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업무 상 13일, SETEC에서 개최하는 <EBS 어린이 영어교육박람회>에 다녀왔다. 작년 12월에 KOEX에서 했던 박람회보다는 규모가 좀 작은 편이지만, 현 사교육 영어 '시장'의 흐름을 짚어볼 수 있는 기회였던 것 같다.
내가 하는 일이 어린이 영어와 관련한 일이지만, 솔직히 말하면 난 어린이 특히 유아에 대한 영어 교육에 대해서 꽤 비판적인 입장이다. 우리말도 제대로 모르는 아이들에게 다른 언어를 주입시키는 것은 -몇 몇 재능있는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부모들의 욕심과 욕망이 투영한 결과라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뭐라 할 수 없는 게, 난 그 대한민국의 일반적인 부모들의 욕망에 기대어 책과 상품을 개발하는 것으로 끼니를 때우기 때문이다. 삶의 모순. 내가 내 신념대로 살려면 이 일을 그만두어야 하지만, 지금껏 쌓아온 경력을 버리기에는 이 사회가 어리숙하지 않다.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내 모순을 인정하고 살아가는 것인지. 대안 없는 모순을 끌어안으면서 나는 그렇게 하루 하루 끼니를 때우나 보다.
이번 <영어교육박람회>엔 총 41개 업체가 참가했다. 그 중 4개업체는 어린이 영어 교육과는 관련이 없는 업체였다(그 4개 업체는 쇼핑몰 회원유치, 보험 회원가입, 학원 인테리어, 아동학대 예방 캠패인 기관이다). 나머지 37개 업체 중 가장 많이 전시한 분야는 '어린이대상 영어 전문서적 및 교재'이다. 가장 볼 게 많았고 또 관심있는 분야였다.
아이들 손에 맞게 작은 판형으로 만들고 해당되는 주제에 맞는 내용으로 아기자기하게 책을 꾸몄다.
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책은 책이라기 보단 장난감, 교구에 가깝다. 그만큼 '책'을 온몸으로 느껴서 책을 알게되고 결국엔 책을 친숙하게 대하는 것. 위의 책들은 책 위에 책 내용과 관련한 장난감이 같이 있는 게 신선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빠질 수 없는 팝업북의 향연. 평면성을 지닌 책에서 입체성을 지닌 그림이 튀어나오는 것은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의 주의도 끌기 마련이다. 책을 통한 신기함과 재미를 느낄 수 있으므로 아이들은 더 많이 책과 접하게 될 것이고 책에 있는 내용 또한 익히게 될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저런 책을 만들어내는 아이디어가 부족한 것과 제작비가 많이 든다는 것. 하지만 도전해 볼만한 영역이기도 하다.
달력처럼 양면을 사용할 수 있고 글의 내용에 맞게 시간을 독자 스스로 조작할 수 있는 책. 책이 꼭 양면을 사용헤 펼쳐서 읽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형식적인 면에서 새로운 책이 계속 나오는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이 존경스럽고, 이런 기획을 무시하지 않고 살린다는 것이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똑같은 위치에 똑같은 모양을 한 눈을 가지고 같은 주제로 얼마나 다양하게 변주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한 훌륭한 예시다. 이런 책을 만드려면 얼마나 많은 아이디어 회의와 기획과 시행착오를 겪어야 할까? 그에 비해 난 너무 쉽게 책을 기획하고 만드는 게 아닐까하는 반성을 했다.
책이 꼭 사각형일 필요는 없다는 멋진 형식 변형의 한 예. 항상 깨어있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만이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는 것 같다.
영어 사교육 시장의 측면에서 봤을 때 작년에 비해 달라진 점은 '화상교육'이 꽤나 많이 등장했다는 점이다.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업체도 상당히 많이 참가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앞으로 학원의 역할은 관리자의 역할에 머물것 같다. 지금 영어 학원이 선생 중심(T-centre)에서 학생 중심(S-centre)의 수업으로 넘어갔듯이, 앞으로는 선생과 학생의 일대일 수업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인터넷이고. 물론 현장 수업과 온라인 수업의 차이는 아직까지는 현장 수업의 효과가 높지만, 이 차이는 앞으로 점점 좁혀질 것이다. 박람회에 참가한 인터넷 기반 프랜차이즈 학원들은 그 차이를 학원수업으로 매우고 있다. 이것이 성공할지 아니면 그냥 해프닝으로 끝날지는 모르겠으나, 아마도 새로운 수익 모델을 제시했다는 점은 간과하기 어려울 것 같다.
영어 교육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이번 주말을 이용해 한 번 다녀오시는 것도 좋은 기회라 생각한다. 2009년 현재 영어 사교육 시장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기회이니까 말이다.
*덧붙임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이 많아서인지 정말 멋진 팝업북에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습니다. 거의 예술의 경지에 이르렀더군요. 몇 장 올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