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의 제국 - 미국은 어떻게 세계 최강대국이 되었나
존 스틸 고든 지음, 안진환.왕수민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그냥 쓱쓱 읽었다. 540쪽 분량인데, 제발 우리나라 책들, 하드커버 하지 말고 폰트 좀 줄이고 위아래좌우 여백 줄이고 줄 간격 좀 줄여줬으면 싶다. 이 책은 250~300쪽 분량이면 딱 적당할 것 같다.

‘미국은 어떻게 세계 최강대국이 되었나’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답은 뭘까? 첫째, 미국은 땅이 넓었고 자원이 많았다. 둘째, 미국인들은 혁신을 잘 했다. 셋째, 미국은 20세기 양대 전쟁의 직접적인 피해를 입지 않았을 뿐 아니라 최대 수혜자였다. 넷째, 잘못된 정치인들과 어리석은 판단도 없지 않았지만 그래도 미국은 비교적 정치를 잘 했다. 기타등등.

다 맞는 얘기인 것 같다. 그 이상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어째서 미국은 땅이 넓었나? 빼앗아서. 어째서 미국인들은 혁신을 잘 했나? 원래가 개혁적이고 고정관념이 없었기 때문에. 어째서 미국은 전쟁 피해를 입지 않았나? 고립주의와 지정학적 특징 때문에. 어째서 미국 정치인들은 정치를 잘했나? 똑똑하고 애국적이니까.... 라고 대답해야 하는 걸까?

책은 부실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방대하지도 않다. 미국 역사(경제사)를 속도감 있게 쫓아가는 재미가 있다. 19세기까지를 너무 좀 길게 적었다 싶은 감이 없지 않으나 20세기 부분(마지막 4분의1) 들어가면 제법 긴박감 있다.

회색 종이로 편집된 부분, 경제사 뒤의 사회정치적 배경을 간략하게 설명한 내용들은 요약이 잘 돼있어서 좋았다. 전반적으로 가치 평가 없이 서술한 책이라, 특별히 경제 분야가 아니더라도 미국사 전반 간결하게 훑는다 생각하고 읽으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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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 기사와 영웅들의 장대한 로망스
토머스 F. 매든 지음, 권영주 옮김 / 루비박스 / 2005년 5월
평점 :
품절


십자군에 대해 별반 관심 없는데, 어찌어찌 집에 이 책이 있는 것을 보고 심심풀이 삼아 읽게 됐다. 읽다보니 재미가 있고 저자가 말하려는 바가 분명해서 쑥쑥 넘겼다. 책 원제는 THE NEW CONCISE HISTORY OF THE CRUSADES 인데 한글판에 부제를 ‘기사와 영웅들의 장대한 로망스’로 달아놨다.
제목 장난질이야 흔하다 해도, 이 경우는 좀 심했다. 요즘 ‘이슬람 바로보기’ 같은 흐름이 분명히 있는데 2005년 출판된 책에서 겨우 이따위 19세기 풍의 부제를 달아놓다니. 이 책은 ‘기사와 영웅들의 장대한 로망스’하고는 완전히 거리가 멀다. 저자가 제목에서 표현한대로, 십자군 역사를 충실하면서도 컴팩트하게 정리해놓은 것이 이 책의 첫 번째 장점이다. 인물평이라든가 전설 따위는 사건 이해에 필요한 정도로만 최소화시켰기 때문에 이 책에선 로망스 같은 것은 냄새도 맡기 힘들다. 전설에서 ‘팩트(fact)’를 가려내 당대의 ‘사실(史實)’ 중심으로 접근한 것이 이 책의 최대 장점이자 특징인데, 저 부제는 완전히 책의 이미지를 구기고 있다.

역사를 볼 때 누구의 ‘편’에서 볼 것인가 하는 점은 본질적인 문제다. 십자군을 누구의 시각에서 바라볼 것인가. 유럽과 이슬람 사이의 십자군 전쟁은 분명 유럽이 ‘일으킨’ 것이지만 일방적인 침략 작전 혹은 어느 한쪽이 가해자(이득을 얻은 자)이고 어느 한쪽이 피해자(손해를 입은 자)인 것은 아니었다.
이 오랜 전쟁은 유럽이 일으킨 것이고, 유럽에 막대한 영향을 두고두고 미쳤다. 하지만 저자의 말대로 어쨌거나 유럽은 십자군 전쟁에서 패배했고, 다만 이슬람의 유럽 완전정복을 막아냈을 뿐이었다. 유럽은 많은 것을 잃었고(경제적으로 유럽은 손해를 봤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싸움에서 졌지만 십자군의 감수성은 이베리아 반도의 리콩키스타 등으로 나타나는 등 오랜 영향을 미쳤다.

