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좀 단순하다.

그러니깐...

알라딘에 수년전 올렸던 서평들을 드래그해서 복사하고-> 삭제하고-> 다시 올리는 멍청한 짓을 하고 있지. 안그래? 단순하거나 시간이 남아돌아 주체를 못하거나... 난 이 모두에 해당된다고나 할까.

이해를 못하겠어, 알라딘 서재의 '이동' 기능을... '수정' 기능도... ㅠ.ㅠ

 

그래도 아주 단순하지는 않아서, 예전 리뷰들을 다 다시 올리지는 못하고, 80%는 지워버린 것 같다.

단순노동을 반복하기 앞서 몇가지 생각을 했다.

1. 과연 이런짓까지 해가면서 올려야 할 정도로 훌륭한 리뷰인가(質良保存)

2. 이 리뷰를 올리는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까(弘益書評)

 

그런데 저런걸 생각하는건 단순한 내겐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곧 깨달았다.

그래서 새로운 기준을 수립.

0. 길면 남기고, 안 길면 버린다(短捨長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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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아이 2004-11-16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로 올리신 서평을 보며 제가 "고마워요"를 누른 게 몇 번인데... 1, 2번은 의심치 마시옵소서.

딸기 2004-11-16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의 기준은 0번이었지만, 그것이 동시에 1번과 2번을 충족시켰다는 얘기도 되겠군요. 오, 놀라워라~~~~~~ 히히히 숨은아이님 고마워요. 실은 저는 알라딘 서재질을 열심히 하기 전에는 다른 분들의 서평을 안 읽었더랬어요. 신문 서평은 물론이고. 그런데 여기서 돌아다니다 보니까 알라딘엔 정말 고수들이 많더군요! 저같은 사람이 뭣도 모르고 서평 올리기 부끄러워질 정도로.

미완성 2004-11-16 1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같은 분이 이리 심오하게;; 반성을 하시니 저같은 사람이 리뷰 올리기 전에 심호흡 한 번 하며

"괜찮아, 이렇게 못 써도. 난 예쁘니까" 라는 얼토당토않은 자기 위안을 하게 되는 거 아닙니까.. ㅜ_ㅜ

그..이동기능이라는 게, [리뷰] 카테고리 안에서 비공개 폴더 -> 공개폴더로 옮기는 작업 아니온지..?! 에이 아시믄서~

딸기 2004-11-16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멍든사과님, 저도 '이동' 기능은 그런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잘 안 되는 거예요. 이동하면... 없어져버려요, 글이.

그래서 비공개 폴더의 리뷰를 '수정' 눌러서 카테고리를 바꿨거든요.

그래도 없어져버려요, 대부분. 어떤 건 남기도 했지만, 믿을 수가 없어서 말이죠...

근데 멍든사과님, 굉장히 이쁘신가봐요. ^^

panda78 2004-11-17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딸기님, 옛날 서평 다시 올려주셔서 기쁩니다. ^^

(며칠 전에 브리핑 뜬 거 보고는 어라? 내가 딸기님이란 분의 서재를 즐찾했었나? 했더랍니다. 언제 바꾸셨어요? ^^;;;)

딸기 2004-11-17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흥, 판다님, 그동안 여기 안 들르셨던 게지요! (토라져서 벽보고 서있다)

다시 바꿨어요, 아무래도 '스트롱'하게 되지는 않는 것 같아서요 ^^

panda78 2004-11-18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동안 알라딘을 안 들렀어요. ^^ 며칠 전부터 다시 시작..

(그리고 들어와서 글 읽으면서도.... 며칠 동안이나 모르고 있었으니... - _ -;; 둔해도 보통 둔한 게..)

