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집에 고사가 있다고 어머니께 전화가 왔다. 와서 고사 떡 좀 가져가라는 말씀이셨는데, 그 속에는 '떡 가져가는 김에 얼굴 좀 보자'는 성화가 숨어 있었다. 3하긴 30여년간 줄곧 같이 살다가 결혼이라는 핑계로 분가를 하게 되서 같이 지내지 않으니 그 빈자리가 얼마나 클까 짐작은 해보지만 절실하게 와닿지는 않는다. 그건 아마도 내가 자식이 없어서겠지. 그리고 자식을 낳으면 어머니보다 더 큰 그리움에 전전긍긍하지 않을까 생각도 해보지만, 그 미래는 아직 내게 다가오지 않아 잘 모르겠다. 

   내가 사는 곳은 서울 마포고 집은 서울 정릉이다. 집에 갈 때는 항상 110번 버스를 타고 집에 갔었는데, 오늘은 왠지 지하철을 타고 싶었다. 아내가 지하철을 싫어해 항상 버스를 탔지만 오늘은 혼자 가는 것이기도 하고, 또 버스에선 책을 읽기 힘들지만 움직임이 적은 지하철에서는 책을 읽을 수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었는지 모른다. 

   아침 8시 10분 광흥창 역에서 봉화산행 지하철을 탔다. 보문역에서 내려 1014번 버스를 타고 가면 가장 최단 거리의 요금이 나온다는 것을 경험으로 체득했기 때문에 그렇게 하기로 했다. 평소 토요일 아침보다 차량에 사람이 많았다. 21일, 셋째주 토요일. 격주 근무를 하는 회사나 학교가 쉬는 날이 아닌것을 알기에 다른 놀토보다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는 것은 예상했었지만, 이정도로 많을줄은 몰랐다. 그냥 평소보다 많았겠거니 하고 사람들 틈에 비집어 섰다. 

   4호선 환승이 되는 삼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내리고, 자리가 났다. 자리에 앉고 책을 읽는데,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내리는 사람은 없고 타는 사람만 늘어갔다. 지하철 차장이 평소에는 안하던 방송을 하기 시작했다.  

   "약수역 앞, 뒤쪽으로 많은 수험생들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앞, 뒤 차량에 굉장히 많은 승객들이 승차할 것으로 예상되오니, 차량 앞, 뒤에 계신 승객분들 중, 바쁘지 않으신 분들은 차량 중간으로 이동하셔서 쾌적한 환경에서 목적지까지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객차에 있던 승객들이 웅성거리더니 누군가가 이야기 한다.  

"오늘 고대 논술고사 있잖아."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오늘, 그것도 이 시간대에, 고대를 경유하는 6호선을, 그것도 두 번째 객차를 택하다니... 다른 사람들과 달리 앉아 있었지만, 아침 출근시간 신도림역 수원행 열차를 경험해본 나로선 전신이 저릿저릿하고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오늘같이 긴장이 풀어진 상태에서 이런 상황은 감당이 되지 않는데... 오늘은 어떤 지옥을 맛 볼 것인가... 

   열차가 약수역에 도착했다. 찢어진 샌드백에서 모래가 쏟아지듯 사람들이 들어왔다. 대부분 앳된 학생들과 어머니들이었다. 열차는 금방 차고 들어오지 못한 학생들은 다른 객차에 타려고 달리기 시작했다. 빨리 움직이라는 공익요원의 호루라기 소리, 그만 문을 닫겠다는 차장의 단호한 협박, 반대편 플랫폼에서 열차가 들어온다는 경고음, 그리고 그만좀 집어 넣으라는 객차 속 (열차를) 탄 자들의 절규가 한데 어우러진 풍경은 정말로 장관이었다. 

   더이상 탈 데가 없는 것 같은데도 사람들은 열차에 끊임없이 들어왔다. 가장 절정은 고려대역을 네 정거장 앞둔 동묘역에서였다. 한데 무리진 여학생들이 도저히 못참았는지, "이제 그만좀 태워요."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 그 소리는 세상사에 익숙한 어른들이 내지르는 '짜증'과는 달랐다.  

   어른들의 짜증이 익숙한 사회생활에서 겪는 어쩔 수 없는, 받아들여야 함을 알지만 최소한 항변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에, 그렇게라도 해야 자신이 그래도 살아있음을 느끼는 그런 것이라면, 아이들의 항변은 짜증과 '어떤 설렘'이 그들의 목소리에 배어있는 것 같았다. 그 어떤 설렘이란, 어른들이 지니고 있지 못한 삶의 긍정, 역동성인것 같았다. 어쩌면 그들에게는 오늘 시험을 본다는 사실 자체가 신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돌이켜보면, 나도 그 때 시험이, 두려운 감정도 있었지만, 어떤 통과제의 같은, 어른이 된다는 설렘같은 것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 감정이 어떤 것이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익숙한 생활의 반복속에서 그런 설렘은 아득한 것이 되었다. 

   결국 보문역에서 내리지 못하고 이들과 함께 고려대역에서 내렸다. 엄청난 인파가 계단을 올라가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열과 줄을 맞춰 일사분란하게 올라가는 모습은 파도가 출렁이는 것처럼 보여졌다. 차마 저 인파에 끼지 못해 주저하고 있는 상황에서 다음 열차가 들어오는 소리를 들었다. 꼬리에 꼬리를 문 인파속에 미아가 될까 두려워 마음을 다잡고 휩쓸려 들어갔다. 

   110번 버스를 타기 위해 4번출구로 나왔다. 안암오거리는 차와 사람으로 엉켜있었다. 길건너 고대 생활관 쪽으로 수많은 인파들이 줄을 지어 올라갔다. 1차선에 있던 차량에서 어머니와 수험생인 딸이 내려서 학교쪽으로 뛰어갔다. 오거리 가운데 있는 경찰은 확성기로 차량과 인파를 제어해보지만, 도로로서의 기능을 포기한 도로에서 꾸역꾸역 머리를 들이밀며 밀려드는 차량과 신호를 무시하며 차량속으로 길을 내는 인파속에서 속수무책이었다. 