반대로 아랍국과 뒤이은 투르크제국 등 이슬람권에게 십자군 전쟁은 별다른 의미가 없었으며, 심지어 십자군 전쟁이란 용어를 아는 이들조차 드물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소수민족인 쿠르드족 출신 지도자 살라딘을 부각시킨 것은 오히려 월터 스콧 같은 유럽의 낭만주의자들이었고, 아랍인들에게 살라딘은 19세기 혹은 20세기까지도 잊혀진 인물이었다. 이슬람의 입장에서 보면 십자군 전쟁은 그저 수많은 전쟁들 중 하나에 불과했을 뿐, 어떤 성스런 의미가 있는 대단한 전쟁은 아니었던 셈이다. 아마도 이는 사실일 것이다. 실제 십자군 전쟁에 맞서야 했던 것은 이른바 ‘근동’ 지방 오늘날의 시리아, 레바논, 요르단, 이스라엘, 이집트 쪽이었을 뿐이지 이슬람제국의 내륙이었던 페르시아와 메소포타미아는 영향권에서 벗어나 있었으니까.
저자가 이 책에서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은, 유럽인들에게 십자군 전쟁은 어떤 것이었나 하는 점이다. 십자군 전쟁은 유럽에게는 대단한 의미가 있는 것이었고, 이슬람권에는 그저 그런 전쟁이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서구지상주의라는 오해를 유발할 소지가 많은 저 부제(저런 식의 ‘십자군전쟁론’이 아직도 통용된다면 유감스럽다)와는 달리, 저자의 시각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유럽의 눈으로 십자군을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유럽의 눈으로 본다고 해서 유럽과 십자군 전쟁을 무작정 옹호하지는 않는다. 그 정도로 바보 같은 학자는 아니다. 그저 유럽인들의 눈으로 봤을 때 그 전쟁은 이러저러한 전쟁이었음을 설명하는 데에 치중할 뿐, 무식하고 잔인하고 야만적인 이슬람 식으로 남을 깎아내리진 않는다. 서술 자체는 무미건조하다.


눈길을 끄는 것은, ‘유럽의 눈’으로 보되 ‘당대인의 시각’을 채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십자군의 예루살렘) 입성 후의 혼란 속에 이슬람교도들과 유대인들이 다수 죽임을 당한 것은 사실이었으나, 몸값을 치르고 자유를 살 수 있었거나 성밖으로 추방당한 사람들도 많았다. 예루살렘의 거리마다 무릎까지 차오는 피바다로 뒤덮였다는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과장이었다. 중세 사람들은 그런 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문제는 현대인들이 그것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80쪽)

재미난 지적이다. 저자는 중세인에게 십자군 전쟁이 어떤 것이었나를 설명하는 데에 주력하면서, ‘종교의 시대’에 ‘성전(聖戰)’의 의미가 대단히 컸을 것이라는 점을 유독 강조한다. 맑스주의 역사관이 퍼지면서 20세기 중반까지 십자군 전쟁을 ‘경제적으로’ 해석하는 시각이 강했지만, 이는 온당치 않다고 저자는 말한다. 맑스주의 영향을 받은 서양의 진보적인 역사학자들은 십자군 전쟁에 참가한 이들이 유산 혹은 봉토를 물려받지 못한 귀족의 둘째 아들이나 기사 계급 실업자들이었다고 주장하는데, 당대인들의 종교적 세계관으로 봤을 때에 십자군 전쟁은 분명한 성전이었다는 것이 저자의 반론이다. 십자군은 스콧 같은 소설가들이 바라본 세련된 아랍 군주와 과격한 유럽 기사의 싸움도 아니었고, 19세기 민족주의자들이 예찬했던 것 같은 ‘유럽의 로망스’도 아니었으며, 20세기 좌파들이 말하는 것 같은 ‘유럽 실업자들이 벌인 싸움판’도 아니었다, 그것은 중세 기독교 유럽인들의 성전이었지만 후대를 거치며 여러 차례 해석의 변화를 거친 역사적 사건이었다는 것이다.

