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한 세계를 탐구한다 - 물질과 생명을 잇는 물리학의 세계
다치바나 다카시.요네자와 후미코 지음, 배우철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4년 11월
평점 :
절판


다치바나의 시사비평 ‘멸망하는 국가’를 먼저 읽고, 꽤 괜찮다는 느낌과 함께 어쩐지 찝찝한 느낌 같은 게 좀 있다 하고 생각했는데 이 책은 그냥 과학에 대한 것이다. 다치바나는 유명 저널리스트이고, 요네자와는 유명 과학자다. 특히 요네자와는 여성 과학자인데, 도쿄대 과학부에 여학생이 많지 않던 시절 공부를 시작해서 여성과학자의 대모처럼 돼 있는 인물인 모양이다.
책은 재미있었다. 원자가 불규칙하게 배열돼 있는 고체 혹은 그런 상태를 아몰퍼스 amorphous 라고 하는데 요네자와는 이 물질의 전문가다. 다치바나가 질문을 던지고 요네자와가 대답하는 방식을 통해 두 사람은 아몰퍼스와 현대 물리학, 현대 물리학과 현대의 과학을 이야기한다. 여기서 ‘현대의 과학과 현대의 세상’ 혹은 ‘미래의 과학과 미래의 세상’쪽으로 좀더 이야기를 진행해나갔다면 더 좋았을지 모르지만.
책의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제목이 멋지다. 책이 부실하다는 것이 아니라, 랜덤한 세계라는 말 자체가, 저 두 사람의 대화에서는 좀 가려진, ‘미래의 과학과 미래의 세상’에 대한 시사점을 안고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전문적인 내용이 좀 많이 나오는데, 밑의 주(註)들만 읽어도 소득이 된다. 읽고 나서 다 까먹어서 문제지.


인상 깊었던 요네자와의 말 한 구절...

“유치원 시절부터 삼각형의 내각의 합 같은 문제를 풀어보았습니다. 기하학을 좋아해서 더 가르쳐달라고 어머니께 떼를 쓰곤 했지요.”

대단한 꼬맹이... 천재로 타고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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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9-17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ㅋㅋ 읽고나서 다 까먹는 책.. 아몰포스하고 그 누구더라 20살에 죽었다는 누구의 군론 밖에 생각이 안 나네요 ㅎㅎ

딸기 2007-09-17 15:53   좋아요 0 | URL
저는 읽은지 몇달 지났더니 군론이라는 말 밖에 생각 안나요 ㅋㅋ
 
미국민중사 1
하워드 진 지음, 유강은 옮김 / 이후 / 2006년 8월
평점 :
품절


 하워드 진의 이름은 함부로 막 부르거나 쓰고 싶지가 않다. 좀더 경외심을 가지고 얘기하고 싶기 때문이다. 현재의 불의 앞에 눈 감지 않지만 역사의 발전(억압받는 자들의 승리)를 낙관하고, 막 나가는 사회를 통렬히 비판하면서도 인간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는 역사학자.

미국민중사는 잘 알려진 책이고, 하워드 진의 ‘대표작’이다. 그래서 두껍고, 거기다 2권으로 돼 있고, 비싼 이 책을 사서 읽었다. 미국 역사에 대한 관심보다는 하워드 진에 대한 애정 때문에 이 두꺼운 책들을 읽은 셈이다. 갖고 다니기도 무거워서 저녁마다 집 식탁에 앉아 줄 쳐가며 읽었다. 어떤 부분은 좀 지겨웠고 어떤 부분은 신기했다. 미국 역사를 워낙 잘 몰랐던 탓일까. 너무 자세히 써놓아서 머리 속에 잘 안 들어와 슬슬 넘어간 부분도 많았다.

미국민중사를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 하나. 역사학자가 쓴 역사책에서 나 같은 독자가 얻을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은 무엇일까?

