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신진우 지음 / 새파란상상(파란미디어)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파란미디어의 중간문학 브랜드, 새파란상상의 네 번째 출간작 『게이트』. 이 작품은 어느 날, 아파트 10층에서 여자가 실종되면서 시작된다. 다음 날, 아파트 10층에 살거나 용무가 있는 사람들이 동시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10층에서 내린다. 그러나 그들이 내린 곳은 더 이상 그들이 아는 아파트 10층의 공간이 아니다. 자욱한 안개 속이 갇힌 아파트 10층에서 그들은 아래층으로도 위층으로도 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더군다나 아파트 10층에는 막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그들 말고는 더 이상의 사람을 발견할 수 없다.

  이러한 기본 설정은 마치 스티븐 킹의 중편 「미스트」나 미국 드라마 『로스트』를 연상케 한다. 부득이하게 한 공간에 갇힌 사람들이 불가사의한 현상들과 부딪치게 되면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들이 극을 이끌어가는 힘이다. 여기서 초자연적인 일 말고도, 인간 본연의 광기과 맞물리면서 흥미로운 체험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술에 취한 할아버지, 여고생 김정희, 여고생 정희의 엄마, 23살 복학준비 중인 이민호, 22살 여자인 김수정, 18살 중국집 배달원인 용식이, 윤재준 신문기자, 장인환 형사, 중년 남자, 경비원 등이 바로 10층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를 탔고, 사람이 없고 안개에 휩싸인 이상한 공간에 도착한 이들이다. 평범해 보이는 이들이, 기이한 상황과 맞닥뜨리면서 변하기 시작한다. ‘지지직’ 거리는 효과음은 불길한 상황을 암시하며, 이들의 변화를 이끈다.

  아무리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도 10층에서 열리고, 계단을 타고 내려가도 포탈이 연결된 것처럼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이런 막막한 상황에 빠진 사람들은 결국 어떻게 될까? 극한적인 상황 설정은 일단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데 성공한다. 독자는 이후 작가가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해나갈 것인지, 또 결국 어떤 결말로 치닫을 것인지 궁금해한다. 이 소설이 가진 미덕은 바로 이런 호기심을 한껏 자극하는 상황 설정과 여기에 처한 인물들을 묘사하는 방식이다.

  결국 불가사의한 사건과 맞닥뜨린 인물들을 그리는 작품이기 때문에, 얼마나 개성있는 인물들을 그려냈고, 또 생동감있게 묘사했는지가 관건이 된다. 아쉽게도 이 작품에 나오는 인물들이 그렇게 살아있는 인물처럼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물론 모두 다 똑같이 느껴진다거나 지나치게 도구적이고 인형처럼 보인다는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이런 소설에 나올만한 전형적인 인물들이고, 조금 더 독특한 개성을 가진 인물이나, 실제 주위에서 볼 수 있는 것 같은 살아있는 느낌을 주는 인물은 등장하지 않는다. 읽으면서 작가가 각각의 인물들에 대해서 배경과 성격, 역할, 능력 등에 대핸 설정을 짰고 거기에 충실히 움직이는 캐릭터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대사들이나 행동이 의외성이 없고 이미 영화나 소설, 만화 등에서 나올법한 인물들이 각각 맡겨진 행동들을 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조금 더 색다른 인물들을 설정했다면, 다른 배경, 다른 성격, 다른 능력을 만들어냈다면, 그런 비틀림으로 인해 약간 전형적으로 흘러갈 수 있는 이 이야기가 어디서도 본 적이 없는 완벽하게 새로운 이야기가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러나 이 소설에서 나오는 능력들은 이미 기존에 있던 능력들이라 특별할 것이 없고, 인물들의 성격도 평범한 편이다. 물론, 여고생처럼 눈에 띄는 독특한 설정이나 능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능력의 의미나 역할은 별다를 것이 없었다. 제대로 된 설명이나 활용도도 떨어졌다. 다른 인물들에게 발현되는 능력들도 그 인물들의 사연과 사정에 맞춰서 나타나면 능력이 역시 여고생처럼 개성을 얻을 수 있고, 다른 식으로 캐릭터의 성격과 이야기가 뻗어나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 빠지면 꼭 광기를 드러내는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원래 악한이었다던가,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든가 하는 식은 너무 안일한 설정이라는 느낌도 들었다.(실제 경비원이 읽는다면 이 작품을 좋게 읽을 수 있을까? 일반적인 편견으로 만들어진 캐릭터들이 조금은 불편한 감도 있다. 인물들이 너무 기호적인 느낌이었다. 처음 수정의 묘사부터 행동이나 대사도 가볍게 그려져 불편하다가 나중에는 성격이 뒤바뀐 것처럼 캐릭터도 바뀌어버린다.) 전형적이라고 할까. 많은 작가들이 써먹은 일종의 클리셰 같은 느낌도 들었다. 인물들에게 조금 더 깊이를 부여했다면 어땠을까? 그렇다면 일단 지금 같은 분량은 불가능할 것이고, 속도감도 잃을 것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캐릭터에 짧은 심리묘사만으로는 이 작품을 지나치게 가볍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그보다는 개개인의 심리묘사에 좀더 치중하고, 『로스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인물의 과거 배경이나 트라우마 등과 연결해서 현재 사건을 바라보고, 연계되는 점이 있다면 소설이 더욱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풍성해질 여지가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인물이 진짜 살아있는 느낌을 줄 수 있었을 것이고, 예측한대로 흘러가는 게 아니라, 의외의 방향으로 계속 달려나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 작품의 장점은 눈부신 속도감이다. 그야말로 페이지를 넘기는 속도가 다른 책들과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빠르다. 앉은 자리에서 몇 시간 만에 금세 다 읽어내릴 수 있을 정도로 빠르게 읽을 수 있는 것이다. 가독성이 높다고 할까. 쉬어가는 타임이 없이, 무조건 전개만을 외치고 달리는 소설 같다. 그 때문에 정신없이 끝을 향해 달려갈 수 있다. 이런 빠른 속도감은 빠르게 읽히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찾는 독자들에게는 잘 와닿는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가독성 높은 장르소설을 찾는다면 『게이트』는 충분히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수많은 장르소설들이 끊임없이 지금도 출간되고 있지만, 이토록 잘 읽히는 책을 쓴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만큼 이 소설은 깔끔한 문장, 적절한 문단 길이, 영상적으로 연상이 잘 되게 장면 묘사, 군더더기 없는 스트레이트한 전개로 독자의 눈을 사로잡는 것이다. 이 소설의 강점은 바로 이 속도감이다.

