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집에 고사가 있다고 어머니께 전화가 왔다. 와서 고사 떡 좀 가져가라는 말씀이셨는데, 그 속에는 '떡 가져가는 김에 얼굴 좀 보자'는 성화가 숨어 있었다. 3하긴 30여년간 줄곧 같이 살다가 결혼이라는 핑계로 분가를 하게 되서 같이 지내지 않으니 그 빈자리가 얼마나 클까 짐작은 해보지만 절실하게 와닿지는 않는다. 그건 아마도 내가 자식이 없어서겠지. 그리고 자식을 낳으면 어머니보다 더 큰 그리움에 전전긍긍하지 않을까 생각도 해보지만, 그 미래는 아직 내게 다가오지 않아 잘 모르겠다. 

   내가 사는 곳은 서울 마포고 집은 서울 정릉이다. 집에 갈 때는 항상 110번 버스를 타고 집에 갔었는데, 오늘은 왠지 지하철을 타고 싶었다. 아내가 지하철을 싫어해 항상 버스를 탔지만 오늘은 혼자 가는 것이기도 하고, 또 버스에선 책을 읽기 힘들지만 움직임이 적은 지하철에서는 책을 읽을 수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었는지 모른다. 

   아침 8시 10분 광흥창 역에서 봉화산행 지하철을 탔다. 보문역에서 내려 1014번 버스를 타고 가면 가장 최단 거리의 요금이 나온다는 것을 경험으로 체득했기 때문에 그렇게 하기로 했다. 평소 토요일 아침보다 차량에 사람이 많았다. 21일, 셋째주 토요일. 격주 근무를 하는 회사나 학교가 쉬는 날이 아닌것을 알기에 다른 놀토보다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는 것은 예상했었지만, 이정도로 많을줄은 몰랐다. 그냥 평소보다 많았겠거니 하고 사람들 틈에 비집어 섰다. 

   4호선 환승이 되는 삼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내리고, 자리가 났다. 자리에 앉고 책을 읽는데,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내리는 사람은 없고 타는 사람만 늘어갔다. 지하철 차장이 평소에는 안하던 방송을 하기 시작했다.  

   "약수역 앞, 뒤쪽으로 많은 수험생들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앞, 뒤 차량에 굉장히 많은 승객들이 승차할 것으로 예상되오니, 차량 앞, 뒤에 계신 승객분들 중, 바쁘지 않으신 분들은 차량 중간으로 이동하셔서 쾌적한 환경에서 목적지까지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객차에 있던 승객들이 웅성거리더니 누군가가 이야기 한다.  

"오늘 고대 논술고사 있잖아."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오늘, 그것도 이 시간대에, 고대를 경유하는 6호선을, 그것도 두 번째 객차를 택하다니... 다른 사람들과 달리 앉아 있었지만, 아침 출근시간 신도림역 수원행 열차를 경험해본 나로선 전신이 저릿저릿하고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오늘같이 긴장이 풀어진 상태에서 이런 상황은 감당이 되지 않는데... 오늘은 어떤 지옥을 맛 볼 것인가... 

   열차가 약수역에 도착했다. 찢어진 샌드백에서 모래가 쏟아지듯 사람들이 들어왔다. 대부분 앳된 학생들과 어머니들이었다. 열차는 금방 차고 들어오지 못한 학생들은 다른 객차에 타려고 달리기 시작했다. 빨리 움직이라는 공익요원의 호루라기 소리, 그만 문을 닫겠다는 차장의 단호한 협박, 반대편 플랫폼에서 열차가 들어온다는 경고음, 그리고 그만좀 집어 넣으라는 객차 속 (열차를) 탄 자들의 절규가 한데 어우러진 풍경은 정말로 장관이었다. 

   더이상 탈 데가 없는 것 같은데도 사람들은 열차에 끊임없이 들어왔다. 가장 절정은 고려대역을 네 정거장 앞둔 동묘역에서였다. 한데 무리진 여학생들이 도저히 못참았는지, "이제 그만좀 태워요."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 그 소리는 세상사에 익숙한 어른들이 내지르는 '짜증'과는 달랐다.  

   어른들의 짜증이 익숙한 사회생활에서 겪는 어쩔 수 없는, 받아들여야 함을 알지만 최소한 항변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에, 그렇게라도 해야 자신이 그래도 살아있음을 느끼는 그런 것이라면, 아이들의 항변은 짜증과 '어떤 설렘'이 그들의 목소리에 배어있는 것 같았다. 그 어떤 설렘이란, 어른들이 지니고 있지 못한 삶의 긍정, 역동성인것 같았다. 어쩌면 그들에게는 오늘 시험을 본다는 사실 자체가 신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돌이켜보면, 나도 그 때 시험이, 두려운 감정도 있었지만, 어떤 통과제의 같은, 어른이 된다는 설렘같은 것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 감정이 어떤 것이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익숙한 생활의 반복속에서 그런 설렘은 아득한 것이 되었다. 

   결국 보문역에서 내리지 못하고 이들과 함께 고려대역에서 내렸다. 엄청난 인파가 계단을 올라가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열과 줄을 맞춰 일사분란하게 올라가는 모습은 파도가 출렁이는 것처럼 보여졌다. 차마 저 인파에 끼지 못해 주저하고 있는 상황에서 다음 열차가 들어오는 소리를 들었다. 꼬리에 꼬리를 문 인파속에 미아가 될까 두려워 마음을 다잡고 휩쓸려 들어갔다. 

   110번 버스를 타기 위해 4번출구로 나왔다. 안암오거리는 차와 사람으로 엉켜있었다. 길건너 고대 생활관 쪽으로 수많은 인파들이 줄을 지어 올라갔다. 1차선에 있던 차량에서 어머니와 수험생인 딸이 내려서 학교쪽으로 뛰어갔다. 오거리 가운데 있는 경찰은 확성기로 차량과 인파를 제어해보지만, 도로로서의 기능을 포기한 도로에서 꾸역꾸역 머리를 들이밀며 밀려드는 차량과 신호를 무시하며 차량속으로 길을 내는 인파속에서 속수무책이었다. 

   버스를 타고 길 반대편을 보았다. 가방을 맨 앳된 학생들이 뛰는 모습이 보였다. 시계를 보니 8시 52분이었다. 9시까지 시험장에 들어가야 하니까, 움직이지도 못하는 차 안에서 내려 뛰기 시작한 것 같다. 그 뒤로 밍크코트를 입고 하이힐을 신은 중년의 어머니도 뛰는 모습이 보였다. 애끓는 모정은 추위와 하이힐 앞에서도 굴복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두 정거장을 지나가는데, 힘들게 힘들께 뛰다 서다를 반복하는 학생이 보였다. 시각은 8시 58분이었다. 저 학생이 2분안에 뛰어서 시험장에 도착할 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힘들 것이다. 하지만 저 학생이 시험을 보지 못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성인으로서 첫 시작을 시도해보지도 못한 무력감에서 맞이하기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 

   집에 도착해서 고사떡을 맛봤다. 떡을 맛보며 이따 집에 갈 방법을 생각해봤다. 이런 글을 쓰고도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을 보니 나도 어쩔 수 없는 어른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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