‘민중사’가 그냥 미국의 역사와 다른 것은 분명한데, 역사학적 방법론에서도 달랐다면 더 재미있었을지 모른다(어떻게 달라야하는 건지는 나도 잘 모르지만). 대통령과 정치인 중심의 역사가 아니라 밑바닥 중심의 역사라는 점에서 보면 그냥 ‘역사’와 ‘민중사’는 크게 다른 것 같긴 하다.
그런데 역사를 보는 또 다른 눈과 방법론을 일깨워주는 측면에서라면 차라리 윌리엄 맥닐의 '전염병의 세계사'처럼 아예 새로운 시야를 틔워주는 쪽에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두 종류의 역사학자를 비교하는 것이 우습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굳이 비교를 하는 것은, '전염병의 세계사' 쪽이 "국왕과 장군 만으로 역사가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라는 걸 더 잘 보여줬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럼 국왕과 장군 외에 누가 역사를 움직였나? 맥닐은 전염병, 기후, 기생적 정치체계의 발달 같은 요인들을 든다. 하워드 진은 '민중의 투쟁'을 든다. 둘 다 맞는 얘기인데, 시야를 넓혀준 쪽은 (내 경우) 맥닐이었고, 감동적인 것은 하워드 진 쪽이다.

역사학자라면 역사학으로 평가받아야지 '진보냐 안 진보냐(좌파냐 안 좌파냐)'를 기준으로만 평가해서는 안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학문적 성과'만이' 평가의 기준이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중요한 부분임에는 틀림없다. 그 점에서 '미국민중사'는 (이 책을 1970년대에 읽었다면 엄청 감동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전염병의 세계사'보다 재미 없었다.
하워드 진에 대해 특별한 관심이 있다면 모르되 그렇지 않고 그냥 미국 역사를 알고 싶은 것이라면, 좀 많이 부담스러운 ‘미국민중사’보다 조금 간단한(그렇다고 해서 얇은 책은 아니지만) 케네스 데이비스의 ‘미국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 미국사’를 읽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민중사가 감동적인 이유는? “싸우려 애써봐야 소용없어”“역사는 강자의 편이야”라고 말하는 무기력함 앞에서 희망과 용기가 되어주는 것은 하워드 진과 같은 역사의 메신저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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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7-09-18 0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국 민중사도, 전염병의 세계사도 꼭 보아야 할 책이군요. 쭈욱 담아놓고는 있었지만 언제볼 지 알 수 없어서 못 사는 책들이야요...ㅜ.ㅜ

딸기 2007-09-18 15:32   좋아요 0 | URL
그대신 마노아는 다른 책을 많이 읽잖아. :)
 

한때 중앙아시아 일대를 호령한 `티무르의 제국'으로 서방에까지 위용을 떨쳤던 실크로드의 나라 우즈베키스탄. 수십년에 걸친 옛소련의 지배에서 벗어나 개발과 성장의 새로운 시대를 꿈꾸고 있는 우즈베크를 찾았다.
동부지방 끝쪽에 있는 수도 타슈켄트의 공항에 내려 유서깊은 오아시스 도시 사마르칸드와 부하라를 지나 서쪽 끝 아랄해(海)까지 가는 길은 멀고 멀었다. 멀리 파미르고원의 빙하에서 발원한 강아무다리야가 수천 ㎞를 흘러 드넓은 사막과 헤어지고 만나기를 반복하면서 황무지의 생명줄이 되어주고 있었다. 아무다리야가 끝나는 지점은 한때 세계에서 4번째로 큰 호수였던 거대한 내륙의 염호(鹽湖) 아랄해.그러나 지금은 강줄기가 거의 끊겨 말라붙은 소금땅이 되어버린 곳이다.