   버스를 타고 길 반대편을 보았다. 가방을 맨 앳된 학생들이 뛰는 모습이 보였다. 시계를 보니 8시 52분이었다. 9시까지 시험장에 들어가야 하니까, 움직이지도 못하는 차 안에서 내려 뛰기 시작한 것 같다. 그 뒤로 밍크코트를 입고 하이힐을 신은 중년의 어머니도 뛰는 모습이 보였다. 애끓는 모정은 추위와 하이힐 앞에서도 굴복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두 정거장을 지나가는데, 힘들게 힘들께 뛰다 서다를 반복하는 학생이 보였다. 시각은 8시 58분이었다. 저 학생이 2분안에 뛰어서 시험장에 도착할 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힘들 것이다. 하지만 저 학생이 시험을 보지 못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성인으로서 첫 시작을 시도해보지도 못한 무력감에서 맞이하기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 

   집에 도착해서 고사떡을 맛봤다. 떡을 맛보며 이따 집에 갈 방법을 생각해봤다. 이런 글을 쓰고도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을 보니 나도 어쩔 수 없는 어른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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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권택 감독의 101번째 영화 <달빛 길어 올리기>가 드디어 제작에 들어간다는 소식을 접했다.(기사 읽기 클릭) 그의 100번째 영화인 <천년학>도 제작이 엎어질 뻔한 일이 있었는데, 신작을 만들 수 있다니 정말 다행한 일이다.  

         

   캐스팅은 일단 차치하고서라도 가장 놀랐던 것은 필름이 아니라 디지털로 영화를 찍는다는 것이다. 이미 100편의 영화작업을 한 장인이, 그것도 필름으로만 영화를 찍어왔던 감독이, 영화 인생의 황혼기에 새로운 도구로 영화를 찍는다는 사실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그것이 감독 스스로의 확고한 미학적 선택인지, 아니면 제작비 감소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타협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이번 영화는 현역 최고령 감독의 가장 새로운 영화가 될 것이다. 지금까지 이루어 놓은 것에 충분히 안주할 수 있으나, 항상 벗어나려 노력하고 늘 새로워지기를 원하는 임권택 감독의 행보는 나에게 좋은 귀감이 된다. 

   21세기 들어 영화는 '디지털'이 화두가 되었다. 아마도 이것은 영화 제작자들에게 있어서는 혁명과도 같은 일이다. 필름은 한 번 찍으면 다시 쓸 수 없지만, 디지털은 이게 가능하다. 영화에서 필름은 24장의 사진을 이어붙여 1초를 구성한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필름이 소모된다. 게다가 촬영이 한번에 끝나지는 않는다. 항상 무언가 일이 발생하며 수 많은 테이크가 일어나고 수많은 필름도 소모된다. 하지만 디지털은 필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1번의 테이크로 영화를 완성할 수도 있고, NG에 대한 부담감도 적어지기 때문에 좀 더 자유로운 작업 환경을 만들 수 있다. 

   즉, 영화를 필름으로 찍을 것인가, 디지털로 찍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감독이 영화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필름은 필름을 아끼기 위해서(혹은 제작비를 아끼기 위해서. 이것은 같은 말이다) 모든 스태프, 연기자들의 높은 집중을 요한다. 조명, 미술, 야외라면 기후조건 등 수 많은 제약을 필름에 담기 위해서 노력한다. 현실적인 의미에서 이것은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하지만 디지털은 리허설 장면이 촬영본이 될 수 있다. 필름의 제약이 없고, 조명의 제약 또한 약하기 때문에 여러 방향에서 영화를 구성할 수 있다. 디지털은 이미지를 만들어 내기 보다는 감독이 선택할 수 있다. 

   필름에서 디지털로 옮긴 감독은 여럿 있지만, 내가 관심있는(혹은 아는) 감독은 딱 2명이다. 데이빗 린치와 홍상수다.   

 

     

   데이빗 린치는 <멀홀랜드 드라이브>이후 디지털에 심취해있다. 처음에 그는 디지털에 반대했으나, 몇 번의 디지털 작업을 한 후로 "다시는 필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 선언했다. <데이빗 린치의 빨간방>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일단 작고 가벼운 디지털 장비를 이용해 촬영을 해보면 필름 촬영이 번거롭게 느껴진다. 내게 35밀리미터 필름카메라는 마치 공룡처럼 보인다. 그것은 크고 무게도 엄청나게 나간다. 그런 카메라를 이리저리 움직여야 한다. 여러 가지 작업을 해야 하는데 도대체 빨리할 수가 없다. 이런 이유로 필름카메라 작업에는 제약이 매우 많다. 반면 DV Digital Video촬영 시에는 모든 장비가 가벼워 이동성이 훨씬 좋고 매끄럽게 움직일 수 있다. 그리고 생각한 바를 곧바로 영상으로 잡아낼 수 있다.  

(데이빗 린치의 빨간방)

 
   

   그는 화가 출신이다. 화가는 혼자서 캔버스를 메운다. 그의 바람은 그림을 그리듯 혼자서 영화를 만들고 싶은것 같다. 하지만 영화는 공동작업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최소한의 인원으로 작업을 하고 싶은 것 같다. 필름과 디지털의 차이는 화질이다. 그는 HD 디지털 카메라를 선택하는 대신 화질이 떨어지는 'SONY PD150'디지털 카메라를 사용한다. 크기가 작아 운용하기가 쉽고 그가 좋아하는 1930년대의 필름과 비슷한 화질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란다. 미학적인 면에서 필름을 쫒아가는 것을 보면 그가 디지털을 선택한 것은 제작방식 때문인것 같다.   

 

       

   홍상수는 <해변의 여인>이후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첩첩산중>, <하.하.하>를 모두 디지털로 찍었다. 필름에서 디지털로 옮긴 이유가 궁금해서 <어떤 방문> 감독과의 대화에서 질문했었다. 그의 대답은 이랬다.  

   
 

   필름은 제가 영화를 처음 접했을 때, 그걸로 찍었기 때문에 다른 것을 생각해보진 않았습니다. 그러다 제작비 문제때문에 디지털을 택하게 됐는데, 필름과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찍은 결과물을 보면 필름과 디지털의 차이는 제게 없습니다. 좀 있다면 디지털은 줄무늬 있는 옷이 떨린다는 것 정도? 그리고 저는 영화를 찍을 때 테이크를 많이 찍는데, 필름은 아무래도 부담이 가죠. 하지만 디지털은 그렇지 않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디지털을 택했습니다.  

(<첩첩산중> 감독과의 대화 中)

 
   

   홍상수에게는 필름과 디지털의 차이가 없기 때문에 제작상의 이유로 디지털을 택한 경우다. 

