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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트 2007.겨울 - VOL.3
학산문화사 편집부 엮음 / 학산문화사(잡지)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December Rail by Tiv
깔끔한 그림체. 마지막 장면은 은하철도 999가 떠오른다. 창에 비친 것을 보고 옆 좌석에 앉은 소년을 그제야 보는 소녀. Boy meets girl. 12월, 1년의 끝에서 만난 기차 속 소년과 소녀. 짧은 분량 안에 따뜻하면서도 시원한 묘한 느낌을 준다.
그랜드 마마 피쉬 by 박형동
꿈속에서 수족관 속 물고기 소년을 만나고, 할머니 물고기 안에서 오랜만에 편안한 잠이 든다. 이상한 나라로 빠지는 앨리스처럼 돌연 다른 환상 속 세계로 빠져버린 소녀지만, 그녀는 그 어느 때보다도 깊은 단잠에 빠진다. 그건 할머니의 품속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단잠에서 빠진 소녀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환상이란 때론 그런 게 아닐까.
月草 by take
소년은 개울에서 인어를 보고 데려온다. 그리고 인어에게 비닐을 묶은 금빛 끈을 선물로 준다. 인어는 욕탕 속에서 다시 자신이 살던 세계로 돌아간다. 재미있는 상상력, 깔끔한 그림체. 세 작품 모두 아주 작디 작은 분량 속에서 포근하고 따스한 느낌을 주는 정감가는 그림들을 그렸다. 모두 일상에서 환상을 마주치게 되는 인물들이며, 소년 혹은 소녀가 나온다는 점이 공통점이다. 그것은 우리들 무의식 속에 숨어 있는 비일상에 대한 원형이 아닐까 싶기도 한다. 꿈처럼, 때론 일상에서 어느 순간 환상 속으로 빠져버릴 지도 모른다는 것. 거기서 누군가를 만날지도 모른다는 것. 그건 누구나 순수하게 갖고 있는 사랑의 예감이 형상화된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보이 밋 걸 같은.
특집기획
신본격 마법소녀 리스카 / 니시오 이신
「신본격 마법소녀 리스카」는 『젊은|감성|일러스토리|소설|무크 파우스트』에서 1호 때부터 재미있게 읽고 있는 작품이다.
…왜, 마법이 있는 거야? …왜, 변신하는 거야? …왜, 어른이 되는 거야? 왜, 소녀야?
라는, 첫 장의 물음이 항상 인상 깊게 다가오는 소설이기도 하다.
‘마법소녀’라는 단어가 들어갔기 때문에 처음에는 진부하다는 고정관념을 보고 읽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앞에 ‘신본격’이 들어가지 않았는가. 애니메이션에서 보던 진부한 마법소녀물과는 다른 비틀어진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것이 이 소설이 갖고 있는 매력이며 장점일 것이다. 라이트 노벨답게 캐릭터가 중요시되고, 특히 ‘마법소녀’라는 것은 독자를 끌어들일 풍부한 매력을 이미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호에서는 사실 작은 이야기와 뻔한 반전으로 재미가 떨어지긴 했지만, 흥미로운 기대감을 심어주는 데는 충분했다. 왜냐하면, 이는 이야기의 도입부, 즉 프롤로그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 이야기가 더 흥미진진하게 펼쳐질 거란 기대를 독자에게 심어준 것이다. 그리고 2호에서 읽게 된 리스카는 1호의 이야기보다 더 나아진 점들이 많았지만, 그래도 역시 아직은 기대에 지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일단, 같은 패턴의 지루함이다. 마법소녀물의 한계일 수도 있는 이 점은, 한 회마다 하나의 적이 등장하고 그것을 마법소녀가 퇴치하는 식이다. 게다가 그것도 고정불변의 변신씬과 함께 말이다. 이 때문에 이야기는 힘을 잃는다. 또 같은 식이네, 라는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캐릭터의 매력에 기대는 것이 아무리 라이트노벨이라지만, 단 둘의 캐릭터 그 중에서 모에를 느낄 수 있는 캐릭터는 리스카 혼자뿐인 상황에서 많은 독자를 끌어들일 요소가 적은 것이다. 물론 남자 주인공인 화자는 독특한 캐릭터 성을 가지고 있고 2호에서 가장 큰 수확인 다른 사람을 죽이는 비범함을 보이면서 독자적인 위치를 자리 잡는다.