그럼 저자의 말대로 철저히 ‘유럽의, 유럽에 의한, 유럽을 위한’ 전쟁이었던 십자군의 진실을 지금에 와서 파헤쳐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책의 서문은 역시나 9·11을 끌어당기고 있다. 유럽은 중세에 십자군 전쟁을 일으켰고, 근세 이후 십자군 전쟁의 재판(再版)으로 제국주의 침략을 감행했다, 그러니까 이슬람도 거기 맞선 성전을 일으켜 십자군과 싸워야 한다- 이것은 오사마 빈라덴 류의 시각이다.
십자군 전쟁을 끌어다 이리 붙이고 저리 둘러대는 세력이 많고 그들 사이에 싸움(테러가 됐든 ‘테러와의 전쟁’이 됐든)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21세기 지구인 모두를 둘러싼 현실이다. 그러나 실제 십자군 전쟁은 유럽의 전쟁이었으며 별나게 멋진 전쟁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유달리 저질스런 전쟁도 아니었다, 20세기 시리아와 이라크 독재자가 뒤늦게 살라딘 흉내를 냈었지만 실상 아랍 이슬람권에서는 십자군 전쟁에 대단한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왔다, 십자군 전쟁이란 말이 모종의 은유로 통용되고는 있지만 역사는 냉정하게 보아야 한다, 낭만도 증오도 모두 일단 가라앉히고 역사를 볼 필요가 있다. 책은 문체가 냉랭해 재미가 없었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또한 흥미로웠다. 저자가 뒤에서 혹평을 하고 있는 제임스 레스턴의 ‘이슬람의 영웅 살라딘과 신의 전사들’과는 또다른 재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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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맘 2007-10-04 1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김태권님의 <십자군이야기>를 읽고 있는 중이라서 일까요? 더 와 닿아요.
제가 읽고 있는 책과는 또다른 느낌이 있을듯...

딸기 2007-10-05 07:29   좋아요 0 | URL
아, 그 책도 인기가 많던데... 저는 1권만 읽었는데, 그 책하고는 아무래도 분위기가 다르지만
둘다 재미있어요 ^^
 

요새 책도 못 읽고 있는데...

여름에 푸켓 놀러갔다가 공항에서 바트화 남은 것 가지고 책을 샀다.

 이 책의 영어판, Julia Lovell, THE GREAT WALL

John Man, GENGHIS KAHN

Geraldine Brooks, NINE PARTS OF DESIRE

John Pilger, FREEDOM NEXT TIME

줄리아 로벨의 책은 한글판 있는지 모르고 산 거고, 징기스칸은 잭 웨더포드 책 읽던 남편이
갑자기 흥미를 보여서 역시나 충동적으로 샀다.
제랄딘 브룩스의 책은 이슬람 여성들의 삶을 다룬 것인데, 요즘 이쪽이 나름 유행타는 듯.
주로 이슬람 여성의 박해받는 삶에 초점을 둔 자전적인 글들(예를 들면 무크타르 마이의 고백 같은)이
서양에선 제법 수요가 있는지, 영문판 책들이 많이 나와있다는 것을 알았다.
여성 할례 문제를 공개적으로 제기한 용감한 수퍼모델 와리스 디리의 책을 더 살까 하다가
그냥 '소개' 형식으로 돼 있는 브룩스의 책을 골랐다.
존 필저의 글은, '제국의 지배자들'을 읽어서 어느 정도 신뢰도가 있었기 때문에 고른 것.

이상, 잘난척 끝.... 지금부터, 하루의 넋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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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e 2007-10-01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엉? 이건 마치 제 일기같은데요 ㅋㅋㅋㅋ
서연이도 매일 "엄마, 나는 공부를 못 하는 거 같아"하는데 그럴때면 이 엄마, 얼마나 한심하게 느껴지는지 몰라요 ㅠㅠ
서연이네 친구 엄마들도 다 백만 하나돌이 에너자이저들....도당췌 따라갈 수가 없다니깐요!

