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찍으러 다닐 때 보통은 "어디어디를 사진찍으러 간다"라고 한다. 어디로 간다고 했을 때 길은 그저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 거쳐야만 하는 불가피한 무엇이 된다. 회색빛 아스팔트가 끝없이 이어지는 하이웨이를 타고 달리자면 목적지에 도달하는 최단 경로는 되겠지만, 정작 이동 중에는 운전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있는게 없어 지루할 뿐이다. 과연 내가 도달하고자 하는 그 곳이 이 지루함을 감당할만한 가치가 있는 곳일까? 정보가 확실하다면야 걱정할게 없지만, 인생살이 대개 그러하듯 결과는 어찌될지 모른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해야 한다고 배우지만(사실상 강요당하지만), 그게 딱히 미덕인 줄인 이 나이 되도록 아직 잘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backroad 가 좋다. 원하면 언제든 멈출 수 있다는 것도 좋고, 내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의외의 장면들이 내 입에서 탄성을 자아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론, 덕분에 나는 대개 혼자서 여행을 해야만 한다. 사진 찍는 사람이 아니라면 별 관심 없을 장면들에 매번 멈춰서는 것도 동행에게 여간 민폐가 아니기 때문이다. 때로는 황홀한 풍경을 같이 감탄해주는 사람이 없다는게 아쉽기도 하지만, 어쩌겠는가, 느리게 돌아서 가는 여정을 함께 할 딱 맞는 동반자가 흔하다면 그것 또한 별로 반길 일은 아니리라.('정말 좋은 사람' 이라는희소성이 떨어지잖아)

워싱턴주 Yakima 인근의 작은 마을의 꼬부랑길을 달리다 만난 이 풍경은 아마 미국 서부의 전형적인 풍경이 아닐까 싶다. 여름의 작렬하는 햇살에 노랗게 말라 죽은 풀들과 파란 하늘, 그리고 홀로 쓸쓸히 서 있는 구형 스테이션 웨건. 모퉁이를 돌아 이 풍경이 눈에 들어왔을 때 어찌나 반가웠던지. Backroad 만이 줄 수 있는 즐거움이란 이런거다. 멀리 돌아왔지만 그럼 또 어떤가. Carpe Diem. 현재를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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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8-12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아무래도 좌회전님의 직업이 궁금해졌어요(분명 프로그래머라고 안했나요?)
이 사진은 컴터 바탕화면으로 하면 딱이겠어요!
색감이 꼭 고흐의 그림같잖아요!
이렇게 좋은 데를 많이 가보시고 또 사진으로 남기셨다니 참 부럽고 멋집니다! @_@

turnleft 2007-08-13 04:32   좋아요 0 | URL
프로그래머 맞습니다;; 출장을 좀 자주 다니는 편이지요;;

다락방 2007-08-19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탄말고는 더이상의 말이 필요없는 사진이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