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권택 감독의 101번째 영화 <달빛 길어 올리기>가 드디어 제작에 들어간다는 소식을 접했다.(기사 읽기 클릭) 그의 100번째 영화인 <천년학>도 제작이 엎어질 뻔한 일이 있었는데, 신작을 만들 수 있다니 정말 다행한 일이다.  

         

   캐스팅은 일단 차치하고서라도 가장 놀랐던 것은 필름이 아니라 디지털로 영화를 찍는다는 것이다. 이미 100편의 영화작업을 한 장인이, 그것도 필름으로만 영화를 찍어왔던 감독이, 영화 인생의 황혼기에 새로운 도구로 영화를 찍는다는 사실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그것이 감독 스스로의 확고한 미학적 선택인지, 아니면 제작비 감소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타협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이번 영화는 현역 최고령 감독의 가장 새로운 영화가 될 것이다. 지금까지 이루어 놓은 것에 충분히 안주할 수 있으나, 항상 벗어나려 노력하고 늘 새로워지기를 원하는 임권택 감독의 행보는 나에게 좋은 귀감이 된다. 

   21세기 들어 영화는 '디지털'이 화두가 되었다. 아마도 이것은 영화 제작자들에게 있어서는 혁명과도 같은 일이다. 필름은 한 번 찍으면 다시 쓸 수 없지만, 디지털은 이게 가능하다. 영화에서 필름은 24장의 사진을 이어붙여 1초를 구성한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필름이 소모된다. 게다가 촬영이 한번에 끝나지는 않는다. 항상 무언가 일이 발생하며 수 많은 테이크가 일어나고 수많은 필름도 소모된다. 하지만 디지털은 필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1번의 테이크로 영화를 완성할 수도 있고, NG에 대한 부담감도 적어지기 때문에 좀 더 자유로운 작업 환경을 만들 수 있다. 

   즉, 영화를 필름으로 찍을 것인가, 디지털로 찍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감독이 영화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필름은 필름을 아끼기 위해서(혹은 제작비를 아끼기 위해서. 이것은 같은 말이다) 모든 스태프, 연기자들의 높은 집중을 요한다. 조명, 미술, 야외라면 기후조건 등 수 많은 제약을 필름에 담기 위해서 노력한다. 현실적인 의미에서 이것은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하지만 디지털은 리허설 장면이 촬영본이 될 수 있다. 필름의 제약이 없고, 조명의 제약 또한 약하기 때문에 여러 방향에서 영화를 구성할 수 있다. 디지털은 이미지를 만들어 내기 보다는 감독이 선택할 수 있다. 

   필름에서 디지털로 옮긴 감독은 여럿 있지만, 내가 관심있는(혹은 아는) 감독은 딱 2명이다. 데이빗 린치와 홍상수다.   

 

     

   데이빗 린치는 <멀홀랜드 드라이브>이후 디지털에 심취해있다. 처음에 그는 디지털에 반대했으나, 몇 번의 디지털 작업을 한 후로 "다시는 필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 선언했다. <데이빗 린치의 빨간방>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일단 작고 가벼운 디지털 장비를 이용해 촬영을 해보면 필름 촬영이 번거롭게 느껴진다. 내게 35밀리미터 필름카메라는 마치 공룡처럼 보인다. 그것은 크고 무게도 엄청나게 나간다. 그런 카메라를 이리저리 움직여야 한다. 여러 가지 작업을 해야 하는데 도대체 빨리할 수가 없다. 이런 이유로 필름카메라 작업에는 제약이 매우 많다. 반면 DV Digital Video촬영 시에는 모든 장비가 가벼워 이동성이 훨씬 좋고 매끄럽게 움직일 수 있다. 그리고 생각한 바를 곧바로 영상으로 잡아낼 수 있다.  

(데이빗 린치의 빨간방)

 
   

   그는 화가 출신이다. 화가는 혼자서 캔버스를 메운다. 그의 바람은 그림을 그리듯 혼자서 영화를 만들고 싶은것 같다. 하지만 영화는 공동작업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최소한의 인원으로 작업을 하고 싶은 것 같다. 필름과 디지털의 차이는 화질이다. 그는 HD 디지털 카메라를 선택하는 대신 화질이 떨어지는 'SONY PD150'디지털 카메라를 사용한다. 크기가 작아 운용하기가 쉽고 그가 좋아하는 1930년대의 필름과 비슷한 화질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란다. 미학적인 면에서 필름을 쫒아가는 것을 보면 그가 디지털을 선택한 것은 제작방식 때문인것 같다.   

 

       

   홍상수는 <해변의 여인>이후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첩첩산중>, <하.하.하>를 모두 디지털로 찍었다. 필름에서 디지털로 옮긴 이유가 궁금해서 <어떤 방문> 감독과의 대화에서 질문했었다. 그의 대답은 이랬다.  

   
 

   필름은 제가 영화를 처음 접했을 때, 그걸로 찍었기 때문에 다른 것을 생각해보진 않았습니다. 그러다 제작비 문제때문에 디지털을 택하게 됐는데, 필름과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찍은 결과물을 보면 필름과 디지털의 차이는 제게 없습니다. 좀 있다면 디지털은 줄무늬 있는 옷이 떨린다는 것 정도? 그리고 저는 영화를 찍을 때 테이크를 많이 찍는데, 필름은 아무래도 부담이 가죠. 하지만 디지털은 그렇지 않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디지털을 택했습니다.  

(<첩첩산중> 감독과의 대화 中)

 
   

   홍상수에게는 필름과 디지털의 차이가 없기 때문에 제작상의 이유로 디지털을 택한 경우다. 

   임권택 감독의 경우는 어떨까? 디지털은 필름과 다른 질감을 가지고 있다. 디지털이 많이 따라잡았다 하더라도, 아직 필름의 그 질감을 따라잡지는 못한다. 임권택 감독이 어떤 결과물을 내밀지 벌써부터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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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트 2009-11-21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습니다. 임권택 감독 신작이 정말 궁금해지는군요.

Tomek 2009-11-23 09:38   좋아요 0 | URL
어떤 영화가 나올지 궁금합니다.

가르강튀아 2009-11-21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 어떻게든 영화를 만들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Tomek 2009-11-23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다행한 일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