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배후는 너다

 

                                                        이 수 호

 

누구에게나 배후는 있다

동해 일출과 서해 낙조

떠도는 구름 고운 별무리

그 뒤에는 언제나 하늘이 있는 것처럼

너의 뒤에도 하늘이 있다

어젯밤 너의 하늘은 온통 비바람이더니

오늘 아침 이렇게 햇살 곱구나

때로 나는 너의 배후를 의심하고

너의 하늘마저 질투해서

고민하고 몸부림치지만

너의 하늘은 너무나 커서

언제나 꿈쩍도 않는다

그래서 너는 언제나

고우면서도 빛나면서도

쓸쓸하면서도

폭풍우 몰아치고 캄캄하면서도

넉넉하고 당당하다

 

나의 배후는 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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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두부 2008-05-29 0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꾸 '배후..배후'하는 인간들....촛불들의 배후는 나다...너다...우리들이다.....참고로 위 시를 쓴 이수호씨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분..전 민주노총위원장이셨던 그분 입니다...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어버렸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 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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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인득, 어서 일어나서 중계하러 가야지. 그러니 힘을 내.”

그가 숨을 거두기 두 시간 전쯤 마지막으로 그의 귀에 대고 해본 말이다. 그런데 그것은 착시였을까. 그의 가쁜 숨 속에 맥박이 잠시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임종을 지켜보는 부인의 말처럼 의사 선생님이 소리는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믿고(실제 그렇지 않겠지만) 절절한 대화는 몇 마디 더 이어졌다.

“여보. 허위원님 말씀대로 중계하러 가게 일어나세요.”

그러는 동안 그의 혈압은 점점 떨어졌다. 마지막 호흡기를 떼어버리는 순간은 나에겐 가장 슬프고 긴 시간이었다. 어찌 나이 많은 나보다, 옆에서 흐느끼는 그의 노모보다, 연신 “아빠 미안해. 사랑해요”로 흐느끼는 예쁜 외동딸을 두고 그렇게 쉽게 이 세상을 떠날 수 있을까.

‘이 못난 친구야’, 싶어 그가 숨을 거두기 전엔 속으로 얼마나 나무랐는지 모른다. 그토록 건강 챙기라고 했건만 말도 잘 듣지 않고….

그래도 마지막 그의 몸을 만져 봐야만 그를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의 차가운 오른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손가락을 쥐는 순간, 그 동안 참았던 눈물을 막을 수가 없었다. 꼼꼼하게 선수들의 경력, 경기기록을 깨알 같은 글씨로 적고 또 적던 그 손가락 움직임은 나를 감동시킨 손가락들이 아닌가. 몇 가지 칼라 펜으로 부문별로 나누어 기록하던 그의 손놀림을 이젠 영영 볼 수 없다니….

프로야구 출범과 함께 한 그와의 만남은 숱한 중계, 지방과 해외출장 등을 통해 표정만 봐도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고 그의 숨소리만 들어도 ‘그래 맥주한잔 하러 가자’고 할 정도로 오랜 세월을 함께 했다.

아나운서 수습 때부터 최고의 반열에 오르기까지. 그는 내가 본 최고의 스포츠 캐스터 중의 한 명이자 최고의 야구 캐스터 중의 한 명이었다. 철저한 자료준비, 절제된 표현, 뛰어난 순발력과 애드립, 그리고 상대를 존중해주면서 죽어도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겠다며 학처럼 살다간 인물이다. 야구 캐스터가 얼마나 어려운 자리이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자리인가.

‘형님 살짝 한 대만 필게요’라며 세인트루이스에서의 월드시리즈 중계 때 중계 방송석 아래로 몸을 잠시 감추며 그 짧은 광고시간을 활용하는 모습에 정말로 놀랐던 적이 있다. 그래서 놀려주고 싶어 “이 곳 야구장에선 금연인 것 알지, 방금 담배 연기가 올라가 카메라에 잡혔을지도 모르겠다”고 하자, 정말이냐며 눈이 휘둥그래지던 얼굴이 지금 왜 자꾸 떠오르는 걸까?

