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 마스터 행복한책읽기 작가선집 3
로저 젤라즈니 지음, 김상훈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로저 젤라즈니는 국내에서 많은 책이 소개된 인기가 많은 SF작가이다. 대표작으로 『신들의 사회』와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 등이 있다. SF를 읽으려는 독자에게 자주 추천되는 책들이기도 하다. 하나는 장편이고 다른 하나는 단편집이다.

  열린책들에서 출간된 로저 젤라즈니의 초기 단편집인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는 SF 소설로는 이례적으로 9쇄를 넘게 찍을 정도로 오랜 기간 꾸준히 팔린 책이다. 현재도 열린책들 세계문학 전집에 속해서 팔리고 있다.(세 번째 판본이다.) 이 책은 로저 젤라즈니의 첫 번째 출간된 작품집이었다. 현란한 문체와 SF의 경이감을 확고히 가진 근사한 단편들로 채워져 있다. 완성도가 높은 SF 단편집을 찾는다면 당연히 읽어야 할 책이기도 하다. 그리고 1980년에 나온 로저 젤라즈니의 두 번째 작품집인 『드림 마스터』가 드디어 행복한책읽기 작가 선집으로 출간되었다. 『드림 마스터』는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에 비해 초기작들과 함께 더 많은 작품들이 실려 있다. 그야 말로 로저 젤라즈니라는 작가가 가지고 있는 중단편의 매력을 모두 맛볼 수 있는 작품집이다.

  특히 이 작품집이 다른 작품집과 차별화되는 것은 작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서문을 비롯해서, 각 단편마다 작가가 왜 이 단편을 쓰게 되었는지에 대한 간략한 코멘트가 붙어 있다. 재미있는 일화도 있고, 쓴 계기를 알게 되면서 작가와 더 친근해지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초판 3000부만 한정 양장본으로 출간된 책이다. 나중에 후회하기보다는 로저 젤라즈니를 좋아하는 독자거나 혹은 접할 생각이 있는 독자라면 지금 구입해두어도 전혀 돈이 아깝지 않다. 비싼 책이지만 그 가치는 충분하다.




  수난극




  첫 번째 실린 이 작품은 분량이 짧은 소품이라고 할 수 있다. 한 번에 읽었을 때는 무슨 내용인지 파악이 잘 가지 않아 몇 번 다시 읽어본 글이다. 인간들이 모두 사라진 지구. 기계들이 고대의 기계인 ‘차’를 숭배하며 의식을 ‘재현’한다.




  기사가 왔다!




  그 사내가 아직 산속의 천둥소리였을 때 마을 사람들은 덧문 뒤에서 수확을 꿈꾸며 자고 있었다. 그 사내가 강철의 산사태처럼 쇄도하자 가축들은 슬픈 소리로 울었고, 어린애들은 잠든 채로 울부짖었다. ― 『드림 마스터』, 로저 젤라즈니, 행복한 책읽기, 28쪽




  시적인 글이다. 문장이 유려하고 신화적인 분위기를 전달한다. 앞의 글과 마찬가지로 짧은 분량의 소품. 종말적인 분위기를 자아내지만, 어떤 이야기가 있거나 메시지가 있지는 않다. 성서에 나오는 묵시록의 네 기사를 등장시킨 글이라고 한다.




  스테인리스 스틸 흡혈귀




  코믹한 글이다. 인류가 사라지고 기계들이 지구를 지배한 세계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흡혈귀와 다른 로봇의 에너지를 빼앗는 괴물 로봇의 유쾌한 이야기. 편하게 읽었고 충분히 재미있었다. 재미있는 발상의 작품이었다.




  끔찍한 아름다운




  육체를 빌리는 외계 존재와의 대화를 그린 단편. 별다른 행동이 없이 대화와 사념으로만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지루하지 않고 금세 읽게 되는 재미있는 글이다. 이렇게 외계 존재가 눈에 보이지 않는 형태로 지구에 이미 존재하는 식의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다.




