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에게 줄 말은 연습이 필요하다 - 세계 명시 필사책
김옥림 지음 / 정민미디어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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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교육과 사색>에 명언으로 읽는 인생철학을 연재하며 삶과 교육, 인간에 대한 깊은 사유를

독자들과 나누고 있는 저자가 세상의 모든 시 중 우리기ㅏ 사랑한 74편의 명시를 엄선해 놓은

필사책이라 한 해를 정리하며 새해를 맞이하는 데 너무 좋았다.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의 시가 되어야 하고,

서로에게 행복이 되고 기쁨이 되며 삶의 의미가 되어야 함을

세계 명시를 천천히 음미하며 필사하며 마음에 되새기게 되는 시간이었다.

필사가 선물하는 하루의 평안과 사색의 시간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하루의 시작과 하루의 끝을 평안하게 마주하는 좋은 습관을 형성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되었다.

우리말로 민족의 정서와 심성을 가장 잘 표현한 감성의 연금술사의 시가 왜 그토록

가슴 절절한지 저자의 해석이 한 스푼 더해지니, 지치고 메마른 마음이 감성으로 촉촉해졌다.

천천히 필사하며 내 나름의 해석으로 마음을 적시고,

저자의 해석과 시인에 대한 설명을 읽으니 시를 더 이해할 수 있어 좋았다.

시의 짧은 함축적인 표현에서도 긴 장편소설에서 얻을 수 있는 깊은 감동을 맛볼 수 있고,

지치고 피곤한 몸과 마음에는 오히려 짧은 시를 읽어내는 몇 분의 시간으로도

충분히 위안 받고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음을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소설가로만 알았던 박경리 선생님의 시와 에세이로 많이 접했던 이어령 선생님의 시도

알게 되어서 좋았다.


오드리 헵번이 숨을 거두기 일 년 전 크리스마스이브에 두 아들에게 들려주었다는

샘 레벤슨의 <Time Tested Beauty Tips(세월이 일러주는 아름다움의 비결)>을

천천히 필사하며, 아름답게 나이 들어가고 있는가 반성하게 되었다.

오드리 헵번이 세기의 연인으로 여전히 사랑받는 것이 <로마의 휴일> 영화 속

이쁜 공주님의 모습이 아니라 은퇴 후 유니세프 홍보대사로 활동하며 생이 다할 때까지

헌신적인 봉사 활동을 하는 모습 때문임을 떠올리니 이 시가 더 마음 깊이 들어왔다.

#그대에게줄말은연습이필요하다 #세계명시 #세계명시필사책 #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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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한 방울로 끝내는 화학 공부 - 8명의 화학자가 안내하는 화학의 세계
김정민 외 지음, 대한화학회 기획 / 휴머니스트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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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깊이 생각해 본 적 없는 물에 대해

8명의 화학자가 물의 성질부터 생명의 탄생까지 알려주는

친절한 화학 공부 이야기라 아이들에게 추천해 주고 싶은 책이다.

물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알려준다.

철새가 어디에서 날아왔는지를 가락지나 GPS 추적 장치로 알아내는 줄 알았는데

철새의 깃털에 있는 수소나 산소의 동위원소비를 질량분석기로 분석하는 방법으로도

알아낼 수 있다니 신기했다. 다양한 질량을 갖는 물 분자는 증발과 응결의 정도가 모두 다르다.

무거운 동위원소가 포함된 물은 온도가 낮을 때 더 빨리 응결돼 사라지므로

구름에는 가벼운 동위원소가 많이 남아 비로 내린다.

바다에서 증발해 형성된 구름이 내륙으로 이동하면서 무거운 물이 먼저 비로 내리므로

해안 지역의 물에는 무거운 동위원소가 많지만,

내륙으로 갈수록 가벼운 동위원소가 많이 존재한다.

각 지역 물의 수소 동위원소비나 산소 동위원소비는 고유의 값을 갖기 때문에

깃털 속 수소/산소 동위원소비 정보를 통해 어디에서 태어나 날아왔는지 알 수 있다.

거의 부패되어 뼈 일부와 머리카락만 남은 사체에서도

머리카락의 수소/산소 동위원소비를 분석하여 피해자가 어떤 지역에서 물을 마시며

생활했는지 알아낼 수 있단다. 머리카락이 일주일에 2mm 씩 자라는데,

이때 생겨난 머리카락이 당시 그 사람이 마신 물을 원료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법과학뿐만 아니라 와인이나 벌꿀과 같은 식품의 원산지를 알아내는 데 사용되는 걸 보면,

물은 단순한 액체가 아니라, 정보의 저장소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모든 생명체는 주위 환경으로 미세한 조각의 환경 유전자(environmental DNA, eDNA)을 방출한다.

