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작별 트래비스 맥기 Travis McGee 시리즈
존 D. 맥도널드 지음, 송기철 옮김 / 북스피어 / 2012년 11월
평점 :
절판


 북스피어에서 존 D. 맥도널드의 [푸른 작별]을 출간했습니다. 이 작품은 트래비스 맥기 시리즈의 첫 작품입니다. 트래비스 맥기 시리즈는 총 21권에 달하는 시리즈입니다. 이 시리즈는 이언 플레밍의 ‘007 제임스 본드’ 시리즈와 더불러 미국 냉전시대를 대표하는 시리즈물로 손꼽힌다고 합니다.
 장르를 따지자면 이 작품은 하드보일드 소설입니다. 하드보일드는 '단단하게 삶은 계란'이라는 뜻을 지닌 단어입니다. 간단한 설명으로는 시사상식사전에서는 "1920∼1930년대 미국 문학에 등장한 새로운 사실주의 수법으로, 군더더기 없이 냉정하고 비정하게 인물과 사건을 묘사한 소설이나 영화"를 가리키는 말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드보일드는 헤밍웨이의 간결하고 박진감 넘치는 문체에서 시작해서 대실 해밋이나 레이몬드 챈들러 같은 작가가 하드보일드의 전형을 완성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하드보일드 소설들이 범죄와 추리를 다루면서 사립탐정이나 경찰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과 달리 트래비스 맥기 시리즈의 주인공은 트래비스 맥기는 탐정도 경찰도 아닌, 보트에서 살아가며 돈이 떨어질 때만 의뢰받은 사건을 해결하는 독특한 해결사입니다. 일반적인 탐정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 소설의 개성이 확실히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트래비스 맥기는 출판사에서 전설적인 순정마초로 표현할 정도로 마초면서 순정적인 면이 있습니다. 즉, 많은 하드보일드 소설이 냉혹한 세상을 뚫고나가는 비정한 남자를 주인공으로 삼는 것에 반해 트래비스 맥기는 다정다감한 면모를 많이 보여줍니다. 이점이 다른 하드보일드 소설의 주인공들과 차이점입니다. 그 점이 이 소설을 주인공과 여러 여성들이 얽히면서 이야기의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요소이기도 합니다. 주인공은 분명 냉정한 면도 있고 날카로운 추리력을 가지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여성들에게 따스하게 다가가고 어려움에 처한 인물들을 가만 놔두지 못하고 곁에서 지킵니다.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어느날 밤 댄서 추키가 새로운 의뢰인을 소개합니다. 추키의 동료인 캐서린 커는 놀랍게도 자기가 본 적도 없는 재산을 빼앗겼다는 말을 합니다. 엄청난 돈을 보지도 못했으면서 빼앗겼다니? 이 설정부터 독자의 흥미를 자극합니다. 트래비스는 매번 돈이 떨어질 때만 사건을 맡지만 이번에는 그 사건에 호기심이 생겼는지 맡기로 합니다. 사건을 의뢰한 캐서린 커의 아버지는 1942년 텍사스에서 훈련을 받고 공중수송사령부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기장이 되어서 중국-버마-인도 쪽에서 임무를 맡으며 급료를 가족들에게 보냈습니다. 캐서린 커의 아버지는 그리고 집에 돌아오면 가족들을 부자로 만들어주겠다고 말했었습니다. 큰 돈을 벌었다는 암시인 거죠. 그러나 부자로 살게 해주겠다는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오기 전, 상사를 죽인 죄로 감옥에 갇혀 끝내 그 안에서 죽게 됩니다. 캐서린 커는 아버지가 남긴 돈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 채 살아갑니다. 그런데 한 남자가 아버지와 감옥에서 만났다며 접근합니다. 캐서린 커는 그 남자를 좋아하게 되고 의심을 하지 않습니다. 그 남자는 캐서린 커에게 계획적으로 접근하여 보물을 찾아내기 위해 혈안이 됩니다. 결국 보물을 발견하고서는 그것을 훔쳐내서 달아납니다. 그리고 나중에 부자가 되어 나타나 캐서린 커에게 모욕을 주며 마을의 다른 여자와 사귀다가 버립니다. 트래비스 맥기는 캐서린 커의 의뢰를 수락합니다. 캐서린 커가 한 번도 본 적도 없고 어떤 물건인지도 모르는 재산을 되찾아 와주기로 한 것입니다. 트래비스 맥기는 이렇듯 경찰도 해결할 수 없는 사건을 전문으로 맡으며 보수는 회수한 물건의 절반입니다. 이 독특한 설정이 이 소설의 매력을 부여합니다. 어차피 손에 쥘 수 없는 재산이 있을 때 마지막 수단이 바로 트래비스 맥기라는 것이죠.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됩니다. 맥기는 일단 보물의 정체를 추적해야 하고, 어떤 경유로 캐서린 커의 아버지가 재산을 벌었는지 파악해야 합니다. 캐서린 커 아버지의 친구들을 찾는 일을 시작하죠. 트래비스 맥기는 보통 사람에게는 쉽게 호감을 사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정보를 얻는 게 능수능란합니다. 소설은 중반부까지는 너무 쉽게 트래비스 맥기가 사건을 추적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그만큼 트래비스 맥기는 거침없이 사람들을 만나고 정보를 듣고 진실에 다가갑니다.