하지만, 아무튼 2호까지는 아쉬운 점이 컸다. 3호는 어떠한가. 3호는 1,2호 보다도 훨씬 나아갔다고 생각한다. 물론 스토리 진전이 크게 있었던 것도 아니고, 화려한 장면 연출이나 독특한 캐릭터 성이 돋보인 것도 아니다. 그러나 1, 2호에 나왔던 기존 공식들을 깨트렸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또 다른 가능성을 심어준 것이다. 1, 2호를 읽으면서 느꼈던 위화감 중 가장 큰 점은 변신만 하면 끝이라는 것이다. 이건 희극에서 나오는 기계장치의 신을 연상시키는데 온갖 문제들이 많다고 해도 리스카가 변신해서 나타나면 모든 사건이 종결되어 버리니 식상하기 이전에 재미가 없다. 처음에는 오, 신선한데, 재미있네, 라는 느낌도 있었지만, 그것도 1호에만 한정되어 있다.
3호는 어떠한가? 지금껏 나왔던 시시껄렁한 적들과는 차원이 다른 적을 등장시켰다. 그야말로 초강수. 그로 인해 독자들은 지금껏 느껴보지 못했던 긴장감을 느껴보았다. 어떤 때든 변신만 하면 끝장이니, 긴장이 흐를 리가 없었던 것에 반해 이번에는 변신해도 잡아먹힐 뿐인 강력한 캐릭터인 것이다. 게다가 기존에 나왔던 적과도 다르다. 적의 적인 것이다. 새로운 세력의 등장은 항상 이야기를 풍부하게 만들어 주는 요소로 작용한다. 1,2호 보다 그래서 더욱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다. 이 적을 어찌 퇴치할 것인가. 이들은 살 수 있을 것인가. 적을 없애버릴 수 있을 것인가. 협력할 수는 없는 것인가.
새로운 정보는 그리 많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이 새로운 캐릭터의 등장은 앞으로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줄 중요한 요소이다. 지금까지 대로 두 명의 캐릭터만 유지된 채 이야기가 진행된다면 이야기는 금세 지루해지고 만다. 물론 새로운 캐릭터가 아직 이 소설에 남아있는 모든 문제점들을 해결해 줄 열쇠는 아닐 것이다. 다만, 열쇠를 발견해줄 인도자 정도는 될 수 있을 것이다. 무지막지하게 강력하며, 아군이 아닌 적이었던 캐릭터라는 것은 드래곤볼의 베지터부터 시작해서 수많은 만화나 소설에서 사용된 장르적 패턴이다. 이 패턴을 작가가 얼마나 더 매력적이고 새롭게 묘사하는 가에 따라, 앞으로 신본격 마법소녀 리스카의 이야기가 탄력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다음 편에는 더 스토리가 진행되어야 하지 않을까도 싶다. 이제 예비로 깔아두는 전개는 충분히 된 것이 아닌지.
제로자키 키시시키의 인간노트 / 니시오 이신
재미는 있었지만, 살인귀 집단이라는 소재가 내게는 썩 와 닿지 않았다. 만약 사람을 죽이는 주인공과 죽이지 않는 주인공, 두 개로 소설을 구분한다면 후자를 더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능력자물이나 캐릭터 개성 면에서는 뛰어난 장점을 보인 소설이다. 일단, 능력자들의 대결이란 점은 만화나 소설에서 많이 나오는 것으로 누구나 쉽게 좋아하는 매력적인 소재이다. 부기팝도 그렇고 상당히 많은 곳에 영향을 끼친 죠죠의 기묘한 모험도 그렇고 말이다. 다른 시리즈도 읽어봐야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겠지만, 아직까지는 불쾌감이 재미를 더 앞서고 있다는 느낌이다. 소재 때문에 취향이 안 맞다고도.