딸기 2004-11-18 2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래 판다가 둔하잖아요(후다닥 =3 =3)
 
렉서스와 올리브나무 1 - 세계화는 덫인가, 기회인가?
토머스 프리드만 / 창해 / 2000년 9월
평점 :
절판


뉴욕타임즈의 국제문제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토머스 프리드먼이 세계화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잔소리를 늘어놨다. 세계화의 껍데기만 뒤집어쓰면 뭐든 되는 줄 믿고 있는 이른바 '글로벌리스트'들을 향한 잔소리가 아니고, '아직도 세계화될 준비가 안 된 팔불출들'에게 쏟아놓는 잔소리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도요타자동차의 인기 브랜드네임을 빗댄 '렉서스'는 세계화, 기술, 인터넷 등등을 뜻하는 것이고, '올리브나무'는 국가, 민족, 문화, 정서 따위를 지칭하는 말이다. 저자 자신이 유태인이다보니 올리브나무를 '옛스런 감정'의 대유물로 삼았나보다.

하필이면 이 책을 보고 있는 와중에 텔레비전을 켜니 우리나라에서도 렉서스 광고가 펼쳐지고 있었다. 성우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씁쓸한 심정이 드는 건 내가 '올리브주의자'이기 때문일까? 아마 그건 아닐 것이다. 프리드먼은 이 세상 60억 인구를 '렉서스주의자'와 '올리브주의자'로 나눠놨는데, 실은 대부분의 사람들의 마음에 둘 다 공존하고 있지 않느냔 얘기다.

예전에 뉴욕타임즈의 오피니언란에 실린 프리드먼의 글을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나서 이 책을 굳이 돈 주고 샀는데, 읽고 나니 왜 읽었나 싶다. 물론 프리드먼의 책은, 전반적인 품질 면에서 보면 언제나 상등급이다. 세계를 돌아다니며 직접 보고들은 내용을, 읽기 쉽고 이해하기 쉽게 풀어서 설명해주니 국제정세 교과서로도 쓰일만하다. 논지가 명확하니 판별하기도 쉽고, 재미도 있다. 하지만 세계화 공룡의 꼬리질에 머리를 얻어맞고 등뼈가 부러져나갈 판인 '글로벌의 희생자들'에게 프리드먼은 감히, 오만방자하게도, '글로벌화의 대세를 거부한 올리브주의자'라는 혐의를 붙이고 난도질을 한다. 아주 점잖은 어조로, 이스라엘과 이란과 방글라데시와 한국과 미국과 프랑스와 러시아와 인도 같은 온갖 나라들의 예를 들면서.

프리드먼이 오만할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다. '미국인'이기 때문이다. 어느 일본인이, 어느 프랑스인이, 어느 러시아인이, 하물며 어느 한국인이 이렇게 오만할 수가 있겠는가. 미국화가 곧 세계화임을 프리드먼 스스로 자신있게 부인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렉서스와 올리브나무를 모두 가진 미국인 외에 어느 나라 사람이 감히 '다운로드 할래, 죽을래'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는 얘기다.

부러운 게 있다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직업'인 뉴욕타임즈 국제문제 컬럼니스트라는 직업을 가지고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는 저자의 입지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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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겔란쏘 프라도 지음, 이재형 옮김 / 현실문화 / 2000년 10월
평점 :
절판


'섬'이라는 공간은, 글쎄, 별로 가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 기껏해야 제주도나 거제도밖에 가본 일이 없는데 그 묘한 어감의 공간을 이해하기에는 아직 내 경험과 지각력이 못 미치는 것 같다. 스페인 작가 미겔란쏘 프라도의 <섬>은 아주 어둡고 아름다운 화면으로 구성된 그림책이다. 굳이 따지자면 '만화'인데, 현실문화연구에서 앞서 발간한 엥키 빌랄의 '니코폴'이 그랬던 것처럼 '예술적'이고 멋지다.

외딴 섬. 이 섬의 특징을 가리키는 표현은 '지도에 나와있지 않은 섬'이라는 말이다. 지도에 나와있지 않다는 것은 1차적으로 이 섬이 아주 작다는 뜻이면서, 한 차원 더 들어가면 이 섬이 인간의 환상 속에 위치하는 공간일 수 있음을 의미한다. 작은 섬에 살고 있는 한 여자(여관주인 사라), 우연히 찾아온 한 남자(여관 손님1-라울),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한 여자(손님 2-아나), 사라의 아들(디마)가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다. 다시 말해 등장인물 전체가 주인공인 셈이다.

