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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간 후 너는 죽는다 ㅣ 밀리언셀러 클럽 99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수영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3월
평점 :
밀리언셀러클럽 99번째라는 인상적인 번호로 출간된 다카노 가즈아키의 단편집입니다. 단편들이 각기 다른 내용들을 다루고 있지만 서로 조금씩 연관이 있기 때문에 연작소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가는 데뷔작인 『13계단』으로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했으며 국내에도 밀리언셀러클럽 29번째로 출간되어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밀리언셀러클럽을 대표하는 책 중에 하나가 되었죠.
이 책은 제목만으로도 아주 흥미를 자극했습니다. ‘6시간 후 너는 죽는다’니. 과연 무슨 내용일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평소에는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구입하면서도 이 책은 무심코 들린 서점에서 바로 구입해서 근처 카페에 가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곧 상당히 재미있는 이야기로 인해 순식간에 읽어나가게 되었습니다. 흡인력이 있고 무엇보다도 소재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13계단』을 읽었을 때는 철저히 현실만 이야기하는 추리작가였는데, 이 작품은 독특하게도 추리와 초능력을 결합한 작품입니다.
「6시간 후 너는 죽는다」는 심리학 전공인 ‘야마하 케이시’라는 남자가 ‘하라다 미오’라는 여성에게 당신은 6시간 후 죽는다고 말하면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야마하 케이시’는 가끔 사람의 미래를 볼 수 있는 초능력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예지’를 할 수 있는 거죠. 처음에 ‘하라다 미오’는 믿지 않지만 친구가 약속을 잊어서 바람을 맞게 된다는 것까지 맞아떨어지자 놀라서 케이시의 말을 듣기로 합니다. 그리고 케이시가 본 미래의 영상에서 손목시계가 12시를 가리킬 때 죽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진행됩니다. 6시간 후 죽게 되는 자신의 미래를 바꾸기 위해서, 누가, 왜, 죽이게 되는 두 사람은 함께 추리를 하게 됩니다. 단순한 추리소설이 아니라 초능력이 결합되면서 신선하고 재미있었습니다. 추리가 어렵거나 생각한 것 이상의 반전을 이끌어내지는 않습니다. 미리 생각해본 이야기 중에 하나의 결말로 맺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으면서 읽게 되는 글이었습니다. 미오의 캐릭터가 살아있어서 응원하며 읽게 되고 감정 이입도 잘 된 편이었으며 구성이나 추리도 무난했기 때문입니다.
「시간의 마법사」는 앞의 이야기와는 다르게 케이시의 ‘예지’가 주된 소재로 사용되고 있지 않습니다. 이 이야기에도 케이시는 등장하고 조력자로도 나오지만 그 역할은 미비하고 실질적인 이야기는 주인공인 미쿠가 어렸을 적 자신을 만나게 되는 ‘시간이동’에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소재나 플롯은 어떻게 보면 진부하고 평이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과거의 자신을 만난다는 소재는 장르 쪽에서 많이 다루어지기도 했고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소재이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여기서 전하는 메시지는 진정성을 가지고 있고 젊은이들에게 공감이 가는 내용이라 의미가 있습니다. 아직 방황하는 시절, 꿈은 이루지 못한 상태이고, 미래는 막막하기만 한 절망적인 상황. 지금 현재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십대라면 충분히 공감이 갈만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되고 가슴이 아릿하기까지 한 암울한 상황에서 미쿠는 아홉 살의 자신과 실제로 마주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일어나는 미쿠의 변화와 이야기의 진행은 역시 예상이 가면서도 재미있습니다. 그건 아마도 긍정의 힘 때문이겠지요.
「사랑에 빠지면 안 되는 날」은 역시 흥미로운 제목입니다. 과연 사랑에 빠지면 안 되는 날이 있을까? 도대체 왜 사랑에 빠지면 안 되는 것일까? 잘 지은 제목이라고 할까요. 제목부터 이 이야기를 얼른 읽어버리게 만듭니다. 이야기도 재미있습니다. 한 번도 제대로 된 사랑을 해보지 못한 ‘미아’는 어느 날 예언자라고 친구가 연결시켜 준 ‘야마하 케이시’를 만납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이번 수요일.” “그날만큼은, 사랑에 빠지면 안 돼.”(141쪽)라는 말을 듣습니다. 예상밖의 경고. 그리고 거부할 수 없는 운명처럼 수요일에 미아는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처음에는 이야기의 전모를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읽어갈 수록 하나로 귀결되는 전말에 전율하면서 읽어가게 됩니다. 그러나 예상가는 파국을 맞이하게 되면서도 이 단편집은 항상 따스한 감성, 긍정적인 이야기로 이어져 있기 때문에 가슴이 따스해지고 재미있습니다.