  다만, 이 속도감을 얻으면서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인물들이 피상적으로 그려지는 단점을 지닌다. 게다가 지나친 전개의 폐해로 인해 작품에서 어색한 부분들이 속출한다. 독자가 생각을 정리하고 감정이입을 할 새도 없어 인물들의 심경 변화가 잘 와닿지 않는 면들이 있고, 몇몇 장면들은 전개를 위해 빨리 넘어가면서 어색함을 드러내기도 한다. 가령, 자기소개를 하다가 갑자기 철가방 랩퍼라면서 용식이 랩을 하면서 분위기가 밝아지는 부분은, 너무 급작스러워서 상황과 어울리지 않고 독자가 어색함과 민망함을 느끼게 되는 부분이다. 좀 더 많은 분량이 사용되어서 서로를 알아가고 생각을 정리하고 난 다음에 천천히 자연스럽게 분위기가 전환되었다면 그런 민망한 느낌이 들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빠른 전개를 위해 과도한 생략이 단점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분량이 더 늘어났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의 설정은 기존의 오컬트 설정과 불가사의하고 밝혀지지 않는 설정이 혼재되어 있다. 오컬트에서 쓰이는 설정들은 주석 등으로도 설명이 붙는데, 색다른 것이나 기묘한 것은 없는 편이다. 이미 기존에 오컬트 소설들, 만화, 게임 등에서 다룬 내용들이라 새로 알게 되는 것이나, 독특한 발상은 볼 수 없다. 이 기묘한 공간에서 인물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초능력을 발현하게 되는데, 일반적인 능력들이 주를 이루고 능력들을 조합하거나 독특하게 이용해서 독자의 허를 찌르는 면은 적어서 아쉬웠다. 즉, 오컬트 설정에서 신선하고 재미를 얻을 수 있는 요소는 적은 편이었다. 불가해한 설정들은 소설이 끝날 때까지 명확히 밝혀지는 부분은 없다. 공포를 자아내기 위해서는 미지의 상태로 남겨두어야 하는 것도 마땅하지만 어느 정도 암시를 해줄 수 있는 부분, 변화를 일으키거나 저항의 여지를 줄 수 있는 것도 필요한 느낌이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공간에 머문다는 미지의 공포를 비롯해서, 악령을 연상시키는 존재, 그로 인한 고어적인 장면들은 각각 공포를 느끼게 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글로 고어적인 장면을 서술한다고 해서 그 공포가 제대로 와닿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상황을 통해서 연출이 되었다면 더욱 공포를 체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쉬운 작업은 아니다. 글로 공포를 전달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는 지금까지 나온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시리즈를 봐도 알 수 있다.) 몇몇 고어적인 장면은 그냥 일반적인 영화에서 보던 이미지를 차용한 느낌이라 아쉬운 감이 있었다. 공포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독자가 체감할 수 있는 상황에서 오는 공포, 그리고 생생한 묘사를 통해서 가능할 것이다. 이 소설에서는 그런 손에 잡힐 듯한 묘사에서는 아쉬운 면이 컸다. 빠른 전개를 위해 묘사는 짧게 넘어가는 부분들이 많았다. 각각의 상황에 대해 새로운 표현, 단어들로 독자를 환기시켜줄 필요가 있었다. 가령, 피와 살점이 방에 난자한 장면에서 단순히 그 장면을 묘사하고, 반복적으로 ‘지옥’이라는 단어로 처참한 상황을 표현하려고 하는 부분에서는 같은 단어가 반복되면서 지겨운 느낌이 들었다. 지옥이란 단어의 진부함이나 단순함은 제쳐두고, 한 번 사용한 단어를 다시 재사용하는 것은 좋지 않은 방식일 수밖에 없다. 결국 처음에 와닿은 느낌은 단어가 반복되면서 희석되고, 단어로만 받아들이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각각의 상황마다 다른 단어와 표현으로 매번 더 처절한 공포를 표현할 필요성이 있었다.