   임권택 감독의 경우는 어떨까? 디지털은 필름과 다른 질감을 가지고 있다. 디지털이 많이 따라잡았다 하더라도, 아직 필름의 그 질감을 따라잡지는 못한다. 임권택 감독이 어떤 결과물을 내밀지 벌써부터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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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트 2009-11-21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습니다. 임권택 감독 신작이 정말 궁금해지는군요.

Tomek 2009-11-23 09:38   좋아요 0 | URL
어떤 영화가 나올지 궁금합니다.

가르강튀아 2009-11-21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 어떻게든 영화를 만들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Tomek 2009-11-23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다행한 일이지요~
 
[작가 김훈, 독자와의 만남] 잘 다녀왔습니다.

 [작가 김훈, 독자와의 만남 ]

 

<일시> 2009년 11월 13일 금요일 19시 40분
<장소> 누리꿈 스퀘어 18층 오마이뉴스 대회의실

   지난 금요일 [작가 김훈, 독자와의 만남]에 다녀왔습니다. 이런 자리는 처음이어서 어떤 느낌일까 생각했었는데, 기대보다 재미있고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원래는 저 개인의 추억으로 혼자 간직하려고 했으나, 약 8:1의 경쟁률(?)을 뚫고 참석한 자리라, 그 자리에 참석하지 못하신 알라디너분들께 보고 형식으로라도 올려야 할 것 같아서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이번 만남은 강연과 질의 응답 그리고 사인회로 진행됐습니다. 오마이뉴스에서도 생방송으로 인터넷 중계를 했고, 이미 기사도 올라왔습니다. (바로가기 클릭) 그 기사로 후기를 대채할 생각이었으나, 무언가 미흡한 마음이 들어 그때 강연과 질의 응답을 재구성하기로 했습니다.  

문학동네에서 제공한 <공무도하> 연필과 오마이뉴스에서 제공한 소책자 메모장 

 

 

어쩌다보니 이런 사진밖에 없네요... 죄송합니다. ㅜㅜ

 

   아래의 글은 제가 메모한 것을 바탕으로 김훈 선생님이 강연에서 하신 말을 Tomek이라는 여과기를 거쳐 쓴 것입니다. 최대한 정확하게 쓰려 했으나 제 생각이 중간 중간 개입된 부분도 있습니다. 그 점 감안하시고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강연> 수능날 아침, 고사장 풍경을 바라보며 

   저는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지만 말을 해야 한다고 해서 겨우 준비해 왔는데... 저는 소설이나 문학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저는 늘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 제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을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저는 세상 잡사(雜事)를 아주 싫어하지만, 세상 잡사를 끝없이 말하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저는 항상 이런 모순된 욕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건 아마도 여러분들도 그럴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수능 당일 새벽 5시에 일어나 5시부터 오전 8시 30분까지 수능 고사장 풍경을 관찰했습니다. 저는 이자리에서 지금의 교육제도를 비판하려는 게 아닙니다. 저는 제가 보는 것을 말할 뿐입니다. 물론 이런 주제가 이 자리에서 말할 게제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12일 새벽 5시에서 6시 사이에 경기도 교육청에서 시험지 수송이 이루어졌습니다. 시험지가 담긴 상자 하나에 무장경찰이 두 명씩 들러붙어 각 고사장으로 시험지를 수송했습니다. 

   6시 30분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그 때 응원부대가 속속 고사장 주변으로 집합했습니다. 응원부대는 고1, 2로 이루어졌고 그들의 표정은 발랄하고 이뻤습니다. 그들은 "수능 대박 / 재수 없다"라는 피켓을 준비하고 응원했습니다. 그들은 고3들의 얼굴을 부비고 안으며 응원하고 들고온 린나이 곤로로 따듯한 커피를 끓여서 먹였습니다. 

   7시 30분이 되자 수험생들이 입실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응원은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입실을 한 여학생들은 화장을 하기 시작했고, 남학생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담배를 태우기 시작했습니다. 화장은 여자의 지옥과 같은 '업'입니다. 절대 벗어날 수 없습니다. 저는 40년간 피우던 담배를 얼마전에 끊었는데, 이들 남학생들은 제가 40년간 피웠던 담배를 시작하는 셈입니다. 수능은 여학생들과 남학생들 모두 인생의 시작으로서 업이 시작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학부모들이 수험생들을 데려다주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 한 아버지가 자신의 딸을 수험장에 데려다 주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아버지는 딸을 내리고 직장으로 출근했습니다. 딸은 교문 밖으로 나가는 아버지가 탄 승용차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았습니다. 아마도 딸의 아버지 역시 백밀러로 수 많은 인파들속에 묻혀가는 딸의 모습을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아버지의 차가 교통체증과 신호에 막혔습니다. 안타까운 부성을 어쩔 수 없었는지 아버지는 차창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어 딸의 모습을 바라봤습니다. 그 시간 2차선에 있었던 아버지들은 차 창문을 열고 계속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1차선은 퀵서비스 오토바이들이 점거하고 있었습니다. 도로가 막힐 때마다 항상 1차선에 있는 것은 퀵서비스 차량입니다. 이들은 거리의 야생동물입니다.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곡예와 같은 운전을 합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 이들은 이 도시의 역동적인 생존의 투사들입니다. 

   어머니들은 수능 기도를 올리고 있었습니다. 모두들 중년, 초로의 어머니들입니다. 어머니들의 애끓는 모정은 다 큰 성인인 아들이 군대를 갈 때도 병영 앞에 따라 갈 정도입니다. 수능 시험이 아니라 대학원 시험을 볼 때도 어머니들은 항상 그 자리에 있습니다. 한편에선 동네 목사님이 오셔서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하느님이 인도해 줄터이니, 성령에 기대어 다들 잘 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 애끓는 모정과 성령의 힘이 발휘된다 하더라도, 인간이 만들어 낸, 이 수능이라는 제도 앞에선 모두 무력화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모두들 수능을 잘 본다 하더라도, 수능은 결국 밑에서부터 쳐 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수능이라는 등급을 만들어 놓고, 대학을 서열화 시킨 이 해결할 수 없는 모순을 우리는 제도화 시켜놓고, 그 모순된 제도속에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을 밀어 넣는 것입니다. 