 사건을 추적하면서 트래비스 맥기는 범인에게 희생당한 또 다른 여자인 로이스를 만나게 됩니다. 폐인이 되어버린 그녀를 회복시키는 데 도움을 주고 정보를 얻어 추적을 계속해 나갑니다. 이 과정에서 로이스를 보살피고 회복시키는 과정은 마치 돈 윈슬로의 [지하에 부는 서늘한 바람]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중독 증세를 가진 여성을 곁에서 끈질기게 돌보아서 회복시키는 과정이 유사해 보였습니다. 그러면서 둘 사이에는 역시 유대가 생겨납니다. 로이스는 금세 이 소설의 중심 인물로 부각됩니다. 중반이 넘게 로이스의 치료에 매달리고 보살피는 것이 당연해 보입니다. 로이스는 이 소설의 진정한 히로인의 자리를 차지합니다.
 도대체 어떻게 범인을 잡게 될까. 캐서린 커의 아버지가 숨겨진 재산을 모을 수 있었던 비법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 재산의 정체는 무엇일까. 범인을 잡은 뒤에는 재산을 어떻게 다시 회수할까. 이 모든 궁금증들이 소설을 계속 읽어나가게 만듭니다. 게다가 번역이 유려하고 문장이 간결해서 가독성이 뛰어납니다. 정말 페이지가 순식간에 넘어가고, 짧은 시간 안에 책을 끝까지 읽어나갈 수 있습니다. 뛰어난 페이지 터너 입니다. 킬링 타임으로 이런 장르소설만한 게 없을 겁니다.
 신나게 몰입하고 싶은 소설을 찾는 독자라면 전설의 트래비스 맥기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 [푸른 작별]을 추천합니다. 플로리다의 해변가에 '버스티드플러시'라는 16미터짜리 바지선 안에서 살아가는 자유로운 해결사를 만나게 됩니다. 도무지 되찾을 수 없을 것만 같은 보물을 다시 찾아오는 기발한 설정. 그의 거침없는 행동을 보며 쾌감을 느끼고 마침내 절정 부분에서 만나는 적과의 대치 그리고 씁쓸한 결말까지 하드보일드가 주는 재미를 만끽할 수 있는 글입니다. 하드보일드 장르의 팬이라면 이 장르를 놓치지 않겠지요.
 다 읽고 난 뒤에는 작가가 독자들이 실수로 같은 책을 사지 않게 하기 위해 제목에 색을 넣었다는 다른 트래비스 맥기 시리즈를 기대하게 됩니다. [분홍빛 악몽]. [죽음을 위한 보랏빛 공간], [붉은 여우], [죽음의 황금빛 그림자], [오렌지색 수의], [호박색보다 진한] 등등 이후에 이어질 트래비스 맥기 시리즈는 그 일관된 제목들처럼 트래비스 맥기의 다양한 활약상이 이어질 것 같아 기대됩니다. [푸른 작별]은 기대보다 작품의 완성도도 높고, 무엇보다도 재미있습니다. 특히 트래비스 맥기라는 인물이 매력적으로 그려지기 때문에 그의 다른 사건들을 얼른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액션도 뛰어나고, 다정다감한 모습에서 꾀를 부리거나 재치로 넘기는 부분들이 인물의 매력을 배가시키고 있습니다. 이 사람을 더 보고 싶다. 이런 감정이 들게 만드는 인물입니다. 빠른 판단과 냉철한 면을 가지는 동시에 감상적이면서 따뜻한 면도 가지고 있습니다. 행동이나 사고관이 독자에게까지 호감을 주는 인물인 것이죠.
 책을 읽으면 한 번쯤 바닷가에서 자기 보트안에서 살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며 자신의 배에 버스티드플러시보다 더 멋진 이름을 짓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합니다. 그만큼 트래비스 맥기의 특이한 삶의 방식은 독자에게 인상적으로 다가옵니다. 펼쳐지는 사건 역시 예사롭지 않으며 독자를 끌어들입니다. 여러 인물들이 나와도 겹치지 않게 개성들이 부여되고 맥기와 자연스럽게 얽힙니다. 그 점이 이 소설의 묘미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여성이 많이 나오는 점도 눈에 띕니다. 괜히 책 날개에 트래비스의 인생에 머물다 간 여자의 수가 무려 육십 여명에 달한다고 적혀 있는 게 아닌 것이죠.
 정말 오랜만에 다음 편이 빨리 읽고 싶어지는 근사한 시리즈를 발견한 것 같습니다. 놀라운 가독성 때문에 다음 권이 매 달마다 쏟아진다고 해도 금세 읽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독특한 사건, 불행한 여인, 매력적인 해결사가 한데 뒤섞인 모험이 책 한 권에 들어 있습니다. 답답한 일상에 지친 분들에게 하드보일드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밤하늘의 별들이 나의 억지스러운 묘기를 내려다보며 조롱했고, 난 위축되어 갔다. 광활한 밤, 작은 보트에 탄 한 남자. 난 절망에 빠졌다. 보트가 흔들리든 말든 잔물결이 부딪혀 얼굴에 뿌리든 말든 아무래도 좋았다. 눈물과 바닷물은 같은 맛이 났다.(217쪽)

* 마음에 들었던 문장입니다. 눈물과 바닷물은 같은 맛이 났다고 긴박한 상황에 툭 던지는데 인상에 박히더군요. 이런 식으로 간헐적으로 문장들이 툭툭 마음에 들어오는 경우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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