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작가 김훈과 함께 걸은 문경새재

 

   이번에 알라딘에서 또 가슴 설레는 이벤트를 개최한다. 평일 목요일이란 시간대는 직장인들을 옥죄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고 싶은 것은 어쩔 수 없는 마음이다. 당첨이 됐으면 좋겠지만, 어쩐지 올해 운은 이번달에 다 쓴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좀 불안한 마음이다. 게다가 2주전에 독자와의 만남에 갔다왔으니, 만약 당첨이 된다 하더라도 만남을 갖지 못한 다른 수많은 알라디너들께 죄송한 마음이고. 정말이지 모순된 하루 하루를 지낸다.

   그 불안한 마음을 조금 진정시키고자 손민호 기자의 기사를 올린다. 그는 이미 한 달전에 김훈 작가와 문경새재를 '넘었다'. 그날, 12월 3일 문경새재를 넘으시는 분들께는 쏠쏠한 예습이 될 것이고, 그렇지 못한 분들께는 대체 경험이 될 것이다.   

 

 

백두대간 속 백미 구간 ⑦ 소설가 김훈과 문경새재  

[중앙일보] 2009.10.08 00:03 입력 

 

자전거 놓고 걸어서 넘는 길, 햇살 한번 오지게 부시다. 고조선의 백수광부는 물을 건너면 죽을 줄 알면서도 건넜다. 여기 삶이 싫었으니까. 고개를 넘는 일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백두대간은 산 줄기다. 그 거침없는 산맥은 땅을 경계 짓고 왕래를 가로막았다. 백두대간으로 인하여 세상이 나뉘고 풍속이 갈리었다. 산 이쪽 사람은 산 저쪽을 동경했고, 산 저쪽 사람은 산 이쪽을 상상했다. 벽처럼 앞을 막고 있는 저 산만 넘으면 전혀 다른 세상이 기다리고 있으리라, 산 이쪽과 저쪽에서 사람은 꿈을 꾸었다. 그 꿈은 막연하고도 간절했다. 그래서 사람은 산에 길을 내기 시작했다. 가장 얕고 낮은 목을 노려 산을 넘었다. 고개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백두대간은 수많은 고개를 대나무 마디 모양 등줄기에 업고 있다. 진부령ㆍ미시령ㆍ한계령ㆍ대관령ㆍ싸리재ㆍ죽령ㆍ하늘재ㆍ새재ㆍ추풍령ㆍ육십령 등 이름난 고개만 해도 헤아리기 어렵다. 그 고개는 전혀 다른 두 세상을 잇는 유일한 통로이자 분기점이었다. 고개로 인하여 호남과 영남이, 영남과 충청이, 영서와 영동이 구획되었고 또 연결되었다. 

이번 달 week&이 오른 백두대간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고개 문경새재다. 문경새재는 조선시대 한양과 동래를 잇는 가장 빠른 길 위에 있었다. 조선시대 행정과 교역의 대부분이 이 50리 고갯길을 넘나들며 이루어졌다. 하여 고갯길 굽이마다 숱한 사연이 쟁여져 있고 포개져 있다. 고개가 험할수록 쌓인 이야기는 눈물겹고 가슴 저민다.  

그 고개를 소설가 김훈(61)과 함께 넘었다. 일찍이 자전거를 타고 문경새재를 넘었던 백발의 소설가는 볕 좋은 가을 날 두 발에 의지해 고개를 넘었다. 고개를 넘는 일은, 일종의 상징 의례다. 할 얘기가 많았다. 

손민호 기자 

소설가 김훈과 문경새재를 넘었다. 고개를 넘고서 소설가는 말했다. “고개를 넘어도 달라지는 건 없다.” 이 단순한 이치를 왜 우리는 애써 모른 척하며 살고 있는지. 

 

# 당면한 일을 당면하다

김훈은 막 원고를 탈고한 상태였다. ‘네이버’에 5개월 넘게 연재했던 장편소설 『공무도하』 집필을 마치고 겨우 한숨 돌린 참이었다. 안부 전화를 빙자한 섭외 전화는 그 틈을 노렸다. 

-원고도 마감하셨으니 바람도 쐴 겸해서 산이나 함께 가시죠. 

“신문에 나오는 일이냐?” 

-네. 신문기자는 신문에 나오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럼 안 간다.” 

-왜요? 

“산에 놀러가는 일 따위로 어찌 신문에 나올 수 있겠느냐?” 

-산에 놀러가는 일 따위를 기사로 만들어 쓰는 게 여행기자의 밥벌이입니다. 저는 당면한 일을 당면할 뿐입니다. 

“그건 내가 관여할 바가 아니다. 나는 소설가다.” 

-그럼, 산에서 소설 얘기를 하면 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좋다. 소설 얘기만 하는 조건으로 가겠다. 그래, 어디를 가려고 하느냐?” 

-어디를 가고 싶으십니까. 선배가 우리 산하를 낱낱이 알고 계신 까닭에 미리 네 가지 코스를 준비해 두었습니다. 남덕유ㆍ선자령ㆍ삼봉산ㆍ문경새재 중에서 어떤 걸 고르시겠습니까. 

“새재가 좋겠구나. 새재에 가면 나눌 얘기가 많겠구나. 그건 그렇고, 너는 왜 자꾸 나를 괴롭히느냐?” 