  거리에는 경찰, 퀵서비스, 해병대 전우회, 헌병까지 나와 시험에 늦은 수험생들을 고사장까지 데려다 주었습니다. 국가는 모든 학생들이 균등하게 시험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이 공평한 기회를 우리는 공정거래라고 합니다. 공평한 기회 안에서 강자와 약자가 거래를 하면 약육강식의 결과가 됩니다. 사회의 배려로 균등하게 시험을 볼 수 있는 공평한 기회 안에서 경쟁을 해서 운명에 맞는 서열화를 지닙니다. 불합리한 것은 알지만, 대안이 없습니다. 

   집에 와서 뉴스를 보니 약 10,000명 이상의 학생들이 시험을 포기했다고 했습니다. 이들은 그 시간에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아마도 이들은 스스로의 고민을 짊어지고 방황을 시작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이 일만명의 학생들을 궁금해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일만명의 학생은 수능이라는 제도 안에서 잘라서 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1교시가 끝나자 각 입시 학원에서 정답을 제공했습니다. 저는 이 신속함이 야만적인 신속함이라 느꼈습니다. 정작 정답이 필요할 학생들은 시험장에 갇혀서 시험을 보고 있을 것인데, 이런 신속함이 누굴 위한 것인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수능평가의 문제를 보니, 수능은 개념을 평가하는 시험입니다. 사물은 개념의 형태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물은 그 자체로 운동의 모습으로만 존재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학생들에게 사물을 개념화 시켜서 가르치고 그것을 평가하고 있습니다. 수능은 평준화 제도라는 틀 안에서 평가합니다.  

   우리나라 교육은 평준화 교육임에도 부모는 내 자식이 평준화 된 것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부모는 자식이 그 이상이 되기를 바랍니다. 평준화 제도 안에서 평준 이상을 원하는 부모의 욕망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평준화의 이상은 우리가 쉽게 단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모순을 우리는 제도로 만들고 아이들을 수용합니다. 그리고 그 제도에 맞지 않는 아이들은 쉽게 내칩니다. 

   불합리하지만 대안이 없습니다. 저는 단지 수능을 보지 않은 일만명의 학생들이 개념화된 지식에서 벗어나길 바랍니다. 그들에게서 희망을 기대합니다.  

 

 

유일하게 제 뒷모습이 담긴 사진이라서 올렸습니다. ^.^ (출처: 오마이뉴스)  

 

<질의 응답> 

[질문 1] 본인의 문체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제게 있어서 문체는 고통스런 글쓰기의 조건입니다. 문체가 확보되지 않으면 한 줄도 쓸 수 없습니다.책을 낼 때도 원고를 쓰고 출판사에 넘겨야 하는데, 이 원고가 제 맘에 들지 않습니다. 이건 아니라는 것을 알겠는데, 제가 가지고 있어봤자 다른 대안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닌 걸 알면서도 넘길 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이런 모순 속에서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 개인적인 허영심이 있다면 주어와 동사만을 사용해서 글을 쓰고 싶습니다. 말의 뼈대만을 사용해서 소설을 쓰고 싶습니다. 판소리로 비유하자면 서편제가 아닌, 동편제같은 기교를 배재한 문장을 쓰고 싶습니다. 일종의 허영심이란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제 생존과 관련된 문제이기도 하고요. 원고가 진행되어야 돈을 벌 수 있을텐데, 말의 뼈대만을 가지고 글을 쓰면, 평소에 10장 쓰는 것을 1장밖에 못쓰는 것인데.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해보고 싶습니다. 

 

[질문 2-1] 소설 『개』는 어떻게 쓰셨습니까? 

   『개』 주인공 '보리'라는 개는 제가 기르던 개의 이름이었습니다. 진도개였는데 너무 사나워서 도저히 키울 수가 없어 농장에 취직시켜줬습니다. 지금은 농장에서 잘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저한텐 상당히 좋은 개였으나 제 식구들에겐 힘든 개였습니다. 저한텐 그렇게 충성을 바치고 어리광도 부리는데, 이 개는 여자, 특히 제 딸을 무시했습니다. 딸이 집에 들어오건 말건 누워있는 상태에서 멀뚱멀뚱 쳐다만 보고. 보다못한 딸이 몽둥이로 개를 때리는데도 이놈은 그냥 맞고 있습니다. 아마도 '때릴테면 때려봐라' 뭐 그런 심보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개에 대한 관심이 생겨 도감을 찾아보니, 개의 시각과 청각, 후각이 인간보다 월등히 뛰어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게 뛰어난 감각을 지니고 있다면, 개가 느끼는 것은 인간이 느끼는 것 이상의 것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삶의 뛰어난 원형질을 지닌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내가 그 삶의 뛰어난 원형질을 지닌 개가 되어 이 세상을 바라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집필을 시작했습니다. 

   인간의 삶은 삶을 삶 자체로 느끼지 못합니다. 글자, 매체, 이런 것들이 우리의 삶 사이에 부당하게 개입하고 우리의 삶을 차단합니다. 우리가 우리 몸으로 직접 개입하고 느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개는 직접 몸으로 부딪히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개를 통해 우리에게 부당하게 개입하는 것에서 벗어나 세상을 직접 느끼는 것을 집필 의도로 삼았었는데, 그게 잘 표현됐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질문 2-2] 작가 김훈에게 있어서 글쓰기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저에게 글쓰기란 밥벌이, 노동, 생존입니다. 저에게 글쓰기란 경건하고 심오한 노동입니다. 이것이 보장되어질 때 비로서 글쓰기란 저 자신을 표현해 주는 수단이라 생각합니다. 이 순서가 저에겐 중요합니다.  

   저는 세속의 질서를 지니고 삽니다. 현세적 가치를 존중합니다. 저는 현세적 가치를 경멸하는 사람들을 경멸합니다. 

 

[질문 2-3] KBS 정연주 사장과 YTN 기자들의 해임 무효 승소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저는 법원의 판단에 따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저는 세속적인 질서를 존중합니다. 법관은 개인의 신념이나 정의감, 여론으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법과 헌법에 따라 판결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결과가 여론과 정 반대로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판결을 따르는 것이 시민의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질문 3-1] 선생님은 시민은 반드시 복종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반드시 복종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시민의 불복종은 권리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특별한 계기일 때 권리라 생각합니다. 

 

[질문 3-2] 그렇다면 그 특별한 계기는 언제라고 생각하십니까?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시민 불복종이 권리가 된 그 특별한 때를 듣고 싶습니다. 