사막의 배들

지난달말 아랄해에 면한 항구도시였던 우즈베크 서북부 무이낙 마을을 찾았다. 한때는 어선 수십척이 마을 앞까지 차오른 물가에 정박해 있고 러시아계, 카자흐계 어부들과 생선 가공공장 노동자들 6만명이 북적거렸다는 곳이다. 그러나 지금 이 곳에서 한때 바다라 불렸던 호수를 찾는 것은 불가능했다. 가늘고 낡은 수도관들이 힘겹게 집과 집을 이어주고 있는 한적한 읍내에서 몇백m만 나가면 덤불이 무성한 사막이다. 염호였던 아랄해가 말라붙은 뒤 남은 것은 소금이 허옇게 말라붙은 잡초 투성이 너른 땅 뿐이었다.
농사도 지을수 없는 짠내 나는 사막에는 버려진 어선들만 남아 있었다. 녹슨 어선들이 모래언덕에서 석양을 배경삼아 서있는 모습은 `흉물스럽다'는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기괴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한때는 어민들이었던 주민들 집 마당에도 낡은 낚싯배들은 어김없이 구석자리를 차지한 채 남아있었다. 이곳이 더이상 어촌이 아니게 된 것은 그리 오랜 일이 아니기에, 어촌의 기억을 연상시키는 낚싯배와 어망들이 그대로 남아있는 것은 이곳 주민들에겐 당연한 일인 것처럼 보였다.






[한때 세계에서 네번째로 큰 호수였던 아랄해는 1970년대 이래 물이 급속도로 줄어들어 지금은 거의 마른 땅으로 변했다. 사막이 되어버린 아랄해 부근 옛 항구도시 무이낙에 버려진 배들이 그대로 놓여져 있고, 마른 땅에 허연 소금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사라진 어촌

아랄해 주변은 한국인들과 같은 얼굴을 한 소수민족 카리칼팍스탄 자치공화국 지역이다. 무이낙에서 대대로 살아왔다는 샤디누프 알리(56)씨는 마당에 설치해놓은 여름용 천막집 `카르위'에서 기자를 맞았다.
열 자녀와 손자손녀 열한명 대가족이 함께 사는 집은 그다지 빈한해 보이지는 않았다. 집 한쪽엔 위성 수신용 접시안테나가 있고 카르위 안에는 최신식 오디오세트를 갖춰놓고 있었다. 겉보기에 우즈베크의 다른 농촌마을 집들과 비교해 손색이 없었다.

하지만 아랄해 어부의 자부심을 안고 살아온 알리 집의 수입원은 물론, 삶의 구조는 과거와는 달랐다. 아랄해가 마르기 전 이곳 어획고는 옛소련 내륙지대 주민들의 생선 공급원이 돼주었고, 1930년대 기근 때에는 숱한 이들의 생명줄이 되었다고 했다. 알리 집도 고기잡이로 먹고 살았다. 그러나 지금 알리의 수입원은 아들들이 러시아와 카자흐스탄에서 건설노동자로 일해 보내주는 돈과 소련 시절부터 제도화돼 있는 얼마 안되는 액수의 연금이다.

[사막이 되어버린 아랄해 부근 우즈베키스탄의 옛 항구도시 무이낙에서 과거 어부였던 샤디누프 알리가 아랄해의 옛 지도를 펼쳐놓고 모래땅에 버려진 조개껍질을 들어보이고 있다.]
 
계절 노동자가 된 어부의 아들들

알리의 아들 다섯 중 넷은 외국에 나가 일하고 있다. 무이낙 사람들은 대부분 알리네 아들들처럼 계절 노동자, 월경(越境) 노동자가 되어 1년중 10달 이상을 외국에서 보낸다. 학교 건물도, 마을회관도 제법 번듯하게 구색을 갖추고 있는 무이낙 읍내는 젊은 남자들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행인들도 별로 보이지 않는 한적한 풍경은 폐촌을 방불케할 정도였다.
마을 중심에 있는 문화회관 한켠에는 아랄해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주는 박물관이 있다. 전시실 벽에는 무이낙에 살던 타타르인 화가가 그린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그림 속 무이낙의 집들 바로 옆에는 출렁이는 바다와 항구를 메운 어선들이 있었다. 고기잡이의 달인들로 소련 정부의 포상을 받았던 `어업 영웅'들의 초상화도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사막이 되어버린 무이낙의 모습, 버려진 어선들을 그린 잿빛 캔버스화들이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전시실 구석 어망과 낚싯배는 시골 박물관의 유물로 전락한 아랄해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한 주민은 "전에는 이곳에서는 매주 목요일을 `물고기의 날'로 정해 아랄해 고기를 기념했는데 1991년부터 그 날도 없어졌다"며 아쉬워했다.