비늘이나 머리카락, 배설물 등 살아있는 생명체가 남긴 eDNA 조각들은 물에 녹아 있기 때문에

강물이나 바닷물을 채취해 그 지역에 어떤떤 생물종이 서식하는지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멸종 위기에 처한 희귀종을 추적하거나 외래종의 침입을 감지하는 것도

물로 할 수 있다니, 물은 단순한 용매가 아니라 생명의 모든 정보를 기록하는 정말 대단한

저장소인 것 같다.

물은 매우 안정한 분자이기 때문에 분해하려면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친환경 수소에너지 개발을 위해 물 분해 효율이 중요하다.

수소는 전극을 이용한 연료전지뿐만 아니라 직접 연소를 통해서도

오염 물질을 거의 배출하지 않고 에너지를 내기 때문에 화석연료를 대체할

무공해 연료로 주목받고 있다. 그래서 에너지가 없으면 깨끗한 물을 공급할 수 없고,

깨끗한 물이 없으면 에너지 생산도 불가능하므로 물과 에너지의 상호 의존성을 강조하는

'물-에너지 넥서스' 개념이 떠오르는 것이다.

깨끗한 물 없이는 지속 가능한 미래도, 안정적인 에너지도, 건강한 삶도 가능하지 않으므로

"물을 아껴 씁시다."라는 것이 더 이상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지구적 위기에 대한 책임 있는 행동의 시작이라는 말이 와닿았다.

요리 속의 화학 반응은 너무나 흥미로운 주제인데,

그중에서 물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생각해 보면 진짜 물 한 방울로 확장할 수 있는

화학 공부가 너무 많아 과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너무나 흥미로워 할 책이다.

#물한방울로끝내는화학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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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넘어뜨린 나에게 - 차마 죽지 못해 써 내려간 인생 반성문
고현정 지음 / 에픽스토리미디어퍼브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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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차마 죽지 못해 써 내려간 인생 반성문이라는 말에

마음을 단단히 먹고 읽어 내려가야겠다 싶었는데, 웬걸...

다 이렇게 살아가는구나. 나만 통과의례를 제대로 지나지 못하고,

엄마의 아픈 손가락으로 나이만 어른인 채로 제자리인가 싶어

마음이 편치 않았는데, 나만 별난 게 아니라는 안도감이 느끼게 하는 책이었다.

무기력해지고 무너져가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내가 하고 있는 일 중 하나가 머리에 들어오든 말든 간에 책을 무작정 읽는 것이라

저자가 책을 쓴 이유에 공감이 되었다.

절망적인 순간 만난 한 문장이 살아보라고, 살아내라고

글자 하나하나가 말을 걸어 자신을 살려주는 뭉클한 경험을

절망에 빠진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은 그 마음 말이다.

에크하르트 톨레의 <이 순간의 나>에 과거에 집착할수록

바닥이 없는 구멍에 빠진 것 같은 느낌만 강해진다는 구절이 있다.

미래가 과거로부터 당신을 자유롭게 해줄 거라 기대할 수도 있지만,

환상이라고. 오로지 현재만이 당신을 과거로부터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말을

곱씹어 보게 보았다. 과거의 나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면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현재의 내가 나를 구해내야만 과거를 벗어날 수 있다.

사회 초년생 시절 웃상으로 외모로 손해는 보지 않는 편이었는데,

요즘 거울을 보면 무표정에, 피로에 찌든 우울한 사람이 서 있어 깜짝 놀란다.

내 얼굴이 어느새 이렇게 화가 많고 무서운 얼굴이 되었나 싶어

씁쓸하고 속상했다. 논리도 일관성도 없어 아랫사람들을 피곤하게 하는 상사를

비난하고 미워하는데 나의 귀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데, 평생 그렇게 살아온 상사를 상대하느라

내 영혼을 부정적인 감정으로 가득 채우다 보니 얼굴에 그대로 묻어났다는 걸

깨달으니, 내게 소중한 사람도 아닌데 왜 나의 에너지를 그렇게나 낭비했나 싶다.

이옥섭 영화감독님처럼 너무 싫은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그냥 사랑해버리고

마음의 지옥에서 빠져나와야겠다.

우리는 죽음을 향해 하루하루 다가가는 삶을 살아간다.

오늘 내가 하는 선택은 다시는 되돌릴 수 없기 때문에 더욱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 단 한 번뿐인 지금의 삶을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또 사랑하면 된다.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넘어지겠지만, 일어나는 방법을 배웠으니

누군가 일으켜 주기를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털고 일어나면 된다.

자신을 넘어뜨린 자신을 용서하고, 다시 일어서게 된 과정을 솔직하게 고백하여

많은 사람이 자신만의 희망 일기를 쓸 수 있기를 바라는 저자의 마음이 잘 전달되는 책이었다.

