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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즈 보르코시건 : 바라야 내전 ㅣ 마일즈 보르코시건 시리즈 2
로이스 맥마스터 부졸드 지음, 최세진 옮김 / 씨앗을뿌리는사람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16권에 달하는 스페이스 오페라 마일즈 보르코시건 시리즈! 제 2권 [바라야 내전]은 마일즈의 탄생 직전을 다루고 있는 소설이다. 이 작품은 무려 휴고상과 로커스 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그만큼 긴박하고 박진감 넘치며 놀라운 가독성을 보여준다. 1권 [명예의 조각들]은 마일즈의 아버지 아랄 보르코시건과 어머니 코델리아 네이스미스의 만남을 다뤘다. 물론 단순히 두 사람의 로맨스를 다루는 게 아니라 거기에는 함선 내 반란을 시작으로, 침략 전쟁의 음모가 드러나고, 마침내는 바라야 행성에서 전쟁을 시도한 충격적인 비밀이 밝혀지면서 이야기의 매력을 극대화하며, 후속권에 대한 기대를 심어놓았다. 그렇지만 음모의 무게에도 불구하고 진중함이 떨어지며 에필로그로 붙은 단편으로 여운을 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2권은 훨씬 무겁고 어두운 내전을 다루는데, 전혀 다른 우주에 있음직한 행성의 관습을 세밀하게 보여주면서 행성 인류학을 접하는 느낌을 주며 이야기 전개도 압축적이면서 끊임없이 몰아치면서 독자를 사로잡는다. [바라야 내전]은 마일즈라는 인물을 형성한 핵심적 요소인 장애가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다룬다. 단순히 마일즈의 출생을 설명하면서 끝나는 게 아니라, 바라야 행성에서 벌어진 내전을 다른 행성 출신인 코델리아의 시점에서 다루면서 한 순간도 눈을 뗄 수 없는 흡인력을 보여준다. [바라야 내전]의 시작 시점부터 코델리아는 '마일즈'를 임신한 상태다. 그때, 아랄 보르코시건을 둘러싼 바라야 행성의 정치 구도는 복잡하게 돌아간다. 바라야 행성의 황제는 손자의 안정적인 권력 승계를 염려하여 아랄 보르코시건에게 16년간 섭정을 부탁하게 되고, 아랄 보르코시건은 결국 맡게 된다. 1권보다도 아랄 보르코시건의 출현 빈도는 더 낮은 느낌이다. 1권에 이어서 코델리아의 비중이 높다. 1권에서는 무인행성에서 또 우주선 안에서 보르코시건과 네이스미스로 대비되는 두 세계의 충돌이 그려졌다면, 2권에서는 이제 보르코시건 부인이 되어 바라야 행성에 정착하게 된 코델리아가 험난한 통과 의례를 겪는 이야기를 다룬 것처럼 보인다. 한편으로는 코델리아를 통해 세계의 개혁을 다루는 소설이기도 하다. 코델리아가 바라야 행성으로 와서 아랄 보르코시건과 결혼함으로 인해, 바라야 행성에 새로운 개혁, 진보적인 사상이 가속화된다. 내전을 겪은 이후에 이들로 인해 바라야 행성이 얼마나 변화될 것인지 짐작하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운 소설이다. 물론 코델리아의 아들, 독가스 때문에 장애를 갖고 태어나는 마일즈는 그만큼 상징적이다. 마일즈 보르코시건 시리즈는 혼혈이면서 새로운 시대에 장애를 갖고 난 아이가 뛰어난 두뇌로 종횡무진하는 이야기가 재미와 감동을 주는 것이다. 우리가 마일즈에게 애정을 갖게 되는 것은 그가 완벽한 인물이 아니라 결함을 갖고 있으면서도 포기하지 않고(한때 방황은 하지만) 앞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명예의 조각들]과 [바라야 내전]을 통해 바라야 행성의 관습과 세계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나면 이후 마일즈의 이야기들이 더욱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마일즈 이전 시대가 어떤 모습이었고 그의 부모가 세계를 어떻게 개혁시켜 나갔는지를 자세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후 마일즈가 그들의 아들로써, 살아가는 모습이 새롭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고립기를 거치고 군사적인 정신으로 무장한 [바라야 행성]에서는 여자는 군인이 될 수 없고 장애를 가진 아이는 태어날 때 죽임을 당한다. 그 야만의 세계에서 절망적인 세계 안에서 마일즈는 이 소설 내내 힘겹게 태아로 버티고 마침내 세상에 나오게 된다. [전사 견습]에서도 언급된 이야기지만 구시대의 상징인 마일즈의 할아버지는 마일즈를 낙태하라고 종용한다. 보르코시건 가문에 이런 돌연변이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베타 개척지에서 온 코델리아는 용납할 수 없다. 코델리아는 마일즈를 구하기 위해 소수의 인원으로 반란이 일어난 황궁에 잠입해 가는 일을 벌인다. 1권에 이어 2권에서도 코델리아는 거침없이 질주한다. 두려움에 떨지 않는다. 자신이 하려는 일에 확신을 갖고 행사한다. 바라야라는 세계 자체가 자신이 자라온 곳과 전혀 다른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데도 상관하지 않는다. 그 단호한 정신이 코델리아를 빛나게 만든다.
