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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
로버트 J. 소여 지음, 김상훈 옮김, 이부록 그림 / 오멜라스(웅진) / 200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랜만에 제대로 된 페이지터너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장르소설을 만났다. 웬만한 소설은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페이지를 넘기는 속도가 빠른 소설이다. 어떤 책들은 때론 재미가 있으면서도 페이지가 넘어가는 속도가 느린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은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쉴새없이 몰아치면서 도무지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하게 만들며, 결국 책 한 권을 읽게 되는 속도가 무척 빠르다. 그만큼 독자를 끌어들이는 흡인력이 뛰어난 소설이다.
작가는 ‘영미권 엔터테인먼트 SF의 1인자’, ‘SF계의 양대 산맥인 휴고상과 네뷸러상을 모두 수상한 몇 안 되는 작가’ ‘캐타나 최고의 SF 작가’, ‘SF만으로 먹고 사는 유일한 캐나다 작가’, ‘캐나다의 아이작 아시모프’ 등의 평을 받고 있는 로버트 J. 소여다. 국내에는 처음 소개되는 로버트 J. 소여는 그의 대표작인 [멸종(End of an Era)]을 통해 그의 재능을 마음껏 한국 작가들에게 첫 선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이미 상당히 많은 한국 독자들이 그의 매력에 빠져서 책장을 순식간에 넘긴 것은 물론이다.
작가는 캐나다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SF 작가이며, 스스로 ‘하드 SF 작가’라고 말한다고 한다. 또한 각종 미디어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사회 활동을 하고 있으며 현재도 방대한 작가 사이트를 통해 독자와 동료 작가들과 교류하고 있다고 한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 책은 독자가 벗어날 수 없을 정도로 인상적인 재미를 가진 작품이다. 일단 소재부터가 독특하여 눈길을 사로잡는다. 지금은 멸종해 버린 ‘공룡’과 SF의 매력적인 소재인 ‘시간여행’이 결합되어 초반부터 흥미롭게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뿐만 아니라 양자역학과 휴머니즘까지 더해진 근사한 작품이다.
간략히 작품 소개를 하자면 서기 2013년 중국계 캐나다인 물리학자 칭- 메이 황의 주도로 인류는 시간여행 기술 개발에 성공하게 된다. 그러나 자세한 원리는 화자도 잘 모른다는 식으로 가볍게 넘어가고 있다. 이야기 진행에 있어서 ‘시간여행’의 원리가 중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며 다 읽고 나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또 드러나기도 한다. 이런 점은 이 소설이 탄탄하게 구성되었으며 이 소설의 묘미 중 하나가 바로 그 ‘구성’에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뿐만 아니라 ‘시간 여행’은 가볍게 지나갔지만 ‘공룡’에 대한 부분은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이 소설이 공룡의 멸종이 또한 중심 소재이고 작가가 스스로 ‘하드 SF 작가’라고 부르는 만큼 개정판에 최신 학설을 수정해 넣을 정도로 정성을 들였기 때문이다.
아직 책을 읽지 않은 독자를 배려하기 위해 더 이상의 내용 언급을 하기는 어렵지만, 읽으면 누구나 이 책이 다양한 소재를 사용했고 이전에 나온 다양한 SF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공룡’과 ‘시간여행’ 말고도 다양한 소재가 불쑥불쑥 튀어나오며 독자를 깜짝 놀래 키고 이야기를 더욱 점입가경의 재미로 이끌어간다. 미리 몇몇 소재나 내용의 일부를 알고 읽어도 글의 재미가 크게 떨어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가장 온전한 재미를 느끼고 싶은 독자라면 아무런 부가 정보 없이 이 책을 바로 읽는 것을 추천한다.(특히 인터넷 서점에 나와 있는 정보들은 스포일러가 많으니 접하지 않는 것이 좋다.)
