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일즈 보르코시건 : 명예의 조각들 마일즈 보르코시건 시리즈 1
로이스 맥마스터 부졸드 지음, 김창규 옮김 / 씨앗을뿌리는사람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호빗], [반지의 제왕] 등 J.R.R 톨킨의 책 다수를 출간한 씨앗을 뿌리는 사람 출판사에서 스페이스 오페라 시리즈인 보르코시건 시리즈 16권을 계약하고 첫 권인 [명예의 조각들]을 출간했다. 보르코시건 시리즈는 마일즈 보르코시건을 주인공으로 한 시리즈로 국내에는 행복한책읽기 SF총서에서 [마일즈의 전쟁]과 [보르 게임]이 먼저 소개된 바 있다. [마일즈의 전쟁]과 [보르 게임]은 그 탁월한 오락성으로 많은 호평을 받았고, 다른 시리즈의 출간도 염원했으나, 국내 SF 시장의 협소함으로 인해 출간이 어려워 보였다. 따라서 [마일즈의 전쟁]과 [보르 게임]을 통해 보르코시건 시리즈에 흠뻑 빠진 독자들은 인터넷 카페를 개설해서 번역 모임을 만들 정도로 이 시리즈의 애정을 보여왔다.
 그런데 2013년 이례적으로 16권의 시리즈가 전권 다 계약되면서 이제 한글로 16권의 보르코시건 시리즈를 전부 맛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소식은 이미 [마일즈의 전쟁]과 [보르 게임]을 통해서 보르코시건 시리즈의 팬이 된 독자들 뿐만 아니라, 아직 접하지 않았지만 재미있는 소설을 찾던 독자들에게도 희소식으로 다가왔다.
 작가가 직접 정한 순서에 따라 [마일즈의 전쟁]과 [보르 게임] 이전에 주인공 마일즈의 부모 세대 이야기인 [명예의 조각들]과 [바라야 내전]이 먼저 출간되었다. 일종의 프리퀄이라고 할 수 있다. 주인공 마일즈가 어떻게 태어나게 되었는지, 그 마일즈 비기닝을 접하게 되는 것이다. 이미 [마일즈의 전쟁] 등에서 앞선 부모의 이야기를 마일즈의 언급을 통해 알고 있었지만, 실제 그 현장에 들어가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일 것이다.
 작가가 한국의 독자들에게라는 서문을 적었는데, 소개된 한 독자의 사연이 인상적이다. 은행에 무장 강도가 왔다 가도 모를 정도로 이야기에 빠져 있었다는 것. 직접 책을 읽어본 결과 충분히 가능한 사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 마디로 보르코시건 시리즈는 이런 이야기다. 지하철에서 읽으면 자기가 내릴 역을 지나쳐버릴 수밖에 없고, 밤에 읽으면 새벽까지 완독할 수밖에 없는 그런 책 말이다. 우리가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책을 읽었다고 여길 때, 최고의 찬사는 바로 이렇게 시간 가는 줄 몰랐다고 말하는 것이다. 보르코시건 시리즈는 바로 이 미덕에 충실한 작품이다. 킬링 타임. 페이지 터너. 엔터테인먼트. 라는 수식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작품.
 [명예의 조각들]은 마일즈의 부모가 처음에 어떻게 만났는지 다룬 이야기다. 역시 이 시리즈 특유의 놀라운 흡인력은 순식간에 책을 끝까지 읽게 만든다. 그러니까, 새벽까지 다 읽고 말았다는 소리다.
 이전 작을 읽은 사람들에게는, 혹은 읽지 않았더라도 어느 정도 정보를 찾고 읽는 사람이라면 이 책의 주요 내용은 알고 있다. 바로 마일즈의 부모의 만남을 다뤘다는 것. 즉, 장르가 스페이스 오페라를 배경으로 한 로맨스라는 것 말이다. 그렇게 진행과 결과를 알고 있음에도 이야기는 지루하지 않고 시종일관 재미있다.
 마일즈의 아버지 바라야 행성의 '아랄 보르코시건'은 뛰어난 실력을 가진 군인이다. 바라야 행성은 황제가 존재하며 군사력을 제외하고 과학기술이 높지 않은 행성이다. 똑같은 인간이지만 스페이스 오페라에서 자주 나오는 호전적인 외계 종족을 떠오르게 한다. 스파르타를 연상케 하는 거칠고 야만적이며 군사 정신으로 무장한 행성이다. 반대로 마일즈의 어머니 '코델리아 네이스미스'는 베타 개척지 행성의 천체 탐사대로 등장한다. 베타 개척지는 바라야 행성과 반대로 우리 사회가 극도로 발전한 미래를 연상케 한다. 남녀는 평등하여 바라야와 달리 남녀 모두 군인이 될 수 있고,(바라야는 당연히 남자만 가능) 인공자궁이 개발되어 출산의 고통이나 임신 중에 수반하는 위험을 전부 제거했다. 동성애, 양성애 등 성은 자유롭고 웬만한 기술은 바라야가 상대가 안 될 정도로 최신을 달리고 있다. 현실에서 미국과 북한으로 비유하면 조금은 흡사한 면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전혀 다른 세계의 남녀가 만나는 이야기이므로, 당연히 흥미로운 지점들이 많다. 세계와 세계의 부딪힘. 이런 것이 바로 이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에서 접할 수 있는 사유의 재미일 것이다. 두 개의 세계를 보여주고 이 세계가 섞이는 과정이 매력이다.