   (질문하신) 선생님은 그 때가 언제라고 생각하십니까? (질문자 모르겠다고 대답)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 때가 어떤 때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질문 4] 소설 『공무도하』를 보면 작가 스스로 많은 조사와 취재를 했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이런 조사와 취재를 글로 만드는 과정이 궁금합니다. 

   『공무도하』에서는 연민과 서정을 의식적으로 제거했습니다. 무정한 인간으로서 세상을 냉엄하게 관찰하는 문체를 고집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엔 세상에 대한 연민이 없습니다. 이렇게 한 이유는 연민을 감춰서 더 많은 연민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나쁜놈이 있습니다. 이 사람을 글로 표현할 때, '나쁜놈'이라는 세글자를 쓰면 안됩니다. 직접적인 글 대신에 이 사람이 나쁜놈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게 증명해야 합니다. 

   취재나 소재는 극히 일부가 소설이 됩니다. 어쩔 수가 없습니다. 나머지는 대부분 버리게 됩니다. 저는 자연의 풍광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한강을 보면, 하류의 조강은 늙은 강입니다. 힘겹게 겨우 겨우 흘러갑니다. 그렇게 바다로 흘러갑니다. 반면에 북한강 상류는 힘이 넘칩니다. 젊은 강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자연을 느끼는 것을 자연을 취재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자연을 취재하다보니 인간을 취재할 때도, 인간을 하나의 풍광으로 관찰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이것은 나쁜 습관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질문 5] 선생님이 쓰신 『자전거 여행』에서는 우리나라의 아름다움이 느껴지고 소설 『남한산성』에서는 애끓는 아름다움을 느꼈습니다. 선생님은 애국자이십니까? 

   저는 이념화된 애국심은 없습니다. 『남한산성』에서 애국자는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절망적인 고립된 성 안에서 있는 그들의 선택을 전 긍정합니다. 개인의 목숨을 강요하는 애국심에 대해선 긍정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 반대의 이유도 가능합니다.  

   『남한산성』에서 남한산성 안에 있던 백성들은 자급자족이 가능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조선 임금 때문에 살 수 없습니다. 임금이 그 성으로 피난을 오지 않았으면 이들은 계속 자급자족한 삶을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이들은 성 안에 들어온 임금을 향해 엄청나게 욕을하고 저항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기록에는 이것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역사는 이런 것을 기록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느 정도 상상력으로 복원했습니다. 이들에게 이념화된 애국심은 필요 없습니다. 그저 이들이 일상생활을 하는 것으로 이들의 애국심을 표현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질문 6-1] 선생님은 예전에 시에 대한 글을 많이 쓰셨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정작 시를 쓰지는 않으십니다. 선생님에게 시는 어떤 영향을 주었고, 어떤 의미인지, 어떤 애착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시를 못씁니다. 시를 보면 질투가 나고 무서운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는지 경탄합니다. 

   김소월의 「산유화」를 보면 산, 꽃, 새 주어가 3개입니다. 그리고 피네, 우네, 지네, 사네 동사는 4개입니다. 고작 이것을 가지고 자연에 동화되지 못하는 인간의 소외를 그렸습니다. 정말 무섭습니다. 게다가 주격조사 '이'. '산에는 꽃 피네 / 꽃이 피네' 주격조사 '이' 대신 '은'을 집어 넣으면 이것은 망한 글이 됩니다. 이것은 생각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김소월은 이것을 육감적으로 표현했습니다. 타고난 재능입니다. 저는 그렇기 때문에 시인의 재주는 사회의 공적 자산으로 여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질문 6-2] 선생님께서 편애하시는 것, 예를 들면 힘들거나 기분 나쁜 일이 있을 때 이것만 생각하면 절로 웃음이 나는 그런 것들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저는 가끔 집 근처에 있는 학교에 갑니다. 가서 울타리 사이로 무리진 여학생들을 바라봅니다. 그러면 그 중 한명이 저를 발견하고 까르르 웃습니다. 그러면 같이 있던 학생들이 다같이 따라 웃습니다. 그 웃음의 전파속도는 실로 엄청납니다. 그리고 그 웃는 모습은 마치 꽃이 피는 것 같습니다. 저는 거기서 인간의 아름다움을 느낍니다. 그 아름다움을 느끼기 위해서 학교에 자주 가는데, 수위 아저씨에게 의심을 받곤 합니다. 다 늙은 아저씨가 학교 벤치에 앉아 물끄러미 여학생들을 쳐다보니까. 요새 하수상한 일들도 많이 생기고. 

   재미없죠? 이상하고. (웃음)

 

[질문 7] 선생님의 <수능 고사장 풍경>에 대한 강연 잘 들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우리 교육제도에 대안이 없을까요? 선생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제 생각은 있지만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말 할 만한 게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물어봅니다. 4대강사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세종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FTA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전 정말 모릅니다.  

   신문 사설을 보면, 이렇게 저렇게 쭉 말을 하면서 항상 마지막에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은 국민이 판단할 일이다.' 국민이 판단한다는 말은 마치 민주주의의 절차를 대변하는 말 같으나 실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공허한 말이고 하나마나한 말입니다. 국민이 판단할 거라면, 대체 국회는 왜 있고 사법부는 왜 있으며 대통령은 왜 있는 것입니까? 

   제 개인적인 생각을 말씀드린다면, 요즘 대학은 인문주의의 쇠퇴로 위기에 달했다고 합니다. 대학이 취업준비에 열을 올린다고 하고 개탄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게 옳다고 봅니다. 앞서 말했듯이 전 세속적인 사람입니다. 

   인간의 위엄과 존엄은 자기 밥벌이가 가능해야 그것들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스스로의 밥벌이를 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후 임금 격차나 다른 것들을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육은 임금 격차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제 집근처에서 일 하는 젊은 목수들에게서 희망을 느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느끼고 일을 합니다. 스스로의 자부심을 느끼는 젊은이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젊은이들도 정서적인 관점이 아닌 과학적인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좋겠습니다. 

 

[질문 8] 『공무도하』의 원작 「공무도하가」는 끔찍한 사랑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소설에는 그런 사랑 이야기가 없습니다. 선생님이 「공무도하가」에서 받은 인상과 왜 제목을 차용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공무도하가」를 고등학교 때 처음 접했습니다. 그걸 읽었을 때 무서움을 느꼈습니다. 백수광부가 물에 빠져 죽고 부인도 죽는데 부인의 죽음은 석연치 않습니다. 백수광부를 구하려다 죽었는지 아니면 백수광부가 죽은 것을 알고 투신 자살하려 했는지. 그 둘은 서로 다르잖아요? 이 이야기를 해주자 여옥이 부른 노래가 「공무도하가」죠. 물 너머의 세계로 간 사람들, 그리고 남아 있는 사람들. 그런 것들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국어선생님은 무조건 개념화된 지식만 가르쳤었죠. 외우지 못하면 맞고. 