다양한 소재를 갖고 놀고 버무리는 솜씨가 훌륭한 작가이며, 거기서 감동과 여운을 느끼는 장치 역시 잘 넣었다. 한 번 펼치면 끝까지 읽을 때까지 딴 일을 하지 못할 정도로 재미있는 SF소설을 경험하고 싶다면 이 책이 제격일 것이다. 평소에 SF를 자주 보지 않는 독자라도 상관없다. 이 책에는 그렇게 어려운 과학 지식으로 무장하지 않았고, 딱딱하고 지루한 이야기는 거의 없다. 이야기 전개 속도는 무서우리만치 빠르고 머릿속에는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장면마다 영상으로 선명하게 떠오른다. 주위에 SF를 잘 읽지 않는 친구에게 권해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만큼 대중적인 재미를 확보했다.
공룡의 멸종에 대해서 평소에 조금의 관심이라도 있었던 사람이라면 더욱 빠져들 것이다. 이 책은 직접 햄버거 같은 우주선을 타고 공룡의 시대로 날아간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공룡의 멸종설에 대해서 두 명의 인물이 서로 상반되는 의견을 갖고 이야기를 나누기 때문에 더욱 재미있다. 과연 공룡이 멸종한 이유는 무엇이고 그 시대에는 어떤 일들이 일어났을까. 공룡은 왜 그렇게 거대한 생물이었던 걸까. 공룡이 사라진 뒤에 남은 것은 무엇일까. 시간여행이 소설 속에서 근미래에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공룡의 멸종의 순간을 직접 경험한 주인공에 의해서 우리는 그 긴박감 넘치는 순간을 손에 땀을 쥐며 직접 체험할 수 있다.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아직 경험할 수 없는 긴장감 넘치는 엔터테인먼트를 바로 이 책이 경험하게 해주는 것이다. 이것이 아직도 SF소설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이야기가 현재도 종이로 출간되어 살아남는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멸종(End of an Era)]은 바로 그런 이야기 본연의 재미에 충실하며 SF의 경이감도 놓치지 않고 있는 잘 쓰인 책이다.
이 책은 다양한 고전 클리셰들을 활용한 스토리, 시간여행과 맞물린 구성만이 아니라 생동감 있는 캐릭터들도 글의 매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1인칭 주인공 시점인 만큼 주인공에게 독자는 몰입할 수밖에 없는데 사랑하는 아내가 클릭스에게 넘어가서 슬픔에 빠진 상태로 둘이 같이 6500만년 전으로 간 주인공의 심리 상태는 글에 계속 긴장감을 부여해주고 독자가 주인공에게 감정을 몰입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 완벽한 주인공이 아니라 우리와 비슷하게 슬픔을 느끼고 불안한 인간이라는 점이 잘 다가온다. 이 캐릭터들이 공룡과 맞닥뜨리고 죽을 위기를 넘기기도 하고 또 클릭스와 불화를 겪기도 한다. 그리고 독자를 당황과 감탄에 빠져들게 하는 사건에 일어남으로써 모험 소설의 재미를 완벽하게 구현한다. 읽고 나면 정말로 가상현실을 경험한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것이다. 실제로 과거로 타임머신을 타고 가서 공룡을 보고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 스펙터클한 모험을 겪은 것 같은 느낌을 이 책은 충분히 보여준다. 즉, 빠른 속도감으로 무장한 종합선물세트 같은 현대 SF소설이다.
SF를 읽는 독자라면 2009년 드디어 한국에 소개된 로버트 제임스 소여의 이 책을 결코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물론 SF 독자가 아니라 관심을 가지려는 독자에게도 이 책은 결코 후회하지 않을 선택이 될 것을 확신한다. 공룡을 좋아한다면 당연히 필독이다.) 또한, 이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나서 국내에 이 작가의 다른 책들도 차례차례 소개되기를 바란다. 이 책으로 인해 작가의 능력은 충분히 느꼈기 때문에 작가 소개에 적힌 이 작가의 다른 책들에게도 엄청난 기대감을 갖게 되었다. 이렇게 재미있는 글쓰기를 하는 작가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오락성 높은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작가이며, 그 이야기의 속도감은 여느 소설도 따라잡기 힘들 정도로 빠르다.
책장을 마구 넘기게 되는 진정한 페이지터너를 만나고 싶다면 여기 [멸종(End of an Era)]이 있다. 만약 다음 날 중요한 일이 있다면 밤에 이 책을 펼치지 않기를 권한다. 펼치는 순간 새벽까지 이 책을 다 읽고만 자신을 발견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