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시작되는 순간은 황홀하다. 이 작은 꽃망울을 시작으로, 온 들녘이 곧 그 빛으로 뒤덮일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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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7-08-13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아이는 왜 혼자 저렇게 빨리 피어났을까요? 성급하긴... ^^

turnleft 2007-08-13 12:42   좋아요 0 | URL
그 덕에 더 돋보이잖아요. 부지런한 대가로 그 정도 돋보일 자격은 주어져야겠죠 ^^
 



사진을 찍으러 다닐 때 보통은 "어디어디를 사진찍으러 간다"라고 한다. 어디로 간다고 했을 때 길은 그저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 거쳐야만 하는 불가피한 무엇이 된다. 회색빛 아스팔트가 끝없이 이어지는 하이웨이를 타고 달리자면 목적지에 도달하는 최단 경로는 되겠지만, 정작 이동 중에는 운전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있는게 없어 지루할 뿐이다. 과연 내가 도달하고자 하는 그 곳이 이 지루함을 감당할만한 가치가 있는 곳일까? 정보가 확실하다면야 걱정할게 없지만, 인생살이 대개 그러하듯 결과는 어찌될지 모른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해야 한다고 배우지만(사실상 강요당하지만), 그게 딱히 미덕인 줄인 이 나이 되도록 아직 잘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backroad 가 좋다. 원하면 언제든 멈출 수 있다는 것도 좋고, 내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의외의 장면들이 내 입에서 탄성을 자아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론, 덕분에 나는 대개 혼자서 여행을 해야만 한다. 사진 찍는 사람이 아니라면 별 관심 없을 장면들에 매번 멈춰서는 것도 동행에게 여간 민폐가 아니기 때문이다. 때로는 황홀한 풍경을 같이 감탄해주는 사람이 없다는게 아쉽기도 하지만, 어쩌겠는가, 느리게 돌아서 가는 여정을 함께 할 딱 맞는 동반자가 흔하다면 그것 또한 별로 반길 일은 아니리라.('정말 좋은 사람' 이라는희소성이 떨어지잖아)

워싱턴주 Yakima 인근의 작은 마을의 꼬부랑길을 달리다 만난 이 풍경은 아마 미국 서부의 전형적인 풍경이 아닐까 싶다. 여름의 작렬하는 햇살에 노랗게 말라 죽은 풀들과 파란 하늘, 그리고 홀로 쓸쓸히 서 있는 구형 스테이션 웨건. 모퉁이를 돌아 이 풍경이 눈에 들어왔을 때 어찌나 반가웠던지. Backroad 만이 줄 수 있는 즐거움이란 이런거다. 멀리 돌아왔지만 그럼 또 어떤가. Carpe Diem. 현재를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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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8-12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아무래도 좌회전님의 직업이 궁금해졌어요(분명 프로그래머라고 안했나요?)
이 사진은 컴터 바탕화면으로 하면 딱이겠어요!
색감이 꼭 고흐의 그림같잖아요!
이렇게 좋은 데를 많이 가보시고 또 사진으로 남기셨다니 참 부럽고 멋집니다! @_@

turnleft 2007-08-13 04:32   좋아요 0 | URL
프로그래머 맞습니다;; 출장을 좀 자주 다니는 편이지요;;

다락방 2007-08-19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탄말고는 더이상의 말이 필요없는 사진이로군요!
 



간혹 사진에서 우주를 향해 해바라기처럼 고개를 쳐든 커다란 안테나들을 볼 때면 먹먹한 기분이 들곤 한다. 인간이란 광막한 우주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보냈을지도 모를 희미한 신호를 기다리는, 그저 기다리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는게 새삼 느껴지기 때문이다. 칼 세이건이 묘사한 것처럼, 태양계를 떠나는 보이저호가 뒤돌아본 지구는 검은 우주를 배경으로 작게 빛나는 <창백한 푸른 점>일 뿐이다. 그 무한의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지구를 상상할 때면, 끝을 알 수 없는 우주 속에 어쩌면 우리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는 고독함이 문득 나를 엄습하곤 하는 것이다.

