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 SF 르네상스 1 - The Hard SF Renaissance 1
데이비드 브린 외 지음, 홍인수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하드SF르네상스


  ― 하드 SF의 향연!


  SF의 진수라고 하는 하드SF. 과연 하드SF는 무엇일까?

  물 론 대부분의 용어들이 그러하듯이 정확히 딱 들어맞는 정의는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보편적인 의미의 하드SF는 작품 내부의 과학적 상상력을 과학적 엄밀성이라는 엄격한 틀 안에서 전개해 나가는 소설을 말한다. 우리가 흔히 ‘어렵다.’라고 느끼는 SF의 본격적인 이미지를 가진 것이 하드SF일 것이다. 최신 과학 이론이 나오고, 물리학적인 지식이 필요로 하고, 여러 이론들이 들어가 있어서 난해하고 어렵게 느껴지는 SF소설. 그러나 그렇다고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하드SF’가 평소에 과학에 관심이 적은 독자들에게 낯설고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소설’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 즉, 이야기가 있고 이야기가 갖고 있는 인간의 이해와 재미와 감동이 있다.


 “(……) 하드SF가 문제풀이식 접근법을 사용한다고 해서 읽기 어렵다거나 무미건조하다는 식의 인상이 광범위하게 유포되어 있으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훌륭한 하드SF작 가라면 아무리 어려운 과학기술적 난제도 독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놓을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과학 자체는 어디까지나 시각 또는 세상을 인식하고 이해하는 일종의 시각에 불과한 만큼, 문제풀이방식 역시 그에 천착할 수밖에 없다. 즉 소설적 갈등을 풀어내는 형식과 소설 내의 과학기술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또 하나의 이질성을 부여하며, 바로 이러한 이질적인 두 요소들이 새로운 긴장감을 생성한다고 볼 수 있으리라.”

  ― SF리더스위키, 「하드SF」항목 중에서(http://wiki.sfreaders.org/하드SF )


  하드SF? 딱딱하고 지루하고 어렵게만 느껴진다고 겁먹을 필요는 없다. 후회 없이 읽어라. SF의 매력 그 자체가 하드SF에 있으니까.


  이 번에 행복한 책읽기에서 나온 『하드SF르네상스』 1권은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하드SF 앤솔로지이다. 게다가 기존에 단편집들처럼 오래된 단편들을 묶은 선집이 아니라,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에 창작된 최신의 하드 SF 작품집이라고 한다. 매번 고전들만 읽어야 했던 한국 SF 독자들에게 이런 책은 가뭄의 단비와도 같이 신선하기까지 하다. 이런 멋진 기획을 한 행복한 책읽기에 다시 한 번 감사하고 싶은 마음이다.


  각 단편별로 짧은 느낌을 적어보자면, 첫 번째 실린 「리얼리티 체크」는 굉장히 짧은 우화다. 처음을 여는 것으로는 괜찮다고 할까. 이 단편은 과학자들을 위한 작가 데이비드 브린 특유의 유머라고 한다. 이 작품이 『네이처』지에 새 천 년을 기념하기 위해 2000년에 특집으로 수록한 한 페이지 분량의 SF 연재물 중 하나라는 사실이 이 작품의 이해를 돕는다. 당시 『네이처』지를 읽었을 때 과학자들이 어떤 느낌을 받았을지 생각해보면 더욱 재미있다.


  두 번째로 실린 「올림포스 산」은 화성에 있는 ‘올림포스 산’을 탐험하는 이야기다. 아직은 벌어질 수 없는 이야기지만 먼 미래에 진짜로 있을 법한 이야기를 실감나게 그렸다. 이 이야기가 과학적 논리 아래 현실적으로 그려진 소설임에도 재미있게 읽히는 것은 주용 주요 인물인 두 사람의 내면을 잘 그려냈기 때문이다. 그들이 가진 어떤 트라우마를 이겨내는 노력이 이 소설이 단지 과학적인 논리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인간의 삶과 목표의 추구에 대한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 단편을 읽으며 실제로 화성에서 탐험을 하고 온 것 같은 체험을 느낄 수 있는 게 또한 매력적이다. 하드SF가 아니면 느낄 수 없는 그런 재미가 아닐까 싶다.