딸기 2007-10-02 06:43   좋아요 0 | URL
서연이는 학교 잘 다니고 있는거지?
서연이는 똘똘하게 생겨서, 공부도 잘 하고 뭐든 야무지게 할것 같은데, 머.
나도 결국 사립학교를 보내야 하는 것인가 생각중인데, 너무 돈이 많이 든다고 해서 걱정...
언제 한번 서연사랑 만나서 얘기를 들어봐야겠어.

마노아 2007-10-01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금가루 회전 초밥^^;;
그나저나 어째요. 몸이 세개는 되어야겠어요. 보약 드셔야겠는걸요..;;;

딸기 2007-10-02 06:43   좋아요 0 | URL
내가 그 접시 골랐다가 금가루 보고 쫄아서 "안먹을래" 했는데 걔가 그냥 먹으래는거야
근데 9000원이나 하는거야, 나중에 보니... 세상에...

2007-10-01 23: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딸기 2007-10-02 06:44   좋아요 0 | URL
그치, 그치!!!

이네파벨 2007-10-01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딸기님 이런 묘기까정...
접히기 전 글을 보면서...
아아아...딸기님은 하루가 72시간쯤 되는되다가 천재 슈퍼우먼이얌...생각하면서 잠시 OTL 모드였는데...
"넋두리" 보면서 인간적인 애정을 느낍니다...^^

따님이 일곱살인가요? 저도 일곱살짜리 딸내미가 있어요. 아홉살짜리 아들내미랑...^^ 유치원생이 구구단이라...정말 빠르네요...

그나저나 "내가 요정이야? 소원을 빌게...." 오늘의 명언입니다^^ 울 아그들에게 바라는게 넘 많죠? 요즘 부모들...따님 넘 귀여워요~ ~ ~

딸기 2007-10-02 06:45   좋아요 0 | URL
이네파벨님은 저런 책들을 술술 읽으실 뿐 아니라 번역까지 하시면서!
전 솔직히 딸애한테 아직까지는 얘가 이랬으면 좋겠다, 저랬으면 좋겠다 바램이 없어요
공부 쪽으로는... 평소엔 바라는거 많지만요.
청소도 했으면... 옷 정리도 했으면... 엄마 자는데 방해 안 했으면...
그게 더 불가능한 거겠죠 ^^

LAYLA 2007-10-02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 왜 이렇게 귀엽죠 ^^ 애기들 논술(?) 수업하면 꽤 재미있을거 같아요. 어떤 이야기들이 나올지..^^ ㅋ

딸기 2007-10-02 06:46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근데 요샌 무슨 동화책마다 뒤에 다 '논술 문제'가 나와 있더군요.
어린이용 아라비안나이트 샀는데, 그 책 뒤에도 논술 문제...
아니 대체 옛날얘기를 그냥 재밌게 읽으면 되지 문제를 왜 풀어야하는 건지...

chika 2007-10-02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품앗이 과외.. 상대방 아줌마가 지독하게 열정적이면 힘들다,는 명언이 있어요. ㅋ
그나저나... 부모님 선물로 금가루 묻은 양갱을 샀었는데, 그거 볼 때 저 노란딱지 묻은거 떼어내줘야만 할 것 같은 느낌땜에..혼자 웃었더랬는데 말이지요. ^^

딸기 2007-10-02 15:40   좋아요 0 | URL
실은 저도 저쪽 엄마를 제가 과연 쫓아갈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고 있긴 해요. ^^
근데 금가루 묻은 양갱도 있군요! 그것도 많이 비싼가요?
 

신약을 임상실험하는 과정에서 아프리카 빈민층 어린이들을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는 세계 최대 제약회사 화이자가 85억달러(약 8조원) 규모의 손해배상소송에 직면했다.

로이터통신은 나이지리아가 화이자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85억달러에 이르는 거액의 손해배상을 요구하기로 결정했다고 30일 보도했다. 거대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인도, 나이지리아 등 제3세계 국가 빈곤층을 주타깃으로 벌이고 있는 임상실험의 문제점이 이 소송을 통해 다시한번 국제적인 이슈로 부각될 것으로 예상된다.