  형성하는 자




  네뷸러 상을 수상한 중편. 이 중편을 토대로 작가는 훗날 『드림 마스터』라는 장편을 출간했다. 읽고 나니 장편을 보진 못했지만, 작가가 앞에 붙여놓은 말처럼 원래 처음에 쓴 이 중편이 깔끔하고 가장 나을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비장미가 흐르는 근사한 중편이었다. 괜히 이 중단편집의 제목으로 사용된 것이 아니었다. 물론 시대가 많이 지난 만큼, 소재나 발상에서 새로운 것을 느낄 수는 없었지만,(가상의 꿈을 들여다보고 경험하고 조작하는 기계 자체의 고리타분함) 이 작품은 그보다는 파국으로 치닫는 인간의 비극에 초점을 맞춘 글이었다. 다양한 정신분석학 내용들과 여러 신화들이 차용되어 글을 정교하게 구성했다.




  지금 힘이 오느니




  작가가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쓴 단편이라고 한다. 그만큼 내용은 절망과 희망이 교차하고 있다. 이 작품집에서 가장 마음에 감동이 남는 글이기도 했다. 책을 다 읽은 뒤에서 내용이 선명하게 기억나는 단편 중에 하나였다.




  이단차




  앞에 실린 「수난극」과 마찬가지로 인류가 사라지고 자동차들만이 남은 세계를 그리고 있다. 「수난극」과 세트인 작품이라고 할까. 투우를 하는 자동차들. 이 작품집에는 이렇게 ‘자동차’를 소재로 한 글들이 꽤 많이 있다. 확실히 ‘트랜스포머’도 그렇고 미국에서 ‘자동차’가 상징하는 부분은 상당히 크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지옥의 질주




  가장 호평을 많이 받은 중편 중 하나다. 아직 안 읽은 독자들도 이 작품집에서 이 중편을 재미있게 읽을 것이다. 핵전쟁 이후의 세계를 다룬 작품으로, 주인공이 자동차를 몰고 대륙을 횡단하는 모험을 그리고 있다.(또, 자동차다.) 특이한 점은 주인공이 선한 인물이라기보다는 범죄자이고 사면을 조건으로 일을 맡게 된다는 점이다. 마초적이고 강렬한 주인공이 시원한 액션을 벌인다. 핵전쟁 이후의 세계의 모습이 상세하게 그려지지 않아서 긴장감이 좀 덜한 면이 있다. 그러나 이 작품집에서 가장 흡인력이 있고 재미있는 작품이다. 마지막은 예상된 결말이라 조금 허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 작품 또한 앞의 「형성하는 자」처럼 장편으로 개작되었지만, 작가는 이번에도 중편이 더 마음에 든다고 밝히고 있다. 그대신 장편은 1977년에 영화 「Damnation Alley」로 나왔다고 한다. 중편을 재미있게 읽어서인지 영화에 관심이 생겼다. 언제 구할 수 있으면 한 번 봐야겠다고 생각이 든다.

  

  보르크를 사랑한 여자




  짧은 소품이다. 불사의 존재가 나오는 작품으로 「내 이름은 콘라드」와 유사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이 작품은 쓴 계기가 재미있는데, 작가가 2년 넘게 단편을 쓰지 않았다는 사실을 지적 받고 공백이 더 길어지지 않기 위해 썼다는 것이다. 새로운 이야기가 있지는 않지만, ‘보르크’라는 불사의 존재가 특이하다. 원래는 인간이었으나 다른 물질과 합쳐져 불사의 존재가 된 이. 그래픽노블 『와치맨』의 ‘닥터 맨하튼’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죽고 싶은 사람들이 오는 <센터>라는 곳에서 아이러니하게 죽지 않는 존재인 보르크가 계속 존재한다.




  복수의 여신




  재미있게 읽은 중편 중 하나다. 특이한 능력을 가진 인물들이 차례대로 소개되고, 그 인물들이 힘을 합쳐 하나의 사건을 해결한다. 그러나 그 사건이 그들에게 당연히 해야 할 임무였을지 몰라도, 상대편 입장에서 보면 또다른 비극이다. 이런 역설적인 구성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작품으로, 끝에는 필연적으로 씁쓸한 느낌을 받게 된다. 소설 내에서 악으로 보이는 인물의 내면과 사정을 자주 비쳐줌으로써 독자가 계속 안타까운 느낌을 가진다.