  세 번째로 실린 「어느 성화학자의 생애」는 이 단편집에서 가장 빛나는 소설이다. 즉 가장 재미있고 뛰어난 흡인력을 가지고 있다. 역자를 비롯해서 독자들의 반응까지 하나같이 이 작품을 가장 재미있게 잘 읽었다는 데 이견이 없을 정도다. 작가가 생물학 학사와 사회학 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는 만큼, 생물공학을 다루고 사회학적인 요소까지 있는 근사한 작품이다. 적당히 야하면서 끝은 SF의 경이감으로까지 치닫는 이 작품은 정말 멋지지 않을 수가 없다.


  네 번째로 실린 「틈새」는 심해 속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단순히 읽기에는 조금 난해할 수 있다. 그만큼 주인공의 심리가 서술과 섞여서 적혀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대단히 어둡고 음울하다. 읽는 독자 역시 심해 속에서 사방이 수압으로 내리 누르는 듯한 묵직하고 답답한 심정을 체감할 수 있다. 소설은 내내 갇혀 있는 듯하고 묘사되는 심리는 절절하고 끈적끈적하고 차갑다. 감성이 풍부한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야기 보다는 이런 감성적인 면에 치중한 소설이며 전체적으로 독특한 느낌을 주는 소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단편집에는 작품이 끝날 때마다 작가 해설이 자세하게 적혀 있는데, 이 작가의 해설에는 본인이 직접 경력을 써서 보냈다. 다른 작가들의 해설도 재미있고 인상적인 부분들이 많지만, 특히 이 작가의 경력은 재미있다. 궁금하시면 직접 읽어보시라.


  다섯 번째로 실린 스티븐 벡스터의 「기러기 여름」은 일단 배경이 지금은 행성의 지위를 잃어버린 명왕성이라서 흥미롭다. 이 단편은 여기에 실린 단편들 중에 가장 무난한 느낌이었다. 기본적인 구성대로 쓰인 단편이랄까. 그러나 많은 부분이 예측되는 이야기 전개임에도 진부하게 느껴지기보다는 오히려 흥미롭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었다.


  여섯 번째로 실린 「헤일로」는 광속에 가깝게 이동하는 우주선과 헤일로 세계라는 갈색 왜성이 공전하는 행성계의 이야기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엘리스는 평화로운 생활을 하던 중 광속에 가깝게 이동하는 우주선에서 절박하게 보낸 메시지를 수신하게 된다. 그 메시지는 이 우주선이 탈취당했고 이들이 이미 ‘티아라’라는 곳을 파괴했으며 다음 목적지는 주인공인 엘리스가 살고 있는 ‘듀’라고 알려준다. 엘리스는 이 메시지를 경찰에 넘기지만, 마음에 걸려서 계속 메시지를 수신하게 된다. 차분한 시선 속에 펼쳐지는 가슴 아픈 이야기다. 이야기 구조는 단순할지 몰라도 갈등에서 생겨나는 어쩔 수 없는 비극과 절망이 잘 드러나는 작품으로 인상 깊은 소설이다.


  일곱 번째로 실린 「착한 쥐」는 더 이상 위험한 실험에 사용할 실험용 동물이 없고, 오직 생계를 위한 인간 자원자만이 존재할 뿐인 세상을 그린 작품이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누구나 쉽게 생각해낼 수 있는 소재일 수도 있겠으나, 작품은 굉장히 세심하게 공을 들이며 서술해 가서 작품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특히, 화자의 시점에 맞춰서 일부러 문장들이 맞춤법이 틀리고 오류가 난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기법은 인상적이었다. 읽으면서 진짜 화자의 시점으로 작품을 읽게 만든다. 몰입감이 대단하다고 할까. 재미있는 기법이었고, 작품 자체의 흡인력이나 매력도 뛰어났다. 단순한 소재의 아쉬움을 다른 부분들이 충분히 메꿔 주고 있다.