아나는 이 섬의 특징을 이렇게 설명한다. 지도에도 나오지 않고, 이 섬의 부두에는 배가 없고, 이 섬의 등대는 불이 꺼졌고, 이 섬이 여관에는 손님이 없다. '존재 그 자체 외에는 무용지물인 듯한' 것이 이 섬의 구성요소들이다. 막연한 기다림, 고독함만이 존재하는 이 섬에 백수건달 두 남자(손님 3, 4)가 찾아오고, 이어 빚어지는 강간 소동, 그리고 아나와 라울의 이별. 그렇다 해서 아나와 라울이 똑별난 관계를 맺었던 것도 아니다.

도대체 무슨 얘기인지 모르겠다고 한다면 아마 그건 '줄거리'만을 봤기 때문일 것이다. 이 그림책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빛깔'을 보는 것이다. 파스텔로 그려진 이 책의 그림들은 책장을 넘길 때마다 색조가 달라진다. 어떤 부분에서는 인상파의 작품처럼 밝지만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면 짙은 황토빛으로 어두워진다. 라울이 섬에 찾아왔을 때에는 화면이 온통 그림엽서풍의 이쁜 색깔들로 가득차있다. 파란 하늘, 하얀 갈매기, 하얀 방파제. 독자들이 섬이라는 공간이 주는 외로움에 젖어들 무렵이면 날이 저물듯 화면은 어두워지고, 짙푸른 밤의 빛깔로 변한다. 무식하고 야만적인 손님 3, 4의 등장한 뒤로는 아예 배경이 흙빛이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빛의 뒤에서 작가가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은 뭘까. 이성과 욕망의 맞부딪침? 아나와 라울이 이성적이고 지적이라면 사라와 손님 3, 4는 본능적이고 야만적이다. 두 측면의 맞부딪침은 '강간'이라는 가장 야수적인 사건을 통해 표현된다.

내가 만약 아나처럼(난 차마 '사라처럼'이라는 생각은 못 하겠다) 외딴 섬에 홀로 있다면 나의 의식은 어떻게 흘러갈까. 외로울 것이고, 무언가를 기다리게 되지 않을까. 내가 기다리는 대상이 '누군가'일지 혹은 어떤 '사건'일지는 모르겠지만. 소설에 흔히 나오는 것처럼 존재에 '밑바닥'이 있다면, 아마 아나가 있었던 저 섬에 있을 것 같다. 그 섬에 가고 싶냐고? 절대 아니다. 말없이 바다만 바라보는데 지쳐 기껏 갈매기 한 마리에 정을 쏟게 만드는 그런 적막함이 싫으니까.

아름다운 색채 속에서 어둡기 그지없는 내면을 봐야한다는 것은 부담스럽고 재미없는 일이지만 멋진 그림으로 눈이 시원해졌으니 작가에게 감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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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4-11-16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럽만화를 좋아하시는군요. 저도 이 작품은 재미있게(?) 봤어요. 끝의 반전(?)은 좀 머리복잡했지만, 니코폴을 보면서 과하게 머릿속을 비집고 오는 수많은 정보들을 보면서, 안그래도 이 만화 떠올렸었는데, 마침 리뷰를 올려주시는군요.

딸기 2004-11-16 1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스하이드님, 히히 이 리뷰는 벌써 몇년전 것이라서, 지금은 내용도 다 까먹었어요 ^^

유럽만화 처음에 보고 참 좋아했었지요. 줄거리보다도 그림 수준이 높아서요.
 