사건의 발단은 1996년 화이자가 나이지리아 소도시 카노에서 벌인 뇌수막염 치료제 임상실험. 당시 카노 일대에는 어린이들에게 치명적인 뇌수막염이 퍼져 반년새 1만2000명이 숨지는 큰 피해를 입었다. 수막염은 감염자 치료를 서두르지 않으면 몇시간 내에라도 사망을 불러올 수 있는 강력한 전염병이다.
화이자는 이곳에서 어린이 200여명에게 뇌수막염 치료제로 개발된 `트로반(Trovan)'이라는 약의 임상실험을 했다. 대상자 절반에게는 트로반을, 나머지 절반에게는 효과가 검증된 기존 치료제를 투여하는 방식의 실험이었다. 실험이 끝나고 몇달 지나지 않아 어린이들 중 11명이 숨졌고 수십명의 후유증 비슷한 장애를 앓았거나 지금도 앓고 있다.

카노시가 위치하고 있는 카노 주(州) 정부와 나이지리아 연방정부는 화이자가 임상실험 대상자의 동의와 사전 정보제공 등 국제적인 실험 규칙을 지키지 않았다며 화이자 본사가 있는 미국 법원에 민ㆍ형사소송을 제기했다. 미국 법원은 2005년 이 사건을 피해자들이 있는 곳에서 진행해야 한다며 나이지리아 법원으로 넘겼다. 소송은 오는 3일 재개될 예정이다.

화이자측은 실험 당시 모든 절차를 적법하게 진행했다면서 "아이들이 숨진 것은 약 때문이 아니라 뇌수막염 감염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피해어린이 가족들은 아이들이 약 부작용 때문에 숨졌다는 의심을 감추지 않고 있다. 트로반 실험에서 두 딸을 잃은 무스타파 마이세킬리라는 남성은 로이터 인터뷰에서 "수막염 초기 증상을 보였던 딸들은 병원에 보내질 때만 해도 걷고 말하고 할수 있는 상태였다"며 "아이들은 화이자가 준 약을 계속 먹다가 몇주 만에 숨졌다"고 주장했다.

트로반은 2005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성인용 수막염 치료제로 시판 허가를 받았으나, 일부 환자들에게 심각한 간 손상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 별도의 경고문이 붙은 상태다. 이슬람 도시인 카노 당국은 트로반 사건이 일어난 뒤 서양 회사들이 만든 에이즈 백신 등 전염병 치료제들을 대거 판매금지시켜 엄청난 역작용을 불러오기도 했었다.

전문가들은 트로반 뿐 아니라 거대 제약회사들이 인도나 나이지리아 등 제3세계 국가의 빈곤층을 대상으로 벌이는 임상실험 전반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제약회사들은 비용이 적게 들고 감시가 상대적으로 미약한 빈국들에서 대규모 임상실험을 벌이고 있으며, 최근에는 소송을 피하기 위해 `실험 대행사'들을 동원해 실험을 하곤 한다. 신약에 생명을 건 환자들의 절박함을 악용해서 플라시보(위약) 투약 실험을 하거나 책임소재가 불분명한 `대행 실험'을 하는 행위, 빈민층 부모들에게 푼돈을 주고 어린이들을 신약 실험에 동원하는 일 등이 계속해서 문제가 되고 있지만 제약회사들은 "의학 발전을 위해 불가피한 일"이라며 맞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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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7-10-01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학발전을 위해 불가피한 일'이라니요. 세상에...

딸기 2007-10-01 22:08   좋아요 0 | URL
뭐, 어찌 보면 그럴 수도 있겠지요. 임상실험을 하지 않고는 약을 만들 수가 없다, 약의 안전성을 검증할 수가 없다... 임상실험 따윈 하지 말고 약을 팔아라 할 순 없을테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나라 가난한 아이들이 모르모트가 되는구나 하는 느낌을 지울래야 지울수가 없는 거겠죠...
그런데 hnine님, 올만인것 같네요. 방가워요 ^^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C. 더글러스 러미스 지음, 이반.김종철 옮김 / 녹색평론사 / 200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은 재생지로 된 작고 두껍지 않은 책인데 내용은 크고 넓다.
제목이 너무나 직설적이어서 상상의 여지를 주지 않는다. 책은 미국 출신 사회운동가 겸 저술가 더글러스 러미스가 일본에 살면서 일본 사람들에게 이러저러하게 살아보자, 하고 지적하고 제안하는 형식으로 돼 있다.