그와의 마지막 중계방송은 금년 4월7일 잠실구장서의 LG-기아전이었다. 전날 양궁중계를 마치고 또 마이크를 잡은 그는 가뭄에 콩 나 듯하는 지상파 야구 중계로 인해 “형님 정말 오랜만에 하니까 선수들도 눈에 잘 안 들어오고 쉽지않네요” 라며 불만족스런 방송 내용에 대해 자책했다. 그 모습이 나와의 마지막 중계였다.

“중계방송엔 퍼펙트가 없잖아”란 위로 말에 “그래도 그렇죠”란 말이 아직도 귓전에 맴돈다. 야구는 물론 아나운서의 꿈인 올림픽 개회식, 폐회식 중계뿐만 아니라 최근엔 스포츠 전문위원으로 스포츠 중계의 장인 반열에 올랐던 그가 적어도 15년은 더 활동 할 수 있었기에 그의 타계는 MBC 스포츠 중계팀에도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오래 전부터 자주 그에게 해준 말이 있다.

“송 아나,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계 아나운서와 해설자가 진짜야”, “당신이 예순살 넘어서 야구 중계를 할 때, 아 저 홈런은 1982년 개막전 때 이종도의 홈런을 생각나게 하네요 라든지, 저 투수는 마치 최동원, 선동렬을 보는 듯 하는데요 라며 머릿속에 많은 걸 담겨둔 방송이 진짜 값어치 있고 좋은 스포츠 중계방송이 아닐까?” 라며 스포츠 전문 캐스터를 꿈꾸도록 부추기기도 했으니 그의 죽음엔 내 잘못도 있는 것 같아 더욱 안타깝기만 하다.

그 많은 경험, 해박한 방송 지식을 뒤로하고 간 그는 스포츠팬들의 뇌리에서 서서히 지워질지 모르지만 그는 물과 물고기처럼 끊어 놓을 수 없는 사이, 수어지교(水漁之交)로 야구팬과 스포츠팬들의 기억에 오래 남을 것이다.

빈소를 찾은 두산 김경문 감독의 “선수생활 때 인터뷰 했던 적이 엊그제 같은데 어찌 이렇게 허무하게 떠날 수 있냐”는 말처럼 그의 죽음은 충격적 이었다. 수술실로 들어가면서도 ‘중계방송을 해야 하는데’ 라는 마지막 말을 가족에게 남긴 그는 야구를, 스포츠를 정말로 좋아하고 아끼며 최선을 다해 중계방송을 했던 캐스터로 우리에게 오래 기억될 것이다.

“잘가게 송인득.”

하늘나라에서도 요즘 한창 재미난 국내야구를 지켜볼 자네 아닌가. 잘 지켜보면서 정리를 해 두었다가 언젠가 하늘나라에서 만나는 날 멋진 야구중계를 해보자고. 그 때엔 쫓길 것도, 눈치 볼 것도, 스트레스도 받지 않고 할 수 있지 않겠나.

그런데 하늘나라에선 광고방송이 없으면 막간을 이용한 흡연은 언제 하지? 오늘 그대가 한줌의 재로 변하는 것을 보고난 후 내가 이승엽 중계방송을 해야만 하는데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오늘방송 만큼은 당신이 하늘나라에서 힘을 좀 불어 넣어 주었으면 좋겠다.

송국장! 이제 마지막 인사를 팬들께 하고 떠날 시간이구나. ‘야구팬 여러분, 이상으로 중계방송을 마치겠습니다. 지금까지 아나운서 송인득 이었습니다. 그동안 사랑해 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07년 5월25일 아침,

영원한 야구캐스터 고 송인득 아나운서를 떠나보내면서

MBC-TV 야구해설위원 허구연이 삼가 올립니다. 하늘나라에서 영원한 안식을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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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시대의 마지막 영웅, 고 정은임 아나운서.