Fog 1 : Le Tumulus - 안개 비앤비 유럽만화 컬렉션 2
보냉 글, 세이터 그림, 유소연 옮김 / 비앤비(B&B) / 2000년 1월
평점 :
절판


'안개속을 헤매면 이상하여라'는 다들 아시겠지만, 헤르만 헤세의 싯구절이죠.

안개 하면 생각나는 나라, 영국이 배경입니다. 그렇다고 헤세풍의 분위기를 연상하지는 마십시오. 셜록 홈즈가 살았던 당시의 런던을 생각하면 될 거예요. 마차가 지나다니고, 안개 속에 가로등이 켜져 있고, 적당히 더럽고 적당히 풍요롭고 적당히 각박한 대도시. 주변엔 항구가 있고, 이미 세상은 현대로 가고 있는데 귀족입네 하면서 폼잡는 이들이 아직 남아 있군요.

영국은 고고학에 관심이 많은 나라입니다. 존 파울즈의 <프랑스 중위의 여자>에도 그런 장면이 나오고, 영국 여성작가의 글을 만화로 만든 <사랑의 아테네>(우리나라에서는 신일숙이 그림을 그렸죠)에도 비슷한 장면이 나옵니다. 해변을 돌아다니면서 화석(이건 고고학은 아니고 고생물학이겠군요)이나 바이킹의 유적을 찾는 여행객들의 모습은 아주 낭만적이죠. 고고학이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것은, '저주' 혹은 '마법'과 같은 판타지의 영역과 쉽게 결합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익히 알려진 파라오의 저주 따위 말입니다.

<포그>에는 파라오의 저주가 아닌 '바이킹의 저주'가 나옵니다. 악당으로 이름을 떨쳤던 고대 바이킹 형제의 무덤을 어느 고고학자가 발굴합니다. 전문적인 고고학자라기보다는, 고고학이라는 그럴싸한 취향을 가진 귀족인데, 그에게는 미모의 딸이 있습니다.
당연히도, 무덤을 파낸 귀족은 저주를 받아 죽습니다. 미모의 딸, 그 주변에는 형사와 신문기자가 있는데, 이들이 사건을 파헤쳐가는 겁니다. 고대 바이킹의 저주인가, 혹은 돈을 노리는 악당들의 짓인가 하는 질문은 물론 여기서는 우문입니다.

신파조의 판타지물을 생각하면 안 됩니다. 떨거지 귀족사회의 분위기라든가 런던 항구의 우울한 분위기를 담담하면서도 섬세하게 묘사해놨고, 인물 하나하나의 성격도 모두 살아있습니다. 작가가 아주 공을 많이 들여 만든 작품이란 느낌이 듭니다. 그림이 참 좋습니다. 우울한 초록 주조의 색채, 흡사 모딜리아니를 연상케 하는 개성 강한 얼굴들이 아주아주 맘에 듭니다. 그림 좋아하시는 분들 이 책 읽으시면 아주 좋아하실 거예요. 그림 못잖게 재미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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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innk 2005-01-23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국어만 알면 번역이 가능할까?

문학적 소양, 역사, 문화에 대한 이해 없이

번역할 경우 이 책처럼 영국 Scotland Yard 를

스코틀랜드 경찰청으로 번역하는 희극을 연출하게 된다.

그것도 책 한권에서 반복적으로...

무식의 극치!

 

 

 
레지스 르와젤의 피터 팬 - 1,2권 합본 (양장본) 비앤비 유럽만화 컬렉션 4
레지스 르와젤 지음, 이재형 옮김 / 비앤비(B&B) / 2000년 9월
평점 :
절판