  초능력이 등장하고, 우주선들의 전투가 벌어지는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로 볼 수 있는 SF 중편이다. 긴박감이 있고, 인물이나 배경 등이 적절하게 잘 조화되어 있다. 구성이 뛰어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피와 흙의 게임




  신 같은 존재들이 각자 ‘피’와 ‘흙’을(바둑알 색 같은) 맡아서 인류 역사에 개입하는 대체역사물 같은 SF 판타지 단편이다. 역사와 허구를 뒤섞고 있는데, 역사에 대해서 잘 안다면 특히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실제 역사와의 차이점들을 살펴보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발상의 작품이었고 이를 확대한 글이 나와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은 없다




  상당히 재미있게 읽은 단편이다. 일반 잡지에 실려서 호평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만큼 SF를 많이 안 읽은 독자라도 누구나 쉽게 빠져들 만한 소재와 재미를 가지고 있다. 암살, 최면 등의 소재를 가지고 이토록 자연스럽게 빠져드는 이야기를 만드는 솜씨가 훌륭하다.




  혹시 악마를 사랑하시는 분?

  작가가 무드 있는 글을 쓰고 싶다고 한 소품. 해설에서 연쇄살인마 잭을 다룬 이야기라는 것을 보지 않았다면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분량도 짧고 별다른 스토리 없이 연쇄살인마 잭과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마음은 차가운 무덤




  제목이 시적인데, 중편 안에 등장하는 시에서 딴 제목이기 때문이다. 원래 시를 썼던 젤라즈니의 색깔이 잘 드러난 중편이라고 할 수 있다. 작품 내에서 등장하는 시들은 실제로 젤라즈니의 미발표 시집에 실린 것들의 일부라고 한다.

  냉동 상태로 지내면서 1년을 하루 같이 보내는 <세트>의 인간들. 그리고 그 <세트>의 한 여자를 사랑한 남자가 입회를 하고 일부가 되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삼각관계를 다루고 있으며, 마치 신들의 유희를 보는 듯한 묘한 분위기가 흐르는 작품이다. 어려운 어휘와 뜻모를 이야기 전개로 인해 흡인력은 조금 떨어지는 글이다. 따라서 워낙 책이 두껍기 때문에 이 소설에서 읽기에 약간 버거움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제목이 주는 분위기를 소설이 내용으로 살리는 한편, 결말까지 읽고 나면 진한 여운이 남는 글이기도 하다. 마지막의 이미지가 책을 덮고 나서도 머릿속에 깊게 박히는 글이다.

  

  가만히 있어, 루비 스톤




  처음에는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지만, 곧 등장인물들이 외계인이고 인간이 사는 집을 지나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인간과 다른 외계인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펼쳐지기 때문에 새롭다. 긴 이야기는 아니고, 아이디어를 보여주기 위한 소품이다. 재미있으면서도 잠깐 충격을 주기도 하는 독특한 단편이다. 처음에 읽을 때는 설정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상태였기에 다시 한 번 읽어보면서 전후관계를 살펴보게 만드는 글이기도 했다.




  하프잭




  몸의 절반이 사이보그인 남자를 다룬 단편. 이 작품 역시 분량이 그리 길지 않은 소품이다. 별다른 이야기가 없어 설정만 인상에 남는 글. 사고로 사이보그가 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원했다는 점이 독특하지만, 그런 점에 대해서도 길게 이야기를 하는 글은 아니다. 한 여자와 만나고 다시 우주 비행으로 돌아가는 이야기.




  캐멀롯의 마지막 수호자




  2002년에 열린책들에서 출간 된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에 실렸던 단편. 따라서 이미 이 단편을 읽은 독자들은 많을 것이다. 나 역시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에서 읽었었는데, 시간이 많이 지나고 나서 다시 읽어보니 예전보다 더 재미있게 읽었다. 그 사이 아더왕의 전설에 대해서 『판타스틱』 기사 등을 읽은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상당히 많은 독자들이 좋아한 단편이고, 원래 이 단편집의 표제작이기도 하다. 그만큼 언제 읽어도 뛰어난 점수를 줄 수 있는 흥미진진하게 쓴 판타지 단편.




