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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친구들의 행성 ㅣ 폴라 데이 앤 나이트 Polar Day & Night
존 스칼지 지음, 이수현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3년 2월
평점 :
절판
* 이 리뷰를 읽을 시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SF소설
[노인의 전쟁]으로 인지도가 높은 존 스칼지의 작품, [작은 친구들의 행성]은 역시 그의 다른 작품처럼 위트있고 재미있는 소설이다. 오락성이
뛰어난 소설, 잘 읽히는 SF를 찾는 독자들에게는 존 스칼지라는 이름은 믿고 볼 수 있는 작가군 중 하나이다. 존 스칼지의 장점은 일단 계속
피식 웃게 만드는 적절한 유머라고 할 수 있다. 소설 전반적으로 흐르는 긍정적 분위기는 편안하게 소설을 읽게 만든다.
존 스칼지의 작품은
전반적으로 흡인력이 뛰어나고 인물들의 매력이 잘 살아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작품 역시 단숨에 읽어내릴 정도로 가독성이 뛰어나다.
이
작품은 다른 소설들과 차별점이 먼저 눈에 띄는데, 바로 리부트라는 점이다. 영화에서는 [배트맨]을 리부트한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트릴로지와
최근 잭 스나이더 감독이 영화 [슈퍼맨]을 리부트한 [맨 오브 스틸] 등이 있듯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지만, 소설에서는 흔치 않은 일이다. 이
때문에 존 스칼지 역시 소설에서는 왜 리부트가 없을까, 라는 생각에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경우 리부트한 원작을 읽어야 이를 대비해서
읽는 재미가 생기겠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원서가 아닌 번역작을 읽을 수는 없기에 이런 재미를 찾을 수는 없다. 하지만 원작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도 이 책은 충분한 재미를 준다. 이 소설은 1962년 H. 빔 파이퍼가 휴고상 후보작에 오른 [작은 보송이Little Fuzzy]를 존
스칼지 스타일로 새롭게 만든 것이다. 기본 골자만 가져온 채 인물과 상황 전개를 새롭게 꾸몄다. 원작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도 이야기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기본 줄거리만 가져오고 인물이나 배경은 현대적인 감각으로 그렸기 때문에 낡은 느낌은 잘 나지 않는다.(물론 아예 없는 것은 아니며, 몇몇 가벼운 설정들이 약간의 위화감을 주기는 한다.)
이 작품의
장르를 정의하자면 법정 SF가 아닐까. 외계 지성체와의 첫 만남, 퍼스트 콘택트를 유머스럽게 또한 법적인 문제로 다루고 있다. 물론 강렬한
사건도 있지만 반 이상의 내용은 법적 논의이다. 그럼에도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반전에 반전을 주면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솜씨는 놀랍다. 특히
현재의 법정도 아니고 가상의 미래를 배경으로 외계 지성체의 발견과 행성 자원의 권리를 둘러싼 이권 다툼을 이렇게 흥미롭게 이끌어가다니! 존
스칼지의 솜씨에 절로 감탄이 나온다. 단순히 아무 연관도 없는 이들이 법정으로 다툼을 벌인다면 어떤 흥미도 들지 않을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
작가는 치밀하게 스토리를 전개해나간다. 초반에는 등장인물들을 제시하고 그들의 관계 설명에 힘을 기울인다음, 사건이 발생할 수록 이들이 어떻게
엮이고 힘을 합치고 사건을 해결해나가는지 묘사한다. 독자는 이미 인물들에게 몰입한 상황이므로 이제 이들을 응원하면서 흥미진진하게 사건의 전개
과정을 지켜본다. 처음에는 완만하게 진행되는 이야기가 중반부에 가슴 아프고 강렬한 사건이 전개되어 국면이 전환된다. 이후, 법정에서의 이야기는
주인공의 뛰어난 지략으로 계속 적을 통쾌하게 몇 방이나 먹이면서 재미가 가중된다. 마치 이야기가 가속하는 느낌이다. 뒤로 갈 수록 아쉬운
작품보다 뒤로 갈 수록 재미있는 작품이 몇 배나 더 좋은 게 아닐까. 이 작품은 당연히 후자이며, 독자의 혼을 빼놓을 수록 매력적인 전개를
선보인다.
직립한 거대 고양이를 연상시키는 '보송이'(Fuzzy)라는 외계 생명체는 전체적으로 동글동글하고 푸근한 동물을 연상케해서
소설을 동화풍의 느낌이 나게 만든다. 물론 이 소설은 전체적으로 법정에서 거대 회사의 이권 다툼을 그리기 때문에 '어른들의 사정'을 보여주는
듯한 이야기와 장면들이 많지만 한편으로 귀여운 고양이를 연상케 하는 토종 생명체는 이야기를 낭만적으로 그리게 만든다. 이 중간에서 균형을 잘
잡고 있는 것이 이 소설의 특징인데 아주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특유의 존 스칼지 분위기가 물씬 나는 작품이 된 것이다.
구성이 잘
짜여져 있어서 초반에 등장한 여러 이야기들이 전부 복선이 되는 것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주인공은 귀엽고 영민한 개 '칼'에게 폭파를 훈련시켜서
시키는데 이게 절벽을 무너뜨리면서 위기에 처하나 동시에 우주에서 가장 귀한 '태양석' 매장지가 드러나면서 전화위복을 겪는다. 이야기는 이 행성이
엄청난 태양석 매장지를 가진 것이 드러나면서 복잡한 권리 행사의 문제가 진행된다. 한편, 주인공 집에 '보송이'라고 명명한 외계 생명체가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이야기는 한층 더 복잡해진다. 이 보송이가 지적 생명체, '사람'으로 밝혀지면 이 행성의 개발권이 중단되는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 회사는 뒤에서 무슨 짓을 벌일 것인가. 주인공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초반에 지나가는 식으로 언급하는 사람들이 후반부에 각각 중요한
역할을 맡고, 복선으로 연결되는 것을 보면서 탄탄한 구조 위에 쌓아올린 이야기가 얼마나 근사한 재미를 주는지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존
스칼지의 작품답게 유머 섞인 대사나 재치있는 대사, 톡톡 받아치는 대사들이 재미있고 인상적이며, 이야기의 완급 조절이나, 매력적인 캐릭터를
형성하는 것 역시 뛰어나다. 이렇게 기본적인 탄탄한 구성 위에 인물과 대사가 살아있기 때문에 항상 기본 이상의 재미를 독자에게 줄 수 있는
것이다.
지하철에서 책을 읽다가 내려야 할 역을 지나치거나, 밤에 몇 페이지만 읽으려다가 새벽까지 읽게 만드는, 그런 책을 찾는다면, 존
스칼지의 책은 언제나 적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