물줄기를 잘라낸 소련

아랄해의 수난이 시작된 것은 1970년대 초. 우즈베키스탄과 접경한 현재의 투르크메니스탄 지역은 천연가스가 풍부하고 목화 생산량이 많은 지역이었다.
소련은 `하얀 금(金)'으로 불리던 수출용 목화를 생산하고 천연가스를 채굴하기 위해 아랄해를 향해 흐르던 아무다리야의 강줄기를 돌려 거대한 운하를 만들었다. 투르크멘으로 향하는 중앙아시아 최대의 이 운하는 길이가 1300㎞에 이른다. 목화와 농작물을 키우기 위한 관개수로는 우즈베크 쪽 건조지대로도 빽빽하게 가지를 펴나갔다. 그 대가로 아랄해는 말라갔다. 1960년 면적 6만8000㎢, 수량 1100㎦였던 아랄해는 물이 줄면서 1987년 남북 2개의 호수로 갈렸다.




소련 정부는 사막 가운데 덩그러니 자리잡은 짠 호수 아랄해를 `자연의 실수'로 여겨, 말라붙는 것에 아무런 죄책감을 갖지 않았다. 냉전 시대 소련에게 환경문제는 관심거리가 아니었다. 소련은 남아랄해 가운데 있는 보즈로즈데니야 섬에 생물학무기 연구시설을 만들어 탄저균이 담긴 드럼통들을 매각하기도 했다.



[아랄해에 면한 항구도시였던 우즈베키스탄의 무이낙은 지금은 활기가 사라진 한적한 시골마을로 변해버렸다. 한 주민이 양을 데리고 마을을 가로지르는 수도관을 가로질러 집으로 가고 있다.]


알리는 "한때는 아랄해에 큰 항구가 세 곳이나 됐다"면서 "물이 마르기 전에는 물고기도 많고 종류도 많아 생선 가공공장들이 24시간 돌아갔었다"고 회상했다. 그랬던 아랄해가 1971∼92년 갑자기 물이 줄어들기 시작했지만 무이낙 주민들은 연유를 몰랐다고 한다. "물은 줄어드는데 소련이 물을 딴데로 돌리는 줄로는 상상도 못했다.운하를 파내 다른데로 물 다 돌린 뒤에야 우린 알았다."
우즈베크가 독립한 뒤에도 아랄해는 돌아오지 않았다. 1970년 아랄해로 유입되던 강물의 양은 1초당 3000∼5000㎥였지만 지금은 15㎥에 불과하다. 현지 공무원은 "아랄해가 완전히 마르지 않을 정도로만 물을 흘려보내고 있다"고 털어놨다.