내전이 벌어지는 상황이 긴급해서 묘사되고, 저택을 탈출 긴급히 대피하는 장면들이 긴장감을 자아내면서 페이지를 재빨리 넘기게 만든다. 또한, 시시각각 변화하는 상황들이 뒷페이지를 계속 궁금하게 만들고 마침내 코델리아가 황궁에 진입할 생각을 할 때는 무서운 속도로 이야기가 질주하기 시작한다. 그 속도감이 상당하며 생사를 건 인물들의 모험에 자연스럽게 매료되고 만다.
보르코시건 시리즈의 매력은 인물 조형이 잘 되어 있기 때문에 한명 한명 개성을 느낀다는 점이다. 대하 시리즈에서 또 스페이스 오페라에서 인물 구분이 안 될 정도로 개성이 안 느껴지고 모호했다면 이 소설은 결코 이렇게 세계적인 인기를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중적인 오락소설답게 보르코시건 시리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생동감이 넘치며 독자가 감정이입을 하고 매력을 느낄 요소가 충분하다. 이런 다양한 인물들의 매력 때문에 소설이 매우 살아난다. 인물들을 보는 재미만도 상당히 큰 것이다.
게다가 연이어 사건이 터지고 소소한 비틀림이 있어서 매 진행마다 뻔하다라는 느낌보다는 정신없이 이야기에 몰입하게 된다. 적절한 긴장감을 부여하고 독자를 계속 끌어들이는 솜씨가 뛰어나다. 그야말로 엔터테인먼트 소설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작가가 너무나 잘 아는 상태에서 이야기를 능수능란하게 끌어가는 느낌이다. 탁월한 이야기꾼이라는 말이 모자라지 않다.
매력적인 인물들과 충실한 세계관, 잘 짜인 플롯이 결합되어 훌륭한 이야기로 독자에게 다가온다. 특히 2권은 우주나 우주선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바라야 내전'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바라야 행성 내의 내전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궁정 암투와 육지전만을 그린 작품이다. 따라서 일반적인 에픽 판타지를 읽을 때 느껴지는 감각과 재미를 전해준다.
[명예의 조각들]과 함께 출간된 이유를 알 수 있는 책이었다. 그만큼 [명예의 조각들]과 마찬가지로 중심 인물이 코델리아이고, 시기도 바로 이어지며 두 책이 1부와 2부라고 할 정도로 긴밀하게 연결된다. 확실히 마일즈의 탄생 이전을 다루는 것에 충실하며 베타 개척지와 바라야 행성에 대해서 피상적으로 나왔던 [전사 견습]에 비해 세계관에 대해서 자세히 알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여성 작가이기 때문에 여자 화자를 내세웠을 때 심리적인 묘사가 두드러지며 첨단을 달리기 때문에 지금 시점보다 여자에게 훨씬 편리하고 이로운 베타 개척지의 생활상 묘사도 인상적이고 흥미롭다.
어떻게 보면 남자들의 행성인 바라야에서 코델리아가 마지막에 내전에 적극적으로 끼어들어 활약하는 부분에서는 1권을 이어온 이야기의 정점을 찍는 듯한 통쾌함이 있었다. 이 낙후된 갑갑한 바라야 행성이 코델리아를 기점으로 변혁될 것임을 그 결실 중하나가 마일즈로 이어질 것이라는 짐작은 은은한 감동마저 느껴진다. 결국에는 이 내전 자체가 새로운 바라야를 출산하는 한 과정의 은유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상징으로 바로 마일즈 네이스미스 보르코시건의 탄생으로 막을 내리는 것이다.
마일즈는 새로운 바라야의 가능성이고 아랄과 코델리아가 만드려는 세계의 의지를 잇는 희망이다. 장애가 버림받고 죽임을 당하는 세계 속에서 장애를 갖고 태어난 마일즈가 장애에 굴하지 않고 펼칠 3권 [전사 견습]까지 [명예의 조각들]과 [바라야 내전]은 그 과정이 결코 수월치 않았으며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