  이 작품은 다른 작가의 단편에서 시작되어 장편으로 발전한 작품인데, 그런 면에서 보자면 단편의 아이디어를 확장했다는 점에서 무난하게 잘 소화했다고 할 수 있다. 장편인 이상 스트레이트한 전개 말고 플롯에 좀더 신경을 썼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이 공간이나 적, 여러 현상들이 명확하게 이 작품 내에서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을 상기할 때 이 책에 쓰인 방식이 최선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현대를 배경으로 불가사의한 상황과 빠른 속도감에서 김이환의 『절망의 구』(예담)가 떠올리는 면도 있다. 두 작품다 독자를 끌어들이는 흡인력이 상당하고, 불가사의한 현상에 끌려다니는 인간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게이트』는 빠른 속도감의 장르소설을 원하는 독자라면, 두말할 필요없이 추천할 만한 작품이다. 다른 매체나 소설에서 비슷한 경향의 작품들도 분명히 존재하지만, 국내 작가가 이런 형식과 분위기의 소설을 쓰는 경우는 흔치 않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다양한 성향의 작품들이 더욱 더 많이 여러 작가들에 의해 시도되기를 바라고 있다. 상당히 많은 한국 작가들이 천편일률적인 소재의 작품을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런 희귀한 소재의 장르소설이 나왔을 때, 이 소설을 더욱 많은 독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읽어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더 많은 작가들이 새로운 시도를 할 테고, 좋은 작품들이 나올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이다.

  정신없이 질주하는 『게이트』의 끝이 과연 어떤 식으로 끝날지 궁금하여, 책을 받자마자 몇 시간도 안 되어서 읽어내려갔다. 마침내 끝을 다 읽고는 괜찮은 엔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후속권을 암시하는 듯한 느낌이라서, 2부가 나온다면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히 책을 접하자마자 순식간에 읽어내려간만큼 충분히 매력적인 소설이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을 하고 싶은 독자라면 지금 당장 구매를 할 것을 추천한다. 후속권이 나온다면 이 책은 프롤로그에 지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정말이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은 아닐까. 이 공간을 외부에서 관측하려고 시도한다면, 이미 이 공간을 거치고 나서 현실로 돌아온 다른 이들이 있다면? 그런 무리에 접촉할 것인가? 달아날 것인가? 현실에 무수한 이런 공간이 또 있을까? 이능을 가진 인물들 중 일부는 이 공간을 지나친 것일까? 이 공간에서 보았던 불가사의한 존재들이 현실에도 나타날까? 모든 것을 없앨 수 있을까? 세상에 알릴 수 있을까? 은폐할 것인가? 은폐하는 세력이 있을까? 다시 그 공간에 들어서게 될까? 누군가를 찾게 될까? 작품 내에서 밝혀지지 않은 현상들과 설정들이 무수히 많기 때문에, 후속권에 대한 상상은 끝도 없이 사방으로 뻗쳐나간다.

  책의 판형이나 표지 이미지, 깔끔한 편집 등도 마음에 들었다. 작가가 상당히 신경을 쓴 것을 알 수 있는 점은 각 장마다 시작할 때 나오는 인용구인데, 적절한 내용이 들어가 있어서 글의 분위기를 전체적으로 잘 살리는 느낌이었다.

  올 여름, 무더위에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시원한 독서 경험을 줄 수 있다. 폐쇄된 공간에서 열 명의 사람들과 한 마리의 고양이를 가지고 이토록 급박하게 이야기를 끝까지 끌고 가는 작가의 역량이 첫 번째 장편소설이라는 사실을 믿기지 않게 만든다. 재미있는, 기존 한국 장르소설과는 다른, 기대되는 이야기와 작가를 읽고 싶다면, 『게이트』를 추천한다. 누군가에게 선물해도 부담없을 만한 흥미로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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