  그림자 잭




  장르잡지 『판타스틱』에 연재되어 페이퍼하우스에서 2009년에 출간된 동명의 장편 『그림자 잭』의 앞 시절 이야기를 다룬 프리퀄 단편이다. 『그림자 잭』은 과학을 사용하는 영원히 낮인 데이사이드와 마법을 사용하는 영원히 밤인 다크사이드로 나뉜 세상에서, 황혼에서 태어나 그림자의 권능을 가진 도둑 ‘그림자 잭’을 다룬 소설이다. 빠른 전개와 과학과 마법이 섞인 세계 등이 매력적인 소설로, 얼마 전에 장편을 읽은 터라 여기서 단편을 읽어서 반가웠다. 다시 ‘그림자 잭’을 만나고 또 그의 모험을 체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프리퀄에서도 역시 위기에 처하고 벗어나면서 숨가쁜 이야기가 펼쳐진다. 프리퀄이기 때문에 이 단편만으로도 충분히 완결성이 있고 재미있지만, 먼저 장편 『그림자 잭』(페이퍼하우스)을 읽고 보면 더 흥미로운 글이었다.




  영구동토




  대망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중편이다. 이런 단편집에서 마지막에 실린 작품의 중요성은 크다. 마지막에 실린 글이 소설집 전체의 인상을 좌우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제목이 그리 끌리지 않아 조금 우려스러웠기도 했지만 막상 읽어보니 충분히 매력있고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한 마디로 마지막을 장식하기에 충분했다. 1987년 휴고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젤라즈니가 알래스카 여행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중에 문득 떠올라서 쓴 글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남자, 조상, 여자, 도시 등으로 영화처럼 장면이나 인물들을 조명한다. 그리고 이야기가 진행될 수록 이곳이 어떤 행성이며, 각자 무슨 일을 맡고 있고, 또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슬슬 예상이 가기 시작한다.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전개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재미있게 읽었고, 마지막 결말은 유머스럽기까지 하다. 근사한 구성과 결말 처리로 인해 전체적으로 매력적인 글이며 계속 인상에 남기까지 했다.




  로저 젤라즈니 걸작선




  이 단편집은 그야말로 로저 젤라즈니 걸작선이라는 이름이 붙는 것에 손색이 없다. 젤라즈니가 처음 데뷔를 한 소설부터 네뷸러 상이나 휴고 상을 받은 중편까지 초기 중단편집이 전부 망라되어 있는 단편집이기 때문에 젤라즈니의 작품을 즐겨 읽은 독자라면 결코 이 작품집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동안 몰랐던 젤라즈니를 알 수 있다. 마초적인 캐릭터가 나와서 모험을 펼치는 전형적인 젤라즈니 소설도 있지만, 색다른 분위기의 소설들도 꽤 있다.

  자잘한 소품들은 독특한 발상이 인상적이거나 문장이 아름답지만 별다른 재미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젤라즈니가 초기에 어떤 단편들을 발표해 왔는지, 또 어떤 연유로 쓰게 되었는지 등등을 탐색해 볼 수 있다는 것은 또다른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흥미가 적은 소품들을 제외하고 볼 때, 몇 개의 묵직한 중편들은 큰 재미를 주며 비싸다고 느낄 수 있는 책값이 아깝지 않게 만들어 준다.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중편은 「지옥의 질주」였고, 「영구동토」, 「캐멀롯의 마지막 수호자」, 「형성하는 자」, 「복수의 여신」 등도 재미있게 읽었다. 단편으로는 「상은 없다」, 「그림자 잭」, 「지금 힘이 오느니」, 「스테인리스 스틸 흡혈귀」, 「피와 흙의 게임」 등을 재미있게 읽었다.

  SF를 처음 접하는 독자에게는 안 맞을지 모르지만, 젤라즈니의 소설을 이미 접한 독자들이나 SF를 어느 정도 읽은 독자에게는 꽤 만족스러운 독서 경험을 줄 것이다. 이미 스테디셀러가 된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와 함께 추천할 만한 SF 단편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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