■ 아랄해, 수난의 역사




지금 2개로 갈라진 아랄해 중 북쪽 호수는 카자흐스탄에, 남쪽은 우즈베키스탄에 속해 있다. 우즈베크 쪽 남아랄해는 2003년 다시 수면이 낮아져 동서로 나뉘었다. 3개가 된 호수의 총 면적은 1만7160㎢로 40년 전의 4분의1에 불과하다. 카자흐 정부는 2005년 다이크코카랄이라는 대규모 댐을 지어 북쪽에서 아랄해로 흘러오는 또다른 강 시르다리야의 물을 모으기 시작했다. 카자흐 정부의 노력으로 북아랄해쪽은 최근 수면이 올라가 수상생물이 늘고 있다. 카자흐의 항구도시 아랄스크에 접했던 호안선은 100㎞나 후퇴했다가 지금은 25㎞ 지점까지되돌아왔다.
문제는 남아랄해. 여전히 면화에 외화 수입을 의존하고 있는 우즈베크 정부는 사실상 아랄해를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아무다리야는 계속 관개수로로 빠져나가고 있으며, 아랄해는 해안선이 수백㎞씩 아래로 내려갔다.
1994년 1월 카자흐, 우즈베크,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등 아랄해 주변 5개국은 연간 예산의 1% 씩을 갹출해 아랄해복구를 위한 기금, 일명 `아랄 펀드(Aral Fund)'를 만들었다. 그러나 우즈베크 정부는 말라가는 아랄해를 그대로 두고 유전, 가스전 개발에더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해 8월 우즈베크 정부는 국영 에너지회사 우즈베크네프테가즈, 러시아 루크오일, 한국 석유공사,중국석유천연가스집단(CNPC), 말레이시아 페트로나스로 구성된 컨소시엄과 협정을 체결해 아랄해 에너지 개발에 본격 나서기로 했다. 남아랄해는 과거의 어촌도시들에서 호안선이 북쪽으로 200㎞ 이상 후퇴한데다, 그나마 우즈베크 정부가 얼마 안 남은 호수 주변지역의 출입까지 통제하고 있어 `숨겨진 호수'가 돼버렸다. 2006년 세계은행이 아랄해 보전 계획에 본격 착수했지만 대부분의 지원은 카자흐가 적극 추진하는 북아랄해 복원에 치중해 있다.


■ 먼지바람에 건강 악화, 염화현상에 농사지을 땅도 잃어

아랄해가 말라붙으면서 드러난 땅은 거대한 염토가 되어 먼지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수량이 줄면서 염도가 높아지는 과정이 수십년간 지속됐던데다가 주변 지역에서 비료를 비롯한 화학물질들이 아랄해로 흘러들어갔기 때문이다.
마른 땅은 국지적인 기후변화를 만들어내 겨울과 여름을 양극화시켰다. 농도 짙은 얕은 호수물이 제대로 대류작용을 하지 못하면서 여름철에 얕은 물만 더워져, 과학자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빨리 호수 물이 증발하고 있다. 남아랄해 중 서쪽 부분은 15∼20년 내 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구온난화와 그로 인한 사막화가 겹쳐 2000년대 들어 남아랄해는 환경 재앙 지역이 됐다. 아랄해 전체 생태계와 아무다리야 하류 델타 식생도 파괴됐다. 유엔개발계획(UNDP) 등 국제기구들은 유독성분이 섞인 모래바람이 강해지면서 아랄해 인근 지역에 암과 호흡기 질병 등이 많아졌다는 조사결과들을 내놓고 있다. 물에 염분이 많아지면서 위염과 담석증 같은 질병도 많이 생겼다. 독일 등 유럽국들과 구호기구들이 정수시설을 제공하고는 있지만 담수 부족은 여전히 큰 문제로 남아 있다.
뿐만 아니라 아랄해였던 지역 말라붙은 땅의 먼지와 소금은 강풍이 불면 15㎞ 높이까지 올라가며, 멀리 중국의 톈산(天山)과 타지키스탄의 파미르고원까지 흙바람이 날아가는 것으로 조사됐다.
아랄해와 아무다리야 보전ㆍ관리를 맡고 있는 아랄델타관리청의 자나베이 일랴소프 국장은 "정부는 사막화를 늦추기 위해 아랄델타 주변지역에 관목숲을 조성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사막지대를 흐르는 아무다리야 곳곳에 댐과 저수지를 만들고, 수자원의 리사이클링(재이용)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랄해 일대의 사막화와 염화현상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아랄해로 가는 거점도시 누쿠스에서 아랄해 어촌이었던 무이낙까지 가는 길 곳곳에서 소금이 지표면으로 올라와 하얗게 변색된 땅들을 볼 수 있었다. 농사가 힘들어진 주민들은 낙타와 양을 키우는 반(半)유목민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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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14 16: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딸기 2007-09-14 17:42   좋아요 0 | URL
앗 비밀글님, 왜 지우셨어요! 뭐가 쑥스러우시다고... 암튼 반갑습니다 :)
 

