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졸업하면서 나는 누군가를 너무 사랑하는 일에서도 졸업했다. 이아고처럼 간교하게, 단 하루 사랑하더라도 온몸을 불태우는 사랑보다는 미지근하더라도 평생 이어지는 사랑이 더 낫다는 걸 깨달았다. 누군가를 너무 사랑한다는 것, 그건 자기의 환각을 사랑하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진짜 사랑한다면 '나의 너'와 사랑에 빠질 게 아니라 '진짜 너'와 사랑에 빠져야만 한다. 그건 조금 덜 사랑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건 어렵다. 정말 어렵다. ― 42~43쪽
우주라는 공간은 나무의 나이테와도 같다. 우주의 제일 가장 자리에서는 우주가 만들어지던 순간의 광경이 담겨 있을 것이다. 안쪽으로 들어오면서 우리는 우주의 역사를 모두 보게 될 것이다. 그 어디쯤에 은색 표지의 아인슈타인 전기를 읽고는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은 영원히 나와 함께 있을 것이라고 믿는 소년의 모습도 담겨 있을 것이다. 그 전기를 읽으며 나는 천문학자를 꿈꿨지만, 결국 그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지금의 내가 되기까지 나는 수많은 좌절과 슬픔과 절망을 느꼈다. 그 동안 내가 사랑했던 몇몇 사람들은 영영 내 곁을 떠났고 또 죽기도 했다. 이런 인생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 적도 숱하게 많았다. 가장자리에서 우주의 중심 쪽으로 움직이면서 나는 그런 순간들을 다시 보게 될 것이다. 어쩌면 이 세상에는 오직 나 하나뿐이라고 생각했던 순간도 보게 될 것이다. 소년 아인슈타인의 의문은 내게 절망과 외로움과 슬픔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뜨게 해준 셈이었다. 더구나 이건 믿음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의 문제라고 아인슈타인은 밝혔으니까 말이다. ― 10~11쪽
달리기를 통해 내가 깨닫게 된 일들은 수없이 많다. 뛰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드는 바로 그 순간이 바로 뛰어야만 하는 순간이다. 아무리 늦게 뛰어도 걷는 것보다는 뛰는 게 빠르다. 혹은 앞에서 누군가 사진을 찍고 있다면 제아무리 힘든 순간이라도 환한 표정으로 자세를 잡아야만 한다 등등등.
그중 가장 내 삶에 영향을 끼친 깨달음은 져도 괜찮다는 깨달음이다. 반드시 이기지 않아도 좋다. 결승점까지만 가면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 깨달음이 내 인생을 바꿨다.
러너란 마음이 아니라 몸이 움직이는 사람이다.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이해하는 사람. 경험의 인간. 그게 바로 러너다. ― 99~100쪽
마라톤은, 절묘하게도 모든 인간들을 동등하게 만드는 거리만큼 달리는 일이다. 적어도 근육의 피로에 있어서는 말이다. 그러므로 러너는 절망이란 희망에서 몇 킬로미터 부족한 상태를 뜻한다는 걸 잘 알고 있는 자들이다. ― 102쪽
올 한 해, 그 어떤 상황에 처하든, 그 어떤 일들을 겪든, 자신에 대해 실망하든 절망하든, 피로하든 죽고 싶든, 한 번이라도 결승점에 들어가본 러너라면 그 사실을 이해하기를, 결승점은 어떤 경우에도 충만한 상태로 들어갈 수 있는 지점이 아니면서 동시에 그 순간의 충만함은 어떤 경우에도 파기되지 않는다. 삶의 희망 역시 마찬가지다. ― 103~104쪽
초지일관이라는 말도 있지만, 나는 매번 달라지는 것을 더 좋아한다. 그건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백년동안의 고독』을 쓴 소설가 마르케스는 자서전을 쓰면서 다음과 같은 제사를 붙였다. '우리가 살았던 게 아니라 우리가 들려주기 위해 다시 기억하는 게 인생이다.' 나는 내 인생의 자서전을 내가 세웠던 목표가 아니라 내가 경험했던 기쁨과 고통으로 채워넣고 싶다. 많은 얘기를 들려줄 수 있도록 내 계획을 배반하는 더 많은 일들이 일어나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 111쪽
결국 우리 모두는 죽든 말든 그게 무슨 상관인가! 놀이터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스케이트보드를 질질 끌고 가노라면 창피해서 죽을 지경인데. 그애들에게서 타는 방법을 듣고 있노라면,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것은 안 된다는 말은 입 밖에 꺼낼 수도 없다. 러닝화를 살 때는 오후에 사라. 왜냐하면 오후에 발은 길어지니까. 슬럼프에 빠졌다면 새로운 것을 시작해라. 왜?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것은 안 되겠지만,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아무리 해도 시작할 수조차 없는 일은 세상에 없으니까. 그리고 뭔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한, 우리는 영원한 초등학생이니까. 영원한 초등학생. 마음에 드는 말이다. 슬럼프에 빠진 초등학생을 본 적은 없으니까. ― 122~123쪽
고통에 관한 한, 보스턴 마라톤대회에서 칠 회나 우승한 클래런스 드마르의 말이 가장 인상적이다. "필사적으로 달려서 고통을 없애버려라Run like hell and get the agony over with." 멋진 말이다. 'hell'이란 단어 속에 끔찍한 고통의 의미가 들어 있으니 미리 달리기로 엄청난 고통을 불러일으켜 자잘한 고통 따위는 삼켜버리라는 뜻이 담겼다. 언덕을 향해 최대한 내 몸을 밀어 붙일 때,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감미로움을 느낄 때, 나는 러너들이 수행자와 같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고통마저도 그 자체로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니 말이다. ― 130~13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