 코델리아는 한 무인행성을 탐사하게 되는데, 바라야군과 조우하여 부하를 잃고 아랄 보르코시건의 포로가 된다. 그러나 아랄 보르코시건 역시 부대 내의 반란을 당한 상태로 둘은 신경파괴총에 맞은 코델리아의 부하병과 함께 보급 기지로 이동한다. 토착 생물의 공격에 고생하면서 일주일 동안 이들은 힘겨운 여정을 하는데, 이때 다리에 상처를 입은 상태에서도 아랄 보르코시건은 굳건하게 여정을 이끄는데, 그 모습이 마치 [눈물을 마시는 새]의 케이건 드라카를 연상케 한다. 마치 케이건 드라카과 자신의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싶은 강인하면서도 자상함을 겸비한 남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코델리아도 여린 여자가 아니라 아랄 보르코시건과 맞먹는 영리하고 강인한 모습을 보여주며 오히려 이야기가 진행될 수록 아랄 보르코시건을 놀라게 만드는 활약을 펼친다. [명예의 조각들] 뿐만 아니라 2권 [바라야 내전]에서도 코델리아가 주인공으로 보이며 그 거침없음은 이 두 권의 소설을 지탱하는 절대적인 매력이다. 본편인 3권 [전사 견습]에서는 별다른 대사나 행동이 없어서 과거에 대단한 활약이 있었던 다른 행성에서 온 부인 정도로만 인식했는데, [명예의 조각들]과 [바라야 내전]을 읽으면 3권 [전사 견습]에 등장한 그녀의 모습은 반가우며, 그녀의 여유와 대사에서 지난 세월이 느껴진다. 이렇듯 [명예의 조각들]은 뒷 이야기들의 기반으로써 작가가 첫 번째로 선택한 이유를 알 수 있다. 재미는 [전사 견습], [보르 게임] 또 뒤에 나올 책 등 마일즈의 이야기들이 더 재미있을지 모른다. '마일즈'라는 캐릭터의 매력이 이 시리즈 전체의 핵심이니까. 하지만, 마일즈가 탄생한 배경 역시 흥미로움은 물론이고, 뒷 이야기들을 더욱 재미있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1권에서 그녀는 두 번이나 아랄 보르코시건의 손아귀에서 스스로의 능력으로 빠져나간다. 주저하지 않는 행동력이 그녀의 가장 큰 매력이며 특기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두 사람은 작가가 노골적으로 묘사하지 않고 은근히 묘사한 가운데 서로에게 애정을 느끼고 신뢰를 쌓는데, 이 로맨스 소설의 공식에 충실한 점은 또한 재미를 준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1권에서 인상적인 것은 그녀가 베타 개척지로 돌아가면서 스스로 알아낸 전쟁의 비밀을 발설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정신병자로 몰리는 지점이다. 무슨 말을 해도, 그녀의 진성은 인정받지 못하고 바라야의 세뇌를 당한 것으로 몰리는데, 이런 것은 이전에 여러 매체에서도 다루어진 방식이라고는 하나 여전히 인상적이며 감정이입을 하게 되는 부분이다. 그녀의 심정을 모든 사실을 알고 있는 독자도 같이 절절하게 느끼게 되며 모든 행동을 응원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별을 뛰어넘어 다른 세계에 진입한 그녀의 모습은 근사하다. 그 뒤에 어떤 절망과 고난이 있더라도 상관없이 코델리아는 자신의 성질대로, 성격대로, 운명대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한다.
 세계와 세계의 부딪힘이라는 점에서 바라야 행성은 중세 시대를 연상케 한다는 점에서 판타지 세계 같다. 반대로 베타 개척지는 과학이 발달한 우리 세계, 현실 세계의 미래 같이 보인다. 판타지 세계에 진입했던 여주인공이 다시 현실로 돌아가 적응하지 못하고 판타지 세계로 돌아간 듯한, 그런 이계 진입 판타지 소설을 떠올리게 하는 면이 있다. 반대로 아랄 보르코시건이 베타 개척지로 왔다면 반대로 판타지 세계의 용사가 현실 세계에 와서 적응하는 모습이 연상될 것이다. 그럴 때 용사가 택할 수 있는 것은 체력을 활용한 도장 운영 정도 밖에 없듯이, 아랄 보르코시건도 자신이 베타 개척지에서 할 수 있는 건 도장 사범 정도라고 말한다. 바라야 행성의 제독이 베타 개척지에 정착해서 도장 사범을 하는 모습은 상상을 하면 귀엽기도 하고 훈훈한 느낌도 든다. 그렇지만 뒤에 파란만장안한 [바라야 내전]이나 [전사 견습]은 일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정리하자면 매력적인 SF 로맨스 활극 소설이다. [마일즈의 전쟁]을 먼저 접하지 않았더라도 SF를 좋아하는 독자, 스페이스 오페라를 좋아하는 독자, 또는 그저 재미있는 소설을 찾는 독자들에게 권하는 한 권의 책이다.
 이야기의 재미는 얼마나 매력적인 인물이 등장하냐에 달려 있지 않을까. 아랄 보르코시건과 코델리아라는 인물은 잘 조형된 캐릭터들이다. 또한, 두 사람의 사랑 이전에 둘을 둘러싼 세계관의 충돌, 정교하게 짜인 플롯은 독자를 매혹한다. [명예의 조각들]을 읽는 순간, 독자는 자연스레 기쁨에 찰 수밖에 없다. 이렇게 끝내주는 재미가 아직 15권이나 더 남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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