#나를넘어뜨린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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얽힌 생명의 역사 - 지구 생명체 새롭게 보기
전방욱 지음 / 책과바람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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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빅뱅부터 생명이 언제 어떻게 탄생했으며 무엇이 생명을 만들어냈으며,

생물들이 어떻게 공생하며 지구를 이루고 있는지,

행성의 역사와 생명의 역사 그 방대한 얽힘을 조목조목 풀어낸 책이다.

행성적 시각으로 지구 생명체의 탄생과 진화를 설명하는

모두를 위한 생명과학 필독서라 과학 덕후들에게 아주 유용한 책이다.

생명은 우주의 수많은 요소가 한데 모여 새로운 유기적 단위로 응결한 사건이다.

별의 내부에서 만들어진 탄소, 질소, 인,

운석과 혜성이 실어 온 물과 유기물,

태양 빛과 자외선, 지구 내부의 열과 같은 에너지 흐름이

지구 표면의 물리 화학 지질 과정과 맞물리며,

우주의 척도로 보면 한순간이지만

사실은 장구한 시간 동안 응결을 이뤈낸 결과물이다.

화이트 헤드는 "다자가 일자가 되는" 합생이 일어난 것이라고 표현했다.

막-대사-정보(지질 소포체-원시 대사-RNA)가 합생하여 만들어낸

원시 세포라는 일자가 곧 다시 다자 속으로 흩어지며

주변 세계를 재구성하기 시작한 신비로움 그 자체이다.

생명은 끊임없는 융합과 협력의 산물이며, 서로 다른 존재들이

만남과 공존을 통해 전혀 새로운 차원의 가능성을 열어온 과정이다.

진핵세포의 기원은 공생의 연속적 사건 속에서 탄생했고,

그 결과 오늘날처럼 복잡한 생명의 무대가 가능해졌다.

2004년 이그노벨상 공중보건부문상 부분은

음식이 바닥에 떨어지고 5초 안에 주워 먹어도 괜찮지 않음을 연구한 것에

수상의 영광이 돌아갔다. 오염 정도를 좌우하는 것은 바닥에 떨어진 시간이 아니라

바닥의 표면 특성, 음식의 수분 함량, 세균의 종류임이 확인되었다.

실제로 박테리아는 음식 표면에 그냥 붙어 있기만 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그곳을 배양지로 삼아 증식하고, 서로를 보호하는 생물막까지 만든다.

인간의 접촉을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환경을 만들고

관계를 조직하는 행위자라서, 우리에게 위협이자 조율자로 작동할 수 있다.

유기체의 정체성은 공생 미생물과 분리될 수 없다.

포유류의 발생 프로그램 일부는 공생자 신호에 의존하는데,

인간 유전체의 적어도 8%는 바이러스 기원 서열이다.

인간 유전체에 고정된 바이러스 유래 서열은 태반의 구조를 만들고,

면역 관용을 돕고, 자궁 태반의 유전자 조절 네트워크를 세팅하며

초기 배아의 방어 체계까지 보강하는 데 사용된다.

이 바이러스 서열들이 변형을 거쳐 초기 배아 발생을 돕는다고 알려져 있다.

협력과 긴장이 공존하며, 이 균형을 유지 조정하는 능력이 건강의 핵심이 된다.

그래서 숙주와 공생자의 묶음을 한 단위로 보는 통생명체(holobiont) 개념이 제안되었다.

심지어 나무 속 목질층까지 식물과 미생물이 한 몸처럼 얽혀 있음이 밝혀졌다.

살아 있는 나무에서 나무의 내부 목질에서 코어 시료를 채취해 분석한 결과,

산소가 상대적으로 풍부한 변재에는 호기성 미생물이,

산소가 희박한 심재에는 혐기성 미생물이 이서식하는 등 미생물 군집이 뚜렷하게 달랐다.

한 그루 나무 안에서만 최소 1조 개 규모의 미생물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니

정말 놀라울 따름이다. 먼저 자리 잡은 미생물이 뒤따라 들어올 미생물의 정착을

좌우하기도 하고, 같은 미생물이라도 영양 상태, 온도, 습도, 산소 공급에 따라

이로울 때도 해로울 때도 있다.

가이아 이론은 지구를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다룬다는 오해와 호기심 사이를 오갔다.

약한 가이아는 생명과 환경이 짝을 이뤄 상호작용하면 공진화한다고 보며,

지금은 거의 상식이 되어 이견이 드문 반면, 강한 가이아는 생명이 있는 행성 전체를

하나의 살아 있는 시스템으로 간주하고 그 생명 활동이 그 시스템의 일부 변수를

능동적으로 조절한다고 주장은 비판받는다.