어떤 땐 내 취향이 남들을 너무 앞서가서 -_- 동의를 통 얻지 못하는데
또 어떤 때엔 너무 느리다. 아, 취향에도 '속도'가 있어야 한다니...

클래식 내지는 음악 뭐 이런 것엔 신경줄의 1%도 쓰지 않지만
1990년 로마 월드컵 테너 빅3 공연을 LCD인가 하는 것으로 처음 보았던 순간의 충격은 잊혀지지 않는다.
2년이나 늦게, 1992년 그걸 보고, 그 LCD 있는 카페에 종종 찾아가
그거 틀어달라 졸라서 몇번이고 반복해 구경하던 기억.
그리고 클래식 좋아하던 선배에게 부탁해서 테이프에 파바로티 노래를 녹음해 받아 듣던 기억.
지금은 파바로티를 대표하는 노래가 된 '네순 도르마'의 그 곡조, 파바로티의 목소리,
'오 솔레미오'를 경쟁하듯 늘여 부르던 파바로티와 도밍고/카레라스의 눈짓들까지 생생한데.

그 파바로티가 세상을 떴다 하니까 섭섭하다.

2년 늦게 시작되어, 그러나 꽤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던 추억이 한 장 접혀들어가는 기분.
나는 버닝이 끝나는 것에도 좀 늦는 편이라서, 혼자 두고두고 생각하고 그런다.




로마월드컵 빅3 공연, 바로 그때의 모습이다. 음질은 과히 좋지 않다.




이것은 '오 솔레미오'.  저 세 사람과 주빈 메타와,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모두 얼마나 행복했을까.


또 하나, 속도전에서 밀려 뒤늦게 버닝한 것은 '커피 프린스 1호점'.
다 끝난 뒤에야 하나TV로 전부 받아보면서 열광했다.

윤은혜 짱. 공유 짱. ^^

 

그리고 나의 또하나의 뒷북,
페더러가 이겼다.

흑흑 US오픈 한 경기도 못 봤어.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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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7-09-10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커피 프린스요? 정말 한 발 늦으셔요~~~ 오랜만에 '닥본사' 하고 복습까지 하며 열광했던 드라마에요. 등장인물들이 그냥 다 좋아요, 다.

딸기 2007-09-10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닥본사가 머예요?
암튼 저도 느무느무 좋았어요. ㅠ.ㅠ

마노아 2007-09-11 15:51   좋아요 0 | URL
'닥치고 본방 사수'란 전문(?) 용어지요^^ㅋㅋ

드팀전 2007-09-10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딕은 또 페더러에게 졌어요.ㅜㅜ 결승도 못갔지요.상대전적 1승 14패...2% 부족이야.페더러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전성기의 샘프라스 밖에 없어요.ㅜㅜ

딸기 2007-09-10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딕이 8강에서 페더러와 붙었다더니...
지난번 호주오픈 때 그 굴욕을 떠올리면, 아무래도 다리 떨려서
맨정신으로 페더러와 붙긴 힘들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데 페더러 역대 최강이라고 하지만, 프랑스 오픈에서 나달한텐 쫌 그랬어요...