「돌 하우스 댄스」는 고사카 미호라는 댄서 지망생의 이야기입니다. 이렇듯 이 작품에는 이미 안정된 직장을 가지고 꿈을 실현 사람들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마법사」에서 극작가를 꿈꾸는 플롯라이터 ‘미쿠’나, 제대로 된 사랑을 못해본 여대생 ‘미아’, 프로 댄서를 꿈꾸는 ‘고사카 미호’ 등 대부분 이십 대의 방황하고 좌절하거나 불안정한 사람들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추리와 초능력이라는 소재의 결합에서 오는 신선한 재미 외에도 본질적으로 이 소설들이 빛나는 것은 꿈을 향해 나아가는 불안정한 이십대의 아름다운 모습에 있습니다. 그네들이 각각 신기한 일들을 겪고 성장의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 이 단편집은 즉, 성장소설의 감동과 재미도 더하고 있기 때문에 충분히 만족스럽게 읽어나갈 수 있습니다. 「돌 하우스 댄스」 역시 이런 구성이 돋보입니다. ‘스가와라 사요코’가 만든 ‘돌 하우스 뮤지엄’과 교차되는 이야기 방식인데, 오직 단 한 사람만을 위해서 돌 하우스 뮤지엄을 만들었다는 설정 자체가 상당히 매력적입니다. 두 사람은 아무 인연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케이시의 할머니인 ‘스가와라 사요코’는 자신이 본 미래의 ‘고사카 미호’를 위해 ‘돌 하우스 뮤지엄’을 만든다. 자신은 실제로 만날 수 없더라도 자신의 감상을, 격려를, 시공을 넘어서 전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정말이지 한없이 따스하고 근사한 이야기였습니다. 이 소설집은 이렇게 추리나 초능력이 주된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감동이 있기에 재미있으며 인상적이었습니다.
「3시간 후 나는 죽는다」. 제목부터 역시 또 전율이 오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단편입니다. 첫 번째로 이야기를 시작했던 ‘야마하 케이시’와 ‘하라다 미오’의 이야기입니다. 5년 후, 미오가 케이시를 그리워하며 재회의 가능성이 높은 일자리에서 무작정 일을 시작합니다. 마치, 로맨틱 영화의 설정 같죠. 이 두 사람의 마음이 교차되는 것이 앞의 단편보다 더 흥미롭게 작품을 읽게 하는 요소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플롯도 더 복잡해지고 예측이 어렵습니다. 케이시는 이번에는 자신이 3시간 후에 죽는다는 예지를 하게 됩니다. 이번에도 두 사람은 힘을 합쳐서 미래를 바꿔야 합니다. 운명에 저항한다는 소재는 또한 매력적이지요. 초능력이 결합되면서 이 책은 다른 추리소설들과 많이 차별화되었습니다. 도무지 어떤 방식으로 해결이 날지 알 수 없게 진행되면서 신선하고 재미있었습니다. 「3시간 후 나는 죽는다」는 이 단편집의 마지막을 장식하기에 손색이 없었습니다. 가장 많은 분량을 자랑하면서 역시 놀라운 흡인력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갔습니다. 다 읽고 나서는 벌써 여섯 편의 단편을 다 읽어버렸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느낄 정도로 말입니다.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신선하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평소에 추리소설을 읽지 않더라도 환상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초능력’이 나오는 이 책 역시 재미있게 읽을 것입니다. 즉, 다양한 독자층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매력적인 책입니다.
이 책에는 충격적인 반전이나 강렬한 소재로 채워져 있지 않습니다. 즉, 본격적인 추리소설을 기대하고 읽어서는 안 됩니다. 이 책의 매력은 ‘초능력’이라는 소재와의 결합, 정감이 가고 캐릭터들. 공감이 가는 주인공들의 삶에 있습니다. 피부에 와 닿는 주인공들의 심리들, 그러면서도 끝내 희망을 향해 긍정의 힘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신기한 이야기 속에서 펼쳐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