   소설에 사랑 이야기가 없다고 하셨는데, 직접 나오지는 않고 바탕에 깔려있습니다. '사랑'은 처자식을 만들고 인간을 속박시킵니다. 저는 그런 인륜의 관계를 벗어나려는 많은 사람들의 고통과 좌절을 이 소설에서 그렸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사랑이 새로운 관계로 이루어 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은 관계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계속 생각할 것입니다. 사랑이란... 끈적한 것일까요? 

 

[질문 9] 저는 딸과 아들, 두 번의 수능을 겪은 엄마입니다. 이 해결할 수 없는 모순된 제도 안에서 수 많은 갈등을 하며 아이들을 제도 안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수 많은 학부모들의 이 더러운 비열함을 희망으로 전환시킬 문학작품을 다음에는 써 주셨으면 합니다. 

   수능 고사장에서 돌아와 제가 찾은 책은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었습니다. 허클베리는 미시시피의 건강한 반항아이자 문제아입니다. 그런데 왜 유독 우리 문학에는 이런 아이들이 없을까 생각했습니다. 작가들의 직무 유기가 아닐런지. 

   이 땅의 모든 예술 작품들이 이런 모순된 제도 앞에서 우리 아이들의 고통을 말하고 절규해야 하는데, 도대체 왜 없을까요. 

 

[질문 10-1] 『공무도하』에서 노목희가 새벽에 냉장고에서 낫또를 꺼내 끓이는 장면을 보고 놀랐습니다. 낫또는 우리에게 친숙한 식품이 아닌데 왜 낫또였습니까? 

   왜 청국장이 아니라 낫또냐고 물으신 건가요? 청국장이면 분위기가 깨지죠. 한 밤에 끓이기도 번거롭고 냄새도 나고. 청국장의 이미지는 같이 오래 산 중년 부부에게 어울립니다. 노목희가 청국장을 끓이면 분위기가 망합니다. 그래서 낫또일 수 밖에 없습니다. 

 

[질문 10-2] 『공무도하』에서 개인적으로 '뻥'터졌던 부분이 고압 산소통과 화장실에 빠져 죽은 사건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실은 그 부분은 넣을지 뺄지 상당히 고민을 했던 부분입니다. 삶을 조롱하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어서였는데, 그 또한 삶의 우연이라 생각하고 삽입했습니다. 그리고 그 일들은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입니다. 제가 창작해서 쓴 것이 아닙니다. 

 

[질문 11] 선생님의 오늘 강연은 예전에 기자 시절에 쓰신 「대학 졸업식 풍경」에서 느낀 감정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지금의 작가 김훈은 그 때 기자 김훈에서 얼마나 벗어났는지 궁금합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관찰자의 시선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저는 사심을 배제하고 목격한 것만을 적습니다. 

   대학 졸업식은 난민 캠프입니다. 졸업식이 시작되면 온갖 잡상인들이 몰려들어 음식을 팝니다. 대학 총장은 졸업 축사를 비어있는 팻말 앞에서 합니다. 그 안에 있어야 할 학생들은 사진을 찍고 핫도그를 입에 물고 돌아다닙니다. 졸업식장에서 대학생들은 discipline이 안된 사람들입니다. 저는 그런 훈련이 안 된 사람을 날라리라 부릅니다. 대학 졸업식은 형식이 무너진 교양이 없는 풍경입니다. 

   삶의 형식에 있어서 형식은 중요하지 않고 내용이 중요하다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형식이 무너지면 그 내용도 무너집니다. 형식은 내용을 견디고 버텨내는 그릇입니다. 형식적인 면에서, 형식을 존중한다는 점에서 전 보수주의자 입니다. 

 

[질문 12] 선생님은 글을 쓰실 때 끝을 낼때가 언제쯤인지 아시는지 궁금합니다. 

   소설이 끝날 때쯤 되면 기진맥진합니다. 그래서 빨리 해결하려 합니다. 제가 소설을 쓰다가 '아, 이제 연필을 던져도 되겠구나.'하는 부분은 그저 본능적으로 느낍니다. 

   저는 소설을 쓸 때 여자가 등장하는 부분은 굉장히 힘들게 씁니다. 그래서 『공무도하』에서도 노목희를 빨리 보내려고 했고. (웃음) 특히 『칼의 노래』쓸 때, 여진이라는 여자가 초반에 나오는데, 이 여자가 살아 있으면 소설을 진행하기 힘들 것 같아 가능한 빨리 없앴습니다. (웃음) 

 

    

<사인회>  

   생각 같아선 가지고 있는 소설을 다 가지고 가서 사인을 받고 싶었으나, 많은 분들이 오실 것 같고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 『빗살무늬토기의 추억』과 『강산무진』 두 권만 가져왔습니다. 알라딘과 문학동네에서 주최하는 행사이니 문학동네에서 출판한 책만 챙겨온 셈이지요. 기회가 되면 다른 책에도 사인을 받고 싶습니다. 

  

 

그날 강연과 질의 응답을 적은 메모지 

 

<나는 왜 김훈에 열광하는가?> 

   이날 독자와의 만남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작가 김훈은 -굳이 가르자면- 보수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현실을 긍정하지만, 또한 현실에 복종하고 있습니다. 지금껏 한 번도 대통령 선거에서 1번을 투표한 전례가 없는 저와는 이념적으로는 맞지 않는 성향입니다. 그런데 그런 나는 왜 이런 김훈에게 열광하는가? 