추억

2007/03/18 22:53

 

<정은임의 FM 영화음악> 오프닝 멘트

 

안녕하세요?

FM 영화음악의 정은임입니다.

신대철 시인은 이미 20년 전에 이 땅에서 사는 것은 무죄라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그의 시에서 노래했습니다.

하지만 요즘 이 땅 어느곳에서는 그것이 유죄라고 합니다.

저희 청취자 한 분이 그 심정을 노래하셨네요.

들어보시겠어요?

 

시를 쓰고 싶은 날, 비 내리는 철거촌에서 전 수편의 시를 썼습니다,

시를 쓰고 싶었는데 제대로 된 시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전형적인 도시 빈민이었던 우리 집은 막내인 제가 태어나기 전까지 수차례 이사를 다녔다고 합니다.

대학생이 된 제가 어느 날 간 철거민 대회에 많은 동네 분들이 오셨더랬습니다.

금호동, 전농동, 봉천동.

하나같이 제가 식구들의 입을 통해 듣던 추억의 동네였습니다.

그 금호동 폐허의 마을에서, 더 이상 끝닿을 데 없는 하늘 밑 마을에서, 제 오빠들의 유년을 보았습니다.

쓸려져 나간 꿈을 보았습니다

아이들의 얼굴이, 힘없는 강아지가, 높게 쌓여진 철탑이, 타이어로 엉성하게 버티고 있는 그들의 바리케이트가,

때맞춰 내리는 비가, 무섭게 몰아치는 바람이, 유린당한 그들의 삶이 저에게 시를 쓰고 싶게 했습니다.

그러나 시를 쓸 수 없는 날 전 차라리 싸우고 싶습니다.

 

신청하신 곡은 영화 <파업전야> 중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오늘 첫 곡이었습니다.

 

천리안으로 어느 분이 이런 글을 올리셨네요.

요즘은 신문에 읽을 거리가 너무 많아서 무엇부터 읽어야 할지 모를 때가 있어요.

국내 뿐 아니라 세계가 온통 아수라장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서 정말 슬퍼요.

 

하지만 우리 늦기 전에 시작합시다.

한방울의 물이 모여서 거대한 폭포가 이루듯

우리 한 사람의 힘이 점점 파문을 일으키면 뭔가가 변화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1995년 4월 1일 <정은임의 FM 영화음악> 마지막 방송 오프닝 멘트

꽃 피는 날 그대와 만났습니다.

꽃 지는 날 그대와 헤어졌고요.

그 만남이 첫 만남이 아닙니다.

그 이별이 첫 이별이 아니고요.

마당 한 모퉁이에 꽃씨를 뿌립니다.

꽃 피는 날에서 꽃 지는 날까지

마음은 머리 풀어 헤치고 떠다닐 테지요.

그대만이 떠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꽃 지는 날만이 괴로운 것이 아니고요.

그대의 뒷모습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나날이 새로 잎 피는 길을 갑니다.

 

제가 좋아하는 시인 구광본 시인의 시 중에서 한 구절로 오늘 시작했는데요.

꽃 피는 날 그대와 만났습니다. 꽃 지는 날 그대와 헤어졌고요.

시구는 그런데 저와 여러분은 반대네요.

제가 92년 가을에 방송을 시작했으니까 꽃 지는 날 그대와 만났고요.

이제 봄이니까 꽃 피는 날 헤어지는 셈이 되었네요.

오늘 여러분과 만나는 마지막 날인데요.

 

 


1995년 4월 1일 <정은임의 FM 영화음악> 마지막 방송 클로징 멘트

 

이제 마지막 인사를 정말 드려야겠네요.

이 FM 영화음악은 제가 mbc 아나운서로 입사해서 처음으로 맡은 프로그램이었는데요.

그러니까 정식으로, 그 전에 TV를 임시로 맡은 것도 있었지만

정식으로 맡은 것은 라디오 프로그램 FM 영화음악이 처음이었어요.