니시오 이신 슈퍼 인터뷰
인터뷰 기사인데, 굉장히 유익하고 재미있었다. 역시 잡지에는 이런 게 유익한 게 아닌가 싶다. 사실 소설이야 단편이 아닌 것들은 대부분 단행본으로 나오니 나중에도 볼 수 있지만, 이런 인터뷰들은 잡지가 아니고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이 아닌가. 니시오 이신이 데뷔하기 전에 얼마나 많은 글을 썼고, 현재는 어떤 방식으로 글을 쓰는지 자세히 나와 있었다. 그 모든 것을 그대로 따라하거나 받아들일 수는 없겠지만, 충분히 참고가 될 것이다.
그녀 집으로 오세요 / 이종호
한국 작가의 작품이다. 그 때문에 편견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앞에 다른 라이트 노벨 소설들보다 흡인력이 떨어졌다. 속도감의 차이라고 할까. 라이트 노벨 다운 속도감보다는 일반 소설의 속도감 때문에 이 잡지 전체와 맞지 않는 위화감을 느꼈다. 차라리, 따로 단행본으로 나오면 그 때는 재밌게 읽었겠지만, 이렇게 잡지 속에 포함되면 왠지 잘못 자리 잡은 작품처럼 느껴졌다. 그렇다고 너무 진부하거나 못 쓴 글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캐릭터들도 약간은 무미건조하고, 공포도 기존의 공포와 아주 색다른 것도 아니다. 다만, 이야기가 이게 끝이 아니고 앞으로도 더 남아 있기 때문에 기대를 할 뿐이다. 이건, 도입부일 테니.
킬킬킬 / 강병융
강병융 작가의 작품을 읽어본 건 많지 않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만족을 주거나 큰 재미를 주지 못해왔다. 글은 잘 쓰는 편이고 이야기도 색다른 점도 많지만, 그게 재미란 요소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그래도 전에 실렸던 작품보다는 이번 킬킬킬이 조금 더 나아졌으나, 그래도 아쉬운 점이 많이 뛴다. 극 초반부터 예상이 가는, 맥없는 결말이나 애정이 가지 않는 캐릭터들. 이야기가 항상 얌전하게 갈무리 되는 느낌이다. 차라리 그냥 폭주족처럼 마구마구 거침없이 아나가는 극적인, 갈 데까지 가는 그런 이야기를 쓰는 게 더 낫지 않겠는가.
무지갯빛 다이어트 코카콜라 레몬 / 사토 유야
기대주라는 사토 유야의 글 역시 그렇게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어디가나 평들도 좋은 평을 못 봤고. 이번은 특히 미지근했다. 진짜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을 바랐는데, 이번에도 역시 그대로였다.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하고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지만, 기대감이 크게 들지 않는다. 과연 이 색 시리즈에 멋진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까. 의문만 자꾸 든다.
ECCO / 타키모토 타츠히코
저번 호에 실렸던 ECCO는 의아함만을 남겨주었던 글이다. 모호하다고 할까? 중반까지는 재미있었지만, 막판에 와서는 사람을 벙찌게 만드는 결말을 가지고 있었다. 다행히 이번 호에서는 저번 호에 느꼈던 감정들을 많이 해소시켜 주었다. 그러나 또다시 알 수 없는 결말로 치닫는 것은 같았다. ECCO는 아직 판단을 내리기에는 애매모호한 글이다. 글의 목적이 잘 부각되지 않았고, 세계관도 성립되지 않았다. 독자가 매력을 느낄만한 요소가 아직은 극히 적으며, 이야기도 제대로 전개되지 않았다는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역시 작가의 입담이나 글 솜씨는 뛰어나다고 느낀다.