드팀전 2007-09-11 18:28   좋아요 0 | URL
저도 기사만 봤는데...잘싸우긴 했나봐요.계속 타이브레이크로 가서 2-2
마지막 세트도 타이브레이크...마지막 두 포인트에서 승부가 갈렸다고 하더군요.패싱샷 하나와 서비스 에이스 하나....종이 한 장의 차이인데 그 종이 한장이 넘기 힘든 벽이지요...가끔 이런 놈들 보면 절망감이 생긴다는...

비로그인 2007-09-10 1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조코비치가 말했듯 (가엾은..다른 player 흉내 좀 냈다고 완전 미운털이 박힌 20살 청년), 부담감과 위기를 견뎌내는 능력과 우아함에 있어 페더러는 절대 강자지요. 오늘 페더러를 이기는 방법이란 기사까지 읽고선, 그래도 라파가 좀 더 잘해서 한번 투탑으로 윔블던처럼 재미있게 가보길 바라고 있어요. xports는 US오픈 중계해준다고 해놓고서 편성이 개떡 (용서해주세요, 이 표현)같아서 말이죠.

딸기 2007-09-11 07:10   좋아요 0 | URL
조코비치가 누구를 흉내냈었나요? 궁금해요, 알려주세요
xports 이건 espn 이건... 제대로 된 스포츠채널이라곤 볼 수 없어요
개떡같다는 것에 100표!

비로그인 2007-09-13 18:09   좋아요 0 | URL
음, 조코비치가 로딕 (목걸이 바로잡기, 옷 어깨춤에서 올리기), 샘프라스 (공치는 특유 포즈, 나달 (양말바로잡기, 엉덩이에 낀 바지 빼기==> 이게 좀 리얼, 푸하하하 했지요), 샤라포바 (귀 위에 머리카락 뒤로 넘기기) 흉내냈어요. 정말로 absolutely terrific character (사회자 둘이서 완전 뒤집어졌음)예요. 패션쇼 무대에선 어찌나 후까시를 잡았던지, 목이 좀 길잖아요. 푸하하하, 정말 귀여웠어요. 라파가 카메라 앞에서 갑자기 경직 (푸하하하)되는 것 마냥.

파비아나 2007-09-10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닥본사란 닥치고 본방송을 사수하라 라는 뜻이에요.ㅎㅎ
xsports는 정말 중계를 해주긴 한거에요. 거의 보지를 못했어요.
그나저나 에넹은 정말 잘하던데요. 윌리엄스 자매 이기는걸 보니 대단했어요.^^

딸기 2007-09-11 07:11   좋아요 0 | URL
ㅋㅋ 그런 말이 있었군요.
에넹이 진짜 잘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한번도 경기를 보지 못하다가...
프렌치 오픈 때 프랑스 여자애(바르톨리,,였던가)한테
무참히 깨지는 걸 보아서 말입니다...
저는 윌리엄스 자매가 무서워요 ^^;;

전자인간 2007-09-11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전음악을 좋아합니다만, 이상하게도 파바로티의 음반은 그가 반토바공작으로 출연했던 <리골레토>밖에 없네요. 그래도 '여자의 마음'을 시원하게 불러제꼈던 그가 이제는 CD의 무수한 홈들 사이에서 굳은 채로만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 아쉽고 슬픕니다.

딸기 2007-09-11 18:12   좋아요 0 | URL
흑흑, 저는 저 위에 적은 것이 제가 아는 클래식의 전부...랍니다
파바로티의 여자의 마음... 그렇게 말씀하시니 들어보고 싶어지네요.
유투브에서 찾아봐야겠어요.

전자인간 2007-09-11 23:29   좋아요 0 | URL
파바로티의 '여자의 마음'이 그렇게 유명한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갖고 있는 파바로티의 유일한 음반(리골레토)이라...
'여자의 마음'은 무인도에서 평생을 살다 온 사람이라도 알만한 노랩니다.
제가 한 번 불러 드릴까요? ㅎㅎ
개인적으로는 '네순 도르마'보다는 파바로티에 더 어울리는 곡이 아닐까... 싶습니다. ^^

마노아 2007-09-11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니의 뒷북이 귀엽고 정겨워요^^ 덕분에 파바로티의 곡을 다시 듣네요.