그 때가 1992년 11월 2일이었는데

덜덜 떨면서 첫 방송을 했던 기억이 나네요.

 

......

 

그래서 뭔가 특별한 날,

아침 햇살이 남다르게 느껴질 때라든지, 아주 예쁜 꽃을 봤을 때, 낮에 길거리에서 특별한 광경을 봤을 때,

 책에서 멋진 글을 발견했을 때, 그럴 때 제일 먼저 생각난 것은 바로 이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밤엔 꼭 이 이야기를 해야겠다 굉장히 가슴 두근거리면서 그런 생각을 했었고

또 어떨 때는 마이크 앞에서 막 숨막힐 것 같은 그런 느낌도 들었었어요

그래서 문득 이거 꼭 사랑에 빠진 것 같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사람과...

 

......

 

방송하는 사람의 가장 큰 행복이 바로 이것 같습니다.

사람을 만난다는 것.

2년 반 동안 참 많은 분들을 만났구요.

소중한 인연을 맺은 것 같습니다.

 

......

 

저 정은임은 여기서 인사드릴게요.

우리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중에서 김창완씨의 노래,

'마지막 인사'로 제 마지막 인사를 대신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2003년 10월 21일 <정은임의 FM 영화음악> 복귀 첫 방송 오프닝 멘트

"관계자 외 출입금지", "만차"

어떠세요?

이런 문구를 보면요.

어쩐지 뒤로 물러나고 싶지 않으세요?

이런 것보다 더 강하게 사람을 밀어내는 게 하지만 있습니다.

바로 분위기죠.

 

누구나 아무나 들어갈 수 있다고 하지만,

그렇게 큰 길 가에 커다란 문을 만들어 놓기는 했지만,

화려한 백화점이나 호텔, 갤러리의 입구는 어쩐지 사람을 주눅 들게 합니다.

그런 곳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분위기 자체가 출입금지 푯말이죠.

 

하지만요, 골목 안 어느 곳엔가 숨어있어서 간판도 잘 안보이고 입구가 어딘지도 잘 모르겠고

그런 작은 칼국수집, 선술집에는 언제나, 누구나 선뜻 발을 들여놓을 수가 있습니다.

 

새벽 3시에요.

아직은 어둡고 쌀쌀하죠.

이 가을 골목길 누구나 쭈뼛거리지 않고 들어올 수 있는 작지만 아주 편안한 문 열어놓고 기다리겠습니다.

조그맣지만 따뜻한 간판 등도 켜놓고 있겠습니다.

 

 

 

2004년 4월 26일 <정은임의 FM 영화음악> 마지막 방송 오프닝 멘트

단 한 사람의 가슴도 제대로 지피지 못했으면서 무성한 연기만 내고 있는 내 마음의 군불이여 꺼지려면 아직 멀었느냐?

안녕하세요? 'FM 영화음악'의 정은임입니다.

나희덕 시인의 '서시'로 FM 영화음악 문을 열었는데요.

서시... 우리 말로, '여는 시'입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계속해서 시를 쓸 사람이 영원한 시작의 의미로 쓴 글이죠.

항상 아이러니해요.

이 끝 방송을 하게 되면 그래... 끝은 시작과 맞닿아 있다 하는 의미에서 이런 시를 골랐어요.

꼭 그 마음입니다.

단 한 사람의 가슴도 따뜻하게 지펴주지 못하고 그냥 연기만 피우지 않았나.

자, FM 영화음악을 듣고 있는 모든 분들을 위해서 오늘 첫 곡 들려드리겠습니다.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 래니 크래비츠, 'It Ain"t Over "Til It"s Over'


************************************************************


정은임
아나운서를 알게 된 건 우연하게도 1995년 4월 1일 새벽, 정영음 마지막 방송을 통해서였다.