월드 미트 월드 / 모토나가 마사키
처음에는 색다른 어휘나 세계관을 이해하지 못해서 어리둥절했지만, 곧 그것을 파악하고 난 다음부터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일단, 시리즈물로 보이지 않는 단편 구성이며 중반 부분에 두 세계관의 만남을 암시하는 부분은 제목을 스쳐 읽어서 그런지 몰라도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어쩌면 소년과 소녀의 만남이라는 것은 두 개의 다른 세계가 만난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일까. 하여간, 알듯 모를 듯 전개되는 이야기는 결국 예정된 결말을 맞이한다. 인상적인 단편이다. 크게 재미있거나 캐릭터가 매력적이거나 한 건 아니지만, 괜찮게 읽은 단편이었다.
호질 / 이선웅
제1회 파우스트 소설상 우수상을 탄 호질. 탄탄한 글솜씨와 무난한 전개, 그리고 캐릭터성. 적절한 소설이었다. 확실히 엄청난 무언가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당선작으로 뽑을 수는 없겠지만, 충분한 수작이라는 느낌이었다. 꽤 몰입하면서 읽었고, 만족했기 때문이다. 역시 심사평에 지적이 나온 대로 끝이 좀 성급하다는 느낌이 들지만.
코마츠키 마키코 / 마이조 오타로
1호에서 실린 마이조 오타로의 글은 충격이었고 재미있었다. 자신과 그 의식 속 안에 또 다른 세계와 거기에 있는 자신. 마치 작가가 판타지 속 세계를 창조하는 것을 비유하는 듯한 그 이중적 구조와 무엇이 허상인지 진실인지 알 수 없게 만드는, 매트릭스 같은 구조가 참으로 마음에 들었었다. 이번 작품 역시 그런 점이 드러난다. 끊임없이 자신 안에 또 다른 인격을 만들고 죽이고를 반복한다. 그 새에 그 인격과 진짜 인격이 뒤바뀔 수도 있다는 의문을 제기한다. 혼란스럽다. 복잡하다. 신선하다. 머리에서 혜성이 폭발한 것 같은 감탄을 느낀다. 이런 독특한 사고 전개 소설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고, 또 영감을 주게 만드는 것 같다.
The world is full of angry young men / TAGRO
어른이란 무엇일까. 성장이란. 다시금 생각해 보게 만든다. 이전의 두 작품보다 더 좋았다.
이상한 사람들 / 와타나베 코지
04 사회 복귀, 05 쉬운 여자. 04 사회 복귀는 실업, 히키코모리 등을 문제 삼은 꽁트 같은 느낌으로 재미있게 읽었다. 굉장히 인상적이라고 할까. 05 쉬운 여자는 결말이 호러스럽다. 링2를 떠오르게 하기도 하고. 역시 이상한 사람들이다.
성공학 캬라 교수 / 세이료인 류스이
재미있었다. 실제 게임처럼 진행되어서. 나는 생각보다 빨리 나왔다. 마이너스 사고를 플러스 사고로 바꾼다. 낙천적, 긍정적 삶을 산다. 이것이 성공의 열쇠중 하나일 것이다.
경성탐정록 - 운수나쁜 날 / 한동진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다. 당시 시대상을 그대로 그렸다는 점이 멋졌다. 글도 잘 썼고, 우리나라 추리에도 이런 작가들의 노력에 의해서 대박 작품이 나왔으면 좋겠다.
파우스트 3호
이번 3호는 전보다 더 두꺼워졌고 전보다 더 만족스러웠다. 예전 나스 키노코보다 인터뷰도 더 알차고 흥미로웠으며, 한국 작가의 작품이 4편인 실린 것도 좋았다. 미스터리 팬들의 좌담회도 유익했다. 우리나라 미스터리 시장이 어떠한지 알 수 있었다. 2000년대 일본 서브컬처의 흐름과 전망에서도 일본의 미스터리 발전 방향을 알 수 있었다.
다음 호에는 좀 더 다양한 국내 작가의 작품이 실렸으면 한다. 파우스트 문학상은 정확한 시기를 정해서 1년에 한 번 정도 정기적으로 열면 어떨까 싶다. 2회의 참여율 저조를 보면 연속으로 여는 것은 힘들 테니 말이다.
아무튼 이런 무크지가 꾸준히 나오는 것만으로도 그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끊기지 않고 꾸준히 나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