같습니다. 신간 중에는 김사과의 첫 장편 소설인 창작과 비평에서 출간된 『미나』도 관심이 가네요. 발표하는 단편들도 인상적인 게 많았는데, 과연 장편의 모습은 어떨지 궁금합니다. 단편을 참 뜸하게 발표한다 싶었는데 어느새 이렇게 불쑥 장편을 발표해서 놀라기도 했고요.
  그리고 웹진 크로스로드에 실린 SF단편들을 모아 낸 『얼터너티브 드림』도 구입 예정입니다. 웹진에서 전부 읽은 것들이긴 하지만 이영도님이 처음으로 발표했던 SF단편도 실려 있고, 표제작도 워낙 인상적이었고 「로도스의 첩자」도 재미있게 읽었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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