로마의 한 숙소에서 내다본 도시의 밤하늘은 건물 옥상마다 빼곡이 들어선 안테나로 가득했다. 저 건물 안에서 이태리인들은 자신들이 그토록 열광하는 축구경기를 보며 저녁 식사를 하고 있을 터였다. 칸칸이 나누어진 공간 안에 스스로를 유폐시키고 대신 안테나를 내밀어 외부의 신호를 받아들이는 사람들. 어떤 이들은 웃고, 어떤 이들은 울고, 저마다의 일상이라는 맥락 속에서 저마다의 감정을 경험하고 있겠지만, 다투듯 밤하늘로 솟아오른 안테나에서 어떤 처연한 고독이 느껴진 것은 내가 낯선 땅에서 또 하룻밤을 보내고 있는 이방인이었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인간이 우주 속에서 고독한 존재인만큼, 우리 개개인도 그 고독을 어느 정도는 공유하고 살 수밖에 없지 않을까.

오늘도 난 안테나를 세운다. 누군가의 신호를 받아들이기 위해서, 그리고 누군가에게 신호를 보내기 위해서. 글을 쓰고, 글을 읽고, 끊임없이 신호를 보내고 받는 이 몸짓으로야 겨우 존재라는 외로움을 견딜 수 있기 때문에. 우주로 쏘아보낸 신호만큼이나 기약 없는 몸짓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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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8-11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테나 보니 엘신님 생각납니다 =333

turnleft 2007-08-11 11:38   좋아요 0 | URL
아, 자칭(?) 외계인이라던 그 분?

마늘빵 2007-08-11 23:46   좋아요 0 | URL
넵 요새 뜸하던데... :)

turnleft 2007-08-12 02:37   좋아요 0 | URL
저는 잘 모르는 분이라.. -_-a
 



기억이란 이토록 연약한 것이어서 이젠 그녀의 얼굴도 목소리도 흐릿해져 버렸다.

하지만 그 빈자리는 오롯이 각인처럼 내 마음에 남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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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8-10 0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그림? 혹은 사진?
도저히 사진이라고는 생각 안되는데... 그치만 사진일텐데...ㅠㅠ

네꼬 2007-08-10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먹먹-해지는군요. 물 위에서 외로운 실루엣이라니. 비도 오는데. 훌쩍.

turnleft 2007-08-10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셔고양이// 충주호..였던걸로 기억하는데, 아마 맞을거에요. 물가에 실제로 저런 조형물이 세워져 있지요. ^^
네꼬// 비가 오면 확실히 감상적이 되요. 그쵸?

hnine 2007-08-10 1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 이 사진도, 지난 번 그 사진 (다리와 가로등 있는)도, 직접 찍으셨단 말씀이시지요? 와...

twinpix 2007-08-10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환상적이고 멋집니다. 인상적인 사진이에요. 신기해요.

turnleft 2007-08-11 0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nine// 처음 뵙네요. 반갑습니다 hnine님 ^^ 엄.. 제가 찍은 사진 맞습니다 맞구요..;;
twinpix// 번번히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꾸벅)
 



그녀와 걸었던 산책길. 가끔 그렇게 아무 말이 필요 없는 순간이 있다. 그저 같은 순간을 공유하고 있다는 느낌만으로 따뜻했던 그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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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8-09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보라색.
정말 예뻐요...
보정안해도 저런 색상이 나오나요?

turnleft 2007-08-09 12:37   좋아요 0 | URL
그럼요. 매직 아우어거든요. 해진후 30분, 해뜨기전 30분. :)
요 시간대에 사진을 찍으면 보라빛 하늘을 만날 수 있지요.

마노아 2007-08-09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너무 멋져서 저장했어요. 어린왕자를 초청해야 될 것 같은 분위기에요^^

turnleft 2007-08-09 14:52   좋아요 0 | URL
엇... 저장할 경우 보실 때마다 1000원씩 내셔야 하는데 ㅎㅎ
물론 농담이구요 ^^; 저 때는 제 옆에 어린왕자가 있었답니다 :)

다락방 2007-08-19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저녁,
이라는 맨 끝의 단어와 사진은 절묘하게 어울리는군요.
그 저녁,
이 궁금해지고 옅보고 싶어지는데요 :)

turnleft 2007-08-19 16:27   좋아요 0 | URL
물론, 비밀입니다!(단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