   작가 김훈은 자신이 완벽하다고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이미 자신이 그런 권력을 누릴 수 있는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항상 자신이 모순된 존재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약점을 알고, 세상을 파악하고 그 현실 안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껏 어떤 위대한 이상에 짓눌려 살아왔습니다. 돈벌이를 경시하고 저 너머에 있는 이상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제 삶의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삶은 그리 녹록치 않았고 신념과 이상은 항상 돈 앞에서 멈칫거렸습니다. 그러나 김훈은 세속적인 것을 존중합니다. 끼니를 때우는 것에 대한 숭고함, 돈벌이를 통한 인간의 존엄성과 위엄을 그는 글로, 소설로 표현했습니다. 소외당한 것 같고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삶 속에서 하찮게 느껴지는 돈벌이를 그는 긍정했습니다. 이땅의 위로받지 못하는 가장들은 김훈에게 위로를 받고 삶의 숭고함을 찬양 받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삶의 존재 이유를 김훈에게서 받습니다. 그것도 우리와 같이 불완전하고 모순으로 가득 찬 위대한 김훈에게. 그렇기 때문에 저는 그에게 열광합니다. 그의 다음 소설을 기대합니다. 

   소중한 기회를 준 알라딘과 문학동네, 오마이뉴스 그리고 김훈 선생님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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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개』냉엄하고 엄정한 시선을 잠시 거둔, 미문의 소설
    from 이번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 2009-11-28 08:08 
       김훈의 문장은 냉엄하고 엄정하다. 1인칭 시점의 글이건, 3인칭 시점의 글이건 간에, 그는 냉엄하고 엄정한 관찰자의 시점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런 기본 조건이야말로 그가 기자시절부터 단련해 온,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일 것이다.     그런 그도 피곤했던 것일까? 늘 세상과의 거리를 두고 있던 그의 시선이 『개』에서는 더할나위 없이 아름답고 아련하게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이것은 아마도 그가 인간이 아닌
  2. <공무도하> '시간 너머'의 세계로 건너가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
    from 이번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 2009-11-28 08:44 
       처음 <공무도하>를 읽었을 때의 느낌은 그의 처녀작인 <빗살무늬토기의 추억>의 대구 소설이 아닌가 싶었다. <빗살무늬토기의 추억>은 바람이 불어오는 것으로 시작하고 <공무도하>에서는 장마전선이 형성되는 것으로 시작한다. 바람과 아직 형성되어 있지 않은 물의 이미지는 우리가 그 존재는 알고 있으나 잡을 수 없는 아득한 것이다. 마치 우륵의 음률이나 타이웨이 교수의 저작처럼.
 
 
톨트 2009-11-16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강연회 였군요. 저는 추위와 감기 때문에 갈 생각은 엄두도 못내고... 여튼 저도 김훈 선생의 소설은 대부분 읽었습니다. 배울 게 많은 작가이지요.

Tomek 2009-11-16 12:22   좋아요 0 | URL
감기 걸리셨나봐요. 요즘 감기 독한데.. 빠른 쾌유 바랍니다.
이런 자리는 처음이었는데, 좋은 분위기 속에서 화기애애하게 진행됐습니다. 좀 더 시간이 길었으면 했는데.. 90분이 금방 지나가더군요. 다음에 또 다른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

2010-03-01 12: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02 09: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회사 업무 상 13일, SETEC에서 개최하는 <EBS 어린이 영어교육박람회>에 다녀왔다. 작년 12월에 KOEX에서 했던 박람회보다는 규모가 좀 작은 편이지만, 현 사교육 영어 '시장'의 흐름을 짚어볼 수 있는 기회였던 것 같다. 

   내가 하는 일이 어린이 영어와 관련한 일이지만, 솔직히 말하면 난 어린이 특히 유아에 대한 영어 교육에 대해서 꽤 비판적인 입장이다. 우리말도 제대로 모르는 아이들에게 다른 언어를 주입시키는 것은 -몇 몇 재능있는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부모들의 욕심과 욕망이 투영한 결과라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뭐라 할 수 없는 게, 난 그 대한민국의 일반적인 부모들의 욕망에 기대어 책과 상품을 개발하는 것으로 끼니를 때우기 때문이다. 삶의 모순. 내가 내 신념대로 살려면 이 일을 그만두어야 하지만, 지금껏 쌓아온 경력을 버리기에는 이 사회가 어리숙하지 않다.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내 모순을 인정하고 살아가는 것인지. 대안 없는 모순을 끌어안으면서 나는 그렇게 하루 하루 끼니를 때우나 보다. 

   이번 <영어교육박람회>엔 총 41개 업체가 참가했다. 그 중 4개업체는 어린이 영어 교육과는 관련이 없는 업체였다(그 4개 업체는 쇼핑몰 회원유치, 보험 회원가입, 학원 인테리어, 아동학대 예방 캠패인 기관이다). 나머지 37개 업체 중 가장 많이 전시한 분야는 '어린이대상 영어 전문서적 및 교재'이다. 가장 볼 게 많았고 또 관심있는 분야였다. 

   아이들 손에 맞게 작은 판형으로 만들고 해당되는 주제에 맞는 내용으로 아기자기하게 책을 꾸몄다.   

   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책은 책이라기 보단 장난감, 교구에 가깝다. 그만큼 '책'을 온몸으로 느껴서 책을 알게되고 결국엔 책을 친숙하게 대하는 것. 위의 책들은 책 위에 책 내용과 관련한 장난감이 같이 있는 게 신선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빠질 수 없는 팝업북의 향연. 평면성을 지닌 책에서 입체성을 지닌 그림이 튀어나오는 것은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의 주의도 끌기 마련이다. 책을 통한 신기함과 재미를 느낄 수 있으므로 아이들은 더 많이 책과 접하게 될 것이고 책에 있는 내용 또한 익히게 될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저런 책을 만들어내는 아이디어가 부족한 것과 제작비가 많이 든다는 것. 하지만 도전해 볼만한 영역이기도 하다.  

   달력처럼 양면을 사용할 수 있고 글의 내용에 맞게 시간을 독자 스스로 조작할 수 있는 책. 책이 꼭 양면을 사용헤 펼쳐서 읽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형식적인 면에서 새로운 책이 계속 나오는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이 존경스럽고, 이런 기획을 무시하지 않고 살린다는 것이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똑같은 위치에 똑같은 모양을 한 눈을 가지고 같은 주제로 얼마나 다양하게 변주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한 훌륭한 예시다. 이런 책을 만드려면 얼마나 많은 아이디어 회의와 기획과 시행착오를 겪어야 할까? 그에 비해 난 너무 쉽게 책을 기획하고 만드는 게 아닐까하는 반성을 했다. 

   책이 꼭 사각형일 필요는 없다는 멋진 형식 변형의 한 예. 항상 깨어있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만이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는 것 같다. 