딸기 2007-09-11 18:12   좋아요 0 | URL
난 니가 귀여워 ^^

딸기 2007-09-12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댓글에 댓글달기는 안되는군요)
전자인간님, 여자의 마음은 갈대와 같다는 그 노래인가요, 혹시?
나중에 꼭 한번 불러주세요~ ^^

전자인간 2007-09-13 18:39   좋아요 0 | URL
댓글의 댓글에는 댓글을 못 달지만, 댓글의 대상인 댓글에 댓글을 또 달 수는 있습니다. (뭔 말이지? -.-a)
그리고, 그 노래 맞습니다. 지금 불러 드릴테니 귀 기울여 잘 들으세요. 거리가 너무 멀어서 아주 조그맣게 들릴 수는 있습니다. ^^;;
 

여행기는 참 쓰기 어렵다. 너무 좋았던 그 순간, 그 사이 별볼일 없었던 순간, 혹은 형편무인지경이었던 순간 등등을 별점 매기듯 점수 매겨 합산해 적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이 여행은 이러저러한 교통사정 탓에 78점짜리 되겠습니다, 이렇게 쓸수 있으면 참 편하겠지만 그럴수가 없으니. 하긴 여행기만 그런 것이 아니라 결국 책도 그렇고 영화도 음악도 그리고 인생도, ‘몇점 짜리’라고 합산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터이다. 그러니까 요는 우즈베키스탄이라는 나라에 달랑 일주일 다녀와서 좋았다 나빴다 혹은 이랬다 저랬다 얘기하는 것은 좀 우습다는 것이고...

꼭 이 나라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여행기라는 것을 (특히 인터넷에) 적어놓으면 사실 인기도 없고(남의 여행기라는 것 90%는 재미없지 않나 싶다) 느낌도 제대로 안 사는 것 같다. 이런저런 핑곗거리를 피해나가려면 느낌이 가장 생생하게 남아있는 순간, 여행 도중 짬날 때나 여행에서 다녀온 직후에 싱싱한 맛에 화르륵 올려버려야 하는 건데.

처음 시작은 타슈켄트였지만, 그저 항공기 도착지가 그곳이었을 뿐이다. 타슈켄트는 ‘중앙아시아의 수도’라고 우즈베크 사람들은 주장한다지만 사실 까자흐스탄의 알마티라던가 차라리 우즈베크의 사마르칸드가 그런 호칭에 더 잘 어울리지 않을까?

 

 

▶ 우즈베크에서의 이동 경로: 타슈켄트에서 무이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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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9-10 2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슬람 타일은 참 예뻐요 ^^ 근대 우즈벡 야간 기차가 이탈리아 기차보다 열배쯤은 좋아보이는군요 ㅎㅎ

딸기 2007-09-11 07:12   좋아요 0 | URL
야간기차 좋은데, 자동차로 4시간 갈 거리 6시간에 가면서 2만5000원...

라주미힌 2007-09-10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와....

딸기 2007-09-11 07:12   좋아요 0 | URL
아직 이쁜 사진은 올리지도 않은 거예요 ^^

파비아나 2007-09-10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러니 저러니 해도 부러워요.ㅎㅎ

딸기 2007-09-11 07:13   좋아요 0 | URL
네, 우즈벡에선 정말 좋았어요. 많이많이 부러워해주셔요

마노아 2007-09-11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부터 시작인 거죠? 지금도 멋진데 더 멋진 사진과 이야기가 나오면 부러워서 기절할 거야요^^ㅎㅎㅎ

딸기 2007-09-11 18:13   좋아요 0 | URL
정말 멋진 예술사진이라고 찍어왔는데,
사람들이 다 사진사의 노력은 안 보고 "카메라 뭐냐" "해상도 좋네"
이런 말만 하더라구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