  여덟 번째로 실린 「시간의 모래성」은 이 단편집에 실린 유일한 시간을 소재로 한 단편이다. 개인적으로 ‘시간’이라는 소재를 굉장히 좋아하기 때문에 재미있게 읽었다. 처음에는 이론들이 난무하고 술집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이야기만으로 진행되어 조금 단순하고 지루한 느낌이 들기도 하나, 이야기가 차츰 진행되면서 그 이론을 설명하고 실제로 나타나는 상황의 이야기를 듣는 부분들은 매우 흥미롭다. 게다가 마지막 부분을 읽는 순간, 앞부분부터 다시 읽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아홉 번째로 실린 「불사조 품기」는 분량이 꽤 많은 작품이다. 이 소설은 일단 우주선의 인공지능인 히파티아와 주인공인 ‘나’ 사이의 대화에서 오는 재미가 상당하다. 둘다 여자이긴 하지만 애니메이션 등에서 흔히 보이던 구조가 아니던가. 우주선의 인공지능이 홀로그램 상태로 나와서 주인공과 계속 티격태격하는 소설 말이다. 물론 이 소설은 가볍지만은 않고 진중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야기가 부드럽게 연결되고 남자 작가가 썼음에도 여성 화자를 재미있고 능숙하게 잘 다루고 있다. 이 단편은 지금 지구에서 보는 별들이 과거의 모습이듯이 이미 멸망한 별을 과거에서 지켜볼 수 있는 위치에서 탐색하는 소설이다. 한 행성과 종족의 멸망이 소설 속에 그려지면서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는 단편이다.


  마지막으로 실린 로버트 리드의 「매로우」는 꽤 어둡고 신비로운 소설이다. 이 소설은 지구 공동설에서 착안한 목성만한 크기의 우주선 안에 있는 공동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매우 흥미롭다. 사실 과거의 이야기가 섞이면서 조금 난해하고 읽기 어려운 면도 있긴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세계관이 이해되고 숨겨진 이야기들이 밝혀지면서 극의 재미가 커진다.

  공동 안에서 벌어지는 ‘캡틴’들의 모험은 마치 미래인들이 원시시대에 들어간 것 같은 느낌을 주면서 원초적인 느낌을 준다. 소설 자체가 고전적인 문체와 분위기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것이 다른 소설들과 차별화된 독특한 개성을 준다. 분위기가 매력적인 소설 중에 하나로 꽤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다. 특히 마지막이 근사하고 마음에 들었는데, 뒤에 실린 작가 해설에서 이 작품이 동명의 장편 소설로 개작되었다는 글을 읽고, 장편소설로도 읽고 싶을 정도로 재미있게 읽었다. 『뉴욕타임스』는 “문자 그대로 무제한의 영감을 품은 작가의 손에서 탄생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라고 평했는데, 거기에 걸맞는 매혹적인 작품이었다.


  SF 독자라면 이런 멋진 SF단편들의 향연을 놓치지 말아야 하고, 기존에 SF독자가 아니더라도 이 책은 얼마든지 재미있는 SF단편집으로 다가갈 수 있다. 오히려 다른 SF단편집에서 보지 못했던 과학적 근거 하에 펼쳐지는 묵직하고 무겁고 위험한 탐험과 모험들이 더 재미있게 다가올 수 있다.

  다 읽고 나서 아쉬운 마음이 든다. 오랜만에 꽉 찬 단편집을 읽었다. 하드SF와의 ‘최초 접촉’(first contact)은 뇌리에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더 읽고 싶다. 다행히 『하드SF르네상스』 2권이 대기 중이라고 한다. 이 갈증을 해소시킬 묵직한 재미가 다시 나를 내리 누르기를 기대한다. 또한, 이 무겁고 단단한 재미와 감동을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한번쯤 맛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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