아마 내가 읽은 첫번째, 그리고 어쩌면 마지막인 것 같기도 한 '피터팬'은 어릴적 집에 있었던 계몽사 동화집 중의 한권이 아니었던가 싶다. 나는 그 '피터팬'에 대해 여러가지 기억을 가지고 있다. 먼저, 그 책에서 '괴짜'라는 말을 처음으로 배웠다는 것. 웬디네 동네 사람들이 웬디의 아버지를 '괴짜'라고 불렀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그걸 보고 엄마한테 뜻을 물어봤었다. 엄마의 대답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별로 잘 이해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것은, 웬디의 아버지가 나나(개)에게 육아를 맡기고 있었다는 점-바로 이 것 때문에 웬디 아버지가 '괴짜'라고 불렸었다-이다. 웬디의 큰 개가 웬디 삼남매를 돌보았는데, 아버지는 주제에 이 개를 미워했단다. 그래서 밤중에 개를 집 밖의 개집으로 내몰았고, 하필 피터가 이 때 나타나서 개가 없는 사이 삼남매를 데리고 네버랜드로 떠난다.

어린 시절 읽은 네버랜드의 추억 따위는 몽땅 지워버리는, 아니 지우는 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뒤집어 엎어서 메스껍고 징그럽게 만들어버리는 것이 바로 <레지스 르와젤의 피터팬>이다. 아마도 프랑스에서 출간된 원작의 제목은 그저 '피터팬'이겠지만, 우리나라에서 작가의 이름을 앞에 붙여 누구누구의 피터팬이라고 붙인 것은 참 잘한 일이지 싶다. 이런 피터팬, 이런 식으로 '피터팬'을 비비 꼬아낸 작가의 이름을 앞에다 떡하니 붙여놔야, 어린 시절 동화의 미몽에 아직도 빠져 있는 독자들이 좀 정신을 차리지 않겠는가.

피터는 주정뱅이 엄마 때문에 죽도록 고생하면서 동네 못된 인종들로부터 성추행이나 당하는, 찌들대로 찌들고 영악할대로 영악해진 애늙은이다. 팅커벨? 얘는 원작하고 좀 비슷하다. 질투심 많고 저만 아는, 그렇지만 아주 사악하지는 않은 얌체같은 요정. 나머지 등장인물은? 대체 <레지스 르와젤의 피터팬>에는 선인이란 없다. 이야기 좋아하는 늙은 영감, 피터에게 '꿈이란 무엇인가'를 설파하는 노인네 하나를 빼면, 전부 욕심많고 잔혹한 인간들이다.

고전 동화를 패러디한 작품은 많다. 폴리티컬리 코렉티드인지 뭔지 하는 운동가들이 새로이 제작해낸 베드타임 스토리들도 봤고, <알고보면 무시무시한 그림동화 이야기>라는 것도 두 권이나 봤는데, 정말 재미가 없었다. 이런 식의 패러디가 꼭 의미가 있을라나 하는 의심도 했었고, 일단 재미가 너무 없었다.

패러디라는 점만 놓고 보면 이 피터팬은 수준이 다르다. 앞서 말한 류의 동화 패러디와는 질적으로 다르게, '자라지 않는 아이'와 '어린시절의 꿈'을 반어적으로 잘도 그려내고 있다. 극도의 반어법인 셈이다. 한 가지 내 취향에 맞지 않는 건, 잔혹한 장면이 간간이 나온다는 것. 아무리 '현실'이 중요하다 하더라도, 난 이렇게 잔인한(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모습을 굳이 그림으로까지 봐야 하는 건 싫다. 이노무 작가는, 현실적이지 않은 것에 대해 무지한 적개심을 갖고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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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11-16 0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그 그림동화는 패러디가 아니라, 원래의 그림동화라고 알고 있는데요... 그렇게 재미없던가요?

딸기 2004-11-16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그런가봅니다. 생각해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해요.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저는 무시무시한 건 너무 싫어하거든요 ^^

숨은아이 2004-11-16 1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고 보면 무시무시한 그림동화"는 원작 자체는 아니고, 일본 작가가 가필을 한 것입니다. 그림동화 이전에 페로의 동화가 있고, 그 이전에 프랑스와 독일의 민담이 있을 텐데, 민담도 그렇고 페로의 동화도 꽤 잔혹합니다. 그러나 그림동화는 그걸 상당히 순화시켰기에, 아마 일본 작가가 그걸 모델로 해서 새로 쓴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