-선배도 20년 전엔 많은 사람을 괴롭히셨습니다. 저는 당면할 일을…. 

“됐다, 됐어. 간다고 했다.” 

김훈은 신문기자 출신 작가다. 김훈을 “선배”라 부른 이유다. 김훈은 말을 할 때에도 제 문장처럼 말을 한다. 구어체를 구사하지 않는 현대인의 말투는, 낯설면서도 묘한 매력을 불러 일으킨다. “당면한 일을 당면할 뿐이다”란 구절은 그의 소설 『남한산성』에 나오는 대사다. 김상헌의 형 김상용이 빈궁과 대군을 받들어 강화로 가면서, 다시 말해 죽으러 길을 떠나면서 남긴 말이다. 역시 김훈의 상용어구다.  

 

# 길에도 흥망성쇠가 있다 

문경새재는 본격 산행이라기보다 트래킹에 가깝다. 계곡을 타거나 능선을 오르는 코스는 문경새재에 없다. 옛날처럼 굽이굽이 고갯길도 사라졌다. 관광객을 위한 신작로, 이게 문경새재의 오늘 모습이다. 김훈이 이날 산행을 “산보”라 명명한 까닭이다.  

문경새재는 500년 이상 묵은 길이다. 조선 태종 때 처음 닦았다. 문경의 새재란 뜻으로, 새 조(鳥) 자를 써 ‘조령’으로도 불린다. 새재가 된 이유는 분명하지 않다. 새도 날아서 넘지 못하는 고개, 억새가 우거진 고개, 하늘재를 버리고 새로 닦은 고개, 하늘재와 이유릿재(이화령) 사이에 있는 고개, 서울로 가는 샛길이 된 고개 등등 여러 주장이 난무한다. 

여기서 하늘재는 새재 북쪽에 있는 고개다. 신라시대 때, 정확히 서기 156년에 뚫었다. 문헌에 기록된 한반도 최초의 도로이자 고개로, 새재가 개통하기 전 충청과 영남을 잇는 대표적인 길이었다. 하나 새재도 지금은 길로서의 수명을 다한 상태다. 일제 때 이화령에 터널이 뚫린 뒤 새재는 버림받았고, 이화령 역시 경부고속도로가 추풍령을 지나면서 한 세대 넘게 잊힌 길이 됐다. 길에도 흥망성쇠가 있는 것인지, 최근 개통한 중부내륙고속도로가 이화령을 통과하면서 이화령엔 다시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새재는 박정희 정권 때 국토 순례 길이라 명명돼 보존되다가 최근 관광 명소로 거듭나면서 반듯하고 환하게 단장됐다.  

김훈은 새재에 얽힌 사연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50만 부 이상 팔린 여행 산문집 『자전거여행』에서도 김훈은 두 개 장을 헐어 새재와 하늘재 얘기를 들려주었다. 그렇게 훤히 아는 길을 그는 왜 굳이 다시 걸으려 했을까. 문득 그의 소설 첫 머리가 떠오른다. 김훈은 4월 27일 『공무도하』 연재를 시작하며 아래와 같이 적었다. 

“제목으로 정한 ‘공무도하’는 옛 고조선 나루터에서 벌어진 익사사건이다. 봉두난발의 백수광부는 걸어서 강을 건너려다 물에 빠져 죽었고 나루터 사공의 아내 여옥이 그 미치광이의 죽음을 울면서 노래했다. … 백수광부는 강을 건너서 어디로 가려던 것이었을까. 백수광부의 시체는 하류로 떠내려갔고, 그의 혼백은 기어이 강을 건너갔을 테지만, 나의 글은 강의 저편으로 건너가지 못하고 강의 이쪽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김훈에 따르면 백수광부는 넘지 못할 경계를 넘다 목숨을 잃었다. 강을 건너는 일과 고개를 넘는 일은, 어딘지 닮은 구석이 있다. 

  

* 퍼온 글이라 다 게시하지 않았습니다. 계속 읽으실 분들은 아래 글을 클릭하시기 바랍니다.

중앙일보 기사 바로 가기 

손민호 기자 블로그 바로 가기 

 

*덧붙임 

1. 기사의 하이라이트 부분은 원 기사에는 없으나, 저작자의 의도를 존중하는 뜻에서 블로그에 있는 표기를 따랐습니다. 

2.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연금술사의 말을 믿어보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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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후기] 작가 김훈과 함께 걸은 문경새재
    from 이번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 2009-12-07 11:49 
       2009년 12월 3일. 오전 6시 30분 알람 소리에 깨어 일어났다. 8시 30분까지 종각에 가려면 서둘러야 한다. 어제 밤에 모든 것을 준비했으나, 항상 아침이면 바쁘기 마련이다. 늦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이 더 일찍 일어나서 준비하는 수밖에.     8시 10분. 조금 일찍 한국관광공사앞에 도착했다. 이름을 확인하고 버스에 올라 자리에 앉자 이제야 실감이 난다. 내가 정말 가기는 가는구나.&#
 
 
톨트 2009-11-25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어이 가실 듯한 예감이 드는군요^^

Tomek 2009-11-25 18:32   좋아요 0 | URL
그렇게만 된다면야 더할 나위 없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