일본어 문체로 돼 있어서 거기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겐 다소 생소한 말투로 들릴 수도 있을 것 같다. 지적하는 내용과 제안도 일본적이지만, 우리 또한 새겨들어야만 하는 내용임에는 틀림없다. 아니, 사실은 “개같이 벌으렸다, 돈만 벌어라” 하는 식의 사고방식은 일본보다 우리가 훨씬 심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자본주의 성장지상주의에 빠져 일로매진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한국이 일본은 물론 미국도 제치고 1등할 것 같다. 그러니까 '20대 80' 중 잘나가는 20 말고 못난이 80이라도 그럭저럭 먹고살 여지가 있는 일본보다는 오히려 우리가 들어야 할 내용이다.

 

“그것은 좋은 이상일지는 모르지만 이러니 저러니 해도 돈을 벌어야 한다”라든가, “싫어도 직업이기 때문에 별 도리가 없다” 등등, 이와 같은 상투적은 말들은 소득으로 이어지는 것만이 현실성이 있다는 경제발전론의 발상이다. 나는 이러한 발상에 대하여 의문을 던지기 위해서 이 제목을 선택하였다. 경제발전론=소득배증론(所得倍增論)이 사회의 상식이 되어있는 한,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그밖의 다른 테마에 관해서 깊이 있게 생각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의학용어를 빌려 말하면, 경제발전론은 현대사회 속의 사고장해(思考障害)라고 부를 수 있을만큼 사람의 사고력을 억압하는 힘을 갖고 있다. (7쪽)


러미스가 사람들의 경계와 각성을 끌어내고자 애쓰는 부분은, “경제의 파이를 키우자”라는 성장 일변도의 생각에 관한 것이다. 파이를 키우자, 그러니까 파이가 커질 때까지는 파업도 말고 인권 환경 여성 인권 노동 복지 문화 이런 거 떠들지 말고, 배 채울 때까지 일단 기다려라, 그런 논리 말이다. 성장이 되면 우리는 저절로 인권 환경 여성 노동 복지 우선국가가 될까? 성장이 안 되면 ‘배부른 자들이나 하는 소리’는 신경 써서는 안 될 일인가? 어쩌면 우리는 다종다양한 목소리와 가치관을 ‘배부른 자들의 소리’로 치부해온 탓에 여지껏 성장과 발전을 거듭하면서 언제나 배가 고프고 옆구리가 결리고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답답하고 그런 것이 아니었던가?
원론적으로 말을 하면 어떤 사람들은 “그게 다 배부른 소리야”라는 말로 맞받아쳐서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들을 순환논법에 빠지게 만들고, 어떤 사람들은 “말은 맞지만 어떻게 할수 있나”고 체념한다. 러미스는 그런 식의 논리구조에 ‘타이타닉 현실주의’라는 이름을 붙였다. 많은 사람들은 현실을 타이타닉호처럼 ‘전진하지 않으면 가라앉는 체제’로 보고 있다고, 오늘날의 현실주의는 ‘멈추거나 늦추면 가라앉고야 만다는 논리에 입각한 타이타닉 현실주의’(17쪽)라고.

 

그럼 대안은 무엇인가. 저자의 주장은 생각을 바꾸자는 것, 그리고 체제를 바꾸자는 것이다. ‘발전’(development)은 어원으로 따져보면 가려진 것, 감춰진 것을 풀어 꺼낸다는 것인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남쪽(저개발 세계)을 까뒤집어 속도전으로 뛰어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북쪽(개발된 세계)을 다시 좀 오므리고 늦춰서 가치관 바로잡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껏 사람들이 일 중독과 소비 중독, 두 가지 중독에 빠져 있는데 인간을 다시 보통 인간으로 돌아오게 해서 값이 매겨져 있지 않은 즐거움, 사고파는 일과 관계없는 즐거움을 되찾게 만드는 일(107쪽)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것을 ‘대항발전’이라 이름붙였다. 좀 추상적이고 몽상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조금은 좋아진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맞아 맞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야 세상이 숨통이 트이고, 사고파는 일과 관계없는 즐거움이 많아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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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7-10-01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도착한 책이에요. 이번에도 당장 볼 것 같지 않다는 게 문제지만 꼭 볼거야요^^;;;

딸기 2007-10-01 21:35   좋아요 0 | URL
분량이 많지 않고 내용도 비교적 명확해서, 생각보다 쉽게 읽을 수 있을거야.
어쩌면 나보다는 마노아가 더 좋아할만한 내용이 아닐까 싶은데.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