   영어 사교육 시장의 측면에서 봤을 때 작년에 비해 달라진 점은 '화상교육'이 꽤나 많이 등장했다는 점이다.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업체도 상당히 많이 참가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앞으로 학원의 역할은 관리자의 역할에 머물것 같다. 지금 영어 학원이 선생 중심(T-centre)에서 학생 중심(S-centre)의 수업으로 넘어갔듯이, 앞으로는 선생과 학생의 일대일 수업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인터넷이고. 물론 현장 수업과 온라인 수업의 차이는 아직까지는 현장 수업의 효과가 높지만, 이 차이는 앞으로 점점 좁혀질 것이다. 박람회에 참가한 인터넷 기반 프랜차이즈 학원들은 그 차이를 학원수업으로 매우고 있다. 이것이 성공할지 아니면 그냥 해프닝으로 끝날지는 모르겠으나, 아마도 새로운 수익 모델을 제시했다는 점은 간과하기 어려울 것 같다. 

   영어 교육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이번 주말을 이용해 한 번 다녀오시는 것도 좋은 기회라 생각한다. 2009년 현재 영어 사교육 시장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기회이니까 말이다. 

 

 

*덧붙임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이 많아서인지 정말 멋진 팝업북에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습니다. 거의 예술의 경지에 이르렀더군요. 몇 장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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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 여전한 박민규의 유효한 선동

0.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영화화

 

   박민규 작가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가 영화화 된다고 한다. 감독은 수백편의 CF를 제작한 오민호 감독이고 영화 제작사 아이디어 팩토리에서 제작을 한다고 밝혔다. (기사보기 클릭)  

   좀 더 기사를 살펴보자면 이렇다. 

못생긴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와 스스로를 사랑할 수 없는 여자의 이야기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겉모습으로 비교되고 경쟁하며, 늘 외모 콤플렉스에 시달려야 하는 우리 사회의 여성 98%에게 바치는 위로로 다가갈 것이다. 영화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시나리오 작업이 완료되는 대로 캐스팅 작업을 거쳐 2010년 상반기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내가 이 영화를 반대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소설에 나오는 "그녀-못생긴 여자"를 어떻게 그릴 것인가? 이건 실패를 담보한 기획이다. 

 

1. 다빈치 코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책이나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들은 건너 뛰시기 바랍니다) 

  

 

   소설 『다빈치 코드』에서 로버트 랭던을 도와주는 소피 느뷔는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의 피를 이어받은 자손이다. 이 사실은 소설의 중후반에서 밝혀지지만, 읽는 데 감상에 무리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의 이미지에 그녀의 모습을 대충 맞춰서 상상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소설의 상상력을 더욱 풍부하게 만드는 재료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설정이 영화로 옮겨가면 골치가 아파진다.  

 

  

산 아폴리나레 누오보 성당에 있는 예수의 모자이크 그리고 소피 느뷔로 분한 오드리 토투 

 

   소설에서 제시한 이미지는 우리의 머리속에서 재구성 된다. 각자 개인이 가지고 있는 예수의 이미지와 각자가 생각하는 소피 느뷔의 이미지가 겹쳐 예수를 닮은 각자의 '소피 느뷔'가 탄생할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눈에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객관성을 담보한다. 아무리 오드리 토투가 예수를 닮았다고 우겨봤자, 모든 관객이 그 객관성을 인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소설의 캐릭터를 영상화하는 것은 각자의 주관성을 객관화 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그만큼 위험성을 담보로 한다.  

 

2. 아름답다  

 

   조금 다른 경우지만, 이 영화는 '아름답다'라는 형용사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영화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가 자신의 아름다움 때문에 파국으로 치닫는 것을 보여준다. 김기덕 감독이 시나리오를 쓰고 그간 김기덕 감독 영화에서 조연출을 맡은 전재홍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이 영화에서 치명적인 아름다을 간직한 여인은 배우 차수연이 맡았다.  

   차수연은 물론 아름답다. 그러나 이 영화의 설정은 '세상 모든 남자들이 그녀의 치명적인 아름다움에 홀리는' 여인을 그린 영화다. 아마 시나리오 상에서는 더할 나위 없는 설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아름다움'의 주관성을 어떻게 객관화 시킬 것인가. 각자의 아름다움은 각자의 기준에 적용된다. 배우 차수연이 아름다운 것은 인정하지만, 모든 남자를 굴복시킬 그 절대적 아름다움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만큼 미적 주관성은 객관화 시키기 어려운 법이다. 

 

 

3. 박민규 작가의 다른 작품 영상화를 꿈꾸며

   박민규 작가는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에서 이렇게 밝혔다. "가장 아름다운 것과 가장 추한 것은 똑같이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한 번 쳐다보면 세상이 얼어붙은 듯이 숨이 턱 막히는 그런 '추함'을 어떻게 형상화 할것인가. 예쁜 여배우를 못생기게 분장을 시키든, 진짜로 못생긴 여배우를 캐스팅하든, 아마도 이 소설을 읽은 대부분의 독자를 수긍케하는 '그녀'를 탄생시킬지는 모르겠다. 혹여나 '못생긴 여자'가 아닌 '흉측한 여자'가 되는 것이 아닌가, 아니면 못생긴 척 하는 예쁜 여자가 되는 것은 아닌가 벌써부터 걱정이다.   

 

박민규 작가의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를 각색한 <낙타씨의 행방불명>

 

   박민규 작가의 서사가 영상화에 잘 맞아떨어질까? 예전에 TV문학관에서 방영했었던 <카스테라>는 그저 그랬다. 오히려 예전에 드라마시티에서 방영한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를 각색한 <낙타씨의 행방불명>이 훨씬 더 박민규 작가의 감수성을 담았다고 생각한다. 특히 무기력한 아버지 역할의 기주봉 씨의 연기는 단연 압권. 소설에서 묘사한 절망적인 멍한 눈빛의 모습을, 드라마에서, 버스 정류장에서 허탈한 모습으로 서 있는 모습과 비교해보면 활자가 영상화 되었을 때의 화학반응이 얼마나 짜릿한지를 느낄 수 있다. 

   이런 무리수를 둔 작품보다는 차라리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영화화 하는 게 어떨까? 최근 프로야구 인기도 절정인데. <슈퍼스타 감사용>개봉한지도 꽤 되었으니 괜찮을 것 같기도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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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현 2011-07-12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오감독.. 저질러 놓고 뒷감당 못하는 작태는 여전하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