공부한다는 핑계로 밤 늦게까지 라디오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며 노래를 듣던 어린 시절이었다.
그 땐 그저 '이렇게 목소리 좋은 DJ의 방송을 이제야 알게 되었는데 막방이라니..'라는 안타까운 생각 뿐이었다.

 

그 후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된 것들.

방송을 통해 4.3 제주항쟁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멘트를 내보낸 DJ.

볼셰비키가 부르던 ‘인터내셔널가’와 시위현장에서나 부르던 ‘임을 위한 행진곡’을 영화음악이라고 틀어주던 DJ.

MBC가 방송민주화를 내걸고 한창 파업 중이던 1992년,

입사 동기 중 유일하게 방송사 간부의 요구를 거절하고 파업에 참여한 '강성' 노동자.

그게 바로 정은임 아나운서였다.

정은임 아나운서가 <정영음>에서 물러나게 되었을 때 팬들은 정은임 복귀 추진 위원회를 결성할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지금은 당연한 것으로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인터넷이 활성화되지 않았던 당시로선 꽤나 신선한 것이었다.
그 때 당시 정은임 아나운서를 향한 팬들의 그리움은 정은임이라는 인간 그 자체에 대한 갈망이었던 것 같다.

단 한 번 방송을 들었을 뿐이었던 나조차도 다시 한 번 방송을 통해 <정영음>을 들을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랐으니

자칭타칭 <정영음 마니아>임을 자처하던 <정영음>의 팬들은 오죽했으랴.

 

정은임 아나운서가 마이크를 놓고 배유정씨가 진행하는 영화음악을 들으면서

영화, 그리고 영화음악에 한참 몰입했던 기억이 있다.

내게 영화, 영화음악은 공부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일종의 탈출구였던 셈이다.

그렇게 라디오를 들으면서 영화에 대한 잡다한 지식을 쌓아가며 즐거워했지만, 한편으론 뭔가 아쉬웠다.

단 한 번이었지만, 마지막 방송 때 들었던 정은임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통해 영화 이야기를 전해듣고 싶었던 것이다.

나름 감수성 풍부한 사춘기 시절이어서였을까?

마지막 방송에서 흐느낌을 참아가며 겨우겨우 마지막 멘트를 이어가던

정은임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잊기가 참으로 어려웠던 것 같다.

 

하지만 우습게도 정작 2003년에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바라던대로

정은임 아나운서가 <정영음>에 복귀했지만

라디오와 멀어져 버려 복귀 후에 제대로 방송을 청취하지는 못 했던 것 같다.

새벽 늦은 시간까지 깨어 라디오를 챙겨듣기엔 내 열정이 너무나 부족한 시기였으니까... 

 

어느덧 전설이 되어버린 '정은임의 영화음악'

비록 일순간이었지만 동시대에 정은임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통해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한다.

갑작스런 사고로 정은임 아나운서가 우리 곁을 떠나가버린 지금,
더 이상 정은임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만은 참 안타깝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그녀의 목소리가 그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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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두부 2007-05-24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송인득 아나운서의 갑작스런 사망소식을 듣고나니 문득 정은임 아나운서가 생각이 나서 어느분의 블로그에서 퍼 왔다...갈수록 기승을 부리는 신자유주의와 FTA체결로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는 요즘, '우리편' 정은임 아나운서의 지지와 연대가, 그리고 격려가 너무 그립다. mbc는 참 아나운서 복이 없다는 생각도...

Mephistopheles 2007-05-24 0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분 가족들이 도로공사를 상대로 재판을 걸었던 기억이 납니다.
도로보수를 제대로 하지 않아 일어난 사고인데....
단지 과속으로 달렸다는 이유로 법원은 도로공사쪽 손을 들어줬죠..
남겨진 남편분은 이 나라에는 미래가 없다면서 아이를 데리고 이민 간 걸로
알고 있습니다..