강한 가이아가 진화의 단위가 될 수 없으며, 생명에 유리하도록 환경을 최적화한다는

강한 가이아는 목적론적이며 검증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생명체가 자신을 이롭게 하려는 목적을 갖지는 않지만,

환경이 생명체에 유리하게 유지되려는 특징을 갖는다는 것은

그냥 연결에 의해 그렇게 된다.

연결과 순환이라는 가이아의 개념은 대기, 해양, 지질, 생물권을 하나로 묶어

관측과 모델링을 통합했다. 진화론은 공생, 생태적 지위 구축, 수평 이동을 품어

다윈주의를 보강했고, 후성유전학과 마이크로바이옴 연구는 환경 신호가

염기서열 변화 없이 발현을 바꾸며 숙주와 공생체가 함께 적응 단위를 이룰 수 있음을

보여준 것처럼 가이아 이론 또한 '의식 있는 지구'가 아니라 상호 작용의 네트워크와

되먹임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위기의 행성에서 가이아가 믿음이 아니라 연결을 계산하고 되먹임을 설계하는 방법으로

다시 호의적으로 해석되고 있음을 얽힘의 역사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얽힌생명의역사 #가이아의재발견 #통생명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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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 문장의 기억 (양장) - 살아 있음의 슬픔, 고독을 건너는 문장들 Memory of Sentences Series 4
다자이 오사무 원작, 박예진 편역 / 리텍콘텐츠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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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다자이 오사무는 인간의 고독과 절망을 깊이 탐구한 일본 문학의 독보적인 거장이다.

그의 작품을 읽으면 인간이라는 존재의 가장 어두운 면을 마주하게 되지만,

슬픔에 침잠하거나 비극으로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을 들여다보는 돋보기 역할을 해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게 된다. 각자의 삶에서 고독을 직면하고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그의 작품이 개인적으로는 어렵게 다가오는 면이 있었는데,

여러 작품의 중요한 문장을 곱씹어 보고 해석해 주니까 좋았다.

보이지 않는 파열을 통해 자기 인식의 기회를 주는 그의 작품에는

병든 마음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 마음이 부끄러운 것도, 고쳐야 할 대상도 아니며,

있는 그대로의 인간을 수용하는 일이 가장 진실한 존재 방식임을 보여준 것이다.

침대 밖으로 나온 여학생이 거울 앞에 앉아 흐릿하게 비치는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며,

안경을 쓰면 세상이 너무 날카롭고 투명하게 다가와 자신의 모습조차 실망스럽게 보이는 반면

안경을 벗고 흐릿하게 사물을 인지하면 온 세상이 아름답게 보인다고 생각한다.

녹초가 되어 깨어난 아침의 자신이 가장 추하다며,

아침이 왠지 삭막하고 슬프게 느껴지는 여학생의 마음이 뭔지 알 것만 같았다.

무조건적인 사랑과 보호를 받으며 행복했던 어린 시절과

지금의 모습이 얼마나 다른지, 따뜻했던 집 안의 분위기와 아버지의 자상한 목소리를

회상하는 것만으로도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쓸쓸해지는 여학생은

정말 아침에 일어나 안경을 쓰기 싫었을 것이다.

어머니가 손님들 앞에서 지나치게 웃으며 대접하는 모습이 실망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집안을 유지하려 노력하는 어머니의 모습임을 이해하기에 깊은 연민을 느끼는

여학생이 화려하지만 속인 빈 '로코코 요리'를 만들어 손님들에게 대접한 의도를

손님들과 어머니가 알아주면 좋을 텐데 말이다.

여학생이 주변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은 단순한 관찰이 아니라 철학적 성찰로 가득해서

<여학생>을 한 번 제대로 읽어보고 싶어졌다.

<비용의 아내>의 비용은 방탕한 범죄자이면서도 인간의 죄와 아름다움을 시로 노래한

15세기 프랑스 시인 프랑수아 비용을 가리킨다. 다자이가 비용을 자신의 분신처럼 여겼고,

그가 그려낸 주인공은 그를 끝까지 이해하려 한 세상의 마지막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다자이의 마지막 연인인 야마자키 도미에와 동거하던 시기에 발표된 작품으로

도미에는 현실 속 비용의 아내로 불리며, 다자이의 자살 동반자이기도 하다.

살고 싶지만 살 수 없는 인간이었던 다자이가 소설 속에서는

"인간답지 못하면 어때. 우리, 살아 있기만 하면 되는 거야"라며

삶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해 안타깝다.

삶을 포기했지만 누구보다도 살고 싶다는 욕망에 충실했고,

문장을 남기는 일이 버텨내기였던 사람이라,

다자이의 문장은 우리에게 불완전한 삶에서도 의미를 포기하지 말라고,

살아 있는 존재로서의 자신을 회복하라고 일깨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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