2007-05-24 12: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고니 2007-05-25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귀하고 나서 방송 시간이 2시~4시까지 였을 겁니다. 무협지 읽으며 꿰 열심히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인터네셔널가( mms://mms.plsong.com/plsong/Special/International/09.wma)

1,
깨어라 노동자의 군대 굴레를 벗어 던져라
정의는 분화구의 불길처럼 힘차게 타온다
대지의 저주받은 땅에 새 세계를 펼칠 때
어떠한 낡은 쇠사슬도 우리를 막지 못해

들어라 최후 결전 투쟁의 외침을
민중이여 해방의 깃발 아래 서자
역사의 참된 주인 승리를 위하여
참 자유 평등 그 길로 힘차게 나가자

2,
어떠한 높으신 양반 고귀한 이념도
허공에 매인 십자가도 우릴 구원 못하네
우리 것을 되찾는 것은 강철 같은 우리의 손
노예의 쇠사슬을 끊어 내고 해방으로 나가자

들어라 최후 결전 투쟁의 외침을
민중이여 해방의 깃발 아래 서자
역사의 참된 주인 승리를 위하여
참 자유 평등 그 길로 힘차게 나가자

3,
억세고 못 박혀 굳은 두 손 우리의 무기다
나약한 노예의 근성 모두 쓸어 버리자
무너진 폐허의 땅에 평등의 꽃 피울 때
우리의 붉은 새 태양은 지평선에 떠 온다

들어라 최후 결전 투쟁의 외침을
민중이여 해방의 깃발 아래 서자
역사의 참된 주인 승리를 위하여
참 자유 평등 그 길로 힘차게 나가자
인터내셔널 깃발아래 전진 또 전진
 

그 날

나가 자전거 끌고잉 출근허고 있었시야

근디 갑재기 어떤 놈이 떡 하니 뒤에 올라 타블더라고. 난 뉘요 혔더니, 고 어린 놈이 같이 좀 갑시다 허잖어. 가잔께 갔재. 가다본께 누가 뒤에서 자꾸 부르는 거 같어. 그랴서 멈췄재. 근디 내 뒤에 고놈이 갑시다 갑시다 그라데. 아까부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어른한티 말을 놓는거이 우째 생겨먹은 놈인가 볼라고 뒤엘 봤시야. 근디 눈물 반 콧물 반 된 고놈 얼굴보담도 저짝에 총구녕이 먼저 뵈데.

총구녕이 점점 가까이와. 아따 지금 생각혀도...... 그땐 참말 오줌 지릴 뻔 했시야. 그때 나가 떤건지 나 옷자락 붙든 고놈이 떤건지 암튼 겁나 떨려불데. 고놈이 목이 다 쇠갔고 갑시다 갑시다 그라는데잉 발이 안떨어져브냐. 총구녕이 날 쿡 찔러. 무슨 관계요? 하는디 말이 안나와. 근디 내 뒤에 고놈이 얼굴이 허어애 갔고서는 우리 사촌 형님이오 허드랑께. 아깐 떨어지도 않던 나 입에서 아니오 요 말이 떡 나오데.

고놈은 총구녕이 델꼬가고, 난 뒤도 안돌아보고 허벌나게 달렸쟤. 심장이 쿵쾅쿵쾅 허더라고. 저 짝 언덕까정 달려 가 그쟈서 뒤를 본께 아까 고놈이 교복을 입고있데. 어린놈이.....

그라고 보내놓고 나가 테레비도 안보고야, 라디오도 안틀었시야. 근디 맨날 매칠이 지나도 누가 자꼬 뒤에서 갑시다 갑시다 해브냐.

아직꺼정 고놈 뒷모습이 그라고 아른거린다잉......

 

올해 18세로 경기여고 정민경 양의 시라고 한다...정희승시인은 '살아남은 자의 슬픔'에 비견되는 천재시인의 탄생이라고 흥분했다는데...과연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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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천자문 2007-05-11 1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고생이요? 진짜 후덜덜이네요, 우와...

고니 2007-05-14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평도 올려주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